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포구여행 ①충남 보령시

맛도 영양도 최고 ‘바다의 인삼’

살아온 하루가, 지나온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지만, 시간은 어느덧 2015년의 마지막을 향해 내달린다. 저물어 가는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겨울바다만큼 좋을 곳이 없다. 짠 내 가득한 포구에서 제철 맞은 굴을 구워 먹으며 바다 너머로 잠기는 석양을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가슴 설레게 한다.

굴 따던 아낙들 입맛 사로잡은 구이
키조개 생산지로 유명해진 오천항

잠시라도 도시에서 몸을 빼내 여유로운 겨울의 한 자락을 만나러 천북 굴단지로 떠난다. 그곳에는 제철 맞은 굴과 향긋한 바다 내음이 우리를 유혹한다. 충남 보령시 천북면에 위치한 굴단지는 ‘굴 구이’의 원조격이다. 보통 굴 하면 경남 통영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굴 구이하면 천북 굴단지가 먼저 생각난다. 천북면 장은리와 사호리 일대 해변에서 채취한 굴이 맛 좋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일조량도 많고, 바닷물과 민물이 교차하는 개펄에 미네랄이 풍부해 양질의 자연산 굴이 지천이었다. 굴을 따던 아낙들이 겨울 한기를 달래고자 바닷가에 옹기종기 모여 장작불에 손을 녹이며 굴을 껍질째 구워 먹었다. 의외로 짜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갯일 하는 아낙들의 입맛을 매료시켰고, 굴 구이는 지역의 토속음식이 되었다.

‘굴 구이’ 원조
천북 굴단지

홍성방조제 끝자락 바닷가를 배경으로 100여 곳의 굴 구이전문점 간판이 줄 지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천북 굴단지는 겨울에만 운영된다. 식당을 운영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천북면에 거주하며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철에만 굴 구이를 판매한다. 굴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제철이기 때문이다. 8월에 산란을 마친 굴은 가을에 살이 차기 시작해 겨울에 최상의 상태가 된다. 안타까운 것은 홍성방조제가 완공되면서 바닷길이 막혀 굴 생산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현재 굴 구이에 사용되는 굴은 통영, 여수 등지에서 양식한 것을 가져온다.


천북 굴단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요리는 굴 구이다. 소쿠리에 가득 담긴 굴을 불판 위에 소북이 올리고 익기를 기다리면 요리 끝. 굴이 익는 동안 양손에는 장갑을 끼고 먹을 준비를 한다. 3분도 채 되지 않아 탁탁 소리를 내며 굴이 뽀얀 속살을 드러낸다. 입이 벌어지지 않은 굴은 작은 칼로 벌리면 된다. 탱글탱글한 굴을 초고추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가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굴은 너무 구우면 펑 소리를 내며 굴 껍데기가 사방으로 튀어 먹기에 불편할 수도 있다.

서양에서는 굴을 ‘바다의 우유’라 하여 강장제로 여긴다. 우유보다 무려 200배나 많은 요오드 성분이 들었고,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아미노산과 아연이 많이 함유되었다. ‘배타는 어부의 딸 얼굴은 까맣고, 굴 따는 어부의 딸 얼굴은 하얗다’는 속담이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굴 구이 외에 굴 찜도 인기가 좋다. 굴 향기가 가득한 굴밥, 굴 탕수육, 굴전 등 굴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도 맛볼 수 있다.
천북에 굴이 있다면 오천항에는 키조개가 있다. 키조개는 생긴 모습이 곡식의 검불을 까부르는 키와 비슷하다. 전남 장흥 등 남해에서 채취해 일본에 수출했으나, 1970년대 들어서 서해 오천항 근처에 많이 서식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오천항이 키조개 주 생산지역으로 유명해졌다.

키조개는 바다 속 20~50m의 깊은 모래흙에 수직으로 박혀 있다. 머구리라 불리는 잠수부가 들어가 하나하나 손으로 건져 올린다. 키조개 속에는 연한 요구르트 빛의 패주(키조개 관자)가 박혀 있다. 조개 크기가 크다보니 여느 조개처럼 살을 모두 먹는 게 아니라 패주와 날개 부분을 먹는다. 패주라 해도 웬만한 조갯살 보다 훨씬 크다. 맛은 달짝지근하면서도 보드랍다. 쫄깃한 식감도 일품이다. 회로도 먹고, 쇠고기 등심과 짝을 이뤄 불판구이로도 먹는다. 밥과 함께 먹는다면 버섯, 미나리 등 야채를 곁들여 매콤한 양념장에 볶는 키조개버섯볶음이 제격이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버터에 살짝 구워 주면 좋다.

최상의 굴
겨울만 운영

오천항 옆 야트막한 언덕에 충청수영성이 있다. 조선 시대에 서해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감시하고 물리치기 위해 축조한 성이다. 축성 당시에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진휼청으로 추정되는 건물과 삼문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 최고 절경을 자랑하던 영보정이란 정자가 있던 터에 새롭게 영보정을 복원중이다. 충청수영성에서는 천수만을 비롯해 오천 일대 먼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순교성지 갈매못은 천주교 박해의 슬픈 역사가 담긴 곳이다. 1866년 3월30일 병인박해 때 체포된 프랑스 선교사인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등 5명이 이곳에서 군문효수형을 당했다. 바닷가 멀리 떨어져 있는 이곳이 천주교 박해의 현장이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조선 헌종 12년(1846) 6월 프랑스 군함 3척이 보령시에 속해 있는 섬들 중 가장 멀리 있는 외연도에 정박했다. 그리고는 기해박해(1839) 때 앵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살해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상자에 남겨 놓고 돌아갔다.


이 사건을 조정에서는 조선 영해 침입 사건으로 간주했다. 당시 옥중에 있던 김대건 신부의 처형이 앞당겼고, 1866년 3월30일에는 흥선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프랑스 군함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택해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5명의 신부를 끌고 와 외연도를 바라보고 목을 쳐서 처형한 것이다. 지금은 성직자들이 처형당한 장소에 순교성인비가 서 있다.

도미부인사당은 정절의 표상으로 칭송 받는 도미부인을 기리기 위한 장소다. 도미부인은 백제 평민으로 개루왕의 갖은 유혹과 겁박에도 불구하고 절개를 지킨 여인이다. 보령 오천에 ‘미인도’ ‘도미항’ 등 도미부인관 관련된 전설과 지명이 전해 1994년 정절사를 건립해 도미부인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사당 옆에는 2003년 경남 진해의 도미총을 이장해 도미부부 합장묘를 조성하였다.
<자료제공: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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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코스

오천항→충청수영성→도미부인사당→천북 굴단지
1박 2일 코스
· 첫째 날: 오천항→충청수영성→도미부인사당→팔색보령수필전망대→천북 굴단지
· 둘째 날: 순교성지 갈매못→보령에너지월드→보령석탄박물관→성주사지
관련 웹사이트
· 보령 문화관광 www.brcn.go.kr/tour.do
· 순교성지 갈매못 www.galmaemot.kr
문의 전화
· 보령시청 관광과 041-930-4542
· 보령관광안내소 041-932-2023
· 천북면사무소 041-641-8816
· 순교성지 갈매못 041-932-1311
대중교통
· 버스: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하루 19회(06:00~21:50) 운행, 2시간 10분 소요.
          서울남부터미널에서 하루 3회(09:20, 10:50, 18:40) 운행, 2시간 50분 소요.
         *문의: 센트럴시티터미널 02-6282-0114
          서울남부터미널 02-521-8550, www.nambuterminal.com
          보령종합터미널 041-936-5757
· 기차: 하루 15회(05:35~20:35) 운행, 2시간 4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www.letskorail.com
자가운전
서해안고속도로→광천 IC(우회전)→천광로(광천 방면)→낙동초등학교→천북면사무소→천북 굴단지
숙박
· 서해돌꽃펜션: 천북면 홍보로, 041-641-0702, www.stoneflower.co.kr
· 펜션앤호텔뷰: 천북면 홍보로, 041-641-7890, www.hotel-view.co.kr
식당
· 돌꽃먹거리 석화정: 굴 요리, 천북면 홍보로, 041-641-9344
· 하니쌈밥: 키조개, 오천면 충청수영로, 041-933-9333
· 깐돌네굴집: 굴 요리, 천북면 홍보로, 041-641-8816
· 오천항 수산물센터 4호점: 키조개, 오천면 오천해안로, 041-933-8883
축제와 행사 정보
· 2015 천북굴축제: 2015년 12월 중순, 천북 굴단지, 041-641-8816(천북면사무소)
주변 볼거리
외연도, 보령석탄박물관, 개화예술공원, 성주사지, 성주산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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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