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봉 비웃는 공기관장 리스트

회사는 쓰러져 가는데 월급 4000만원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번 국정감사에서 집중 포화를 맞지만 그때뿐이다. 속 시원한 개선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천문학적인 부채는 도무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반대로 공공기관장에 투입되는 인건비는 해마다 치솟고 있다. 심지어 몇몇 공공기관장 자리는 대통령보다 벌이가 쏠쏠하다.

지난 5일 인사혁신처가 내놓은 ‘공무원 보수·수당 규정’ 개정안에는 고위급 공무원들의 한해 보수가 상세히 기록돼 있다. 국무총리는 540만원 인상된 1억6436만6000원, 부총리·감사원장은 1억2435만2000원, 장관 및 장관급 공무원은 1억2086만800원의 연봉을 받는다. 모두 지난해보다 3.4% 올랐다. 수당 등을 더할 경우 총 보수 인상률은 3.0%로 조정된다.

연봉만 4억
대통령 2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대통령이 받는 연봉이다. 박 대통령의 올해 연봉은 697만원 오른 2억1201만8000원으로 책정됐다. 대통령이라는 직책의 무게를 감안하면 과도하다고 보기 힘든 금액이다. 여기 저기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도 상당하다.

지난해 청년희망펀드를 제안했던 박 대통령은 매달 월급의 20%를 펀드에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연간 청년희망펀드 기부액은 4240만원에 이른다. 매번 월급에서 353만원씩 꼬박꼬박 나간다. 월 300만원 이상 나가는 새누리당 당비까지 합치면 매년 내야할 고정금액이 8000만원에 육박한다.

연봉만 놓고 본다면 딱히 매력적인 부분을 찾기 힘든 셈이다. 수 십억원에 달하는 대기업 임원의 연봉과 비교하면 초라하기까지 하다. 멀리 사기업까지 갈 필요도 없다. 일부 공공기관장의 수령액 역시 대통령을 훨씬 웃돈다.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노원 갑)은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공공기관 현황 편람’의 분석 자료를 공개했다. 조사대상은 정부의 투자·출자나 재정지원 등으로 운영되는 316개 공공기관이다.
 

시장형 공기업(14개), 준시장형 공기업(16개),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17개),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69개)과 기타공공기관(200개) 등이 포함됐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를 토대로 작성된 이 문건에 따르면 기업·수출입·산업 등 3대 국책은행의 기관장들이 상단을 빼곡히 채웠다.

‘방만’ 공공기관 인건비 해마다 증가
중심에 기관장…하나같이 고액 연봉

가장 높은 연봉이 책정된 공공기관장 자리는 평균 4억7051만원을 수령한 중소기업은행장이었다. 중소기업은행장의 연봉은 2012년과 2013년 각각 5억원이 넘었고 2014년에는 3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한국수출입은행장(4억5964만원), 한국산업은행장(4억4661만원), 한국투자공사 사장(4억2864만원) 역시 대통령보다 2배 이상 연봉을 받는다.

이외에도 다수의 공공기관장 자리가 넉넉한 연봉을 보장한다. 한국과학기술원, 국립암센터, 한국주택금융공사, 기초과학연구원,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즘기금까지 연봉 상위 10대 공공기관의 수장들은 모두 대통령보다 연봉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2014년으로 국한하자면 안홍철 전 한국투자공사 사장이 선두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공공기관 기관장에게 지급된 연봉 총액은 약 465억원. 안 전 사장은 4억750만원의 연봉을 챙기며 1위에 올랐다. 전체 기관장의 평균 연봉인 1억5000만원의 약 2.5배에 해당한다.

한국투자공사는 모든 직급에 걸쳐 연봉이 수위권이었다. 상임 이사와 감사의 연봉은 각각 2억9321만원, 2억9516만원으로 모든 공공기관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다. 반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의 연봉은 2640만원으로 가장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기관장 연봉이 1억원 미만인 공공기관은 24개로 전체의 7.7%에 불과했다.


해당 공공기관에 몸담은 직원들 역시 만만치 않은 연봉을 자랑한다. 3년 평균 공공기관 직원 1인당 연봉 순위는 한국투자공사가 1억384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한국예탁결제원(1억83만원), 한국기계연구원(9866만원), 한국원자력연구원(9702만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9513만원) 등도 직원들의 연봉이 공공기관 가운데 최상위권이었다.
 

3년 평균 신입사원 초임 연봉 순위는 항공안전기술원이 4420만원으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4315만원, 한국연구재단 4296만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4270만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4226만원 순으로 조사됐다.

경영평가가 우수한 공공기관이라면 대규모 성과급마저 기대해 봄직하다. 기획재정부는 매년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경영평가를 진행한다. 다만 금융권 공공기관은 금융위가 경영평가를 실시하며, 외부위원이 평가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평가 등급은 S부터 E까지 총 6등급이다. 지난해 경영평가 결과는 올해 6월께 나온다. D등급 이하는 성과급이 없지만 S, A, B, C등급은 차등 지급받는다.

3대 국책은행
수위권 독차지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임원들의 성과급도 달라지는데, 지난해보다 등급이 내려간다면 성과급이 줄고 결과적으로 연봉이 깎이게 된다. 한국산업은행의 경우 2013년 기재부의 공공기관 임원 보수지침에 성과급이 최대 200%에서 120%로 변경되면서 연봉이 크게 줄어든 상태다.

한국산업은행 회장은 2013∼2014년 결산 기준 각각 1억8114만원을 기본급(연봉)으로 받았다. 같은 기간 성과급은 3억1689만원에서 1억5397만원으로 낮아져 총 연봉은 4억9804만원에서 3억3512만원으로 떨어졌다. 2014년 받았던 A등급을 유지하지 못하면 올해 한국산업은행 회장의 연봉은 2억원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해당 공공기관들이 과연 연봉에 합당한 업무를 수행하느냐이다. 연봉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많더라도 이들의 활동을 외부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기관장이 고액 연봉을 수령하는 공공기관 대다수가 엄청난 부채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공공기관장 연봉 순위에서 최상단을 차지한 곳일수록 상황이 심각하다.

중소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의 도합 부채규모는 무려 452조원에 육박한다. 직원 1인당 평균 연봉 1위에 오른 한국투자공사 역시 큰 액수의 부채를 안고 있긴 마찬가지다. 특히 중소기업은행(204조원), 한국산업은행(247조원)의 부채는 단 시간 내 처치가 곤란한 수준이다.

한술 더 떠 몇몇 공공기관은 부채와 상관없이 임직원들의 평균 연봉을 매년 인상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청렴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획득했더라도 연봉 인상을 주저하지 않았다.

부채는 뒷전
유명무실 평가

한국농어촌공사의 경우 2013년 청렴도 평가 5등급(매우 미흡), 2014년 4등급(미흡)으로 평가받았고 부채도 매년 증가했지만 기관장 연봉과 직원 1인당 평균 연봉은 3년 내내 상승세였다.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광해관리공단,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청렴도 평가는 4·5 등급으로 미흡했고 경영실적도 C등급으로 평범했지만 기관장 연봉이나 상임이사 연봉이 3년 내내 인상됐다.
 

물론 부채가 많다고 경영실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줘야 한다는 건 아니다. 공공기관별 업무 특성에 따라 일정 수준 이상의 부채는 감안해야 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공적 자금 투입 과정에 연관되는 공공기관에게 대규모 부채는 일종의 세금처럼 인식되곤 한다.


실제로 예금보험공사는 2010년 이후 5년 만에 지방은행 분할매각 및 우리금융지주 분할매각에 성공해 공적자금 2조2000억원을 회수, 재정절감에 기여했다며 우수 사례로 꼽혔다. 이해관계자 갈등 해소, 매각대금 과세문제 해결 등에 노력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예금보험공사의 부채는 22조원에 이른다.

다만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가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데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공공기관의 전년도 경영실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임원 인사 및 성과급 등에 반영한다는 취지가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까닭이다. 매년 국정감사에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의 허점이 지적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노근 의원은 “상당수 공공기관이 막대한 부채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작 기관장은 대통령 연봉을 능가하는 고액 보수를 챙기고 있다”며 “부채가 늘고 기관평가가 낮아도 임직원 연봉을 계속 인상하는 기관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액 연봉을 받았다면 그 이상의 책임감을 보여야 하는 게 순리건만 상당수 기관장들은 임기를 제대로 채울지조차 미지수다. 벌써 관뒀거나 당장 자리보전 자체가 불명확한 기관장들도 눈에 띈다.

막대한 부채에도 계속 인상
기업은행장 평균 연봉 단연 ‘1등’

2013년 12월 취임 당시부터 야당의 사퇴 압력을 받아온 안홍철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지난해 11월 임기를 1년여 남기고 사퇴했다. 재임 중 잘못된 투자와 호화출장 등으로 구설에 오른 것만 해도 수차례다.


권선주 중소기업은행장과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능력의 유무를 떠나 주변 환경이 논란을 부채질한 경우다. 2013년 12월 기업은행의 수장으로 취임한 권 행장은 ‘최초 여성 1급 승진’ ‘최초 여성 부행장’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란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다.
 

부임 초기만 해도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였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이 “권 행장을 본받아라”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을 정도다. 다만 임기가 끝나기 전에 다른 정부 부처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권 행장의 임기는 올해 12월까지다.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역시 거듭 교체론이 나돌고 있다. 2014년 3월 수출입은행장에 취임한 이 행장은 이전부터 금융권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서강대 경제학과를 거친 박 대통령과는 서강대 동문이자 금융권의 대표적인 친박 인사로 파악된다.

이 행장은 과거 수은이 지원했던 기업들이 잇따라 쓰러지는 과정에서 리더십에 의문부호가 따랐던 전력이 있다. 최근에는 오는 4월 임기가 만료되는 홍기택 한국산업은행 회장의 후임으로 물망에 오르내린다. 이 행장의 임기는 2017년 3월에 완료된다.

문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공공기관장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할 시 최악의 경우 정피아 논란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공공기관은 14곳. 때마침 4월 총선이 가까워지는 만큼 정피아 낙하산 인사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임기 남기고
떠나면 끝?

이 경우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은 계속해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연봉만 챙기다 기회가 되면 자리를 박차고 떠나는 모양새가 재현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공공기관 개혁이라는 취지에서 동떨어지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한 상당수 공공기관에 대한 인식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공공기관장 자리에 정치권 인사들이 내려와 잡음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이 해마다 제기되는 만큼 기관장 내정에서부터 납득할만한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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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