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신동빈 시대’ 막전막후

장자승계 없다…형님 제치고 아우가 대권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한·일 롯데 원톱으로 우뚝 올라섰다.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가 확정된 분위기다. 공식적인 후계자로 낙점된 건 사실이지만 아직 풀어야할 과제가 잔존한다. ‘신동빈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됐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다. 신 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 오른 것은 사실상 롯데그룹의 회장직이나 다름없다. 그룹 후계자로 자리를 굳힌 셈이다.

신동주·신영자
가만히 있을까?
 
이번 대표 선임으로 신 회장은 한국 롯데뿐 아니라 일본 롯데도 함께 경영하게 됐다. 신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현장 중심 경영 지침에 따라 일본 현장경영도 맡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회장은 지난 15일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이사회에서 참석 이사 전원 찬성으로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신 회장은 이날 오후 주요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이번 이사회 결정을 겸허하고 엄숙하게 받아들인다”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신 총괄회장의 뜻을 받들어 한국과 일본의 롯데사업을 모두 책임지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한편, 리더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17일 롯데케미칼 본사를 찾아 업무 보고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일선 현장을 방문하는 등 바쁜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8월 초에는 일본 롯데홀딩스를 방문해 일본 롯데 대표로서도 행보를 이어 나갈 계획이다. 롯데는 신 회장의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 선임으로 한·일 롯데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가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에게 그룹의 열쇠를 맡긴 것은 그간 신 회장이 보여준 공격적인 경영 드라이브가 주효했다는 평가다. 2013년 기준 한국롯데는 74개 계열사에 매출 83조원을 기록했다. 반면 일본롯데는 37개 계열사에 매출 5조7000억원가량에 머물렀다. 이 같은 경영실적의 차이가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을 낙점했다는 것이다.
 
일본롯데 지주회사 홀딩스 대표이사
한-일 양국 장악…경영권 승계 완료 
 
실적뿐만 아니라 사업적으로 공격적인 신 회장의 면모도 주효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실제로 신 회장은 2006년 롯데쇼핑의 상장을 성사시킨 것을 시작으로 2004년 이후 9조원에 달아는 기업을 인수했다. 올해에는 국내 렌터카시장 1위인 KT렌탈을 인수했고, 미국에서는 130여년의 역사를 가진 더 뉴욕 팰리스 호텔을 사들였다. 올해 투자하겠다고 밝힌 금액은 사상 최고인 7조5000억원에 이른다. 그의 행보에 업계의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그룹 부회장이 해임되기 전까지는 일본롯데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롯데는 신 회장이 맡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었다. 신 회장은 2010년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롯데는 형님(신 전 부회장), 한국롯데는 저로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며 후계 구도가 정리됐다는 식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장남과 차남의 관계는 그리 평화롭지 않았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은 지난 2013년부터 경영권 승계 문제로 부딪혔다. 신 전 부회장은 2013년 8월부터 롯데제과 주식을 매달 사들여 지난해 2월 기준으로 신 회장이 가진 주식과 자신이 가진 한국 롯데 계열사 지분을 10억여원 차이로 좁혔다. 한국 내 롯데 계열사 지분 매입은 후계구도를 깨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됐다.


형 누른 아우
광폭행보 나서
 
이후 지난해 12월26일 신 전 부회장이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일괄 해임된 데 이어 지난 1월9일 지주사인 롯데홀딩스 부회장직까지 잃으면서 후계구도의 윤곽이 드러났다. 신 총괄회장이 신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실적에 민감한 신 총괄회장의 마음을 신 회장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신 회장이 진정한 후계자로 올라서려면 부친의 숙원인 제2롯데월드 사업과 부진에 빠진 일본롯데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 회장이 대표이사로 선임된 롯데홀딩스는 일본 롯데그룹 지주회사로 지배구조의 중심에 있다. 롯데그룹의 지배구조는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광윤사-롯데홀딩스-호텔롯데-국내 계열사’로 요약된다. 신 회장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일본롯데의 경영권 획득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 롯데그룹의 정점에 있는 일본법인 광윤사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한다. 포장재를 만드는 광윤사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 27.65%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일본롯데 핵심 기업으로 꼽힌다. 광윤사의 대표이사 신 총괄회장은 지분 절반을 보유한 최대주주다. 장남 신 전 부회장과 차남 신 회장도 각각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비상장사의 주주를 공개할 의무가 없어 구체적인 지분구조는 알 수 없지만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의 지분 차가 거의 없다고 알려져 있다.
 
대세 기울었지만…안심하긴 일러
형제 반발 등 아직 풀 숙제 남아 
 
광윤사는 한국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지분도 5.45%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신 총괄회장이 대부분 대표를 맡고 있는 L투자회사들은 호텔롯데의 지분 72.65%를 11개로 나눠 갖고 있다. 일본 L투자회사는 롯데알미늄과 롯데리아, 롯데푸드 등 기타 계열사의 주주명단에 올라와 있다.
 
결국 신 회장이 광윤사와 L투자회사의 지분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한·일 롯데의 진정한 수장으로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복누나인 큰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장남과 차남 중 누구와 손을 잡느냐에 따라 균형이 깨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상황이 신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건 맞지만 그룹 전체의 지분 구조를 볼 때 후계구도를 100%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신 전 부회장과 이복누나인 신 이사장이 갖고 있는 롯데 계열사 지분을 합칠 경우 신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쥔 셈이다. 다만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 등의 그룹사에서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제과의 경우 신 이사장은 3만5873주를 보유해 지분율이 2.52%다. 6.83%를 보유하고 있는 신 총괄 회장이나 5.34%를 보유하고 있는 신 회장에는 못 미치지만, 3.95%를 보유하고 있는 신 전 부회장과 합치면 적지 않은 규모다.

경영수완 발휘

꾸준히 인정받아
 
롯데쇼핑, 롯데닷컴, 롯데칠성음료, 롯데정보통신에서 신 이사장의 지분율은 각각 0.47%, 2.66%, 1.3%, 3.51%다. 롯데쇼핑 지분율은 신 회장(13.46), 신 전 부회장(13.45%)과 격차가 크지만 신 회장이 각각 5.71%, 2.3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롯데칠성음료, 롯데닷컴에서는 격차가 좁아진다.
 
이밖에도 신 이사장은 롯데 오너 일가로서는 유일하게 대홍기획의 지분 6.24%를 갖고 있다. 신영자 이사장이 이끄는 롯데복지장학재단도 롯데제과(8.69%), 롯데칠성음료(6.28%), 롯데푸드(4.1%) 등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경영에 전면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예측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신 이사장은 롯데백화점이나 호텔롯데에서 사장직을 맡으며 경영에 직업 관여했지만 롯데복지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은 뒤로는 롯데복지장학재단의 봉사활동에만 참여하며 롯데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신 이사장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하지 말란 법은 없다.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간 경영권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재계에서는 신 이사장이 부친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이 첫 번째 부인인 고 노순화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신 이사장을 지극히 아꼈고, 현재 신 이사장의 딸인 장선윤씨가 지난 4월 호텔롯데 해외사업 개발담당 상무로 발령 받으면서 경력을 쌓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신 회장이 이끌 롯데를 바라보는 재계의 관심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1955년 2월14일 신 총괄회장과 일본인인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사이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아오야마가쿠인 유치원, 초·중·고등부를 거쳐 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 경제학부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81년 일본 노무자증권에 입사해 런덤 지점에서 근무하면서 수년간 금융 실무와 글로벌 감각을 익히고 88년 4월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이후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취임하면서 한국롯데에 발을 들여놓았다.
 
91년에는 침체하는 롯데 오리온즈의 지원조치로서 구단 사장 대행으로 취임하고 팀의 홈구장을 가와사키 구장에서 지바 마린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구단 이름도 롯데 오리온즈에서 지바 롯데 마린스로 고쳤다. 그해 11월에는 구단주 대행으로 취임했고 95년에는 구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바비 발렌타인 감독을 불러들여 팀을 인기 구단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95년에는 롯데그룹 기획조정실 부사장을 거쳐 97년 롯데그룹 그룹기획조정실 부회장에 올랐다. 2004년부터는 그룹 정책과 전략을 총괄하는 정책본부 본부장을 지냈다. 이후 입사 20년 만인 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 자리에 앉게 됐다.
 
신 회장은 그룹에서 요직을 맡으며 신격호 회장의 후계자로 일찌감치 점쳐졌으나 언론 앞에 나서지 않고 공식 석상에서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 과묵한 성격으로 ‘은둔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엘리베이터를 혼자 잡아타는 일이 없고 해외출장에도 여행가방을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챙기는 등 겸손한 회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신 회장은 부친의 현장경영 정신을 물려받아 시간이 날 때면 근처 백화점이나 마트, 편의점 매장을 수시로 돌아보며 현장을 챙긴다고 알려져 있다. 또 신 회장은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추진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신 회장이 정책본부 본부장으로 재직할 당시 주력사업인 힉품과 유통뿐 아니라 석유화학, 금융으로 그룹을 확장했고 굵직굵직한 기업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끝날 때까지
끝난게 아니다
 
미도파백화점, 현대석유화학, 우리홈쇼핑, 두산주류BG, AK면세점, 바이더웨이, GS리테일 백화점·마트부문 등 인수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각 계열사들의 외형을 키웠다. M&A는 국내에 머물지 않고 아시아로 뻗어나갔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대형마트 마크로,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 말레이시아 석유화학 기업 타이탄 등을 인수했으며 현지 법인과 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신 회장은 정책본부장 당시 ‘2018 아시아 톱 10 글로벌 그룹’ 비전 달성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과 롯데그룹은 나날이 덩치를 키우면서 매출을 올려 매출 기준으로 삼성-현대기아차-SK-LG에 이어 국내 재계 5위 그룹의 자리를 확고히 굳혔다. 현재 신 회장은 그 여느 때보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재계 지배구조 개편작업 '관전포인트'
일단 경영승계…그리고 안정적 지배
 
삼성그룹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 개편작업에 정점을 찍은 가운데 삼성 외에도 재벌그룹들의 구조개편에도 관심이 쏠린다. 경영권 승계나 지배력 강화가 목적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재벌그룹들의 가장 큰 화두는 지배구조 개편이다.
 
삼성 필두로 SK·LG 움직임
부진한 실적 개선에도 효과
 
우선 삼성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성사시켰다. 삼성의 합병에 눈길이 쏠린 사이 롯데는 조용하게 후계구도 개편을 마무리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일 현대제철과 현대하이스코 합병을 끝내며 자산규모 31조원의 거대 철강회사를 탄생시켰다. SK는 지난달 그룹 지주회사SK와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옥상옥 회사 SK C&C를 합병해 총자산 13조 규모의 통합 지주회사를 만들었다.
 
LG 역시 상반기 구본무 회장 장남 구광모 상무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1%포인트 이상 늘렸다. 최대 재벌그룹들의 이같은 움직임은 경영권 승계 내지 총수 일가의 안정적 지배력 확보가 주목적이다. 어려운 대내외 경영환경 속에서 단행된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이 부진한 실적의 개선에도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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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