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만 좋은’ 면세점 무용론 막전막후

황금알 낳는 거위 배 갈랐다

[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최근 재계에서는 면세점 특허(특별허가)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퉜다. 이른바 ‘면세점 대전’. 대전 결과가 나왔지만 진정한 승자는 없다는 평가다. 면세점 특허권 심사제도의 무용론이 등장한 배경이다.

지난 14일, 시내면세점 운영사업 선정자가 가려졌다. 부산 신세계면세점은 재승인에 성공했다. 두산은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면세점 사업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신세계DF도 신규 사업권을 획득해 서울에 진출했다.

승자와 패자
각자의 고민

롯데는 기존 운영하고 있던 두 곳의 면세점 가운데 1곳을 지키는 데 만족해야 했다.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했던 SK는 사업권 재승인 받는 데 실패했다. 2013년 5월 관세법 개정으로 경쟁 입찰로 전환된 이래로 기존 면세점 사업자가 특허권이 상실된 것은 처음이다.

패자는 패배의 쓴잔을 삼켜야 했다. 주가에서부터 반응이 왔다.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하는 SK네트웍스 주가는 심사결과 발표 직후 20% 넘게 빠지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월드타워점을 운영했던 롯데쇼핑도 5% 넘는 하락세를 보였다.

문제는 승자도 승리의 기쁨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다. 승자인 신세계와 두산 모두 사업자로 선정된 이후 커다란 주가의 움직임을 느끼기 어려웠다. 이유는 10년간 유지되던 특허권이 5년으로 줄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012년 홍종학 의원이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으로 2013년부터 면세점을 운영하는 기업은 5년마다 재심사를 받아야한다. 특허기간이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당장 오늘의 승자가 5년 후에 패자로 전락할 수 있게 됐다. 면세점은 사업 특성상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어 5년안에 투자금을 회수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번 면세점 특허권 심사에서 승리를 거머쥔 기업도 특허권이 만료되는 다음 심사에서 특허권을 빼앗기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특허권 기간이 단축된 데에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도 면세점 특허 또는 허가 제도가 있어 일정 기간을 두고 운영권을 보장하지만, 우리나라처럼 5년마다 기존 업체의 기득을 인정하지 않고 ‘원점부터’ 경쟁시켜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면, 지속적인 사업을 보장하는 게 글로벌 경쟁력, 고용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1·2차 대전 결과에 대기업 희비
사업권 입찰방식 두고 논란 점화
 

안승호 숭실대 경영대학원장(한국유통학회장)도 “면세점도 국제간 경쟁 중인데, 한국 관광자원이 일본·홍콩·싱가포르보다 많지 않은 상황에서 면세점이라도 화려하고 큰 규모를 갖추도록 투자가 이뤄져야한다”며 “하지만 5년마다 주인이 바뀔 수 있다면 어떻게 투자를 환수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특허권 기간 문제뿐만 아니라 2013년 이후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뀐 것도 면세점 사업을 하던 기업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2013년 특허권 관련 관세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특허권이 자동으로 갱신이 됐다. 그러나 법이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뀌면서 기존 면세점 운영자는 사업의 영속성을 보장받기 어렵게 됐다.

정부의 심사를 통한 경쟁입찰 방식으로 특허권이 결정되는 한국과 달리 일본, 캐나다, 중국, 호주 등 시내면세점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다른 국가는 우리와 같은 특허제 방식이지만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자동으로 특허권을 연장한다.

심사기준 모호
정부 눈치보기


우리나라가 자동갱신의 방식에서 경쟁입찰 방식으로 바뀐 것은 일부 기업의 면세점 독점에 따라 면세점의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부터다. 이 사이 중국의 가파른 경제 성장으로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국내 면세점 사업이 급격히 확대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면세점 총 매출액은 지난해 기준 8조3000억원(점유율 12%)으로, 지난 2007년(2조6442억원)에 비해 3배 넘게 성장했다. 

그러나 올해 기존 면세점 탈락자가 생기자 정부의 면세점 운영방침에 의문을 갖는 시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면세점 대형화라는 세계화적 추세에 반하는 행보 때문이다.
 

실제 중국은 자국민의 쇼핑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지난 2013년 신규면세점 11개를, 또 지난해에는 하이난 섬에 세계 최대 면적(7만2000㎡)의 싼야면세점 등을 열었다. 일본 역시 중국인 관광객을 받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구매 금액의 8% 세금을 환급 해주는 사후면세점을 편의점, 잡화점 등을 중심으로 5800개에서 현재 1만8000개까지 늘렸다. 

지난 3분기 외국인 관광객 쇼핑액이 82% 증가하며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방일 관광객수도 급증, 올들어 9월까지 일본으로 향한 누적 관광객수(1448만명, 48% 증가)는 동기간 방한 관광객수(958만명)를 뛰어넘었다. 한국은 국제적인 기조와는 반대로 보수적인 면세점 정책을 펼쳤다.

반면 우리 정부의 면세점을 바라보는 시각은 특혜다. 정부의 ‘파이 쪼개기 식’ 면세점 정책 방향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현재 정치권 일각에서 특허수수료를 지금보다 100배 올리고 독과점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법률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행 0.05%인 특허수수료의 요율을 5%로 올리자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수수료 요율을 과도하게 올리면 면세 참여자들의 투자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5%로 수수료 요율을 올릴 경우 현재 운영하고 있는 면세점에서 수익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 법안 발의에 적극적인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시키는 법안을 발의한 데 이어 특허권 수수료율을 0.05%에서 5%로 100배 인상하는 법안 발의를 추진하고 있다.

홍 의원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논란에 대해 “기존 면세점이 엄청난 수익을 얻으니 다른 재벌도 뛰어들어 재벌 각축장이 됐다”며 “재벌과 해외명품 브랜드만 혜택을 가져가는 것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패자는 ‘투자금 회수’ 요원
승자는 ‘승자의 저주’ 걱정
 

면세점 탈락자는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특허권 결과 기존 사업권을 잃은 SK와 롯데의 경우 상당한 손해가 예상된다. 25년간 워커힐면세점을 운영한 SK의 경우 지난해 1000억원을 투자해 특허권 심사에 임했지만 특허권을 신세계DF에게 내주면서 투자금 회수가 불투명해졌다. 롯데의 경우는 지난해 3000억원을 들여 잠실 면세점을 월드타워에 가지고 오면서 3000억원을 투입했는데 1년만에 사업을 접어야 한다. 
 

워커힐면세점과 월드타워점 면세점이 문들 닫게 되면서 기존 직원들의 고용도 불안하게 됐다. 워커힐면세점 특허권을 잃은 SK네트웍스의 경우 면세점 소속직원 200명, 입점 브랜드 파견직원 700명 등 약 900명이 일하고 있다. 롯데쇼핑의 월드타워점의 경우는 규모가 더 크다.

월드타워점의 경우 롯데 소속직원 150여명과 입점 브랜드 파견직원 1000여명 등 총 1300명 가량이 근무하고 있다. 일단 두 곳 모두 신규사업자와 직원 고용 승계를 놓고 긴밀히 협력해 고용 안정을 꾀한다는 방침이지만, 파견 직원까지 고용안정이 보장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특허권 재승인 실패로 인한 재고 처리문제도 골칫거리다. 워커힐면세점과 월드타워면세점은 각각 이번달 16일과 다음달 31일 특허기간이 만료된다. 만료일부터 3개월의 유예기간을 두는 것을 감안하면 재고처리에 상당히 애를 먹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면세점의 경우 판매 물품을 직접 매입해서 판매하는 구조기 때문에 상당 부분 미리 구매해 재고를 쌓아둔다. 따라서 3개월 안에 모든 재고를 소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업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내년 봄/여름 시즌의 상품을 미리 발주해 놓은 상태라 거래 업체마다 일일이 협상을 거쳐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눈치 보기가
경쟁력 강화?
 

업계에서는 이번 면세점 심사결과 정부의 입맛대로 특허권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본다. 심사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심사 채점 결과도 비공개되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결과적으로 면세점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면세점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