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한 건' 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북한이 무서워하는 불굴의 카리스마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남북 간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극적 타협을 도출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제대로 떴다. 박근혜정부 외교안보팀 좌장으로서 김 실장의 뚝심으로 이끌어낸 합의라는 평가다. 김 실 장은 남북관계의 막힌 곳을 속 시원하게 해결하고 컨트롤타워로써의 역할을 입증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은 대화 초반 ‘전쟁’ 발언까지 나오는 등 한때 험악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남북이 이번 사태를 평화적으로 풀어내야 한다는 양측의 강한 의지로 극적 합의가 가능했다.  한반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가운데 무박 4일간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무박 4일간 공방 
피말린 샅바싸움
 
한국 측 수석대표 김관진 청와대 안보실장과 북측 대표인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협상장에서 강대강으로 맞받아치며 ‘전쟁’ 경고 발언까지 나왔다. 지난달 22일 오후 6시 반 판문점 평화의 집. 김 실장이 ‘목함지뢰’ 도발을 언급하며 사과가 우선이라는 뜻을 전하자 황 국장은 “잘 모르는 일”이라며 일관했다. 이어 김 실장은 “불과 한 달 전에 일어난 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입니다. 젊은 사람의 일생이 걸린 문제이다”며 북측 사과를 촉구했다.
 
김 실장은 목함지뢰가 폭발한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물에 쓸려 온 게 아니다. 누군가 와서 묻은 것이다”라며 황 국장을 압박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만 이야기하자 김 실장은 “나는 전군을 지휘했던 사람”이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또다시 도발한다면 ‘강력한 응징을 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시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발언을 한 직후 순간 회담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김 실장의 강경한 입장에 북측은 “유감을 표명하면 어느 정도 해주면 되겠느냐”고 대화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 실장의 뚝심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남북간 일촉즉발 위기속 극적타협 도출
현 정부 뚝심의 안보좌장…존재감 ‘쾅’
 
이 와중에도 북한에서는 잠수함 전력의 70% 규모에 달하는 50여척이 기지를 이탈해 수중으로 전개됐고,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기지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한미연합군은 이에 맞서 B-52 전략폭격기와 핵잠수함 등 전략자산 전개 시점을 협의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긴장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김 실장의 강경한 입장으로 북측과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하지만 재발방지책을 놓고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의 지뢰도발 사과·재발방지책 마련 등 핵심 쟁점을 놓고 대치하던 양측은 지난 24일 낮 한때 타결 직전까지 갔지만, 북측이 돌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면서 최종 합의에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같은 날 오전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북한의) 확실한 사과와 재발방지가 필요하다”며 사실상 협상의 마지노선을 제시한 것도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때문에 자칫 막판에 협상이 뒤집힐 위기에도 놓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실장은 끝내 합의점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김 실장은 지난 25일 새벽 2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접촉결과를 브리핑하며 남북 공동 합의문을 발표했다. 
 
“나는 장군이었다”

회담 분위기 압도
 
이번 협상에 대해 여론은 김 실장이 북측으로부터 지뢰 폭발과 관련해 ‘사과’를 받아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있다. 하지만 남북이 동시 발표한 고위급 접촉 남북 공동보도문을 보면 “북쪽은 남쪽 지역에서 발생한 지뢰폭발로 남쪽 군인들이 부상당한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하였다”고 밝혔다. 정부에선 이를 사과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북쪽의 황 국장은 돌아가 남측이 발표한 공동보도문과는 달리 ‘지뢰 폭발이 남쪽의 조작’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황 국장은 이날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직접 출연해 “이번 긴급 접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가지고 상대 쪽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는 경우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 보수층에선 유감을 사과로 받아들여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것은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유민주연구원은 이날 “공동보도문 어디에도 사과는 없다. 이를 아전인수 격으로 사과라고 해석한 김관진 실장과 홍용표 장관을 당장 해임시키고 공동보도문을 파기해야 한다”는 논평을 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상대방이 있는 관계에서 ‘사과’를 명시하기보다는 ‘유감’이라는 절충형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김 실장이 어느 정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사실상 김 실장은 이번 마라톤협상에서 보인 강경적인 태도와 말 한마디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이번 협상을 이끌어낸 덕에 일각에서는 남북 대화의 물꼬는 앞으로 ‘김관진-황병서 라인’으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김 실장은 이명박정부 시절엔 국방부장관을 지내고, 박근혜정부에 들어서까지 안보실장으로 지내고 있을 만큼 신뢰받고 있다. 국민적 호응이 그만큼 좋았던 인물이라는 의미다. 국방장관 시절의 그는 북한의 각종 도발상황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레이저 김’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레이저 김’
대통령 신임
 
김 실장은 1949년 8월27일 생으로 전북 출신이다. 1972년 육군사관학교 28기로 임관했다. 김 실장은 당시 수재로 통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학업 성적이 우수해 육사 기수 중 1명만 선발하는 서독 유학 시험에 합격했다. 한국에서 1학년을 마친 후 독일 육사에 유학을 가서 졸업까지 했다. 
 
1972년 육군 소위로 임관해 32사단 수색중대 소대장으로 시작해 주요 보직을 거쳤다. 제15보병사단 독수리연대에서 대대장을 보냈으며, 이후 수도기계화보병사단에서 여단장으로 복무했다. 이후 김 실장은 탄탄대로를 달렸다. 1999년 육군본부 전략기획참모부 처장에서 제36향토보병사단 사단장(소장)으로 진급했다. 2002년 육군 기획관리참모부장에서 제2군단 군단장(중장)으로 진급. 2003년 10월1일 열린 국군의 날 대통령으로부터 보국 훈장을 받았다. 
 
2004년 5월, 이라크 파병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에 임명됐다. 상당히 중요한 보직이라 이때부터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꽤 높아졌다. 2004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김선일씨 사건 당시 이라크 파병과 부대 경계 회의 등에 참여했다. 반면 이라크에 주둔중인 자이툰 부대 근처에서 폭발물이 터지는 사고가 발생했지만, 일체의 브리핑을 하지 않아 논란도 있었다. 
 
뼛속까지 군인 ‘대북 강경파’

‘MB→GH’ 국방장관 최초로 유임
 
2005년 제3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됐다. 이후 강원도 명예 도민으로 선정했다. 한편 2005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방문을 다룬 ‘대통령님, 한번 안아보고 싶습니다’에 저자로 참여했는데, 기밀 유출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또한 530GP 사건(연천 군부대 총기 사건) 이후 희생자 장례식에 참여했는데, 희생자의 모친이 “내 아들 살려내!”라고 하자 3분도 안 되어 자리를 떠나 논란이 일었다. 2006년 김 실장은 군 최고 서열인 합참의장에 내정됐다.
 
김 실장은 2010년 12월4일 제43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2013년 3월22일 대한민국 헌정상 전 정부의 국방부 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유임된 진기록을 남겼다. 이후 2014년 6월1일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의 후임으로 박근혜정부 제2대 국가안보실장으로 지명됐다.   
 
 
하지만 김 실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있는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이 터지면서 논란도 많았다. 2011년 6월초에는 군 비리, 횡령을 고발한 영관급 장교를 오히려 징계하려는 행동으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이 뿐만 아니라 2011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 북한군 노크귀순 사건, 대한민국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논란, 북한 무인기 추락사건, 제22보병사단 총기난사 사건 등이 일어났지만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아 공분을 샀다. 
 
굵직굵직한 사건
논란도 많았다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자 병영문화 개선 등을 약속했으나 군 밖에서 느껴질만 한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2005년에 일어난 530GP 사건으로 당시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사건 발생 3일 만에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비록 후속조치를 위해 대통령이 유임시켰기 때문에 실제로 사임하진 않았지만,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국군 통수권의 2인자이자 국방부의 수장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주었던 전례와는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길 실장은 이런 사건으로 헌정 사상 유일하게 재임기간 중 총기난사 사건이 두 번 일어난 국방부 장관이라는 오명을 안기도 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관진과 호흡’ 홍용표 누구?
 
이번 타협에 홍용표 통일부 장관을 빼놓으면 섭하다. 외교·통일 전문가인 홍 장관의 브레인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의 뚝심이 콤비를 이뤄 빛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당초 홍 장관은 남북 대화 경험이 없고, 비교적 온화해 카운터 파트인 노회한 김양건 노동당 중앙위 비서를 상대할 수 있을지 우려가 있었다. 정부 소식통은 “달변인 홍 장관이 논리적으로 북측의 부당함을 추궁하자 북측 대표단이 당혹스러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1964년 4월15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1989년 석사장교로 입대해 1990년 6개월 복무 뒤 소위로 제대했다. 그후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오리건대 교환교수, 한양대 정치외교학전공 교수를 지냈다.

2012년 새누리당 대선캠프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외교통일추진단 위원으로 참여하며 정치와 연을 맺었다. 2013년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하고 박근혜정부 출범 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통일비서관으로 발탁됐다. 2015년 3월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2013년 박근혜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활동한 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 통일비서관에 임명됐다. 현직 청와대비서관(1급)에서 차관급을 거치지 않고 바로 장관으로 지명돼 파격인사라는 말을 들었다.
 
개각 발표 당일 아침까지 통일부 장관에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청와대는 홍용표를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 발표해 혼선을 빚는 일이 있었다.
 
홍 장관 부친은 한국일보 이사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을 지낸 홍순일씨다. 부친은 한국일보 특파원으로 1974년 응우옌반티에우 베트남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장기집권하는 베트남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써 박정희 유신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이 사건은 10·24 자유언론 실천운동을 촉발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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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