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바빠지는 ‘무대 활용법’

떡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너도나도 김칫국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새누리당에서는 ‘무대(김무성 대표)’를 이리 떼고 저리 붙여보는 작업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너도나도 제 입맛에 맞는 활용법만 고집하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복잡해지는 모습이다. 정작 당사자는 황당하다는 반응. 고차방정식으로 치닫고 있는 ‘무대 활용법’을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YS의 영결식이 끝난 후, 위정자들은 앞 다퉈 ‘통합과 화합’을 얘기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의 예상대로 평화 분위기는 며칠을 넘기지 않고 깨졌다. 야당이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연대로 시끄러웠다면, 여당은 때 아닌 ‘무대 활용법’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본인이 부산 영도구 출마를 고집하고 있음에도 주변에서 군불을 지피는 이유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PK 물갈이론
진원지 어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4·13총선과 관련해 크게 세 가지 설의 중심에 있다. ‘PK(부산·경남) 물갈이론’ ‘서울험지출마론’ ‘비례대표 출마론’이 그것이다. 당내 압박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친박-비박’을 가리지 않고 김 대표에게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있어 눈길이 간다.

PK지역 총선이 대선 전초전으로 불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면면부터 남다르다. 문안박에 김 대표까지 핵심 대선주자 모두 PK 출신이다. 야당에서는 PK 잡고 대선승리로 이어간다는 시나리오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야당이 차지한 PK 의석수는 총 34석 중 단 3석(문재인-사상구·조경태-사하구을·민홍철-김해시갑)으로 전체 8.82%에 불과하다. 이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야당 의석수를 두 자릿수까지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총선 룰과 관련해 야당이 해당 제도 도입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면에 이와 같은 복안이 숨어있다고 여당은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당 내에서는 PK 물갈이론이 불거졌다. 지난 9월경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깜짝 대구 방문, 그리고 ‘총선 심판론’으로부터 대두된 ‘TK(대구·경북) 물갈이론’의 연장선이다. TK에 튄 불똥이 PK로 옮겨 붙은 모양새다. 앞선 물갈이론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향했다면, 이번에는 김 대표를 겨냥했다는 점이 차이다. 김 대표는 지난달 22일 YS 빈소를 지키는 와중에 찾아온 부산지역 의원들 입에서 TK 물갈이론이 튀어나오자 “‘물갈이, 물갈이’하는 사람들이 물갈이 된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진다.

험지출마론
무대 바뀌나

친박계는 일찌감치 PK에 눈독을 들여왔다. ‘영남 패권’을 위해선 꼭 필요한 퍼즐조각이다. 소위 ‘진박(진짜 친박)’들이 출마 예상자 명단에 오르내리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정가의 시선이다.

현재 PK 중에서 부산 출마가 유력시 되는 친박계 인사는 약10~15명 정도. 그중 부산 기장 출마가 예상되는 윤상직 산업통상부장관을 포함해 해운대 분구 지역으로 출마할 것이 확실시되는 안대희 전 대법관 등 새로운 얼굴이 눈에 띈다.

안 전 대법관은 해운대구 출마를 알렸다. 지난 1일 안 전 대법관 측과 새누리당 소식에 따르면, 그는 해운대 지역으로 출마키로 하고 이러한 뜻을 지도부에 전했다. 지난달 25일 사하경제포럼 특강을 위해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부산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지 약 일주일만이다.

부산지검 동부지청장으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는 점, 5년 전까지 부모가 해운대에 거주했다는 점, 20대 총선에서 해운대구가 분구 예정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출마를 선언한 현역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안 전 대법관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신박(새로운 친박)’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때문. 일각에서는 안 전 대법관을 두고 PK 공략에 나선 친박계 선봉장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 장관은 진박이라는 점에서 PK 물갈이론과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해당 인물들의 출마는 도미노가 되어 김 대표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 대표가 있는 영도구는 정의화 국회의장의 중·동구, 유기준 전 해양수산부장관의 서구와 함께 선거구 획정 문제가 걸려있다. 일각에서는 해당 지역 3곳이 2곳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이다. 엮여 있는 사람이 당 대표, 국회의장, 전 장관이라는 점에서 최대 뇌관으로 꼽힌다.

PK 물갈이론, 유승민 다음은 김무성?
강북 출마 요구 거절 “영도서 승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했다. 지금 PK 정가가 딱 그렇다. 너도나도 자신이 진박임을 자처하며, 청와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지역 언론은 최근 해당 소식을 상세히 전하고 있다. 김 대표의 PK 장악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변수는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YS의 서거를 기점으로 박 대통령의 PK 지역 지지율은 하락하고 있다. 평가를 내리긴 이르지만, 김 대표의 ‘빈소정치’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다고 할 만한 변화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의 주중 정례조사 결과를 보면, YS의 영결식이 있었던 11월4주차 박 대통령의 부산·경남·울산 지지율을 보면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 57.4%, ‘못하고 있다’가 39.8%를 기록, 높은 PK 지지를 얻었으나(무응답 2.7%), 12월1주차에는 ‘잘했다’는 응답이 46.9%로 하락해 오히려 ‘못했다’는 응답 47.4%에 뒤지는 상황이 됐다(무응답 5.7%). YS 영결식 불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김 대표가 서울의 험지로 출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이자 소장파 중 한명인 김용태 의원은 지난 1일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무성) 대표는 서울에 출마할 정도라는 각오와 결단을 보여줘야지만 총선의 분수령이 될 수도권, 특히 서울의 선거 판도를 확 바꿀 수 있다”며 “서울 출마에 준하는 결단 없이는 내년 총선을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례대표 출마론
박근혜가 롤모델

비박계 인사가 비박계 수장에게 한 말이라 정가는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앞서 김 의원은 청와대를 나온 인사들이 TK 등 소위 깃발만 꽂으면 당선될 수 있는 곳의 공천권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자 “박근혜정부 고위직에 있었다는 프리미엄만 누리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라며 “야당 우세지역에 출마해 박근혜정부 성과로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전한 바 있다.

결국 당내 힘 있는 중진들이 솔선수범해 험지에 나가야 서울을 수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서울 지역 48곳 중 여당이 차지한 곳은 단 17곳에 불과하다. 정두언 의원은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같은날 그는 “김 대표가 강북에 출마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 측은 거부의사를 전했다. 지난 2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의원의 험지출마론 얘기가 나오자 “내 지역구의 지역주민들에게 심판받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에 출연해 “어디에서 출마할지는 개인의 자유지만 부산도 굉장히 중요한 지역이고, 편안한 지역이 아니다”라며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PK지역, 특히 부산은 또 야당에서도 굉장히 강조하는 지역”이라고 김 대표를 거들었다.

박근혜 길 가라? 비례대표 출마론 대두
고차방정식 되는 무대 활용법 종착점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서 김 대표가 오세훈 전 서울시장에게 종로가 아닌 야당 텃밭 출마를 주문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설득력을 잃었단 의견이 많다. 김 대표 또한 험지출마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비례대표 출마론도 있다. 그것도 ‘말번’을 배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진원지는 서울 험지출마론과 같다. ‘희생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김용태 의원은 MBC라디오 <신동호의 시선집중>에 나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정계복귀를 한 다음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어야 할 총선이 있었다”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지역구 출마를 하진 않으시고 비례대표 말번을 받으셨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이 밝힌 것 이외에 또 다른 사례도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9대 총선 당시 4선을 한 대구 달성군을 포기하고 순번 11번으로 나섰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박 대통령 또한 한나라당 대표로서 이런저런 요구의 중심에 있었다.

비박계 대표 공격수 중 한명인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지난 2011년 7월20일 당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19대 총선에서도 달성군으로 출마하겠다”는 박 대통령을 향해 “박 대표는 영향력이 큰 지도자”라며 “비례대표 말번으로 나오겠다든지, 아니면 강북에서 출마하겠다든지 (해서) 당에 큰 변화를 주고 분위기 쇄신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4년 전 정두언 의원의 역할을 현재 김 의원이 받은 모습이다.

자기 입맛대로
바빠지는 셈법

이렇듯 험지출마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4년마다 으레 반복되는 일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이번 험지론이 여느 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는 박 대통령의 ‘물갈이론’이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과연 김 대표는 전방위 압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지난 4일 새벽 예산안을 처리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이 총선에 출마하려면 ‘1년 전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하며, 그렇지 않을 시 “예비심사에서 탈락시키겠다”는 사실상의 ‘컷오프’를 시사했다. 이에 친박계 인사들은 참정권을 제한하는 위헌적인 발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치권 ‘기강잡기’ 총력
여 “공천 불이익” 야 “단호 조치”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노영민 의원이 피감기관에 시집을 판매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발 빠르게 ‘기강잡기’에 나선 모습이다. 김무성 대표는 의원들의 책 판매 행위가 적발될 시 공천 심사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새정치연합 노영민 의원이 출판기념회 관련 대국민 사과와 산업통상자원위원장 사퇴 등 논란을 일으켰다”며 “새누리당은 지난 보수혁신특별위에서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를 당론으로 채택했고 법안으로도 발의했다”고 말했다.

내용에 따르면, 대통령·국회의원·자치단체장 등은 물론 후보자·예비후보자도 초청으로 출판물을 판매하거나 입장료 등 대가를 받는 출판기념회를 할 수 없다고 적시돼 있다. 이어서 그는 “북콘서트 등에서 책을 팔거나 봉투를 받으면 차후 공천심사에 반영하는 것을 김 대표에게 허락받았다”고 전했다.

새정치연합도 예외가 아니다. 김성수 대변인은 지난 3일 “문 대표가 당무감사를 거부한 비주류의 유성엽·황주홍 의원, 최근 도덕성 시비로 물의를 빚은 신기남·노영민 의원, 금품수수 의혹으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최근 소속 의원들의 일탈행위, 그리고 혁신전당대회 거부 등으로 흔들리는 리더십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로 보인다는 게 정가의 해석이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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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