축구선수 윤기원 사망 미스터리

“조폭이 죽이고 자살로 위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5년 전, 한 축구선수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들은 의문점들을 제시하며 확실한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 측은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은 채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2011년 5월 당시 인천유나이티드 소속 골키퍼 윤기원 선수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윤 선수는 아주대학교를 졸업한 후 2010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5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시신 부폐 심해
사망 시각 부정확

1년 가까이 2군 무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기량을 쌓은 뒤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188cm, 79kg의 건장한 체격 조건으로 허정무 인천 감독의 큰 기대를 받아왔던 유망주였다.

총 8번의 경기에 출장을 하면서 K리그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아가던 윤 선수.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2011년 5월 6일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윤 선수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이 된 것.

그해 5월4일 윤 선수는 오전 훈련을 마치고 구단에 외출 승인을 받았다. 숙소를 나선 뒤 오전 11시4분에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고, 낮 12시30분에 이마트에 들른 이후 행방불명됐다. 윤 선수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구단에서는 그의 소재를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 없었다. 


실종 이틀 만인 6일 오전 11시50분쯤, 윤 선수는 서울 경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하행선 주차장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광장 주차관리원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발견 당시 차안에는 맥주캔과 과자봉지가 있었고 윤 선수는 누워있었는데 타다 남은 번개탄이 발견이 됐다. 맥주캔은 6개나 있었지만 윤 선수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고 외상 흔적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자세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국과수는 “전신에 특이할 만한 외상이 없고 혈액과 위 내용물에서 약물이 검출되지 않았으며 혈중 일산화탄소 헤모글로빈 농도가 82%로 나왔다”며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판단된다”는 소견을 밝혔다. 

2011년 윤기원 선수 주검으로 발견
경찰, 남긴 유서 단서로 자살 결론

경찰은 추가로 수사를 진행했고 윤 선수가 사망 전 노트북을 통해 포털 사이트에서 ‘연탄 자살’ ‘번개탄 자살’을 검색한 기록이 있는 점과 사망하기 일주일 전 여자친구에게 이별 통보 문자를 보낸 것 등을 감안해 자살이라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유족에게 윤 선수의 죽음은 더더욱 갑작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자살은 더더욱 납득할 수 없는 사인이었다. 그가 그렇게 발견되기 사흘 전, 그는 부모님께 어버이날 자신의 경기를 관람하러 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 이날 아버지를 위해 선물로 와이셔츠를 사 놓기까지 했었다.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속이 깊은 아이”라고 말했다.


또 주변에는 그를 “분위기 메이커”로 생각하는 동료들이 있을 만큼 그는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국가대표를 꿈꾸며 최선을 다짐하던 그가, 더구나 구단의 기대주였던 그가 갑자기 스스로 생을 마감할 이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가족들은 윤 선수가 특별히 자살을 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윤기원 선수가 자살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자친구와의 이별과 주전경쟁에서 밀린 스트레스라고 추정했지만 가족들의 주장에 의하면 4월 경쯤에 윤 선수가 먼저 여자친구와 거리를 두자고 말을 했었고 이미 4월 말경에 헤어진 상황이었으며 자살을 할 만큼 주전경쟁에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의문 투성이”
조심스런 경찰

보통 자살자들은 죽기 전후에 ‘징후’와 ‘정황’을 남긴다. 자살자가 남긴 유서는 자살이나 타살로 결론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윤기원은 자살 징후나 정황이 없었고, 유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의 동료 선수들도 한결같이 “기원이는 자살할 애가 아니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경찰이 처음 윤 선수가 인터넷에서 ‘연탄 자살’ ‘번개탄 자살’로 검색했다고 밝힌 시간이 4일 오후 3시20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는 4일 오전 11시37분으로 바뀌어 있었다. 

윤 선수의 어머니는 “경찰이 처음 노트북에서 ‘자살’을 검색했다는 시간은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이던 시간이다. 정확하게는 수원TG(톨게이트)를 통과하기 9분 전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운전자 본인이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검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우리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니까 나중 자료에 노트북 접속 시간이 달라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윤 선수가 서울 만남의 광장에 진입한 날짜와 시간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경찰은 5월4일 오후 11시2분쯤 윤 선수의 차량이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고, 11시7분쯤 검은색 비닐봉지를 들고 차량에서 내린 후 8분쯤 지나 다시 차량에 탄 것으로 밝혔다. 

이를 윤 선수가 만남의 광장에서 자살한 중요한 증거로 제시한 것.

윤 선수의 부모는 사건 이후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 찍혔다는 CCTV 영상 공개를 강하게 요구했다. 영상 공개가 어렵다면 영상을 캡처해서 인쇄한 것이라도 보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경찰은 계속해서 공개를 거부했고 나중에는 폐기하기에 이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 2014년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서 CCTV 영상을 요구하자 경찰은 “당시 CCTV 화질이 증거로 활용하기 애매해 영상을 폐기했다”고 밝혔다. 당초 ‘중요 증거’라고 했던 것과 상반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서울 만남의 광장 주차장에는 1시간 이상 장기 주차를 금지하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이를 위반하면 불법 주차 스티커를 붙인다. 하지만 윤 선수의 차에는 스티커가 붙어있지 않았다. 이런 점을 보면 윤 선수의 차량이 만남의 광장에 진입한 날짜와 시간이 불명확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왜 CCTV를 통해 윤 선수와 차량을 식별했다고 했을까. 이에 대해 해당 경찰서는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가 현재 근무하지 않아 자세한 답변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 선수가 자살했다고 가정했을 때 숙소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서울 만남의 광장을 선택한 것도 의문이다. 사람과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드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자살 장소로 삼았다는 게 석연치 않다.

“영상은 어디에”
CCTV 폐기 왜?

윤 선수의 차량이 있던 곳은 사람과 차량이 빈번하게 오가는 곳이었다. 만약 번개탄을 피웠다면 숨을 거두기 전에 발견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의 현장 보존도 문제가 됐다. 변사 사건의 경우 사건이 종결되기 전까지 현장을 보존하는 것이 기본인데 경찰은 사건 현장에 폴리스라인도 치지 않았고 차량을 곧바로 관내 파출소로 옮겼다.

윤 선수의 어머니는 당시 인천 유나이티드 허정무 감독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편지에는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고 오명을 바로 잡도록 진실을 꼭 밝혀 달라”고 당부하는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의 간곡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옥씨는 편지에서 “ 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아들에게 베풀어 준 감독님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전했다.


윤 선수가 사망한 후 빈소에는 동료 선수가 많이 찾아왔다. 윤 선수의 부모는 이곳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는다. 윤 선수가 승부 조작 제의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자 3주 전부터 “죽인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 5월 우리나라 K리그 역사상 초유의 사태인 승부조작 사건이 벌어져서 리그자체가 중단돼버리는 상황까지 갔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수많은 K리그 선수들이 승부조작으로 형사처벌을 받고 축구협회에서 제명을 당했다.

당시 K리그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선수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승부조작에 가담을 하면 돈을 줬다”며 “비기는 것도 안되고 무조건 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폭들은 다섯명 가량의 선수들을 앉혀두고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식의 협박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윤 선수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동료 선수가 있다는 말도 들었다. 윤 선수 아버지는 “조폭들이 기원이를 봉고차에 태운 후 번개탄을 피워 차량에서 내려도 죽고 내리지 않아도 죽는다고 협박했다고 한다. 봉고차 밖에서 조폭들이 차 문을 막아섰고 그곳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기원이는 가스 질식으로 죽었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정황상 타살 가능성 제기
승부조작 거부? 조폭 연루 주장

윤 선수의 친구는 “취직자리를 장난스럽게 물어본걸 보니 사망 전에 축구를 그만둘 생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선수의 친구는 “프로 축구에서 축구를 하고 게임을 늘 뛰고있는 그가 축구선수를 그만들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이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편 사망 당시 윤 선수를 수사했던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윤 선수의 자살 동기를 조사하기 위해 노트북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계좌 및 통화내역 등을 조회해 봤지만 승부조작과 연루됐을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망한 지 5년여가 지났지만 윤 선수의 부모는 ‘자살’을 인정할 수 없다며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윤 선수의 부모는 행정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경찰이 내놓지 않는 ‘수사 자료’ 등을 받을 생각이다. 만약 경찰에서 공개를 꺼리거나 자료를 주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4년여 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윤 선수의 죽음은 점차 잊히는 듯했다. 지난 2014년 12월 <모두의 가슴에 별이 된 골피커>란 책이 세상에 나왔다. 윤 선수가 세상을 떠난 2011년 5월6일 이후 3년7개월 만이다. 

세상이 외면한 아들의 외로움과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그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윤 선수의 어머니 옥정화씨가 쓴 이 책은 멈춰버린 그 시간에 대한 토로다.

언론을 포함한 소통 창구가 막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옥정화씨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직접 펜을 들었다. 책과 옥정화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윤 선수의 사망은 공식적으로 ‘자살’로 처리됐다. 하지만 윤 선수는 주민등록상에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다. 

“승부조작 연루”
충격적인 증언

옥정화씨가 사망신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떠나보내지 못해서’라거나 ‘가슴에 살아 있어서’와 같은 일차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사망 신고를 할 경우 아들의 죽음이 자살로 인정되기 때문”이라는 명확한 논리에 의한 것이기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는 옥정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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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