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는 ‘유승민 신드롬’ 명암

‘신 보수’ 아이콘, 소신의 끝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지난 7월8일 사퇴 의사를 밝힌 이후 ‘잠행’을 거듭하던 그는 최근 공천과 관련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비박계 인사들과의 물밑접촉 소식도 전해진다. 지난 7월경 정가를 강타했던 ‘유승민 신드롬’이 한풀 꺾인 상황에서 그 명과 암에 대해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지난 24일자로 취임 100일을 맞은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기자간담회를 가진 그는 유승민 전 원내대표 체제에 비해 당·청간 소통이 많으며 최근 ‘신박’으로 분류되고 있다는 말에 “신박이라면 기꺼이 수용하고 또 그렇게 불러줄 것을 요청하겠다”며 “여당 원내대표가 대통령과 가까운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답했다.

혁신적 보수

공교롭게도 유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의 압박을 받고 사퇴한 지도 약 100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지난 7월8일 사퇴한 유 전 원내대표는 당시 정가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사퇴를 전후로 지지율 고공행진에 ‘유승민 신드롬’까지 생겨났다.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도 유 전 원내대표의 이름을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여겼다. 일례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소속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지난 7월7일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사퇴론이 제기되자 “지금 새누리당이 유 원내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워서 마녀사냥 하듯이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도 그러한 시선은 이어지고 있다. 정가에서는 꾸준히 야권과의 연합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여당 내 비박계에서도 최근 수세에 몰리는 이유를 유 전 원내대표의 부재로 보고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추석 연휴 마지막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혜훈 전 의원을 만나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관철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얘기를 유 전 원내대표에게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대표는 즉각 관련 보도를 부인했지만, 친박계의 공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입장을 생각한다면 우회적으로 언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복수의 언론은 보도했다.

또한 이름이 언급된 이 전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와 각별한 사이로 알려져 신빙성을 높였다.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거취가 의원총회에 붙여졌던 지난 7월8일 이 전 의원은 “권력자가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북한식”이라며 지원사격했다.

사퇴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주자 1위에 오르는 등 신드롬이라 할 만한 현상들이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7월10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 전 원내대표는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19.2%의 지지를 얻어 18.8%의 김 대표를 0.4%포인트 차로 앞섰다(7월8~9일 사이 19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그러나 정가전문가들은 해당 지지율이 야권 지지자들의 ‘역선택’이 포함된 수라며, 곧 있을 지지율 하락을 예견했다.

현재까지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들어맞는 모습이다. 리얼미터가 지난 19일 발표한 10월 3주차 주간 집계에 따르면, 유 전 원내대표는 3.8%에 그쳤다. 수치상으로 보면 3개월 동안 지지율 15.4%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역선택·컨벤션 효과 등 부수적인 것들을 포함하더라도 하락폭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같은 기간 순위도 1위에서 7위로 떨어졌다(10월12~16일 사이 19세 이상 남녀 2500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2.0%포인트).
 

그러나 여권 내로 범위를 축소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간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유 전 원내대표는 전주대비 1.6%포인트 오른 14.2%로 2위를 차지했다. 비록 1위인 김 대표(28.4%)와 두 배 차이가 나지만, 3위인 홍준표 경남도지사(8.2%)에 비해 6%포인트 높은 수치다.

그렇다면 사퇴 직후부터 지금까지 유 전 원내대표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은 무엇일까. 정가전문가들은 그가 ‘혁신적 보수’를 대표하는 인물이 됐지만 반대로 기존 보수층의 표를 잃었다고 분석한다. 지난 19일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이 <경향신문>에 낸 칼럼을 보면 “박 대통령이 개혁적 보수 유 전 원내대표를 찍어냄으로써 낡은 보수는 대세가 됐다”고 지적했다.

사퇴 100일, 유승민이 얻은 것과 잃은 것
친박계 이재만에 근소 우위, 공천장 주인은?

그런 유 전 원내대표가 최근 입을 열었다. 앞서 지난 7일 대구지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부당한 공천학살이나 차별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당 대표와 청와대가 싸우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안 좋은 현상이며 좀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지난 16일에는 대구지역 한 성당에서 열린 특강에 참석해 “내년 총선에서 100% 공천될 것으로 확신한다”며 “새누리당의 상향식 경선 등 공천 과정에 당연히 참여할 것이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제안한 안심번호 국민공천제에 대해선 “기존 유선전화 방식의 여론조사 경선에는 문제가 많다”며 “휴대전화 기반의 안심번호를 통한 경선이 좋다”고 지지했다.

해당 발언들이 박 대통령의 깜짝 대구 방문 후 나온 것들이라 정가는 주목하고 있다. 대통령의 방문 후 정가에는 이른바 ‘TK 물갈이론’이 나도는 실정이다.

야권으로부터의 러브콜 또한 유승민 신드롬의 한 단면이다. 여권 인사임에도 야권에서 영입을 시도하는 모습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8월17일 고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의 장례식이 있던 때에는 유 전 원내대표와 손학규 전 대표와의 만남 소식이 전해지며 중도신당 가능성이 제기됐다.

대표적으로 두 세력이 손을 내밀고 있다. 새정치연합 김부겸 전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현 야권 틀로만 그 분(유 전 원내대표)에게 같이 하자고 하는 건 무리인 것 같다”면서도 “아마 총선 이후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그림을 그릴 큰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고 가능성을 시사했다. 26일 발간되는 김 전 의원의 저서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에는 “김문수보다 유승민이 대구를 대표하는 대선후보감”이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도 지난 7일 평화방송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 출연해 “전면 개혁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설령 보수적인 분이라 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은 두 러브콜 모두에 대해 “그런 일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김부겸-천정배

이와 함께 대구 중진들의 서울 출마설이 정가에 돌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지난 7일 “죽어도 대구에 나가겠다”고 이미 선언한 바 있다. 의원실 측도 해당 설에 대해 “처음 들어보는 얘기”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얘기는 단 하나였다. ‘새누리당과 지역구인 동구을 이외에 어떠한 것도 고려하지 않고 있다.’

MBN과 <매일경제 레이더P>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구 동구을에서 유 전 원내대표와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박빙의 승부를 벌이고 있다. 유 전 원내대표는 43.9%의 지지율을 기록, 39.9%의 이 전 청장을 단 4%포인트 앞섰다. 친박계가 유 전 원내대표의 대항마로 이 전 청장을 민다는 소문이 있어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10월11~14일 사이 19세 이상 남녀 500명 대상, 95% 신뢰 수준에 ±4.4%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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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