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주년 특집> ‘뿌리박힌’ 일제 잔재들 ② ‘일본보다 더한’ 한국의 일본문화

청산 못한 암흑의 역사서 ‘허우적’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1995년 8월15일, 광복 50주년이던 이날에는 과거 ‘중앙청’으로 불리던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가 이루어졌다. 매우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광복 70주년을 맞은 이 시점, 과연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까. 우리 사회 곳곳에 일제 잔재가 녹아 있고 친일 청산 작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말을 되새겨야 할 때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순국한 호국 영령들이 안장돼 있는 국립현충원에는 친일 혐의자 80여명이 안정돼 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현실이다. 부끄러운 친일의 잔재는 땅 속에만 묻혀 있지 않고 수십년간 우리 생활 곳곳에 뿌리박혀 일제 잔재라고 인식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제강점기는 외상과 함께 깊은 내상을 남겼다.

씻기지 않는 상처
무감각해진 정서
 
언어는 문화의 특성을 반영한 상징체계다. 일제가 심어놓은 잔재 중 언어를 논하지 않고서는 문화를 논할 수 없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국민’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국민이라는 말은 일제강점기에 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신하 된 백성이라는 의미를 지닌 ‘황국신민’의 준말이다. 1996년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이라는 말은 여전히 우리의 입과 신문·방송을 통해 오르내리고 있다.
 
지명과 행정용어도 마찬가지다. 종묘와 창경궁이 맞닿아 있는 서울 종로구 원남동은 1911년 일본이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격하하고 창경원으로 바꿔버리면서 ‘창경원의 남쪽’이라는 뜻에서 ‘원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남동의 원래 명칭은 순라동이다. 2003년 서울시를 중심으로 순라동이라는 원래 지명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익숙한 지명을 유지하려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컸다. 이외에도 종로 일대에는 인사동, 옥인동, 관수동 등 일제가 ‘창지개명’했던 지명이 상당수 남아 있다. 또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은 모래밭을 뜻하던 ‘사평리’였지만 1914년 ‘새로운 모래’ 신사라는 뜻의 신사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식민통치로 새 시대가 열렸다’는 뜻을 담았다는 말도 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서울시 지명의 3분의1, 서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종로구의 경우 3분의2가 일본식 지명이라고 추산한다. 최근 뜨고 있는 인천 송도도 일제의 잔재다. 광복 이후 송도정을 인천시지명위원회가 옥련동으로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송도국제도시의 행정동은 여전히 ‘송도동’으로 불리고 있다. 송도는 일본 내 수많은 섬의 흔한 이름이자 일본의 3대 명승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송도는 마쓰시마라는 일본식 한자표기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생활 깊숙이 파고든 습관…알고보니 일제 것
학교·군대·직장 등 전반에 깃든 일본정신
 
일본식 표현은 학제와 행정용어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유치원은 독일어 ‘킨더가르텐’을 일본학자가 번역한 말로 일제강점기에 유입된 용어다. 유치라는 단어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의미와 함께 ‘수준이 낮거나 미숙하다’는 뜻도 담겨있다.
 
지난 수년 간 유아교육계와 당국은 유치원을 유아학교로 변경하는 안을 꾸준히 내놓았다. 국회에 관련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상태다. 수학여행도 일제의 잔재다. 일본은 1910년부터 조선과 만주를 오가는 13박14일의 수학여행을 만들었다.
 
전문용어에서도 이런 경향이 드러난다.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제도와 학문 등이 많아서다. 수소, 탄소, 질소 같은 원소명이나 회장, 사장, 과장, 계장 같은 직제 용어와 공소, 항소, 형사 등 법률용어, 대외적으로는 주무관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7·8급 공무원의 명칭은 일본식 계급 명칭인 ‘주사보’ ‘서기’이다. 일제 잔재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군대에서 쓰이는 용어 대부분은 일본식 한자나 일본말이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말 대신 ‘작일, 금일, 명일’이라는 표현을 쓴다거나 ‘총기수입’ ‘시건장치’ 등을 마치 우리말인 듯 사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아쎄이(신병)’ ‘나라시(땅 평탄화 작업)’ ‘시마이(마무리)’ ‘단도리(일을 해 나가는 순서나 절차)’ ‘주계병(취사병)’ ‘말갈이(진급 전 미리 상위계급장을 다는 것)’ ‘오함마(큰망치)’ ‘엑스반도(액스밴드)’ ‘모도시(핸들 제자리)’ ‘호루(차 덮개)’ ‘단까(들것)’ ‘빠루(쇠막대기)’ ‘반합(도시락)’ ‘요대(허리띠)’ ‘모포(담요)’ ‘도수체조(맨손체조)’ ‘고참(선임병)’ ‘관물대(개인물품대)’ ‘불침번(잠을 자지 않고 병력 점검)’ ‘기리까시(사병에서 부사관으로 신분 변환)’ ‘오장(군기 담당)’ 등이 있다. 이런 단어들은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은 말이지만 군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언어부터 문화까지
지워지지 않은 흔적
 
우리 생활 전반에는 일본말로 가득 차 있다. 당구용어 중에서 일본말이 아닌 것은 ‘맛세이(불어)’ ‘쿠션(영어)’뿐일 정도다. 당구는 일본 고유의 스포츠는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이유로 온통 일본말로 덮혀있다. ‘다이(탁자)’ ‘다마(공)’ ‘오시(밀기)·싯기(당기기)’ ‘시네루(비틀다)’ ‘힛가끼(걸치기)’ ‘가라(빈)’ ‘오마우시(크게 돌리기)’ ‘우라마우시(안으로 돌리기)’ ‘하꼬마우시(구속 돌리기)’ ‘겐세이(견제)’ 등이 있다. 이 중 일부 용어는 당구장 외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기술을 수반한 전문직종도 예외는 아니다. 토목, 수공업 등에서도 대부분 일본말을 쓴다. ‘시다(아래)’ ‘고데(인두)’ ‘노가다(막벌이)’ ‘와꾸(틀)’ ‘소데(소매)’ ‘도깡(토관)’ 등이다. 이들 용어는 당구용어와 마찬가지로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한자어로 탈바꿈한 일본말도 적지 않다. 본디 일본말인데 빌린 말은 이렇다. ‘건물(다떼모노)’ ‘견습(미나라이)’ ‘대매출(오오우리다시)’ ‘대합실(마찌아이시쯔)’ ‘매상(우리아게)’ ‘민초(다미구사)’ ‘선불(사끼바라이)’ ‘수당(데아떼)’ ‘수하물(데니모쯔)’ ‘엽서(하가끼)’ ‘입장(다찌바)’ ‘조합(구미아이)’ ‘추월(오이꼬시)’ ‘취급(도리아쯔까이)’ ‘할인(와리비끼)’ ‘합승(아이노리)’ ‘견적(미쯔모리)’ ‘각서(오보에가끼)’ ‘대절(가시끼리)’ ‘매립(우메따떼)’ ‘매점(가이시메)’ ‘상회(하다)(우와마와루)’ ‘하회(하다)(시따마와루)’ ‘선착장(후나쯔끼바)’ ‘수속(데쯔즈끼)’ ‘시합(시아이)’ ‘인상(히끼아게)’ ‘조립(구미따떼)’ ‘주식(가부시끼)’ ‘충치(무시바)’ ‘할증(와리마시)’ ‘후불(아또바라이)’ 등이다.
 
일본식 발음 그대로 우리말로 들어온 서양 외래어들도 많다. ‘밧데리(밧떼리이)’ ‘타이루(타이루)’ ‘샤쓰(샤쯔)’ ‘도란스(도란스)’ ‘카텐(카아텐)’ ‘바께쓰(바께쯔)’ ‘세타(세에타아)’ 등이다. 일본식 준말이 그대로 들어온 것도 있다. ‘에어콘’ ‘데모’ ‘인플레’ ‘레지’ 등이다. 이외에도 ‘뎃기리(꼭)·앗사리(담백하게)’ ‘다대기(다따기)’ ‘소보루(소보로)’ ‘잉꼬(오시도리)’ 등의 일본식 표현이 흔히 쓰인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말들 중 상당수가 일본말인 셈이다.
 
보통쓰는 일상어 죄다 일어
지명도 일본식 발음서 유래
 
지난 5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이 20대 대학생 700명을 대상으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20대가 자주 쓰는 일본말로 ‘기스(흠)’ ‘간지(멋)’ ‘닭도리탕(닭볶음탕)’ ‘다데기(다진 양념)’ ‘뽀록(들통)’ ‘분빠이(분배)’ 등이 꼽혔다. 응답자의 66.7%는 일본어 잔재에 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접하는 매체로 인터넷을 꼽았다. 무분별한 일본말 사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같은 용어의 쓰임은 알게 모르게 우리 문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문화는 대중의 감수성이나 취향, 행동양식에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부분인데 일제 잔재가 이를 장악하고 있어 기가 찰 노릇이다.
 

기업 조직문화에도 일제 잔재가 스며들어 있다. 한 시중은행은 공채 신입사원 워크숍에서 군대식 고문인 ‘얼차려’ ‘기마자세’ 등을 3시간씩 시킨다고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모 건설회사는 신입사원 교육 시 목에 호루라기를 맨 선배가 교관으로 나서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게 하면서 앉았다 일어났다, 헤쳐모여 등을 시켜 지탄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신입사원이라는 약자에 대한 전근대적 폭력성은 군대문화에 기인한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패션도 논란거리다. 연예인 혹은 디자이너들이 간혹 ‘욱일승천기’ 무늬의 옷을 입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모르고 입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이유는 욱일승천기는 메이지유신 이후 구 일본군의 군기로 사용돼 오다가 현재는 일본 자위대를 상징하는 깃발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확한 표현은 ‘전범기’가 맞다. 일본군은 태평양전쟁 당시 이 깃발을 사용했다. 최근에는 일본 우익단체들이 각종 집회 때마다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를 경험한 한국인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깃발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내에서 이 깃발이 방송 무대장치나 의복 디자인으로 더러 사용되고 있다. 의도성이 있다기보다는 디자인 측면에서 활용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 형태의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식민사관 논쟁 
언제쯤 종지부
 

식민사관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이 근대사회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정체돼 있었고 조선 조정이 치열한 당파 싸움에 빠져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이 식민사관의 골자다. 전문가들은 광복 이후 식민사관이 상당 부분 극복됐다고 입을 모으지만 일부에서는 아직도 식민사관에 대한 공방이 지속되고 있다.
 
진보, 보수와 맥이 닿아 있는 ‘내재적 발전론(일제의 식민지로 병탄되기 전에 이미 자주적 근대화가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는 주장)’과 ‘식민지 근대화론(일본의 식민 지배가 결과적으로 한국의 산업화와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학계와 교육계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명확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한 상태다.
 
이러한 와중에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일제 잔채 청산 작업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경북에서는 생활 속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해 현충시설·관공서·학교·공공장소의 일본향나무(가이즈카)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12월 ‘현충시설 등 일본향나무 교체에 관한 청원’이 경북도의회에서 가결됐다. 이어 지난 5월 6000만원을 추경예산에 반영한 뒤 지난 6월부터 일본향나무 교체 사업을 시작했다.
경남 밀양의 ‘천왕산’은 원래 명칭인 ‘재악산’으로 불릴 것으로 보인다. 재악산은 500년 이상 사용하다 일제강점기 민족문화정책에 따라 묻혀버렸다. 밀양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를 바로잡고자 지명복원을 위한 계획을 수립해 국토교통부 국가 지명위원회 최종 결정만 남겨두고 있다.
 
대구시교육청도 일본향나무 없애기에 동참했다. 대구 지역 초·중·고교 50여곳에 1000여그루, 경북지역 10여개 시·군 400여곳에 1만여그루의 일본향나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교육청은 전체 초·중·고·특수학교(441곳)에 일본향나무가 교목일 경우 이를 교체하라는 요청 공문을 보냈다. 또 학교 상징물이나 국기게양대 주변의 일본향나무를 우선 제거하고 무궁화를 심도록 했다.
 
대전시는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지적·임야도의 등록 원점 체계인 ‘동경측지계’를 2020년까지 전 세계가 표준으로 사용하는 ‘세계측지계’로 변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일본의 동경 원점 기준인 동경측지계를 사용하고 있다. 동경측지계는 세계측지계보다 약 365m 북서쪽으로 편차가 발생한다. 
 
충북 청주향교에는 일제강점기 충북지사와 청주군수를 각각 지낸 친일파 김동훈과 이해용을 찬양하는 내용의 존성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다. 김동훈은 일제의 관립 일어학교를 나와 충북도지사, 조선총독부 학무국장까지 지낸 친일 관료다. 진천·음성 등의 군수를 역임한 이해용은 1919년 4월부터 5월까지 경기도 강화지역에서 발생한 3·1운동 관련자들을 심문하고 1940년 4월 중일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청주향교 측은 조만간 이들의 존성비를 철거할 예정이다.
 
청주 국유지에 있던 친일파 민영휘 증손자의 묘지는 다른 곳으로 옮겨지게 됐다. 청주시는 산성동 야산에 조성된 친일파 민영휘의 증손자 묘지와 가묘 4기를 오는 11월31일까지 이장하라는 복구 명령을 내렸다. 최근 경기도 군포시에선 친일 작가 이무영 지우기가 진행됐다. 친일 잔재가 철거된 곳은 군포시 산본2동 능안공원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2일 ‘군포장 깍두기’ 등의 작품을 발표한 농민문학가 이무영의 작품비가 친일 작가라는 이유로 철거됐다.
 
울산시는 일제 잔재 청산 차원에서 1906년 해안을 밝히며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던 울기를 울기등대로 바꿨다. 예전에 사용한 울기는 1906년 일본이 명칭을 붙인 것이다. 동해 쪽으로 뾰족하게 나온 부분을 ‘울산의 끝’으로 명명한 데서 비롯됐다.
 
강원도에서는 친일파인 이범익 전 강원도지사의 행적을 알리는 단죄문 설치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2013년 8월15일 춘천시 소양로 비석군에 이범익 단죄문이 설치됐다. 1929∼35년 강원도지사를 지낸 이범익은 조선총독부 정책을 앞장서서 옹호해 훈장과 포상을 받았다. 특히 1938년 9월에는 항일 무장세력과 민간인 172명을 무참히 살해하고 수많은 사람을 체포·고문한 부대인 간도특설대 창설을 제안하는 등 악명을 떨쳤다. 

민족사 세우기
청산작업 시급
 
전북 전주시는 덕진공원 일대의 일제강점기 잔재를 전면 조사하고 있다. 덕진공원 안에는 1917년 친일파 박기순이 자신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덕진연못 주변에 건립한 취향정과 1934년 일본인 전주읍장(후지타니 사쿠지로)이 전북대 학생회관 옆에 세운 덕진공원지비 등이 있다. 전주시는 이 정자와 비석 존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서울시 국세청 남대문별관 철거도 같은 맥락이다. 국세청 남대문별관은 덕수궁 기운을 해치기 위해 일제가 1937년 지은 건물이었다. 서울시는 이 자리에서 다음 달 17일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조성한 시민광장 개장식을 갖는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황당한 ‘일본 찬양’ 실태
태극기 태우고 “천황폐하 만세”
 
역사의식이 결여된 일부 젊은이들이 친일을 넘어 일본을 찬양하는 일이 공개돼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지난 2012년 한 중학생은 개천절날 태극기를 찢고 불태웠다. 친일 성향이 강한 포털 카페의 영향이었다. 심지어 애국가를 개사하기도 했다. ‘일본해와 장백산이 마르고 닳도록, 천황께서 보우하사 대동아국 만세. 사쿠라 삼만리, 다∼케시마, 은혜 입은 이등신민 깊이 충성하세.’ 장난이라기에는 도가 지나쳤다.
 
해당 카페에는 전범기가 가득했고 광복절은 대일본제국의 패전이나 다름없어 태극기를 게양해야할지 욱일승천기를 게양해야할지 고민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불편한 현실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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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