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 투입된 기업들 현주소

눈치 안보고 방만기업 살리고자 혈세로 돈잔치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밑 빠진 독에 열심히 물을 채운다 한들 그 끝은 요원할 뿐이다. 물을 가득 채울 요량이라면 구멍 난 곳을 찾아 고치거나 아예 새로운 독을 찾는 게 순리다. 누구나 알법한 상식이지만 정작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 같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방만한 운영으로 위기에 봉착한 기업을 살리기 위해 무작정 국민의 혈세를 쏟아 붓는 모습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공적자금’은 정부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정부재정자금을 의미한다. 통상 금융기관이 기업여신을 회수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할 경우 투입된다. 이 경우 공적자금은 정부예산에서 직접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금보험공사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다.

다만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가 발행한 채권의 이자와 원금손실은 예산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때에 따라 국민의 부담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공적자금 투입 여부를 두고 혈세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못받는 돈
떼인 돈도

지난달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액은 지난 6월 말 기준 168조6553억원에 이른다. 은행, 증권, 투자신탁, 보험, 종합금융, 저축은행, 신협에 지원된 공적자금을 합한 규모다.

문제는 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 가운데 지금껏 회수하지 못한 금액이 60조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회수 금액은 110조8525억원, 회수율은 65.7%에 불과하다. 특히 은행에 지원된 공적자금 86조8768억원 가운데 회수금액 66조3243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20조5525억원은 완전 회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험에 들어간 공적자금 21조2012억원 가운데 미회수금액은 14조2148억원이다. 또한 22조7503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종금사의 경우 12조121억원의 미회수금액이 남아 있다.

증권·투신에는 21조8926억원의 공적자금이 지원돼 14조881억원이 회수됐다. 미회수 공적자금은 7조8045억원이다. 2011년 부실 사태를 겪은 저축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8조5114억원이고 미회수금액은 2조5063억원이다. 5조2억원의 공적자금이 들어간 신협의 경우 1조5810억원이 미회수금액으로 남았다.

기업별로 살펴보면 금융업 분야에 공적자금 투입이 집중됐고 우리은행, 한화생명, 수협, 서울보증보험 등은 아직까지 미회수금액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에 투입된 공적자금중 미회수금액은 약 4조7000억원이다. 현재 정부는 우리은행 보유 지분 중 15%를 중동지역 국부펀드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보유한 우리은행 지분은 51.04%(3억4514만2000주)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부실화 된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에는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약 1조6000억원을 회수했다. 현재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화생명 지분은 22.75%(1억9759만1000주)다. 정부는 시장상황을 고려해 지분 매각을 추진할 방침이다. 지난 3월에도 지분 2%를 매각한 바 있다.

하지만 한화생명에 투입된 공적자금의 추가 회수는 난항이 예상된다. 한화생명 주가가 8300원대에 머물러 있는 만큼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반등해야 원금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금융권 170조…회수율 70%도 못미쳐
국민 세금 눈먼돈?…무작정 쏟아부어


외환위기 당시 파산위기에 몰렸던 서울보증보증에 들어간 공적자금 10조2000억원의 회수도 불투명하다. 정부의 서울보증보험 지분율은 93.85%(3276만4000주)다. 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의 부실 때문에 보증회사들이 시스템 안정을 위해 공적자금으로 매꿔 준 부분이라 서울보증보험에 투입된 자금은 회수가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우선출자증권(주식회사의 상환우선주 성격)을 가지고 있는 수협의 경우 1조1580억원의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할 전망이다.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현재는 수협중앙회의 신용사업 특별회계를 통해 회수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수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을 중앙회가 배당받아 특별회계를 통해 공적자금을 상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앞의 사례는 양호한 편이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따른 구조조정 과정에서 투입된 공적자금 27조원 가운데 지금까지 회수된 금액은 6조원에도 못 미친다. 지난달 21일 민 의원이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제출 받은 ‘2011년 이후 부실저축은행 지원 및 회수현황’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2011년 이후 31개 부실 저축은행에 27조1701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5조9031억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회수율은 21.7%.

솔로몬저축은행에 3조5243억원으로 가장 많은 공적자금이 편성됐고 부산저축은행 3조1580억원, 토마토저축은행 3조150억원, 제일저축은행에 2조3941억원이 투입됐다.

이들 중에서 공적자금 회수율이 저조한 곳은 에이스저축은행(3.12%)과 보해저축은행(3.72%), 부산2저축은행(7.40%), 부산저축은행(8.05%) 등이다. 심지어 해솔저축은행과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의 회수실적은 전무했다.

밑 빠진 독
대우조선해양

반면 대영저축은행의 경우 투입된 1426억원 전액을 회수했다. 6677억원이 투입된 신라저축은행은 50.5%, 3672억원이 들어간 더블유저축은행은 45.5%로 회수율이 높은 축에 속했다.

이처럼 저조한 공적자금 회수율이 공론화되는 가운데 최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자금 지원방안이 논의되자 공적자금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산업은행은 이사회를 열고 대우조선해양 실사 결과 및 자금 지원 등 정상화 방안을 공식 발표했다. 지원 방안에는 대우조선해양에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지원규모는 내년도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의 부족자금 4조2000억원을 고려한 조치다.

우선 자본확충은 유동성 지원과 연계한 유상증자, 출자전환 등의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지원으로 산은은 2016년 말까지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을 500% 이하로 끌어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는 대우조선해양의 정상적인 사업 수주를 지원하기 위해 선수금환급보증(RG)의 90%를 각각 1/3씩 나눠 공급할 예정이다. 당초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유상증자와 신규대출로 2조원을 지원하고 수출입은행 등이 나머지 2조원을 분담하는 방안이 거론된 바 있다.

산업은행의 자금지원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은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인력과 조직을 최적 생산 규모, 선박 포트폴리오에 부합할 수 있도록 축소할 예정이다.

그러나 채권은행들의 지원 방안에 대한 비난 여론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세금을 투입하더라도 대우조선해양의 미래를 낙관하기 힘든데다 책임자 문책은 덮어둔 채 지원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즉, 금융당국의 안일한 관리감독이 이미 공적자금 투입으로 연결된 만큼 지원 방안에 앞서 잘못을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은행 노동조합은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 부실 사태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인 뒤 실사에 따른 책임소재 파악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은행 노동조합 관계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방식은 은행이 취해야 할 시장안전판의 구조조정 방식이 아닐뿐더러 큰 부실사태를 일으킬 것”이라며 “위기일수록 원칙에 따른 과감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수혈만 해놓고 관리 허점투성
줏대 없는 당국 정책 조정 논란

대우조선해양 자금 지원이 결정되자 화살은 곧바로 국책은행에 쏠리고 있다. 국책은행들이 기업자금조달이나 수출금융지원 등 본연의 임무는 외면한 채 기업구조조정 등 전문성이 없는 분야에 손을 대면서 '부실기업 처리반'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책은행의 손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야 하는 만큼 부실 관리에 대한 책임과 함께 국책은행의 본분에 대한 비판마저 커지고 있다.

특히 산업은행은 최근 5년간은 대우조선해양 최고재무책임자(CFO)에 자사 출신 인사를 임명하는 등 회사 전반을 관리·감독했다는 점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STX의 허위장부를 근거로 9000억원을 지원해 적자를 기록한 전력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외에는 기업 구조조정을 담당할 수 있는 곳이 전무한 상황”이라며 “은행들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기업 구조조정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역시 마찬가지다. 2011년 이후 수출입은행이 유동성을 지원한 기업 중 법정관리에 돌입한 회사는 102곳이며 이들에 대한 여신 규모는 1조30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성동조선해양 구조조정 난항으로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성동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이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SPP조선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수출입은행의 속을 썩이고 있다. 수출입은행은 정부 지분이 70.08%(한국은행 15.04%·산업은행 14.88%)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국책은행은 정부 소유인 만큼 여신공급이나 구조조정에 있어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달리 해석하자면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고 위기의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모든 상황에 윗선의 개입과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출입은행은 성동조선해양에 채권단의 반대를 무릅쓰고 3000억원을 단독으로 지원했지만 이 과정에서 특정 국회의원의 눈치를 본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대규모 손실 불가피

문제는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에 투입하는 공적자금은 궁극적으로 국민 세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을 ‘혈세 먹는 하마’로 바라보는 시선과 지원에 앞서 분식회계 등 불거진 의혹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IB업계 관계자는 "국책은행의 관리 소홀로 결국 부실기업의 손실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국책은행이 부실기업을 관리하고 구조조정을 이뤄낼만한 역량이 없다면 아예 기업구조조정 업무에서 손을 떼든지, 역할 재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자 국책은행의 정책금융체계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정책금융 역할 강화방안 세미나’에서 “국책은행은 대기업이나 각종 지원이 많은 중소기업보다 중견기업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재벌’ 산업은행 파워

정부가 100% 지분을 지닌 산업은행은 지난 6월 기준으로 지분 15% 이상을 보유한 자회사를 무려 288곳 소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부기관을 제외한 비금융 자회사가 116곳에 이른다.

지금껏 산업은행은 자금난에 직면한 기업을 출자전환 형태로 지원하면서 자회사로 편입해 왔다. 물론 국책은행인 만큼 경영정상화를 거쳐 시장에 지분을 매각한 후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그러나 산업은행은 식구를 늘릴 때만 기민할 뿐 정작 품안의 구성원을 출가시키는 데 미적거리고 있다. 결국 자회사 매각에 소극적이었던 행보는 엉뚱하게도 산업은행을 수많은 대기업을 거느린 '재벌'로 둔갑시켰다.

그 사이 STX조선해양마저 산업은행 휘하에 편입될 수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고 있다. STX조선은 글로벌 불황 여파로 유동성 위기에 처한 2013년 5월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자율협약 체결 이후 회계법인 실사를 거쳐 STX조선에는 2조7000억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그러나 잇단 선박수주 취소와 원가 경쟁력 하락으로 손실이 계속 발생해 추가 지원이 불가피해졌고 이듬해 채권단은 1조8000억원을 추가 지원했다.

이렇게 4조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투입됐지만 여전히 STX조선은 자본잠식 상태로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STX조선해양을 산업은행이 떠안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산업은행마저 정상화에 실패하면 곧바로 국민의 혈세가 투입돼야 한다. 문제는 산업은행 휘하로 편입된 상당수 기업들이 가치 하락을 겪고 있으며 그만큼 매각작업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지분 15% 이상 보유 회사 288곳
때마다 헐값·특혜 의혹 시달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2008년 매각 추진 당시 6조원 수준으로 평가됐지만 현재 시가총액은 약 1조원에 불과하다. 산업은행 휘하에 들어가면 회생하지 못한 채 산업은행 계열사로 주저앉아 경쟁력을 잃는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금호산업의 경우 매각까지 5개월을 끌다 7228억원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게 넘겼다. 경영정상화까지 1조원 이상의 금액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손실을 본 셈이다. 특히 금호산업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박 회장에게 다시 넘기는 과정에서 ‘특혜성 구조조정’이라는 사례마저 남겼다.

물론 산업은행은 한진그룹이나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은행이 그동안 축적해 온 기업 구조조정 경험에 비춰 보면 전문성이 기대이하라는 지적이 많다.

IB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대형 수출산업 지원을 주로 하다가 부실기업 인수 등을 겪으면서 허점을 노출하기 시작했다”며 “최후의 보루 역할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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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