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 재건’ 박삼구 잃어버린 6년 풀스토리

먼길 돌아 제자리 “화해만 남았다”

[일요시사 경제팀] 양동주 기자 =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의 연속이다. 갈림길을 두고 원하든 원치 않던 선택의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고민 끝에 내린 선택이 무작정 최선의 길로 인도할 거란 보장은 없다. 탁월한 선택으로 칭송받던 결단이 엄청난 고통을 주는가 하면 그릇된 선택이 ‘신의 한수’로 둔갑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공중분해 된 그룹을 찾고자 긴 시간 험준한 길을 돌아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전남 나주 출신의 고 박인천 창업주가 46세의 늦은 나이에 택시 2대로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했다. 1971년 금호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면서 어느덧 건설, 물류, 금융을 아우르는 재계 11위 기업으로 급성장한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또 한 번 대담한 도박을 단행한다. 2006년 11월 대우건설 지분 72%를 6조4000억원에 사들이는 통 큰 결정을 내린 것이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이 재계 순위는 11위에서 8위, 다시 7위로 뛰어올랐다.

덩치불리기 후유증
유동성 위기 몰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덩치를 불리자 현금 유동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대우건설을 인수한 지 약 3년이 흐른 2009년에 자금난을 이기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되팔기로 결정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다시 매물로 내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에 돈줄이 말라버린 탓이다. 인수 당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의 시가총액은 각각 4조6000억원과 1조6000억원 수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시가총액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축이던 금호산업,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의 시가총액은 각각 6800억원, 8500억원, 6900억원에 불과했다. 


과도한 빚은 머지않아 골칫덩어리로 되돌아왔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 주식을 매입하면서 전체 지분 6조4000억원 가운데 3조5000원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대출해 충당했다. 2009년 말까지 인수 당시 주가 2만6000원보다 6000원 높은 3만2000원이 안될 경우 이 가격에 주식을 되산다는 ‘풋백옵션’을 내걸었다.

그러나 2008년 불어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주가는 1만대에서 등락을 거듭했고 투자자에게 약속한 3년이라는 시간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풋백옵션 행사하며 대우건설을 3만원에 사줄 것을 요구했고 이 금액의 총액은 무려 4조2000억원에 달했다. 결국 대우건설 인수 이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어난 부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존폐 위기로 몰아넣었다.

대우건설은 형제간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박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2009년 당시 불거진 경영권 분쟁에서 심각한 갈등 상황을 연출했다. 갈등의 시작은 역시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과정에서 나타났다. 당시 박 회장이 그룹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인수에 나서자 그룹 내 석유화학 부문을 이끌던 박찬구 회장은 이를 극구 반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이마저 묵살하자 이후부터 그룹 경영을 놓고 대립각이 커졌다.

결국 박찬구 회장은 업계 불황 등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자 지난 2009년 금호산업 지분을 전량 매각,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대폭 늘리며 계열 분리를 시도했다. 여기에 맞서 박 회장은 같은 해 7월 ‘지분공동보유’ 규칙을 깬 박찬구 회장을 해임한 채 본인도 도의적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금호아시아나, 금호석유화학으로 갈라진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뾰족한 해결 방도마저 찾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2009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 아시아나항공이 채권단의 자율협약체제에 편입된 것은 당연한 절차였다. 그나마 다행은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금호산업의 우선매수청구권을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후 금호그룹 재건에 나선 박 회장에서 두 가지 요건은 결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한다.

시간 돌린다면…
꺾지 않은 의지

급하게 남은 자산을 수습하고 그룹 재건 의지를 천명한 박 회장은 일단 사재 3330억원을 들여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유상증자에 참여했고 경영 일선 복귀에 성공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를 중심으로 내실 다지기에 힘을 쏟는다. 이렇게 흐른 시간이 어림짐작으로 약 6년이다.


그 사이 옛 영광의 한축이던 금호산업이 다시금 매물로 나왔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금호산업을 주의 깊게 바라본 건 비단 박 회장만이 아니었다.

지난 3월2일 금호산업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은 호반건설과 사모펀드 4곳(MBK파트너스, IBKS-케이스톤, 자베즈파트너스, IMM PE)을 입찰적격자로 선정했다. 매각대상은 채권단이 금호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감자·출자전환으로 갖게 된 지분 57.5%, 약 1955만주였다.

대우건설 인수 삐거덕 승자의 저주 현실로
배탈난 무리한 투자…형제간 우애까지 금가

당시 채권단이 금호산업 매각대금으로 설정한 금액은 약 1조원 수준이었고 실제 인수금액 역시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측됐다. 매각 소문이 흘러나온 직후 7000억∼8000억원으로 예상되던 금호산업에 1조원이라는 금액이 매겨졌다는 사실은 그만큼 금호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았음을 반증한다. 호반건설이 화제의 중심에 서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건설경기 불황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한 호반건설은 지난해 도급순위 15위를 기록한 알짜 중견건설사로서, 도급순위만 놓고 보면 오히려 금호산업(20위)보다 우위에 있다. 금호산업에 대한 호반건설의 의지는 지난 3월25일 광주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대한상의 의원총회에 참석한 김상열 회장을 통해 다시 한 번 재확인된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은 “우리의 자산이 2조원 가량인데 채권단이 정한 가이드라인이 1조원 조금 안되는 수준이라고 들었고 이를 두고 내부에서 검토 중”이라며 “현금 동원력은 충분하기 때문에 무조건 단독입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금호산업에 대한 의지는 호반건설보다 박 회장이 훨씬 굳건했다. 금호산업은 박 회장에게 그룹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호반건설이 금호산업을 눈독들인 이유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서 떨어져 나온 시점에서 두 회사는 경영권이 분리됐지만 그렇다고 아예 연결점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순환출자 구조의 한축을 담당해왔고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을 30.08% 보유한 상태였다. 금호산업을 손에 넣으면 단번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최대주주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는 금호산업 인수가 아시아나항공 이외에도 아시아나항공 산하 계열사의 경영권도 모두 포함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숨 걸고 찾는다
인수금은 어떻게?

결국 금호산업 인수전은 좌충우돌 끝에 박 회장의 승리로 귀결됐다. 지난달 24일 채권단이 제시한 금호산업 지분 50%+1주를 박 회장이 7228억원에 인수키로 동의한 것이다. 지난 4월 본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던 호반건설은 이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며 인수전 중간에 이탈한 상태였다.

이제 자금을 조달해 채권단에게 쥐어주면 6년 만에 다시 그룹의 주인이 된다. 다만 박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매각에 동의한 채권단도 박 회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단 인수 대금 7228억원을 12월30일까지 어떻게 조달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박 회장 자금 여력이 그리 넉넉지 않다는 게 공통된 생각이다. 박 회장은 3년 전 우선매수청구권을 받기 위해 금호산업에 22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한 바 있다. 현재 박 회장의 가용 자산이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의 보유분을 포함한 금호산업 지분 9.92%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IB업계에서는 3개월 전 되찾은 금호고속을 다시 팔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 주식 100%(1000만주)를 칸서스HKB 사모 펀드에 3900억원을 받고 재매각한다고 밝혔다. 칸서스HKB는 칸서스자산운용이 8월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금호고속을 매각한 대금으로 금호산업 지분을 살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다만 금호산업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출자 전환 주식 매각 준칙에 따라 계열사를 이용해 자금을 조달할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라 이마저 녹록지 않다.
 

칸서스자산운용이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자금을 융자 받아 박 회장의 재무적 투자자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인다. 2006년 대우건설 인수 당시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바 있는 칸서스자산운용은 박 회장과 지역 연고가 같은 김영재 회장이 전권을 쥐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박 회장과 사실상 동맹관계인 칸서스자산운용이 백기사로 나설 것이란 얘기가 나돌고 있다”며 “칸서스자산운용이 보유한 금호고속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해 박 회장과 함께 인수주체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계속된 빚잔치 시련의 회생기
금호산업 재인수 마무리 단계


여기서 최근 박 회장의 지원군으로 또 다른 세력이 급부상하고 있다. 대우건설 인수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됐던 금호석유화학이다. 최근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사이에 어딘지 모를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24일 금호피앤비화학에 발행했던 어음대금 90억원과 이자 30억원을 법원에 공탁하고 금호피앤비화학은 소송을 취하했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이고 금호피앤비화학은 금호석유화학그룹 계열이다.

금호그룹은 계열 분리 이전인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계열사인 금호피앤비화학을 대상으로 각각 90억원, 30억원 규모의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기업어음(CP)을 매입토록 했다. 그러나 2010년 초 금호산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CP 대금을 지급받지 못하게 되자 금호피앤비화학은 2013년 5월 어음금 청구 소송을 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소 제기 이후 CP 대금을 갚았으나 금호산업은 금호석화와 금호피앤비화학 등을 상대로 상표권 지분이전을 청구하는 맞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7월 법원은 금호산업이 제기한 상표권 소송 1심에서 “금호 상표권은 금호산업과 금호석유화학 양측에 모두 공동 권리가 있다”는 취지로 판결해 사실상 금호석화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1건의 소송취하로 둘 사이 쌓인 앙금이 전부 해소됐다고 보는 건 확대해석일 가능성이 크다. 금호산업이 어음 원금과 이자를 법원에 공탁했고 금호석유화학에서 소송을 취소한 과정은 상표권 소송 판결에 따른 당연한 수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에게 창끝을 겨누던 모습은 일정부분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상처가 너무 깊다
동생과 화해 수순

하늘 높이 치닫던 박 회장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원대한 이상은 산산조각난지 오래다. 자신들의 꿈을 실현시켜줄 것이라 믿었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거대한 채무만 남긴 채 남의 손으로 넘어간 지 오래고 형제 간 우애마저 쉽사리 회복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박 회장의 입지 역시 마찬가지다. 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룹 재건이라는 큰 목표아래 일정부분 상처를 치유하는 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옛 영광을 되돌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다만 리스크를 감수한 투자는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만한 사례는 없어 보인다. 남들에겐 큰 교훈이 된 셈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