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뭇매 맞는' 두 부총리 딜레마

‘사분오열’ 가르는 사람 따로 ‘봉합수술’ 떠안는 사람 따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좌청룡·우백호’가 딜레마에 빠졌다.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금융개혁’이라는 거대한 숙제를 떠안았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핵폭탄을 넘겨받았다. 설상가상 두 사람 모두 정가복귀 마지노선까지 채 3개월도 남지 않았다.

한때 새누리당 ‘투톱’으로 활동했던 두 사람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와 최경환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 2013년 각각 당 대표와 원내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정가에 이어 관가에서까지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오른손’ ‘왼손’에 비유되는 두 사람은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금융개혁’이라는 과제를 떠안았다.

좌청룡·우백호
최경환·황우여

최 부총리는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중 하나인 금융개혁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달 22일 최 부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8차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면서 “10월 중 창업 및 성장단계 기업 지원 강화를 위해 정책금융 재편방안을 마련하고 인터넷은행·크라우드펀딩 등 새로운 금융모델을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일찍이 박근혜정부는 4대 개혁(공공·교육·금융·노동)을 발표한 이후 금융개혁에 의지를 보여 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 2014년 말 ‘경제관련 규제완화’를 외쳤고, 구체적으로 ‘액티브X’와 같은 비효율성을 제거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바 있다.

그러나 금융개혁 핵심 주체 간 방향성이 달라 난항이 예상된다. 최 부총리와 기획재정부(기재부)는 금융권 노조의 힘이 강하기 때문에 금융개혁이 탄력을 못 받고 있다고 진단한다. 반면 금융노조 측은 정부가 금융 비효율성의 근원인 ‘관치금융’과 ‘낙하산인사’ 문제에 메스를 대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주체인 금융위원회는 금융사의 ‘자율성 확대’를 개혁의 중심으로 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금융개혁의 중심은 자율성 확대”라며 “다만 금융사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만큼 통제시스템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세 주체가 모두 엇박자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최 부총리는 최근 ‘금융개혁이 더딘 이유는 노조의 탓’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이 되고 있다. 개혁이 촉각을 다투고 있는 상황에서 자충수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 11일 최 부총리는 페루 리마에서 한국 취재진과 만나 “오후 4시면 문 닫는 은행이 어디 있느냐”며 “입사 10년 후에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도 일 안 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한국 금융이 우간다보다 못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딜레마]
금융개혁 난항

최 부총리의 발언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즉각 반발했다. 지난 13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금융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알맹이가 없다”며 “이제 와서 이를 영업시간과 금융노동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현장 또한 마찬가지다. 최 부총리의 발언을 두고 ‘은행 업무를 잘 몰라서 그런 얘기가 나왔다’는 분석을 내놨다. 익명의 한 은행권 관계자는 “셔터를 내려도 내부에 불이 켜져 있는 경우를 봤을 것”이라며 “시재·공과금 마감하느라 그렇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류정리 등 기타 자투리 업무까지 하고 나면 8~9시 퇴근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최 부총리에 대한 불만이 큰 상황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임금피크제 도입 확산을 위한 노림수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인 출신답게 ‘노동시간’과 ‘강성노조’ 문제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박근혜정부는 금융개혁에 자신감을 보여 왔다. 최 부총리의 뚝심도 그렇지만, 대구고 인맥을 활용해 금융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이순우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비롯해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 김윤태 KB데이타시스템 사장, 구동현 산은캐피탈 사장, 전병조 KB투자증권 사장 등이 최 부총리와 대구고 선·후배 사이로 알려졌다.

2013년 여당 ‘투톱’, 관가에서 재회
금융노조 반발 “최경환 현실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금융권에서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국민연금 인사와 관련해 최광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충돌한 것이다. 최 이사장이 홍 본부장에게 ‘연임 불가’를 통보한 것이 발단이었다. 최 이사장은 지난 2007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경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었다. 홍 본부장은 앞서 기술한 바와 같이 최 부총리와 대구고 15회 동기동창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개혁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와도 연계되어 있다. 야당은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할 경우 4대개혁에 협조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TBS라디오 <열린아침 김만흠입니다>에 출연한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상민 의원은 “지금 정부도 노동개혁과 같은 여러 가지 개혁에 대해서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될 부분들이 많지 않나”며 “만약에 이렇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야당의 반대, 또 역사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이면 결코 정부가 하고자 하는 일에 협조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금융개혁이 늦어질수록 조바심이 나는 쪽은 최 부총리일 수밖에 없다. 최 부총리의 제20대 총선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가복귀가 늦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당초 최 부총리는 11월 또는 늦어도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되는 12월에는 정가 복귀가 예상됐었다. 만약 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거나 늦춰질 경우 최 부총리가 느낄 딜레마는 예상보다 클 것으로 전망된다.

[황우여 딜레마]
역사교과서 총대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정가는 물론 사회 이슈 중에서도 가장 국민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학생에게 올바른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선 지금의 검인정 제도가 아닌 단일화된 역사교과서 발행이 필요하다’며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고 있다.

사학계와 야권에서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대·이화여대 등 전국 대학교 역사교수들은 집필거부를 선언하고 있으며, 현장의 교사들은 반대서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관점에서 기록된 역사가 불러올 수 있는 ‘다양성’과 ‘창의성’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야당은 거리로 나섰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골라 서명운동에 나섰으며, 박지원 의원 등은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펼쳤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무소속 천정배 의원은 지난 15일 회동을 갖고 ‘국정화 저지’에 뜻을 모았다. 바야흐로 ‘문재인-심상정-천정배’로 이어지는 야권연대가 형성되는 모습이다. 심 대표는 천 의원과 만난 이날 “박 대통령이 야당을 뭉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당·청은 합심해서 국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 참석해 “학생들이 보는 자습서와 선생님들의 교사용 지도서는 완전히 좌편향 내용을 담고 있다”며 “좌편향 교과서는 발톱을 가진 교과서이고, 그렇기에 국정교과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직접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언급한 적 없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정부질문에서 “7종 (역사)교과서를 보면…(중략)…결과적으로 헌법가치로 받아들일 수 없는 설명이 많이 나온다. 그걸 바로 잡자는 게 개편 방안”이라고 말하는 등 당·청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국정화 반대 사학계 집단 집필포기
“국민 가르지 말라”던 대통령 어디?


국정화 추진은 지난 12일 확정됐다.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했다. 이에 모든 관심은 교육부와 황 부총리에게 집중된 상황이다.

황 부총리는 국정화 역풍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황 부총리가 더 이상 교육부장관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해임건의안을 제출했다. 복수의 언론은 황 부총리가 당 대표 시절 발표된 여의도연구원의 자료를 바탕으로 자가당착을 지적했다.

2013년 11월자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국정화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맞지 않고 특정 정권의 치적을 미화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며 경계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보고서 발행 당시 여의도연구원 이사장은 새누리당 대표였던 황 부총리였다. 해당 보고서에 대해 여의도연구원 측은 담당 연구위원의 개인적 소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논란은 가중되고 있다.


정가 일각에서는 황 부총리의 부담감을 언급한다. ‘집필포기’ ‘서명운동’ 등 국정화로 가는 과정에 험로가 예상되는 가운데 자칫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장관으로서 느낄 책임감은 물론 내년 총선 출마라는 현실적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만약 국정화가 야권 및 사학계의 반대로 무산된다면 화살은 온전히 교육부와 황 부총리에게 쏠릴 수 있다.

목전에 둔
개혁역풍

박 대통령은 지난 12일 미국 방문 길에 올랐다. 출국에 앞서 박 대통령은 예정에 없던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결코 정쟁이나 이념 대립에 의해서 국민을 가르고 학생들을 나눠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는 이미 ‘사분오열’ 분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과 박근혜정부 사이에 있는 최·황 두 부총리의 역할론이 주목받는 이유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 ‘순방 징크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지난 13일부터 18일까지 3박 6일 동안 진행된 가운데 어김없이 ‘순방 징크스’ 얘기가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이었던 지난 2013년 5월경 박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했으나 국내에서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성 추문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4월경에는 중남미 순방 길에 오른 첫날 ‘성완종 리스트’가 터져 정가가 발칵 뒤집힌 바 있다.

지난 6월경에는 반대로 국내에서 ‘메르스 사태’가 터져 해외일정인 한·미 정상회담이 무기한 연기됐다. 그 외에도 남재준 전 국정원장의 남북정상회의록 공개·이석기 내란음모·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 사퇴·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에 이르기까지 약 13차례 크고 작은 일이 겹쳐 발생했다. 이에 세간에서는 ‘우연’보다 인과관계에 힘을 싣는 ‘징크스’라 표현하게 됐다.


나갈 때마다 일 터진다?

정가 일각에서는 이번 순방 징크스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사태를 꼽고 있다. 황우여 교육부장관 겸 사회부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이 야당에서 나왔을 정도로 작은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우연’이 겹친 징크스를 두고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억지스럽다는 의견이 있다. <경인일보> 배상록 정치부장은 칼럼을 통해 “사건으로만 치자면 대통령이 외국에 있을 때보다 국내에 있을 때가 훨씬 더 빈번할 터, 대통령이 국내에 있다는 사실을 굳이 결부시키지 않을 뿐이다”라며 “‘대통령이 나가기만 하면 일이 터진다’며 비아냥거리거나 이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건 아무래도 좀 치졸하고 억지스럽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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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