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 재점화 ‘제왕적 대통령제’ 명과 암

87년 이후 개헌 전무…협치 기반으로 한 분권 필요성 사회 각계서 요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탈리아의 정치이론가 니콜로 마키아밸리는 자신의 저서 <군주론>을 통해 이상적인 통치자의 상을 제시했다. ‘마키아밸리즘’으로 불리는 이것은 이후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이론적 바탕이 된다. 약 500여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군주론>을 관통하는 핵심 정의다. 저자 마키아밸리는 여러 인간 군상을 통해 이상적인 통치자란 어떤 사람인지 제시했다. 향후 전제 정치의 이론적 바탕이 된 이것은 대한민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회가 혼란스럽던 1960~1970년대,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절대 권력이라는 목적을 정당화했다. 그 과정에서 사사오입·유신헌법 등 자의적으로 헌법을 뜯어고치는 짓도 서슴지 않고 일어났다.

사사오입·유신헌법
제왕적 대통령제

시간이 흘러 1987년, 국민들의 노력으로 ‘직선제 개헌’이라 불리는 9차 개헌에 성공했다. 변화의 주요 골자는 대통령 직선제 및 5년 단임제 도입, 그리고 국민의 기본권 확대였다. 그러나 9차 개헌 이후 지금까지 28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더 이상의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회 곳곳에서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014년 11월경 진행한 개헌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 결과 찬성이 63.0%로 나와 반대한다는 21.5%를 압도했다. 각론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개헌을 원하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국민의 과반수 이상이 개헌을 원하는 것일까. 정치권을 포함한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한 폐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멀게는 ‘세월호’ 참사부터 가깝게는 ‘메르스’ 사태까지, 최근 대한민국의 재난대응시스템은 이미 멈춘 지 오래다. 세월호 때는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이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으며, 메르스 때는 컨트롤타워의 부재에 국민들이 피해를 봤다.

일련의 모습을 종합해 봤을 때 제왕적 대통령제가 원인이라고 개헌론자들은 지적한다. 즉 사람이 바뀌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다.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태를 두고 정치권은 절대적인 대통령 권한이 불러온 폐단이라고 말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입법부 원내교섭단체의 대표가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어느 정도로 규정하고 있을까. 대통령이 가진 대표적인 권한을 나열해보면 ‘국군통수권’ ‘계엄선포권’ ‘인사권’ 등이 있다. 이 중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군통수권·계엄선포권은 국가지도자가 지녀야 할 고유권한이라 인정하는데 반해, 인사권의 경우에는 남용될 수 있는 소지가 많아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메르스
개헌 필요성 촉발

단적인 예로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을 들 수 있다. 이들에 대한 인사권을 대통령이 쥐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일찍이 ‘국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개헌론자들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는 견제를 전제로 한 삼권분립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 박 대통령과 각을 세웠던 정의화 국회의장은 제67주년 제헌절을 맞아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경축식에 참석한 정 의장은 이 자리에서 “개헌 논의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부권 정국’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나온 발언이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정치권의 생각은 어떨까. 대부분의 국회의원들은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5년을 맞이해 <머니투데이>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중 86%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반면 “필요없다”고 답한 의원은 12%에 그쳤다.

세월호·메르스,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
중앙권력형, 분산 필요성 대두, 언제?

‘개헌모임’만 봐도 정치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제19대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이 모임에는 총 155명이 소속되어 있다. 구성을 보면 새누리당 의원은 56명,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의원이 96명, 정의당 2명, 무소속 1명으로 돼 있다. 주요 인물로는 입법부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 개헌전도사라 불리는 새누리당의 이재오 의원, 야당의 대표적인 개헌론자인 새정치연합 우윤근 전 원내대표, 판사 출신의 정의당 서기호 의원 등 쟁쟁한 정치인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모임의 구성원 대부분은 ‘개헌특위’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안에 특위를 구성해야 된다며 마지노선을 9월로 잡고 있다. 새정치연합 우 전 원내대표는 “청와대를 설득해야 한다”며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장벽이 높다. 박 대통령이 일찍이 ‘개헌은 블랙홀’이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6일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개헌논의 등 다른 곳으로 국가역량을 분산시킬 경우 또 다른 경제의 블랙홀을 유발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개헌론자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재오 의원은 최근 ‘지방분권개헌 원탁토론회’에 참석해 “개헌이 블랙홀이 아니라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금은 국가경쟁력에 장애적요인 중 제일 큰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 우 전 원내대표는 “정치가 안정돼야지 경제가 살 수 있다”며 “개헌을 통해 국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박 대통령의 발언을 반박했다.

우윤근·이재오
9월 개헌특위


지금 당장 논의를 시작해야 된다는 주장이 한 목소리로 나오고 있지만 각론에서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 향후 어떤 식으로 의견이 수렴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각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기본권에 대한 개헌’, 두 번째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 세 번째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 그것이다.

첫 번째 기본권에 대한 개헌은 인간 존엄에 대한 가치를 높이자는 취지에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새정치연합 신기남 의원은 ‘기본권 개헌을 위한 방향과 과제’라는 정책보고서를 통해 제안했다. 보고서에서 신 의원은 ‘기본권 주체 확대’ ‘양성평등 추구’ ‘정보기본권 신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은 방법론에서 차이점이 많다. 나오고 있는 얘기를 종합해 보면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가 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국회의원들 사이에서 자주 거론되는 이론이다. 말 그대로 대통령의 임기를 4년으로 줄이는 대신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비전에 대한 연속성을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개헌을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없애고자 하는 개헌 취지에 맞지 않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 중 우 전 원내대표는 이 이론이 미국식이라는 점을 들어 “미국은 주 단위의 철저한 연방국가기 때문에 4년 중임제가 가능하다”며 “우리에게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28년 동안 개헌 전무, 새 옷 입을 때
지방분권 필요성 대두, 각계 목소리↑

의원내각제 또한 비슷한 의미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지금 대한민국 현실을 고려한다면 너무 급작스런 변화라는 것이다. 특히 내각이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는 제도적 불안정성은 향후 문제가 될 공산이 크다고 많은 정치이론가들이 지적하고 있다.


최근 대안으로서 가장 각광받는 것은 분권형 대통령제다. 권력을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양분하는 이 체제는 국가 원수의 위치는 대통령이 그대로 가져가는 대신 국회의원들이 뽑은 국무총리가 행정부의 수반이 되어 내치를 담당한다는 게 주요골자다.

즉 현재 대한민국 대통령제에서 국무총리의 권한을 의원내각제만큼 끌어올리는 형태로 볼 수 있다. 대통령제보단 사람에 대한 의존이 줄어드는 대신 의원내각제보단 현재 상황을 잘 반영한 절충안이라는 평가다.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에서 우 전 원내대표, 이 의원 등 대부분의 개헌론자들이 이 안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세 번째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이다. 앞서 정부형태에 대한 개헌을 정치권에서 주도하고 있다면 권력구조에 대한 개헌은 시민사회단체가 적극 주장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지방분권’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로 인해 지방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은 그동안 수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개헌을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중앙정부의 하급기관화 되어버린 지자체를 개탄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방분권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은 지난 22일 토론회를 갖고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왜 지방분권개헌인가?’라는 주제로 펼쳐진 이 자리에서 동의대·대전대 등 각 대학교수들과 정·관계 인사들은 자치권보장이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사를 기획한 이창용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실행위원장은 이번 토론회에 대해 “의원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 등 정치권에서 얘기하는 것은 개헌에 대한 방법론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핵심은 어떻게 중앙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냐는 것”이라고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지방분권
국민행동

여러 논의가 오가고 있는 가운데 정치전문가들은 개헌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지금 전문가들도 의견이 판이하게 엇갈린다”며 “정치권이 곧바로 개헌으로 가버리면 국론이 분열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 원장은 9월 개헌특위 구성에 대해선 박근혜정부가 정권 중반을 지나고 있다는 이유를 들며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개헌론, 지구촌은?

대한민국에서 개헌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콩고 등 다른 국가에서도 개헌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판이하게 달라 눈길이 간다.

일본 <교도통신>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약 60%는 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2일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전후 70주년을 맞아 국민 의식조사를 한 결과 헌법을 이대로 존속시켜야 한다는 응답이 60%로 나타나, 바꿔야 한다고 응답한 32%보다 약 두 배정도 더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콩고 “개헌 반대”


이 같은 결과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베정부가 개헌을 수반한 ‘집단자위권’ 법안 추진을 강력히 진행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AFP통신>이 지난 18일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콩고공화국에서는 현 대통령이 독재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자 야당과 국민이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드니 사수 응게소 콩고대통령은 대통령 중임을 제한하고 대선 후보자의 나이를 70세로 제한하는 현행 헌법에 대한 개정안을 여당과 함께 통과시켰다. 이로써 지난 30년간 군림한 응게소 대통령은 72세의 나이로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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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