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제가옥’ 직접 가보니…

친일파 한상룡 살다 도망

[일요시사 취재1팀] 신상미 기자 = 가회동엔 ‘한씨 가옥’이라고 불리는 집이 두 채 있다. 정독도서관(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전 경기고)과 A그룹 회장 저택 사이에 위치한 백인제가옥과 맞은편 산업은행관리가라고 불리는 근대한옥이 그것이다. 전자는 1913년에 건립돼 올해 103년을 맞은 한옥으로 대지 907평, 건평 165평에 달하는 근대한옥이다. 후자 역시 규모는 이보다 덜하나 가회동에서 윤보선가옥과 백인제가옥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한옥이다.

두 가옥 모두 일제강점기 유명한 친일파이자, 금융가였던 한상룡이 소유했던 집이다. 한상룡은 백인제가옥에서 1928년 7월까지 15년을 살았고 이후 산업은행관리가로 이사가 1946년 일본으로 도주할 때까지 살았다. 그는 도쿄에서 일본인들의 외면 속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바로 옆집인 177번지는 역시 친일파로 유명했던 박흥식이 거주했다. 후에 명당자리라고 소문이 나면서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사들였다. 

구한말 한상룡 한성은행 취업

한상룡은 한성은행(조흥은행, 현 신한은행) 전무로 일하던 불과 33세의 나이에 백인제가옥(1944년 집을 사들인 백인제 박사의 이름을 따 명명)을 건립했다. 인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장 높은 지대에 조성된 집으로, 일가 14명의 대가족이 해당 가옥에서 살았다.

옆집인 A그룹 회장의 저택도 최초엔 원래 필지에 속했다. 한상룡이 젊은 나이에 대저택을 소유할 정도로 성공했던 것은 그의 가문 배경에서 기인했다. 평생의 후견인이었던 완순군 이재완(고종의 사촌), 이완용(외숙), 이윤용(외숙, 대원군의 사위)을 통해 총독부 및 재계에 큰 영향력을 일생 동안 유지했다.

구한말 한상룡은 같은 양반 출신들이 대부분 관료로 입신 출세할 때 한성은행에 취직해 기업가로서의 길을 일찌감치 시작했다.


한상룡은 일제하 한성은행, 조선생명, 조선신탁 등 금융업을 중심으로 기업활동을 하며 평생 동안 무려 300여개의 각종 기업 설립과 경영에 관여했다. 그는 김성수-김연수 형제나 민씨일가, 박흥식, 장직상, 현준호처럼 자기 자본을 가지고 거대기업군을 일군 대자본가는 아니었으나 세계경제에 대한 식견을 갖고 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전문경영인’(CEO)으로 평가받았다.

일제강점기 경제발전에 기여한 만큼 한상룡의 ‘매국행위’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 시부사와 에이이치, 메가타 다네타로를 조선의 3대 은인이라고 칭하고 그들을 포함해 역대 총독들의 송덕비, 동상 건설 및 전기 편찬을 주도했다.

또 일제의 대륙침략에 따른 ‘만주 붐’에 관심을 갖고 전쟁, 군수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인을 강제노역시키던 기업들이다. 또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각종 시국강연회 및 담화를 통해 일제정책을 선전하고 전쟁협조 여론을 조성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전쟁이 본격화되자, 국방헌금을 내고 지원병, 학도병, 징병 독려에 나섰다.

한상룡은 1906년 가회동 93번지로 이사 와 1912년까지 인접한 가옥 12채를 매입해 부지를 확보, 다음해 저택을 완공, 7월부터 거주했다. 가옥은 첫눈에도 골목길에 면한 넓은 출입마당이 돋보이는데, 자가용 소유자가 드나들었음을 알 수 있다. 1935년 이축된 높은 화강암 계단을 오르면 당시 경성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했다.

입구에 들어서서 사랑중문을 통과하면 널찍하고 탁 트인 사랑마당이 극적으로 펼쳐진다. 사랑채 담장은 당시 신식재료였던 붉은 벽돌을 써서 한상룡 자신의 현대성을 적극적으로 대변했다. 개화기의 서양 선교사 주택이나 서양식 건물에 적용된 최신재료와 구법에 영향 받았음을 엿볼 수 있다.

24년간 거주하다 일본으로 도주
“히로부미는 은인” 대표적 매국노

가옥은 서쪽의 안채와 동쪽의 사랑채로 나뉘는데 사랑채와 사랑마당은 가옥의 얼굴이자 중심, 최고의 위계공간이다. 잔디가 깔린 넓은 사랑마당에서 한상룡은 총독, 기업가, 고위관료, 귀족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역대 조선총독이 모두 가옥을 방문했고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의 교류의 장이자 장안의 명소였으며 석유왕 록펠러 2세가 내한시 방문할 정도였다. 가옥 자체에서 그의 권력과 야심, 사회활동의 규모를 엿볼 수 있다.

가옥의 기둥 높이도 3.1m로 운현궁에 맞먹는 높은 주고를 자랑한다. 대들보도 일반 한옥보다 높다. 현재도 구하기 어려운 ‘만주 흑송’을 최초로 사용한 집이기도 하다. 실제로 서울시는 흑송을 구하지 못해 홍송으로 가옥을 복원했다.

최신식 근대요소와 의도적 일본요소를 도입해 건립 당시 최고 수준의 건축물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안채와 사랑채를 따로 짓지 않고 속복도로 연결한 선구적인 시도가 눈에 띈다. 당시로선 귀했던 유리창과 외국서 수입해온 정원수, 일본식 벽장, 특히 안채 일부를 2층으로 만든 것은 낙성 당시에도 기사화 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아내가 머무는 안채는 겹방 형식을 수용해 사대부 가옥에선 보기 힘든 3칸의 깊이를 가지고 있는 점도 특이하다. 이는 궁궐건축에서나 볼 수 있는 형식으로 한상룡이 아내를 각별히 사랑하는 가정적인 성격이었음을 드러내준다.

또 조선 또는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무늬’가 안채와 사랑채 벽에 두루 쓰인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다. 일본 정재계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집임에도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태극무늬를 적용한 것은 한상룡 본인이 왕족 집안이라는 점을 과시하는 자존심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일 가옥 공존의 근대한옥

오늘날 백인제가옥은 근대양식과 전통양식, 사랑채의 사회성과 안채의 개인성, 한옥과 일본가옥 요소가 공존하는 실험적이고 선구적인 양식의 근대한옥으로 평가받는다.

박상욱 ㈜건축사사무소 자향헌 대표는 <한상룡가옥의 원형과 조영개념>에서 “한옥을 근간으로 한 목구조를 바탕으로 근대적 합리성이 구현된 집이자 전통적 한옥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근대성을 수용한 실험적 도시한옥”이라고 정의하고 “친일의 대가로 부여받은 지위와 조선경제의 일본 예속화를 향한 활동으로 축적한 자본으로 지어지고 그런 건립동기와 목적으로 활용된 건축이란 점에서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가옥은 그 건축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태생적으로 근대기의 씁쓸한 유산일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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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