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화류계 줄초상 나는 이유

사채 쓰려면 맞보증, 실체 없는 목죄기 ‘아가씨들 녹다운’

사채로 인한 피해와 후유증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사채 이자율에 대한 상한선 제한을 법률적으로 규정하고 불법 사채에 대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음지’의 사채 시장은 이런 규제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1000%, 2000%의 살인적인 이자를 받으며 서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 중에는 화류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인의 사채는 물론 사채에 대한 연대보증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자살이라는 끔찍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최근 발생했던 포항의 연쇄자살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에 화류계의 사채현황과 특히 그 중에서도 마담들의 사채로 인한 고통을 집중 취재했다.

화류계 언니들 화려한 모습 뒤에 사채 검은 그림자
룸살롱 마담들 이중고 시달려 살인이자에 ‘절망만’


사채 때문에 고통 받는 화류계 사람들 가운데 룸살롱 마담들은 사채 피해자의 직접적인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손님들의 외상이나 아가씨들에게 속칭 마이낑(선불)을 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쓰는 경우가 많고 불경기에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곧바로 사채 이자에 또 다시 이자가 붙는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야반도주, 연쇄자살…
충격에 빠진 화류계

서울 강북의 한 룸살롱 마담인 최모(29·여)씨. 그녀는 얼마 전 초보 마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새끼마담’ 딱지를 떼고 본격적인 마담생활을 시작했다. 수년간 아가씨 생활을 하면서 나름 ‘에이스’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그녀였지만 역시 나이를 감당하기는 힘들었고,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담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사실 그녀는 마담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담에 대한 약간의 환상이 있었다. 직접 손님들을 접대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으며 아가씨 ‘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향후 몇 년간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이 깨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가씨의 외상까지 마담이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 속에서 그녀는 사채를 쓸 수밖에 없었고, 그 후 사채업자들의 검은 협박이 서서히 그녀를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최씨가 떠안았던 외상금액은 사실 그리 많지도 않았다. 3명의 아가씨를 모두 합쳐 500만원 정도. 사실 룸살롱 업계에서 이 정도의 금액은 그리 크지도 않은 금액이다. 최씨 역시 ‘한 두달이면 갚을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당장 급한 마음에 사채를 썼던 것. 그러나 불경기는 생각보다 오래 갔고 손님들로부터의 수금은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사채이자를 연체한지 2개월이 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사실 화류계에 있다 보면 사채업자들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친분을 쌓기도 한다. 사채업자들이 아가씨들이나 마담들에게 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들 역시 언제 다급하게 돈을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기본적으로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그런데 2개월 정도 이자를 연체하자 그들의 태도가 싹 바뀌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거의 반말에 욕까지 섞어 쓰는 지경이 됐다. 매일 전화가 끊이지 않고 그들에게 너무 시달리다보니 밥맛이 없을 정도이다. 아직 연체된 이자는 5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주변에서는 ‘그 정도는 이자도 아니다’라고 말하곤 하지만 이제까지 사채에 시달려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 마담이라는 직업이 이렇게 어려운지는 몰랐었다. 지금 다시 아가씨로 돌아가라고 하면, 얼른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다.”

물론 최씨도 사채 이자 때문에 괴롭겠지만 주변의 말처럼 그녀의 이자는 이자도 아닌 축에 속한다. 심지어 마담이나 아가씨들을 자살까지 몰고 가는 악덕 사채를 얼마든지 수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포항에서 발생한 연쇄자살 사건은 사채로 인한 부작용에 다시 한 번 경악할 수밖에 없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당시 아가씨들과 마담들은 서로 연대보증을 섰으며 그 중 한명이 ‘야반도주’를 하기 시작하며 문제는 도미노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이자는 그때부터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수백만 원의 원금이 어느덧 1억원이 넘는 돈으로 변했다는 것. 결국 사채업자들의 끈질긴 협박을 견디다 못한 아가씨들은 연이어 자살을 했고 경찰은 해당 사채업자들은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결국 아까운 젊은 여성 세 명의 목숨을 되살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자 화류계는 충격에 휩싸이며 ‘침묵’ 하기도 했다.
사실 화류계 아가씨들이 이렇게 빚에 허덕이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화류계는 극심한 침체기를 겪고 있다. 물론 ‘되는 술집은 되고 돈 버는 아가씨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실제 돈 버는 룸살롱, 돈 버는 아가씨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룸살롱 5년 차인 이모(31)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쩔 수 없는 맞보증 시스템, 보이지 않는 감시자
손님 부족도 문제지만 아가씨 품위유지비 ‘깜놀’


“솔직히 요즘 같으면 아예 이 일을 때려치는 게 돈 버는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손님들의 외상은 계속해서 늘어가지만, 그렇다고 외상술을 주지 않을 수도 없다. 돈 못 낸다고 외상술을 안 주면 과거의 외상도 받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손님들의 외상에 끌려가다 보면 정작 고스란히 빚으로 쌓일 수밖에 없다. 거기다가 아예 손님 자체가 확 줄었기 때문에 아무리 손님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통화를 해도 가게에 오질 않는다. 손님 자체가 씨가 마르는 상황에서 매출을 올리는 것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경기 불황으로 손님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실제로는 그녀들의 생활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도 사채를 끌어 쓰는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아가씨들이 하루에 써야만 하는 돈은 최소한 10만원에 육박한다. 메이크업, 헤어, 택시비, 식대 등등을 포함하면 그 정도의 금액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 이 최소한의 기본투자비만 해도 한 달에 200만원이라는 이야기. 여기에 월세와 공과금, 휴대폰 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최소 한 달에 300~400만원을 벌지 않으면 그녀들은 곧바로 ‘적자 인생’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런데 이 적자 인생을 메워주는 유일한 방법이 다름 아닌 사채라는 이야기다. 당장 사채는 그녀들에게 고마운 존재일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그녀들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선택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마담들의 경우 씀씀이가 더 클 수밖에 없고 아가씨들 관리에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사실 마담들의 능력이란 아가씨들에 대한 ‘관리능력’이고 이렇게 아가씨들을 다독이며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서는 결국 투자라는 것을 해야만 한다. 사소한 예로 아가씨들에게 회식을 시켜주는 것도 모두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거기다가 아가씨들의 외상까지 모두 마담이 떠안아야 하는 현실적인 구조 속에서 사채를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한다.

화류계마담, 아가씨들이 처한
‘빚의 숙명’ “아이고 무서워”

그렇다면 이러한 화류계 아가씨들을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없을까. 일부 화류계 사람들은 ‘우선 현재 룸살롱과 아가씨가 포화상태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력 7년차 영업상무 김모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룸살롱도 한때는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야말로 ‘돈을 긁던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한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곤두박질 쳐왔으며 그 해결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아가씨들은 과거의 영광만 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불나방처럼 화류계로 몰려들어오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적은 파이를 나눠먹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결국 돈줄이 사채가 되어버리는 기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망할 룸살롱은 빨리 망하고 업계를 떠나야하는 아가씨들은 한순간이라도 빨리 이 업계를 떠나는 것이 오히려 사채 피해를 막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김씨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룸살롱 아가씨’가 가지고 있는 그 화려함과 ‘스폰서 한방이면 인생이 역전된다’는 대박정신이 있기에 지금도 수많은 아가씨들이 화류계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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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