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에덴의 동산’ ‘누드펜션’을 찾아서

‘싱그런’ 자연 속에 ‘지친’ 알몸을 맡기다!


자연주의자, 나체주의자 혹은 누디스트.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이름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1200여 개의 자연주의 사이트가 존재하고, 1300여 곳의 누드 비치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한민국에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알몸’으로 자유를 만끽하는 ‘자연주의자’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지난해 모 케이블 방송을 통해 ‘누드펜션’이 공개되면서 ‘자연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누드펜션’ 운영자 역시 알몸의 자유를 만끽하는 ‘자연주의자’ 혹은 ‘나체주의자’다. 대한민국 ‘자연주의자’들을 위해 직접 펜션을 짓고 매달 1~2회의 정기 모임을 갖는다는 김종헌(44) 대표. <일요시사>는 지난 7월27일 충북 제천에 위치한 일명 ‘누드펜션’을 찾아 김 대표에게 대한민국 ‘자연주의자’의 현주소를 들어봤다.


물·공기·바람… ‘알몸’으로 느끼는 자연, 이게 바로 ‘자연주의’ 
과거 동호회 대부분 민박·호텔 등에서 비밀모임 ‘오해’ 일으켜

지난해 방송을 통해 공개된 ‘누드펜션’은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성인남녀가 ‘알몸’으로 여가를 즐기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누드펜션’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알몸’이나 ‘누드’라는 단어에서 오는 선정성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 달에 1~2번 정기 모임을 갖는 이들은 펜션지기 김종헌 대표와 마찬가지로 ‘자연주의자’들이다.

‘자연주의자’ ‘나체주의자’의 사전적 의미는 ‘알몸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을 뜻한다. 철저한 유교사상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몸’을 남에게 보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외설스러운 일이었다.

자연주의자로 산다는 것
아직도 따가운 사회적 시선

하지만 김 대표는 1993년부터 포털사이트 카페를 통해 ‘자연주의자’로 활동했고, 2002년부터 일반인들의 눈을 피해 철저한 자연주의 모임을 주도했다. 때로는 변태들의 모임으로 오해를 받았고, 모 포털사이트의 표적 없는 몽둥이세례를 받기도 했지만 김 대표는 기어이 국내 ‘자연주의자’들을 위한 전용사이트를 개설하고 펜션까지 설립했다.

여기에 지난해 케이블 방송 출연까지 더해지면서 ‘자연주의자’들을 외부에 공개하고, 일반인들의 이해를 도왔지만 아직까지도 사회의 시선은 따갑기만 하다.
외국에서는 이미 ‘자연주의자’들을 인정하고 있고, 그들은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공식적인 ‘누드존’인 ‘누드비치’가 있는 나라도 많기 때문에 외국에서의 ‘누드’는 우리나라에서의 ‘누드’와 큰 차이를 가진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 ‘자연주의자’들의 입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외국의 경우,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국민의 20%정도는 ‘자연주의자’들을 이해하거나 혹은 ‘자연주의자’로 활동하고 있고, 행여 자신이 자연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거나 반감을 갖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자연주의자’들이 생겨난 시점은 언제일까. 우리나라 ‘자연주의자’들은 포털사이트의 카페를 통해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알몸’ ‘누드’ 부끄러운 것 아냐 직접 펜션 짓고 모임 이어와
‘누드펜션’ 일반인도 대여 가능 날짜 겹치면 자연스럽게 어울려


가장 절정을 이뤘던 시기는 지난 2005년 정도다. 당시 우리나라는 ‘누드’에 대한 관심도가 급속히 상승했다. 인터넷의 활발한 보급으로 어렵지 않게 누드를 접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외국의 ‘자연주의자’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모임을 갖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카페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다음’에만 50개 이상의 관련 카페가 개설됐지만, 이 중 두 곳에서만 정기 모임이 이뤄졌다.

김 대표에 따르면 회원수 1만 명을 자랑하던 당시 최대 ‘자연주의자’ 카페는 ‘누드○○’로 성황을 이뤘다가 “순수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내부 운영자들이 자체적으로 해체시켰다. 이와 관련 김대표는 “이후 우리 카페가 그나마 활동을 이어왔고, 펜션 설립과 함께 전용사이트 ‘알도라’를 개설, 현재 회원은 2000여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당시 포털사이트를 장식했던 ‘자연주의자’ 카페와 동호회들은 하나둘 소멸되기 시작했다. 많은 회원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설득력과 장소 및 경험 부족으로 자연주의자들의 최대 목표인 누드모임을 한 번도 개최해보지 못한 동호회가 대부분이고, 다년간 누드모임을 진행했다는 일부 동호회의 경우, 자연이 아닌 개인주택이나 민박, 심지어는 호텔 등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진행해 ‘자연주의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자연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스와핑 및 프리섹스모임을 주관하는 행태를 일삼는 곳도 존재했다. 목적을 가지고 ‘자연주의자’를 이용한 일부 사람들 때문에 실제 ‘자연주의자’들은 함께 손가락질을 받아야만 했다. 1993년부터 ‘자연주의자’ 활동을 시작한 김 대표는 얼마 지나지 않은 1995년도부터 펜션 설립을 계획하고 자금마련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령·직업 다양
여기가 바로 파라다이스

김 대표에 따르면 국내 자연주의자들은 한 번 모임을 가질 때마다 대한민국 팔도강산을 다 돌아야 했다. 사람들이 없는 산골짜기를 아무리 찾아 들어가도 사람들은 살기 마련이었고, 자연주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시점에서 알몸 상태인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보였다간 ‘변태 모임’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의 눈을 피하면서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김 대표는 나홀로 발품을 팔아가며 장소 물색에 2년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 후 현재 펜션이 위치한 충북 제천의 부지를 발견하고 집을 짓는 데만 2년이 걸렸고, 펜션을 운영한 지는 올해로 3년째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자연주의자 동호회 사이트 ‘알도라’ 회원들은 펜션이 설립된 이후 걱정을 덜었다. 한 달에 1~2번 진행되는 정기모임 장소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고, 알몸으로 즐길 수 있는 수영장과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지은 펜션은 이제 이들의 모임에 빠질 수 없는 ‘천국’으로 자리 잡았다.

김 대표에 따르면 ‘알도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연주의자’들은 연령층이나 직업이 매우 다양하다. 회원수는 2000여 명에 육박하지만 이 중 실제 모임에 참석하는 회원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가 공개한 실제 모임 참가자의 숫자는 생각보다 많았다. 2000명의 회원 중에 단 한번이라도 누드모임에 참석한 회원은 500여 명이고 정기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은 100여 명에 달한다는 것.

김 대표는 “정기모임이나 번개모임 등 ‘오프라인 모임’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진정한 ‘자연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김 대표는 가족·커플 단위의 참여를 가장 반기고 존중한다. 가족 단위의 참여를 지향하는 ‘알도라’는 싱글의 모임 참여에 제한을 두고 있다. ‘알도라’가 진행 중인 모임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먼저 ‘가족모임’은 기혼자 및 애인의 동반모임을 말하고 ‘일반모임’은 가족 및 미혼들의 남녀 혼합 모임을 뜻한다.

이 둘 중 어느 경우라도 기혼자의 혼자참여는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전체모임’은 미성년자만 아니면 누구라도 참여가 가능하고 이 경우에는 기혼자의 나홀로 참여도 가능하다. 김 대표는 “이 같은 방침은 사회 구조상 회원의 90%가 남성인 상황에서 기혼자의 홀로 참석 기회를 확대한다면 다른 목적을 가진 남성들이 접근해 동호회 전체의 뜻을 퇴색시킬 수 있기 때문에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한 달에 한 두 번 정기모임에 참석한 ‘자연주의자’들의 일상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일상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수영과 배드민턴 등의 운동을 즐기며 식사도 함께 한다. 일반인과 다른 점은 ‘알몸’이라는 것뿐이다. 그런가 하면 김 대표가 운영하는 펜션은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물론 우선순위는 동호회 회원들이지만 정기모임은 한 달에 1~2차례면 족하기 때문에 이 날짜만 피해 일반인들에게도 펜션을 대여해준다. 다만 ‘자연주의자’ 회원이 개인적으로 펜션을 찾을 경우, 일반인들에게 자연주의자들의 ‘탈의’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놀라운 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를 거부하거나 불편해 한 일반인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펜션 사이트와 ‘알도라’ 동호회 사이트가 함께 운영되어 있어 펜션을 예약하려면 자연스럽게 이곳이 ‘자연주의자’들의 펜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거부감 없이 이해한다는 것.

한 달에 한두 번 정기모임
수영 배드민턴 등 즐겨

심지어 지난 7월에는 일반인 손님과 동호회회원이 어울려 게임을 하다가 일반인 두 팀이 함께 완전 탈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고. 아직 걸음마단계에 불과한 우리나라 ‘자연주의자’ 동호회는 사회의 조그만 편견과 눈총에도 부러지기 쉽다. 때문에 동호회 내부에서도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심지 있는 결단으로 펜션을 통한 일반인과 ‘자연주의자’들의 소통이 잦아지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이 커진다면 대한민국 ‘자연주의자’에 대한 편견은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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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