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탐구⑦ ‘8년 검증 일꾼’ 박맹우 울산광역시장

뚝심 있는 행정전문가 ‘강고집’을 소개 합니다



울산광역시장을 두고 치러진 선거판은 박맹우 후보의 독무대였다. ‘역동의 산업수도 푸른 울산’ 기치의 민선 3·4기를 이끈 무난한 행정과 ‘친환경 산업수도 울산’ 이미지를 끌어올린 정확한 판단력과 추진력, 그리고 도덕성과 신뢰감이 밑바탕이 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들은 민선 5기 ‘울산광역시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만큼 기대치 또한 크다. 이에 따라 8년 간 검증된 박 시장이 시정을 어떻게 마무리할 지에 시민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재임시절 산업수도로 울산 재도약 발판 마련
세계 3대 인명사전 ‘마르퀴즈 후즈 후’ 등재

‘강고집’이라는 별칭이 더 친숙한 박맹우 울산광역시장은 1951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경남고와 국민대를 졸업한 그는 81년 행정고시에 합격, 이듬해 경상남도에서 첫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간 중앙 및 지방 행정을 두루 익히며 행정전문가의 면모를 갖춰갔다.

97년 경남도 울산광역시준비단에서 일한 것을 계기로 울산시 기획실장, 내무국장, 건설교통국장, 울산 동구청장 권한대행 등을 역임한 박 시장은 고향인 울산의 시정을 꿰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세계적 산업도시
생태 환경도시 등극

99년 당시 동구청장 권한대행 이후 민선 구청장과 국회의원 출마 의사를 보이기도 했던 그이지만 정치적 환경 상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라고 생각한 그는 울산시 국장직을 내놓고 도전한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첫 광역자치단체장에 오르는 쾌거를 달성했다.

하지만 이때 ‘광역시장으로서의 경륜이 얕지 않으냐’는 우려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지방과 중앙을 오가다 울산시 국장급에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곧바로 광역시장에 당선됐으니 대부분 중진 정치인이 시?도지사 선거에 나서던 당시로서는 당연한 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정전문가답게 시정을 안정적으로 이끌면서 산업수도로써 울산의 재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2006년 재선에 성공했고 울산을 세계적인 산업도시, 생태환경도시의 반열에 올려놨다.

울산행정의 수장으로서 박 시장은 8년 간 경부고속철도(KTX) 울산역 유치와 울산국립대(울산과학기술대학교) 신설, 혁신도시 유치, 자유무역지역 지정, 동북아오일허브 유치, 북구 강동개발 시작 등 울산의 미래가 걸린 현안을 특유의 뚝심으로 강력하게 밀어붙여 성사시켰다.

특히 공단 조성으로 오염이 심하던 대기질과 태화강의 수질을 개선해 ‘공해도시’의 오명을 벗고 울산을 세계적인 생태환경도시로 거듭나게 한 업적은 3선 연임의 원동력으로 풀이된다.

연어와 수달, 황어, 은어가 돌아오는 생명의 강으로 되살린 태화강은 정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선도모델이 됐다. 이 같은 업적으로 그는 지난해 한국 지방자치단체장으로는 드물게 세계 3대 인명사전 가운데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에 등재되기도 했다.

울산은 1962년 박정희 대통령이 가난의 대물림을 청산하기 위해 ‘잘살아보세’를 외치며 대한민국 근대화의 첫 삽을 뜬 영광의 공업도시다.

1997년 7월 광역시로 승격된 뒤 예산이 5배로 늘어나는 등 눈부신 외형적 성장을 이뤘다. 무엇보다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거듭난 태화강을 찾는 이들이 전국에서 몰려들면서 시민들의 자긍심도 높아졌다.

그러나 울산은 여전히 적잖은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교육과 문화, 복지 등 삶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민선 5기를 이끌어 갈 박 시장이 이런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자연스레 초점이 맞춰졌다.


‘전국 제일의 복지·문화·경제도시’가 첫 임기 중 목표였다면 2006년 지방선거 승리 직후에는 ‘생태환경 도시’라는 구상을 추가했고, 이번에는 ‘큰 대한민국, 우뚝한 선진 울산’을 내세웠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울산의 경제적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전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산업용지 1650여만㎡를 조성해 5조원대의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공장을 지을 땅이 없어 기업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심산이다. 또 동북아 오일 허브를 유치해 많은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할 방침이다. 울산지역 오일 허브사업은 2020년까지 모두 2조488억원을 투자해 울산 남항과 북항 일대 57만9000㎡에 2789만배럴 규모의 석유저장시설 및 거래시설을 구축하는 대단위 사업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오일 허브 평면배치, 항만과 방파제 등 기반시설이 확정되면 사업 추진에 탄력을 받을 예정이다. 박 시장은 “석유의 입·출하와 현물·선물 거래가 활성화돼 저장과 물류·금융 등 연관산업이 발전하고 이에 따른 대규모 고용 창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2060년까지 모두 44조4000억원의 경제파급 효과와 36만6000명의 고용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작고 일 잘하는’
강소조직 유지할 것

이를 위해 연관산업, 특히 금융산업의 육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게 박 시장의 지론이다. 금융산업 육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울산과학기술대학교와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에 ‘연관산업 활성화 방안’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또 자동차와 정밀화학, 전자산업이 융합된 2차전지산업은 향후 반도체에 버금가는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SB리모티브와 솔베이그룹 아시아지역 연구개발센터에 대한 지원확대와 함께 공격적인 투자 유치로 2020년 150개 기업에 생산액 20조원, 고용 1만명 규모의 제4주력산업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경제적 역량을 바탕으로 문화와 복지를 더 키울 계획이다. 박 시장은 “시립미술관과 시립도서관, 문학관, 제 2장애인체육관 건립 등 문화·복지인프라를 확충해 시민의 행복지수와 건강지수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정목표로는 ‘아름답고 푸른 친환경 도시의 건설’이 있다. 정부가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선도모델로 지목한 태화강에 국비를 본격적으로 투입해 세계적인 생태하천으로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시장은 “북구와 중구 주민의 쉼터 동천강, 시민 식수원 회야강, 하구 갈대밭이 넓은 외황강도 생태를 복원하고 레저공간으로 변모시켜 생명력이 넘치는 강으로 만들겠다”고 전했다.

또 박 시장은 고속철도역을 중심으로 인접 도시 간 연계교통망을 확대하는 것은 도시 경쟁력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양산~울산 경전철이 건설되면 울산과 부산, 양산이 하나의 생활권이자 동일경제권으로 묶여 모든 분야에 걸쳐 더욱 유기적으로 연결되리란 계산에서다. 영남알프스와 반구대 암각화 등 울산의 우수한 관광자원을 활용할 수도 있다. 시비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원 분담 비율을 국비 75%, 지방비 25%로 맞추고 정부에서는 신공법과 신기술 도입을 통해 총사업비를 최대한 절감하고, 철도 전문 운영기관을 통해 직접 운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그는 “‘작고 일 잘하는 강소 조직’ 기조를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6년 이후 공무원 정원을 지속적으로 감축했고 절감된 인건비를 현안사업에 투자할 생각이다. 올해 총액 인건비(정부 기준) 대비 2국 165명을 적게 운영한다. 박 시장은 앞으로도 강소형 조직 운영 기조를 계속 유지하되, 중장기적 안목에서 미래의 행정수요를 예측하고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다.

시민의 복리 증진
최우선 가치 돼야

하지만 난제도 남아있다. 기초자치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특히 민주노동당 소속 윤종오 북구청장이 공약인 초·중학교 무상급식을 강행할 경우 마찰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시는 다른 구군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고 시정의 난맥상을 초래할 수 있어 반대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초단체의 행정도 민선5기 출범 초기부터 삐걱거릴 것으로 예고됐다.


이에 박 시장은 “목표 달성을 위한 방식에서 다소의 견해차는 있을 수 있지만 ‘울산 발전’이라는 목표는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가치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건전한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며 “시와 시의회의 최우선 가치는 두말할 나위 없이 ‘시민의 복리 증진’”이라고 전했다. 시민의 행복지수를 높이고 시의 미래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찾기 위해 박 시장은 시의회의 이해를 구하고 적극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박 시장은 “경제와 환경, 문화와 복지에 이르기까지 울산이 가야 할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다”며 “행복한 울산의 길을 앞장서서 열 테니 시민들은 힘을 모아줄 것”을 당부했다.


박맹우 시장 프로필

■학력
·1964 울산 삼호초등학교 5회 졸업
·1967 울산 제일중학교 16회 졸업
·1971 경남고등학교 25회 졸업
·1980 국민대 행정학과 졸업
·2001 경남대 행정대학 행정학 석사 졸업
·2006 동의대 대학원 행정학 박사 졸업

■경력
·1981 제 25회 행정고시 합격
·1989 내무부 근무
·1995 경남 함안군수
·1997 경남 울산시 기획실장
·1997 울산광역시 내무국장
·1998 울산광역시 동구청장 권한대행
·2000 울산광역시 건설교통국장
·제 3·4·5대 민선 울산광역시장

■수상
·1987 노동부장관상 수상
·1997 홍조근정훈장 수상
·2002 행정자치부장관상 수상
·2007 대한민국 글로벌 경영인 대상
·2007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
·2007 우수지방자치단체장상
·2008 뉴거버넌스 리더쉽 메달 수상
·2008 대한민국 공공행정 대상
·2008 21세기 경영리더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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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