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1)요주의 인물

두 가지 요구로 국면 전환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잘못된 게 아니라 당신이 영사관 요주의 인물이라 하더라고. 그래서 혹여나.”

“왜 혹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할까 염려되어 그래.”

“당연하잖아. 행여나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나는 어쩌라고.”

석원이 슬그머니 팔을 빼어 기미코를 가슴으로 껴안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기미코가 석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한고비 넘겼는데…

“당신도 전에 윤대중 선생 연설 들어본 적 있잖아.”

“물론 그랬었지. 당신과 함께.”

“그때 그분께 상당히 감명 받았고 앞으로 우리 조선사회는 그분이 의도하는 방향대로 나아가야 한다 생각해.”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여하한 경우라도 당신이 우선이니 그것만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해.”

오사카 영사 유창열이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을 방문하여 김 대사와 조 참사관과 자리를 함께하는 중이었다.

“그곳은 조용하오?”

“이곳보다야 덜 하겠지요.”

김 대사의 질문을 받은 유창열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참. 한고비 넘은 듯한데 다시 일이 꼬이는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유창열의 질문에 김 대사가 조 참사관의 얼굴을 주시했다.
 



“일본 정부는 이제 그만 접으려 하는데 의회와 언론은 더욱 기승부리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은 마치 조사기관을 방불하듯 헬기까지 띄워 대사관을 탐색 중에 있습니다.”

“헬기까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직원들이 업무를 보지 못할 정도로 공갈 협박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습니다.”

“허허 참. 그거 보면 이거 우발적이 아니라 조직적인 움직임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직적이라 하였소?”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효 대사가 나섰다.

“저희 영사관에도 협박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있습니다. 특히 난조 샤쿠겐이라 이름을 밝힌 한 청년은 윤대중을 일본에 데려오지 않으면 다이너마이트로 영사관을 폭파하겠다고 수시로 전화하고 있습니다.”

“난조 샤쿠겐이라.”

“자신의 소속을 한청이라 밝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재일 한국인 청년인 듯합니다.”

“경찰에 신고하시지 않았습니까?”

“신고한다면 지금 일본 경찰이 신경 쓰고 수사에 임하겠습니까?”

“하기야.”

조 참사관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 절로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대사님.”

“말씀하세요.”

“일본 정부와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주한 일본대사관을 통해 우리 정부와 협상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일본 측에서 모양새를 위해 한국 측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적극적인 성의를 보여 줄 것을 요청하는 모양입디다.”

“당연히 그러하겠지요. 그리고 그 이성원 서기관 건은 어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이 서기관에 대해 조처 취하려 합니다.”

“조처라니요. 그러면 이 서기관이 진짜 사건에 개입되었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렇지는 않지요. 그러기에 조처 취하려 합니다.”

유 영사가 이해되지 않는지 조 참사관의 얼굴을 주시했다.

언론 집중조명 "덮을 수 없는 사건"
외신의 활약…궁지 몰린 정부 선택은?


“일종의 압박이지요.”

“압박?”

“사건과 전혀 연관도 없는 이 서기관을 범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한 일본 경시청의 처사에 대한 항의입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유 영사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서울로 보내시렵니까?”

“당연하지요. 아울러 그 일이 이 사건에 대해 우회적으로 일본에 항의하는 방법이 될 테지요.”

“일본 측에서 요구하는 윤대중 씨의 방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한답니까?”

“그는 안 될 일입니다.”

“무슨 사유라도 있습니까?”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일본으로 돌아오면 또 망명정부니 헛소리하면서 돌아다닐 터인데 그를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단지 그 사유 때문인가요?”

“하면?”

“혹여 납치사건에 대해 우리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없습니까?”

“그 부분은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워낙 완벽하게 일처리 해서. 그리고 이 서기관과 관련하여 윤대중 씨와 양일영, 김수인 의원 등에게 확인한 결과 그들 모두 일면식도 없었다 진술했답니다. 그러니 참고하세요.”

“허허, 그런데 경시청은 어떻게 그런 무모한 짓을 벌였답니까. 소문에 의하면 극비로 정보를 입수한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은근하게 답한 김 대사가 조 참사관에게 고개 돌렸다.

“조 참사관은 그 출처를 알고 있소?”

“전혀 아는 바 없습니다.” 

조 참사관 역시 시치미 떼고 말을 맺었다.

“그런데 이 사람 올 때 되지 않았소?”

김 대사의 이야기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며 일본 외무성의 고이즈미가 들어서고 있었다.

“영사께서도 오셨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유 영사의 존재를 확인한 고이즈미가 가볍게 고개 숙이며 자리 잡았다.

“차관께서 오신다고 하여 여러 일이 궁금해 발걸음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도 결례는 아니 되겠지요.”

“결례라니요, 함께 해결해야지요.”

해결이라는 말에 세 사람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어려운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고이즈미가 세 사람의 의중을 간파한 듯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말씀 주시지요.”

조 참사관이 세 사람을 대표하여 말을 받았다.

“우리 일본 정부는 작금에 발생한 윤대중 씨 납치사건과는 별개로 일본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정상화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윤대중 납치사건은 어떻게 처리하기로 하였습니까?”

이번에는 김효 대사가 말을 이었다.

“그 사건은 그대로 지속하여 수사하기로 하였습니다.”

납득되지 않는다는 듯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고이즈미에게 쏠렸다.

“비록 이 서기관의 알리바이가 입증되었고 윤대중 씨 등이 이 서기관을 본 적이 없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한국 측이 개입되었다는 정황이 뚜렷한 만큼 사건을 주도한 세력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는 게 일치된 주장입니다.”

결국 의회와 언론 등 여론을 의미했다. 특히 요미우리는 한국 관리의 말을 인용하여 윤대중 납치사건과 관련 한국정보기관이 저질렀다 보도하였고, 급기야 한국 문공부는 요미우리 서울 지국까지 폐쇄조치했던 터였다.

급기야 폐쇄조치

“아울러 일본 정부는 윤대중 씨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가 개입된 증거는 찾을 수 없었고 또한 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준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 사건은 여하한 경우라도 대한민국이 관여되어 있다 판단합니다. 하여 이 부분과 관련하여 두 가지를 요구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는 주한 일본대사관에서도 귀국 외무부에 요청하기로 하였음을 밝힙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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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