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시리즈-광역자치단체장 탐구⑥>15년 만에 돌아온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화가 시장님’이 그리는 행복한 광주 이야기 “기대하라”

민주당 광주시장 공천과정에서 상대후보들로부터 ‘당선인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서’가 제출되는 등 우여곡절을 거치며 공천을 받아 광주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강운태 후보가 결국 광주광역시장에 당선됐다. 이로써 강 시장은 향후 4년 간 광주의 시정을 꾸려가게 됐다. 지난 95년 임명직 시장에 이어 15년 만의 일이다.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목 놓아 외치며 4년 간의 임기에 첫발을 디딘 강운태 시장. 그의 발자취와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봤다.

초등학교만 네 곳 전전…자연스레 친화력 길러져
광주 비엔날레 개최해 세계인 이목 한 몸에 집중

강운태 광주시장은 어린 시절 초등학교만 네 곳을 다녔다. 일선 공무원인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다보니 여러 학교를 전전하게 됐던 것. 그의 아버지는 전남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근무했다. 1년 이상 머문 곳이 드물 정도였다. 이는 아버지의 강직한 성품 탓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고흥군청에 근무하던 시절, 누군가 쌀 한 가마니를 집으로 가져와 즉각 되돌려준 일이 있었는데 그 후부터 전근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초등학교 1학년은 담양에서, 2학년은 보성에서, 3·4 학년은 학다리(함평군)에서 보냈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여러 지역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늘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했기에 자연스레 친화력이 길러졌다.
초등학생 시절 늘 상위권을 유지하던 그의 성적은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었다. 특히 영어는 한심할 정도였다. 1학년이 다 끝날 무렵까지 영어사전 찾는 법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공부가 주는 즐거움을 깨닫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동네에서 우연히 한 여학생을 만나 이야기하다가 영어 때문에 창피를 당한 일이 생긴 것. 여학생은 ‘president’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어왔다. ‘대통령’이라는 뜻 말고 다른 의미도 있는가도 물었다. 그는 당황했다. 당시 그는 발음하는 법은 물론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던 때문이다. 그는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했다.

영어로 망신당한 후
공부 재미에 눈 떠

집에 돌아온 강 시장은 둘째형에게 달려갔다. 영어사전 찾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제야 그는 영어의 재미에 눈뜨게 됐다. 그 덕에 그의 성적은 상위권으로 급부상할 수 있었다. 공부의 동기를 부여해준 그 여학생은 강 시장에게 은인과 같은 존재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그의 담임선생님은 서울고에 응시하라고 권유했다. 이에 그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 때만 해도 이것이 그의 인생의 첫 좌절이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시험 전 날, 뼛속까지 시렸던 겨울밤을 2시간 가까이 헤맨 끝에 겨우 시험장 인근 허름한 여인숙에 몸을 누일 수 있었다. 이윽고 시험 날 아침이 밝았다. 하지만 그는 몸에 이상을 발견했다. 어지러움증과 구토, 두통이 몰려왔다. 연탄가스에 중독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몸보다 곧 있을 시험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시험장에 도착한 강 시장은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심호흡을 한 후 시험에 임했다. 어지러움이 가시진 않았지만 예상시간보다 빨리 마친 그는 시험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고 답안을 확인하는 여유를 갖기도 했다. 1교시 시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고 시험지를 제출하려 일어설 때였다.

“아뿔싸!”. 시험지 뒷장에도 문제가 빼곡히 있었음에도 확인하지도 않은 채 앞면만 열심히 풀었던 것이다. 정신없이 마지막 시험까지 치르고 나니 눈앞이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시험지에 머리를 처박을 정도였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서울고 입학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그는 학다리고로 진학하게 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1학년을 재학 중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것. 신세를 한탄하며 방황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문뜩 검정고시에 응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1년 간 검정고시를 준비한 그는 응시 한 번 만에 당당히 합격할 수 있었다.

이어 그는 서울로 올라와 죽기살기로 공부했다. 덕분에 또래의 아이들이 졸업할 나이에 서울대 외교학과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교 3·4학년 시절 강 시장은 학교에서 자취를 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의아해 한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당시 강 시장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입후보했다가 낙선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친구가 그에게 총무부장 자리를 제의했다. 한때 당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였지만 학생회 운영을 위해 손을 빌려줄 것을 요청한 것.

총학생회 생활을 하게 된 그는 동숭동 법대와 문리대 사이의 건물 교실 한 칸을 얻어 살게 됐다. 그곳에서 그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에 대한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가 미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그는 ‘자취방’에서 그림을 그리며 미술과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혀갔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난 1998년, IMF 이후 광주의 예술인 40여 명과 함께 ‘실직자 기금 마련을 위한 백령도 스케치전’에 2박 3일간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그렸던 그림은 참가한 화가들의 것들과 함께 판매돼 실직자 기금으로 사용됐다. 뿐만 아니라 미술을 통해 갖게 된 문화에 대한 관심은 광주 비엔날레를 창설하는 밑거름이 됐다.

1994년 광주시장에 당선된 그는 광주를 빛낼 만한 빅 이벤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계인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국제적인 문화예술행사를 주기적으로 개최하고, 이를 토대로 광주를 문화산업도시로 도약시키려는 심산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비엔날레를 성공리에 개최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 다녔다.

하지만 당시 문화체육부에서는 비엔날레라는 생소한 행사에 대해 협조적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를 개최하려는 그의 뜻은 난항을 겪게 됐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199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한 것. 이날은 지역현안사업을 보고하고 대통령으로부터 비엔날레에 대한 확답을 구해야 했기에 강 시장에게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날이었다.

강 시장은 김 전 대통령에게 광주 비엔날레가 가져올 이익에 대해 설명함과 동시에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비엔날레에 관심을 표했고 그 날로 중앙정부는 협조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예산 지원은 물론 ‘광주 비엔날레 지원협의회’ 등의 기구가 구성됐다. 그 이후에도 숱한 어려운 점이 있었다.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왔다. 1994년 광주 비엔날레가 우리나라 세계 문화 축제의 효시를 이룬 역사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된 것.

최연소·농촌출신 장관
일본 시장 점유율 ‘펄쩍’

임기를 마친 뒤 그는 농림수산부 장관에 임명됐다. 이 때 언론은 최연소 장관, 농촌 출신 장관이라며 앞 다퉈 보도했다. 그의 나이 46세, 관계에 발을 들인 지 23년 만의 일이었다.

농림수산부 장관직을 역임하던 그는 농어촌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던 중 돼지고기를 일본 시장에 수출하는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게 됐다. 당시 일본 돼지고기 수출시장 점유율이 매우 낮았던 것이 그 이유다. 천고의 노력 끝에 그는 불과 1년 만에 돼지고기 수출을 4만4000톤으로 거의 3.5배 늘리는 값진 성과를 달성했다.

농림수산부 장관직을 사임하고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강 시장은 내무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전남 출신으로는 자그마치 25년 만의 일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내무부장관의 여러 가지 소임 중 공명선거를 역점에 뒀다. 공명선거에 대한 그의 소신은 한결같았다. ‘국민의 마음을 얻는 내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선거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그는 지난 1997년 10월부터 장애인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당시 각 장애인연합회를 통괄하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의 명예회장으로 추대되면서부터다. 책임을 다하기 위해 그는 장애인들을 위한 행사를 개최하거나 장애인 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를 만들겠다”며 목 놓아 외치던 강 시장. 이제 막 출항에 나선 강운태호가 광주라는 도화지 위에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46세, 관계 입문 23년 만에 ‘최연소 장관’
“행복한 창조도시 광주 만들겠다” 포부 밝혀


강 시장은 광주에서 만든 문화와 상품, 도시 경영이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의 모델이 되는 창조적 거점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그는 광주 발전을 위한 4대 과제와 20개의 핵심 공약을 제시했다.

4대 과제는 ▲풍요로운 경제공동체 ▲멋들어진 문화공동체 ▲세계 속의 평화공동체 ▲참여와 소통의 자치공동체 등이다. 강 시장은 4대 과제를 실천하기 위한 핵심공약으로 ▲신규 일자리 10만개 창출 ▲최하위권 경제규모를 중상위권으로 도약 ▲5대 주력산업과 미래가치산업의 집중 육성 ▲R&D 특구 개발 및 LED 특화단지 조성 ▲문화투자진흥지구 지정ㆍ활용 통해 문화산업 집중 육성 ▲시민이 함께하는 명품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조성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 확대 및 복지 향상을 비롯해 20가지를 제시했다.

일자리 창출과 관련, 강 시장은 “시정의 최우선을 일자리를 통한 신성장 체제에 두고 오는 2014년까지 신규 일자리 10만 개를 창출, 실업난을 해소하고 고용률을 60% 이상 달성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국 7대 도시 가운데 최하위의 경제 규모를 4위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1인당 생산액을 3000만원 이상 달성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그는 옛 전남도청 주변과 사직공원, 송암공단 일대를 문화투자진흥지구로 지정해 문화산업체를 500개 이상 집중 육성하고 임명직 시장 때 창설했던 비엔날레와 김치축제, 첨단 엑스포 등 3대 축제를 시민이 주인 되는 세계적인 문화ㆍ경제ㆍ관광상품으로 정착시켜 광주를 명실상부한 문화산업 메카로 육성할 방침이다.

또 강 시장은 문화투자진흥지구에 대해 “광주 문화산업체에 조세감면혜택을 주는 법안이 지난 2009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는데도 현재까지 문화투자진흥지구를 지정하지 않아 산업유치가 부진한 실정이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는 “예향 광주는 시민들의 예술적 영감과 끼가 탁월하기 때문에 문화산업 육성에 가장 적합한 지역”이라며 “문화 투자 진흥지구 지정과 문화산업체 유치, 문화적 가로환경 조성을 통해 문화산업 시범도시로 가꿈으로써 타 지역에서 벤치마킹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CT연구원을 유치해 한민족의 문화적 심성을 콘텐츠로 만드는 한류의 산실로 육성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규 일자리
10만개 창출


또 그는 여성의 사회 참여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성의 권익 증진에 앞장서고 출산장려 등 복지의 질을 높이기로 했다. 누구나 시장을 만날 수 있고 시정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참여와 소통의 열린 공동체를 만들 예정이다.
더불어 갈수록 늘고 있는 고령자와 독신자, 그리고 핵가족화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불리는 헬스케어 가전산업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강운태 광주광역시장 프로필

<학력>
·1965년 함평 학다리고교 수학, 대입검정고시 합격
·1972년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1987년 미국 인사관리처 OPM과정 수료
·2000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AMP) 수료.

<경력>
·1972년 행정고시 합격(11회)
·1989년 순천시장
·1994년 광주광역시장
·1995년 농림수산부장관
·1997년 내무부장관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
·2003년 국회 재정제도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2003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2004년 새천년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2009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일자리창출 및 중소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위원,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 위원
·2010년 광주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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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