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김우일의 한국재계 30년 비사

역대 대통령과 재벌총수 함수관계 ⑫전두환 편
“너 얘, 넌 쟤 먹어!”일방적 기업 짝짓기  봇물
 
정부와 기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아가 대통령과 총수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함수관계다. 그동안 기업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어떤 배에 타느냐에 따라 순항과 표류를 반복해 왔다. 유독 거침없이 승승장구한 신흥 재벌이 있는가 하면 하루아침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비운의 총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공식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요시사>는 ‘대우 제국’의 마지막 구조조정본부장을 지낸 김우일 ㈜대우M&A 사장이 박정희 정권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정·재계 실세들과 부대끼면서 겪은 ‘한국재계 30년 비사’역대 대통령과 재벌총수간 애증관계를 연재하기로 했다.

1970∼80년대 중동아시아의 오일달러를 쫓아 앞뒤 안 가리고 진출했던 건설업체들은 신이 났다. 순식간에 오일달러가 들어오고 기업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여러 개의 신생 건설그룹도 생겨났다. 경남기업그룹, 삼익주택그룹, 삼호주택그룹, 라이프주택그룹, 한양주택그룹 등이다

건설업체 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덩달아 그 분위기에 휩쓸렸다. 국내보다 월급이 4배나 많은 해외건설현장에 3년만 취업하면 귀국해서 집도 사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니 너도 나도 해외건설현장에 기능공으로 나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였고 꿈이었다.

해외기능공 부인 탈선 중도 귀국 등 악순환

각 해외건설업체에는 해외 기능공으로 나가고자 하는 수많은 인력들이 몰려들었다. 마치 노다지를 캐러 먼 길을 떠나는 광부의 심정과 같았다. 그래서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 볼 수가 없는 해외인력부라는 부서가 건설업체에 큰 비중을 가진 조직으로 부각됐다.

그러나 이 ‘신데렐라의 꿈’은 신기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처·자식을 위해 대박을 꿈꾸며, 사막의 열기를 온 몸에 덮으며, 불철주야 위험을 무릅쓰고 떠났던 해외기능공의 거친 손에는 고향의 동생으로부터 형수님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알리는 편지가 쥐어지곤 했다.

“형님, 형수님이 요새 이상해졌습니다. 형님의 통장에 많은 돈이 꽂히자 나들이가 심해지고, 심지어는 밤늦게 집에 들어오지 않고 애들도 돌보지 않고 있습니다. 형님이 벌어 오신 귀중한 돈을 탕진하는 것 같아 저의 심정도 무겁습니다. 아마 제 생각에는 남자가 생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형님이 형수님에게 잘 타일러 보십시오.”

이역만리에서 이런 편지를 받아 본 사나이의 가슴에는 피 눈물이 솟구친다. 당시 가난하게 집에 얽매어 살던 서민층의 아낙들이 갑자기 일확천금으로 남편이 벌어다 준 돈 때문에 이성이 마비되고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카타르시스에 빠졌던 것이다. 이른바 그 유명한 ‘춤바람’이었다.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현란한 조명과 춤이 난무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반드시 있듯이 이 조명과 춤에는 도처에 눈을 두리번거리며 자기의 먹이를 찾고자 헤매는 ‘제비족’이 기생해 살게 마련이다. 세상에는 낮과 밤, 양과 음, 성공과 실패, 선과 악, 하늘과 땅, 삶과 죽음, 천사와 악마, 원심력과 구심력 등 반대 방향의 극과 극에서 양단(兩端)을 구성해 팽팽하게 댕겨주고 느슨하게 해주는 동인(動因)이 반드시 존재해 왔다. 이 양단의 동인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세상의 자연법칙은 무너지고 우주가 존재할 수가 없다. 따라서 양단의 동인은 동전의 양면이요, 손바닥의 앞과 뒤인 것이다.

제비족들은 춤바람 난 여자를 사냥했고, 이는 육체의 탈선과 가정의 탈선을 불러왔다. 탈선은 탈선에 그치지 않고 남편의 중도 귀국과 이에 따른 가정파탄, 혹은 현지에서의 자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해외건설업체나 언론에 상당히 큰 사회문제로 떠올랐고, 이런 고정(苦情)처리가 건설업체의 주요사항으로 여겨졌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오로지 수출만의 대박을 향해 달음질치던 건설업체의 발이 땅 위의 돌에 걸린 셈이다. ‘무리하게 경쟁해서라도 수주부터 따야겠다’는 경영자의 좁은 안목으로 공사하면 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덤핑수주가 유행했고, 이는 낙찰금액이 실행예산금액의 반에도 못 미치는 공사수주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중동아시아 국가는 공사결제를 현금으로 하지 않고 현물로 대신했다. 원유였다. 가공해서 팔아야 하나 이의 가공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코스트가 대단했고 특히 저장할 탱크도 없었다. 심지어 현물도 주지 않고 기성 확인을 어렵게 해 공사대금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맡은 건설회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공사를 계속했다. 한번 정부의 눈 밖에 나면 앞으로 공사는 끝이었기 때문이다.

해외건설업체들은 곧 눈앞에 닥칠 사태를 청와대에 읍소했다. 달리 호소할 데가 없는 기업은 그래도 기댈 곳이 청와대라 생각했다. 국가차원에서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상수라 생각한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기업경영자의 오판에 불과했다. 청와대는 중동국가들에 대한 외교상의 채널 대신 읍소한 건설업체를 인수해 정상화시킬 새로운 경영자를 찾고 있었다. 중동국가들과는 별 친목관계를 갖지 않았던 전두환 정부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었겠지만, 정부를 믿고 정상화 지원을 요청했던 기업들로선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그렇게 해외건설업체의 줄도산이 눈앞에 다가 왔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대통령은 여러 해외건설업체의 매각을 발표했다. 또 인수 적격 업체도 밝혔다. 이런 경우 입찰에 붙이거나 아니면 인수자의 의향을 들어보고 적의 조정해야 하지만 청와대는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지정해버렸다.

해외건설업체의 부실이 예상보다 엄청나 교과서대로 인수자를 물색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도 이들 부실업체를 인수하려고 자원하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신문지상에 큼직한 기사가 떴다.
‘K기업은 대우, 삼호주택은 D산업, 삼익주택은 K기업, 라이프주택은 T기업, 한양주택은 A기업 등으로 매각업체와 인수업체를 결정했습니다.’

“정부에 말도 못하고…”‘울며 겨자 먹기’공사

각 인수기업은 실사팀을 구성, 전격적인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의 일방적인 매도자와 매수자의 짝꿍을 만들었으니 짝꿍끼리 잘 맞춰 잘 살아야지 마음이 안 맞아 헤어지면 어떤 불이익이 초래될지 가늠하기 힘들었다.

대우의 경우 엄청난 기업실사단이 기획조정실을 중심으로 편성됐다. 사우디아라비아 해외현장을 거점으로 동남아시아 현장, 국내현장 등 많은 현장들이 공사를 제대로 못하고 엉거주춤하고 있었다.

K기업은 주거래은행인 외환은행이 대주주인 S씨의 주식을 차압하고 은행관리상태로 있었다. 재미교포인 S씨는 당시 적은 돈으로 K기업을 인수해 해외건설 붐에 편승,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으나 합리적인 경영보다 자의적이고 불투명한 경영으로 순식간에 기업을 도탄지경에 빠트린 것이었다.

필자가 실사하면서 느꼈던 점은 기업 CEO는 절대 ‘GAG MAN’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GAG MAN은 웃기는 개그맨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CEO가 조심해야 할 룰을 가리키는 것이다.
‘G=GAMBLING(도박), A=ALCOHOL (술), G=GIRL(여자)’

이 세 가지 요소가 CEO를 가장 위태롭게 만드는 인자다. K기업의 대주주이며 CEO인 S씨는 제사보다는 잿밥에 더 욕심이 많았던 자였던 같았다. 싱글인 그는 ‘여자 사냥’을 밥 먹듯이 하면서 회사 돈을 축내기 시작했고, 실제로 영화배우인 T씨를 자기의 부인인양 데리고 있으면서 해외 P에 많은 회사 돈을 송금해 기업의 자금을 부도덕하게 손실내고 있었다.

여기에는 해외에서의 도박이 빠질 수 없었고, 또한 술이 약방의 감초로 작용되어 더욱 더 명석해야 할 CEO의 정신을 혼미에 빠트리고 정상적인 판단력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즉 이 GAG는 기업 CEO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결국은 기업을 깡통으로 만드는 마력을 지닌 것이다.

‘CEO = GAG MAN’도박·술·여자 ‘3불’

외로이 정상을 지키며 수많은 종업원의 생계와 사회경제를 책임져야 될 CEO는 무엇보다 심신이 청결하고 순수해져야 한다. 이 순수함이 국내외로 끊임없이 변하는 치열한 경쟁환경 속에 무엇이 사회와 국가를 위하고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판단인지 구분할 수 있는 예지력을 주기 때문이다.

예지력이라 함은 깨끗한 심신의 순수함과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어울려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는 ‘PREDICT’를 의미하지 GAG로 얼룩진 심신의 불결 속에 점쟁이가 하듯이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임기응변식으로 마구 해대는 ‘FORETELL’을 의미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험상 적당을 벗어난 GAG를 즐기는 CEO 치고 기업을 망가뜨리지 않은 이가 별로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작금에 이르러 상장기업중 부도에 이르는 대부분의 이유가 CEO의 횡령 등 부도덕과 판단미스에 따른 것임을 보면 얼마나 CEO 역할이 중요한지 알 수가 있다. 각 인수기업들이 실사를 끝내고 엄청난 부실의 재무구조를 보며 인수가 불가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지시한 일이라 내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대통령에 순응하느냐, 아니면 항명하느냐….’

각 인수기업 총수들은 인수를 할 수 없는 막막함에 속을 앓았다.
정리=김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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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