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삶의 진통을 그리는 안창홍

"현대사의 아픔과 상처 표현했죠"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삶의 진통을 그리는 화가' 안창홍이 지난 40년간의 작업물을 한 자리에 선보인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은 "지난 11일부터 2016년 1월17일까지 안창홍의 개인전 '나르지 못하는 새 : 안창홍 1972-2015'를 개최한다"라고 밝혔다. 우리 주변의 소시민을 소재로 굴곡진 현대사를 담아온 안 작가는 오늘날의 예술가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작품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중견화가 안창홍은 지난 40년간 '익명의 개인'을 위주로 작업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의 사진은 시대적인 의미를 부여 받고, 소시민의 보잘 것 없는 신체는 아픔 가득한 역사를 대변했다. 개인의 기록을 초월한 우울한 시대의 초상은 안 작가가 집중해 온 소재다. 굴곡진 한국사를 관통해 온 소시민은 존재 자체로 우리 사회의 고통과 부조리를 고발했다.

소시민의 삶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늘'을 짚어내는 힘은 그의 초기작부터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개인전 '나르지 못하는 새 : 안창홍 1972-2015'는 각 시기별로 안 작가의 작품을 다양한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또 치열한 연구과정을 기록한 초기작부터 맨드라미꽃을 그린 최신작까지 작가의 다층적인 예술세계는 이번 전시를 통해 집대성된 모습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20대 무렵 안 작가가 그린 '자화상'(1973), '달을 보고 놀란 아이들'(1974) 등 미발표작 20여점을 포함해 신작 '야만의 시대'가 최초 공개될 예정이다. 민중미술가, 누드화가, 맨드라미 등 주제별로 구성된 전시섹션은 관객의 이해를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

개인전 나르지 못하는 새는 작가가 다뤄온 '현대인의 상처'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시대의 초상'이란 개념을 풀어냈다.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삶과 죽음은 2004년 제작된 대표작 '49인의 명상'과 신작 야만의 시대에서 다뤄졌다.


오래된 사진에 리터치를 가한 작품인 49인의 명상은 익명의 다수가 증언하는 '보편적인 시간'을 상징한다. 폐점한 사진관에서 얻은 증명사진은 역사성을 획득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통로로써 기능한다. 또 작가는 작품 속 인물들의 표정을 지우고, 눈을 감겨 증명사진의 본디 목적을 제거했다. 붉은색 칠로 간혹 입술에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각각의 사진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익명의 개인 위주로 40년간 작업
굴곡진 한국사…사회 부조리 고발

기술적인 측면에서 사진이란 매체의 활용, 피사체의 익명성은 신작 야만의 시대로 이어졌다. 야만의 시대는 재난에서 사망한 아기의 모습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예술은 단순히 슬픔을 관찰하는 것이 아닌 슬픔의 행렬에 동참하는 행위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약자를 향한 애정은 안 작가의 예술세계를 지켜온 원동력이다.

안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란 명목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익명화되고 억압됐던 경험들에 주목했다. 이를 드러내기 위해 작가는 가족사진, 단체사진, 기념사진 등 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차용했다. 그에게 사진은 시대적 상처가 담긴 기록물이자 문제의식을 부각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안 작가의 예술은 "한국현대사의 아픔과 상처를 표현한다"라는 맥락에서 해석돼야 한다. '인간 이후'(1979), '절규'(1986)와 같은 1980년대 투쟁의식이 반영된 작품과 '매춘'(1980), '우리도 모델처럼 3'(1991), '건달(1996)' 등 1990년대 자본주의를 꼬집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 제작된 다수의 드로잉과 조각, 콜라주 등에선 '민중미술가'였던 작가의 미학적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아픔과 상처

'베드 카우치' 연작과 '뜰'(2014) 등 안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시대상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회는 적었다. 늘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쇠락한 시대에 숨결을 불어넣었던 안 작가. '굴곡진 한국사를 견뎌온 소시민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설명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전시는 아라리오갤러리 천안 3·4층에서 2016년 1월17일까지 열린다.



<angeli@ilyosisa.co.kr>

 

[안창홍 작가는?]

▲1953년 밀양출생
▲개인전 금호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가나화랑, 공간화랑, 조선일보미술관 등 30여회.
▲그룹전 호암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8.15시민공원, 북경 비엔날레, 토탈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경기도립미술관 등 다수
▲프랑스 카뉴국제회화제 심사위원 특별상(1989), 제10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분(2000), 제1회 부일 미술 대상(2001), 제10회 이인성 미술상(2009), 제25회 이중섭미술상(2013) 등 수상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박모씨와 조직원 3명이 필리핀 현지 수용소서 탈옥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박씨와 함께 보이스피싱 등의 범행을 함께한 조직원 포함 총 4명은 최근 필리핀 루손섬 남동부 지방 비콜 교도소로 이감됐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후 지난 4월 말, 현지서 열린 재판에 출석한 박씨와 일당은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수사 당국 관계자는 “박씨와 일당 3명이 교도소로 이송되는 과정서 도주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구체적인 탈출 방식 등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출신의 전직 경찰로 알려져 충격을 안겼던 바 있다. 2008년 수뢰 혐의로 해임된 그는 경찰 조직을 떠난 뒤 2011년부터 10년간 보이스피싱계의 정점으로 군림해왔다. 특히, 박씨는 조직원들에게 은행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들로 구성된 대본을 작성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경찰 출신인 만큼, 관련 범죄에선 전문가로 통했다는 후문이다. 박씨는 필리핀을 거점으로 지난 2012년 콜센터를 개설해 수백억원을 편취했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그의 범죄는 2021년 10월4일에 끝이 났다.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필리핀 루손섬 비콜교도소 수감 보이스피싱 이어 마약 유통까지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총기가 허용되는 필리핀의 특성상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무장 경호원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2023년 초까지만 해도 박씨가 곧 송환될 것이라는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박씨는 일부러 고소당하는 등의 방법으로 여죄를 만들어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으려 범죄를 계획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또, 박씨는 새로운 마약왕으로 떠오르고 있는 송모씨와 함께 비콜 교도소로 이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돼있는 한 제보자에 따르면 “박씨의 텔레그램방에 있는 인원이 10명이 넘는다. 대부분 보이스피싱과 마약 전과가 있는 인물들로 한국인만 있는 것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씨는 본래 마약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교도소 내에서 마약 사업을 이어왔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경찰 안팎에서는 “새로운 조직을 꾸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일각에서는 이들이 비콜 교도소서 탈옥을 계획 중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비쿠탄 교도소 관계자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서 약 100만페소(한화 약 2330만원) 정도면 인도네시아로 밀항이 가능하다. 비콜 지역 교도소는 비쿠탄보다 탈옥이 쉬운 곳”이라고 증언한 바 있다. 한편, 지난 7일 외교부와 주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 측은 정확한 탈출 방식이나 사건 발생 일자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고 일축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