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상인 등치는 '부동산 브로커' 고발

세입자 잡는 ‘가게 장사’ 주의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젊음의 거리 홍대는 청년상인들이 낭만적인 밥벌이를 꿈꾸고 모인 곳이다. 하지만 낭만은커녕 본전도 못 찾고 임대한 가게에서 쫓겨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는 게 현실이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물주 때문이다. 그 뒤에는 건물주를 앞세워 가게 장사를 하는 부동산 사장들이 있다. 홍대 일대 만연하는 부동산들의 가게 장사 실태를 공개한다.

 
“내가 건물주한테 줬던 권리금을 부동산 사장님이 가져갔더라” 상식적으로 권리금은 거래 당사자 사이 주고받은 것이다. 신가람(34)씨에게 일어난 황당한 일이었다. 지난 2012년 11월 신씨는 가게를 차리기 위해 홍대 서교동의 빈 반지하를 얻었다. 신씨는 이 반지하를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90만원, 권리금 1000만원으로 M부동산의 중개로 건물주와 계약했다. 
 
힘든 밥벌이
 
M부동산은 “일반 상가보다 월세가 저렴할 뿐만 아니라 2년 계약 이후에도 계속 재계약할 수 있어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다”며 “건물주에게 줬던 권리금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받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장사를 처음 시작한 신씨는 M부동산의 말을 믿었다.
 
신씨는 그해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개업 6개월만에 M부동산에게 “건물주가 바뀌었다”는 전화를 받게 된다. 처음 신씨는 건물주가 바뀐 게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M부동산은 “새 건물주가 ‘월세가 너무 싸다’며 150만원까지 조정될 것 같다. 그래도 180만원이었던 것을 깎아 준 거다”고 말했다. 또 건물주는 신씨가 외부에 설치한 구조물도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신씨는 계약과 다른 부당한 요구라며 모든 것을 거부했다. 새 건물주와 마찰이 시작됐다.
 
새 건물주가 온 이후 다른 임차인은 높은 월세를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신씨만 끝까지 버텼다. 결국 새 건물주는 2013년 9월 명도소송(건물주가 임차인에게 건물을 비워달라고 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2월 신씨는 1년6개월 공판 끝에 결국 승소했다. 그런데 소송 과정 중 이 모든 것이 M부동산의 계쇡이었다는 게 드러났다.
 

새 건물주는 이 건물을 사기 전 매매가와 임차인의 싼 월세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자 M부동산은 임차인들의 월세를 올려 맞춰주겠다며 새 건물주를 설득했다. 물론 당시 M부동산은 이런 사실에 대해 임차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새 건물주가 바뀐 것이다.
 
 
새 건물주가 바뀐 이후 마찰이 일어나자 신씨는 전 건물주에게 “권리금까지 줬는데, 이렇게 무책임하게 건물만 팔고 나갈 수 있느냐”며 항의했다. 하지만 건물주는 “권리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신씨는 M부동산을 찾아가 “권리금이 어디 있느냐”고 추궁했다.
 
그러자 M부동산 관계자는 “사장님이 권리금을 갖고 있다”고 시인했다. 신씨는 권리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아직도 M부동산은 돌려주지 않았다. M부동산 사장은 “전 건물주와 신씨가 합의점을 못 찾고 있어서 빚어지는 문제다. 둘이 해결이 안 되면 내가 책임지고 권리금을 다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신씨 사례는 홍대에서 만연하는 상가 장사의 대표적인 예다. 그 동안 이런 건물주의 부당행위는 '건물주의 탐욕'이라고 불렸지만, 이를 부추기는 것은 부동산 업자들이었다. 홍대 일대 부동산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J씨는 "부동산의 필연적인 생리 때문이다"고 말했다. 
 
‘부동산 통해 집 보러 갈 때는 건물주와 명함 주고받는 거 아니다.’ 부동산 업계에서 불문율처럼 여겨지는 상도덕이다. 부동산은 건물주와 예비 세입자가 친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개 수수료를 받는 부동산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친해졌다가 직거래를 해 수수료를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은 상가 장사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 상징적인 이유도 함축하고 있다. 
 
부동산은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세보다 월세를 많이 받아 주겠다. 우리 부동산이 건물을 독점으로 중개할 수 있게 해달라”는 식으로 건물주에게 접근한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다. 특히나 홍대처럼 상권이 좋은 곳에서는 더 많은 보증금과 월세를 받을 수 있다. 
 
부동산들은 임차인의 재계약도 좋아하지 않는다. 임차인이 자주 바뀌어야 수수료도 더 자주 받을 수 있어서다. 부동산은 임차인들의 계약 기간을 일일이 확인한다. J씨는 “부동산은 5개월 전부터 건물주에게 계약 만료 기간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들은 ‘재계약 거절하면 다음 임차인에게 더 많이 받아주겠다’며 건물주를 꼬드긴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은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입금가’라는 것을 받아 온 것으로 전해진다. 입금가 종류로는 권리금 입금가와 건물매매 입금가가 있다. 입금가를 설명하기 앞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건물주가 원하는 권리금이 3000만원이라면 부동산은 건물주에게 어떻게든 3000만원만 손에 쥐여주면 된다. 
 
건물주-중개업자 짬짜미…홍대 일대 만연
본전도 못찾고 쫓겨나거나 하루하루 버텨

새로운 임차인 입장에서는 건물주가 얼마를 받고 싶은지 알 턱이 없다. 부동산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부동산이 권리금을 얼마를 부풀려도 모른다. J씨는 “한국 특성상 부동산은 흥정할 수 있다. 권리금을 뻥튀기해 생색내며 깎아주면 된다”고 말했다. 
 
권리금을 부풀린 그 차액을 입금가라고 부른다. 입금가는 고스란히 부동산에게 돌아간다. 여기에는 수수료까지 포함돼 있다. 매매 입금가도 똑같은 원리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는 현행법상 0.9%(최대)를 넘을 수 없다. 
 
입금가는 말 그대로 공짜로 얻은 돈이다. 세금 신고뿐만 아니라 은행거래도 안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에서는 이 입금가로 벌어들이는 돈이 상당하다. 이런 생리로 임차인을 쫓아내기 위해 건물주의 소송비까지 부동산에서 지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 외에도 부동산별로 가지각색의 편법이 있다. K부동산 경우 ‘도장 값’ 장사를 한다.재계약 할 때마다 부동산이 건물주 대리인 자격으로 서는 대신 임대차인에게 도장값을 받는다. 도장값을 주지 않으면 재계약을 해주지 않는다.

관행 뭐길래…
 
피해를 보는 건 청년상인들이다. 특히 홍대에서 장사하는 이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중반이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초짜나 다름없다. 청년 상인은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고 나가야만 하는 줄 아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을 이용해 부동산업자는 쉽게 청년상인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반면 신씨가 명도소송까지 간 것은 청년상인들 사이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옷가게를 운영 중인 김새롬씨는 “그 동안 건물주와 부동산의 횡포를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신씨는 1인 시위까지 했다. 그걸 보면서 문제의식을 느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판치는 무자격 중개업자
 
홍대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중개업소 중 무자격업자들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또 사기죄로 전과 3범이 P부동산에서 중개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버젓이 부동산 간판을 걸고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알 수 없다. 마포구청 지적과 관계자는 “무자격 중개업자를 잡는 게 쉽지 않다”며 “파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단속이 오면 대부분 도망간다.”고 말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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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