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스러진 달 (10)한국대사관 협박

"선생님 막으면 영사관 폭파"

소설가 황천우는 지금까지 역사소설 집필에 주력해왔다. 역사의 중요성, 과거를 알아야 현재를 알고 또 미래를 올바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팩션’이란 장르를 만들어냈다. 팩트와 픽션, 즉 사실과 소설을 혼합하여 교육과 흥미의 일거양득을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래 전부터 의심의 끈을 놓지 않은 사건을 들추어냈다. 필자는 그 사건을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라 칭함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바로 1974년 광복절 행사 중 발생했던 영부인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이다.

“다른 사람들 보면 어쩌려고.”

“우리 사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거 아닌가.”

“정작 고타로만 빼고 말이지.”

문석원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 슬그머니 기미코의 머리카락에 코를 댔다가는 떼었다.

“난조 상, 우리 옛날 생각하며 바닷가로 가는 게 어때?”


문석원이 대답 대신 코를 벌름거리며 방향을 잡아갔다.

“고타로와는 아직도 잘 맞지 않나?”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내게는 오로지 당신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어때?”

“그거야 이를 말인가. 나 역시 오로지 당신뿐이지.”

“그런데 아직도 후회되지 않아?”

“뭐가?”

“나의 구애를 그리도 완강하게 거절한 일 말이야.”


문석원이 대답 대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시절 조선인이라는 사유로 주위에서 받은 냉대로 인해 일본인들에 대한 혐오감이 싹텄고 그로 인해 일본인인 고바야시 기미코의 집요한 청혼을 완강하게 거절했던 터였다.

“가끔 후회되기는 하지. 그런데 기미코.”

“말해.”

기미코가 팔에 힘을 주며 바짝 밀착했다.

“우리가 결혼해서 함께 살았어도 지금처럼 사랑이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을까?”

“무슨 의미야?”

“결혼은 사랑도 중요하겠지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지금 나와 내 아내의 관계를 살펴봐. 부부 사이에 오로지 돈밖에 없는 거 아닌가 할 정도야. 그래서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한다고 냉대 받고 말이지.”

“그런데 우리는?”

“우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만 갈구하고 있잖아. 그러니 오랜 시간이 흘러도 항상 당신이 새롭고 아니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문석원이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팔짱낀 팔을 슬그머니 뒤로 밀었다. 마치 그에 대한 반항인 듯 기미코가 더욱 밀착했다. 팔로 뭉클한 기운이 전해졌다.

“이 느낌, 어떤지 알아?”         

“어떤 느낌?”


“내 몸이 당신 몸을 느낄 때 일어나는 느낌 말이야.” 

“글쎄,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당신과 함께하면 포만감이 가득해. 당신은?”

“당신으로 인해 나를 느낀다고 해야 할까. 여하튼 너무 좋아.”

마치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느끼려는 듯 잠시 침묵을 지키며 걸었다. 저만치 앞에 있는 바다에서 비릿한 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다. 문석원이 코를 연신 벌름거렸다.

“무슨 냄새 나?”

“기미코 냄새.”


“내 냄새라니?”

“비릿비릿하면서도 고향의 품 같은 냄새 있잖아.”

기미코가 슬그머니 석원의 팔을 꼬집었다.

“짓궂기는.”

“뭐가.”

“당신 그거 이야기하는 거잖아.”

“그게 뭔데?”

기미코-문석원 은밀한 관계
과격 대응으로 치닫는 사건

문석원이 슬그머니 시침을 떼며 기미코의 배꼽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따라갔던 기미코가 다시 석원의 팔을 살짝 꼬집었다.

“그렇게 살짝살짝 꼬집어 주는‥‥‥.”

석원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돌려 기미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에도 가느다란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모처럼 바닷가 나왔는데‥‥‥ 뭐 먹을까?”

“나는 그저 당신만 곁에 있으면 좋아.”

“정말?”

“그렇다니까.”

석원이 잠시 기미코를 주시하다 이내 근처에 있는 상점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술과 간단한 안주를 준비해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침묵을 지키며 걸어가기를 잠시 후 바닷가 한적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면 우리 그 시절로 잠시 돌아가 볼까.”

석원이 자리 잡기 무섭게 뒤에서 기미코를 껴안았다. 기미코가 잠시 자세를 바로 잡더니 이내 바다 저 멀리에 시선을 주었다.

“기미코, 정말 사랑해. 그러나.”

“그러나 뭐야.”

“당신과 나는 건너지 못하는 선이 그어져 있어.”

“그게 국적 때문이라고!”

문석원이 답하지 않고 소주를 병째 들이키고는 길게 여운을 남기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파도가 잔잔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게 문제라면 내가 국적을 바꾸면 되잖아.”

“그런다고 그게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는 없어.”

문석원의 단호한 답에 기미코가 석원의 손에 들려있는 소주를 빼앗다시피 잡아채고는 역시 병째 들이켰다.

“나 좀 안아줘.”

병을 옆으로 내려놓은 기미코가 바위를 등 뒤에 한 석원의 앞에 자리 잡았다. 흡사 한 마리 새가 둥지를 틀 듯 석원의 품에 안겼다.

“난조, 지난 시절 그렇게 잊기 힘들어?”

“기미코는 몰라. 단지 조센징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린 시절 당한 거 생각하면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 벌떡 깨거든.”

“그래서 절대로 나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이야기야?”

문석원이 대답 대신 기미코를 돌려 자신을 바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난조. 그러면 나 놔줄 수 있어? 나 훨훨 날아가게 놔줄 수 있느냐고!”

서서히 기미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자신 없어. 그리고 안 돼.”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기미코가 절규하듯 포효했다. 마치 그게 신호라도 된 듯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덮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은근히 살피고 있었고 둘의 몸은 파도가 밀려오고 또 밀려나가듯 요동쳤다.

“그런데 조금 그러네.”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서 석원이 기미코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뭐가?”

“우리가 처음 사랑을 나누었을 때는 초여름이었잖아.”

“그런데?”

“지금은 초가을이라 그런지 조금 서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추웠어?”

“조금.”

순간 기미코가 석원의 손을 뿌리쳤다.

“왜 그래?”

“그만큼 사랑이 식었다는 이야기잖아. 어떻게 사랑을 나누는 순간에 춥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

“그건 말도 안 돼. 당신이 잘 알잖아. 당신 없으면 살지 못한다는 거.”

석원이 목소리를 높이자 기미코가 진위를 파악하겠다는 듯 가만히 주시했다. 그 상태에서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이내 부드럽게 석원의 팔을 잡았다.

“하나 물어볼 게 있어.”

“말해봐.”

석원이 걸음을 놓아가자 기미코가 은근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까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인데.”

“뭔데.”

“당신이 오사카 소재 한국 영사관에 전화 걸어 온갖 협박을 했다고 하데.”

“그게 왜 협박인가. 윤대중 선생 일본에 올 수 있게 하지 않으면 영사관을 폭파해버리겠다고 한 건데.”

“그 사람들에게는 협박으로 들릴 수 있지. 그런데 정말 그런 거야?”

“그랬지. 그런데 그게 뭐 잘못 되었나?”
 

<다음호에 계속>


[저자는?]

▲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 정당사무처 공채(13년 근무)
▲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중퇴
▲ 소설가

▲ 주요작품
단편소설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삼국비사>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등 다수
희    곡 <정희왕후>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