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황금분할’ 노리는 금배지들

발붙일 땅 찾아 두리번두리번 “어디 없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정가의 최대 관심사는 선거구가 어떤 형태로 통·폐합 되느냐다. 의원들로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여·야 할 것 없이 비례대표 초선의원들은 선거구가 어떤 형태로 쪼개질지 몰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자신들의 정치생명 연장 여부를 결정짓는 선거구 황금분할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의원들의 실태를 <일요시사>가 취재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는 선거구 재획정 소식에 여·야 의원들은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인구수가 기준에 미달되는 지역 의원들은 “19대 국회가 끝나기 전까지 시한부 인생을 사는 꼴”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통·폐합이 예상되는 지역이 농어촌에 편중되고 있다며 해당 지역 의원들은 “지역 대표성을 보장해 달라”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선거구 재획정
인구 초과 지역

반면 분구(分區)가 예상되는 선거구도 있다. 인구가 기준 상한선을 초과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은 통·폐합이 예상되는 지역과 달리 주로 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지역들은 비례대표들 사이에선 ‘기회의 땅’으로 주목받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향후 정치인생을 책임져줄 발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들 입장에선 선택할 수 있는 지역구가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례대표들이 선거구 분구를 기대하는 이유에는 재선에 성공하기 힘들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내포돼 있다. 지역기반이 약한 관계로 어디로 출마할지 결정하는 것도 녹록지 않다. 이념적 지역색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대부분 지역들을 여·야 중진의원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기 힘든 게 현실이다.

최근 정가에서 불고 있는 ‘정치신인을 발굴하자’는 것도 갈수록 새로운 얼굴이 나타나기 힘든 현실 상황의 발로라고 정치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즉 정치신인이 발을 들일만한 땅이 없다는 것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지난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가 지역구 출마에 도전한 사례는 전체 64명의 비례대표 중 34명, 비율로 따지면 53.1%의 비례대표가 지역구 출마에 도전했다. 그 중 재선에 성공한 이는 단 6명에 불과하다. 도전자 중 17.6%만이 19대 국회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떨어진 이들은 ‘선당후사’했다가 ‘토사구팽’ 당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높은 벽이 존재함에도 19대 국회에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의 수가 지난 10년 내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어 이례적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67.7%(전체 62명 중 42명)를 기록했던 비례대표의 지역구 출마 비율이 18대 들어서는 53.1%(전체 64명 중 34명)로 감소했다가 19대 들어 76.8%(전체 56명 중 43명)로 급상승했다. 나머지 13명의 비례대표 또한 조만간 출마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수치는 더욱 올라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차기 총선 출마를 계획하는 비례대표의 비율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정가는 기존의 ‘관행’에 최근의 ‘선거구 분구’라는 요인까지 더해진 결과로 보고 있다.

지역구 분구
기회의 땅?

‘초선 비례대표, 재선 지역구’는 정가의 대표 공식이다. 비례대표제는 일찍이 소수자 배려와 전문성 확보, 소선거구제로 인해 발생되는 사표 문제 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으나, 정치 입문을 위한 등용문으로 전락했다는 의견이 많다. 여권에서는 ‘비례대표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례대표제’는 정당지지 투표를 통해 얻은 표를 비율로 환산해 각 정당에 배분, 정당에서 미리 정해놓은 순번에 따라 국회에 입성하는 제도다. 따라서 몇 번째 순번을 받을 수 있는지가 국회 입성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권력실세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별한 지역활동 없이 국회에 입성하다보니 ‘특권’을 누렸다는 인식도 정가 저변에 깔려있다.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도 비례대표들은 온전히 의정활동에 매진하기 힘들다. 직능 전문성을 살려 의정활동을 해도 당장 다음 총선에 어디로 출마해야 할지 막막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국회의원 4년 동안 전반기 2년은 의정활동에 치중하고, 나머지 2년 동안은 지역에 매진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졌다.

때문에 여·야는 제도 개선에 나선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20대 총선 공천을 앞두고 최소 3년 이상 해당 지역에서 거주한 후보자에게 가점을 주는 ‘지역기여도 평가’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고됐다.

도입 이유는 김무성표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가 시행될 경우 무분별한 후보 난립을 막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인즉 당은 해당 지역에서 최소 3년 이상 거주한 후보자에게 가점을 주는 대신 그렇지 않은 후보자에게는 감점을 준다는 것이다. 지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라고 새누리당은 설명한다.

비례대표 자생 길은 딱 하나 ‘지역구’
18대 비례대표 중 단 6명 생존, 17.6%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비례대표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비례대표의 경우 출마를 준비하는 지역에 3년 이상 거주하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다. ‘현실성이 없다’는 주장과 함께 ‘기존 의원들에게 유리한 제도’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오히려 국민들의 요구와는 달리 기득권을 공고히 만드는 제도라고 보고 있다. 정치신인의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다.

비례대표로 재선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안도 제기되고 있다. 한 새누리당 당직자는 “현실적으로 의정활동을 잘하는 비례대표에 한해 재선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당내 의견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도 “비례대표의 의정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비례대표 재선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비례대표로 특권을 누렸으니 지역구 출마는 취약지역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법적 제한은 없다. 과거 정치자금으로 인한 비리가 횡횡했기에 각 정당은 17대 국회 이후 당헌·당규에 비례대표 연임 제한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다. 당헌·당규를 보면 여·야 모두 “비례대표는 원칙적으로 정치신인을 공천한다”고 나와 있다. 해석상 연임금지로 보인다.
 


관행이 굳어지기 전 비례대표 다선은 종종 있는 일이었다. 김종인 전 의원은 여·야를 통틀어 비례대표로만 4선을 했다. 새누리당 최병렬 상임고문(12·14대),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한명숙 전 대표(16·19대), 김한길 전 대표(15·16대) 등도 비례대표를 두 차례 이상 지냈다.

여·야 막론
출마 러시

따라서 총선에 불출마하지 않는 이상 비례대표에게는 지역 출마가 유일한 답이다. 선거구 분구는 비례대표의 지역 출마를 끌어들이는 흡인요인으로 꼽힌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0월30일 선거구 간 인구 편차가 최대 3배까지 나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며 인구 편차가 2배를 넘지 않게 개정하라는 입법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일정 기준 이상의 인구수를 보유한 지역은 선거구가 분구될 예정이다. 법정 인구 상한선이 27만명 수준으로 정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비례대표들의 대거 유입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는 의원들의 소식을 정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비례대표들을 정당별로 2명씩 꼽으면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 민현주 의원은 최근 인천 연수구에 지역사무실을 열고 분구가 예상되는 송도 출마를 선언했다. 연수구는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4차례 당선된 지역으로 정치경력을 따지면 민 의원이 불리한 상황이지만, 연수구에서 송도가 독자 선거구로 분리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민 의원 측은 “선거구가 새로 생길 것으로 예상되는 송도에서 20대 총선 출마 준비를 할 것”이라며 “지역구에서 많은 분을 찾아뵙고 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은 일찌감치 출마 지역을 선정했다. 지난 6월11일 기자회견을 연 이 의원은 “여의도에서 3년간 배우고 느낀 것이 있는데 혹시 국회에서 더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전 중구가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분구 예상 지역에 출마 선언 이어져…
선거구 제출시한 10·13, 핵폭탄 뇌관


대전 중구는 6선을 지낸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주공산이 된 곳이다. 때문에 이 의원 같은 초선 의원이 노려봄직한 몇 안 되는 지역으로 손꼽힌다. 또한 대전 내에서도 인구 기준 상한선을 초과하는 몇 안 되는 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의원 입장에서는 선거구 분구가 이루어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전 최초의 여성 지역구의원이 될 수 있을지 지역언론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새정치연합 측에서도 지역 출마를 고려하는 비례대표들이 많다. 그중 육사 출신의 백군기 의원은 경기 용인갑 출마가 예상된다.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 의원이 수순대로 공천을 받는다면 새누리당 이우현 의원과의 대결이 예상된다. 선거구 한 곳이 신설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지역구 다지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강서 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진성준 의원도 20대 총선에 도전한다. 강서구는 서울 지역 내에서 몇 안 되는 분구 예상 지역이다. 강서 병이 새로 신설된다면 의석이 추가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속 의원 5명 중 심상정 대표를 제외한 4명이 비례대표인 정의당 또한 분구가 예상되는 지역에 잇따라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원석 의원은 인구가 초과된 경기 수원시에 선거사무소를 개소하고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박 의원은 정의당 수원시 지역위원장을 역임하고 지역활동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로 ‘조건만남’을 검색하는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돼 논란을 빚은 일이 있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 의원 측은 즉시 보도자료를 통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오늘 본회의장에서 회의에 집중하지 않고, 부주의한 행동을 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밝혔다.

룰 없는 게임
언제 정해지나?


20대 총선을 7개월여 남긴 상황에서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은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야권의 한 비례대표의원의 보좌관은 “지역 활동을 하고 있지만 막연하다”며 “선거구가 분구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권의 비례대표의원 보좌관 역시 “룰 없는 게임을 하는 느낌”이라고 현 상황을 비유했다. 이들이 불확실성을 언급하는 이유는 조건에 부합하는 지역을 찾더라도 공천이라는 돌발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지역구-비례대표 의석에 대한 여·야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선거구 획정위는 획정기준 제출시한인 10월13일까지 마감시한을 지킨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체 기준 수립도 불사하겠다는 모습이다. 과연 획정된 선거구가 비례대표들의 정치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개특위 정문헌 여당 간사 사퇴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소속 여당 간사인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지난 8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 의원은 “선거구획정의 이해 당사자가 됐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시한 1개월 남겨두고 파행?

이에 일각에서는 힘주어 출범한 정개특위가 유야무야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정 의원은 지난 7일 있었던 회의가 끝난 후 “권역별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 얘기를 나눴는데 난관에 봉착한 상태로 풀리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어려움을 토로한 지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해 정가에서는 ‘야당과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진 것 아니냐’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지난 9일 정 의원의 사의 표명에 대해 “(정 의원이) 정개특위 운영을 계속해왔던 책임자이기 때문에 업무파악능력이 가장 충분한 의원”이라며 “간사로서 계속 해주길 바라지만 제척 대상이 되는 경우에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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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