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불복 ‘럭키박스’ 마케팅 명암

잔뜩 기대하고 뜯어보니…‘꽝’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많은 기업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럭키박스’ 마케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럭키박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고 있어 논란이다. 소비자들은 부푼 기대를 품고 럭키박스를 구입하지만 오히려 ‘당했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때문에 기업 이미지마저 실추되고 있다. 소수에게는 행운을 주지만 다수에게는 아쉬움을 남기는 사행성 마케팅 럭키박스의 실태를 알아본다.

 
럭키박스는 대개 똑같은 패키지에 여러 가지 제품을 무작위로 넣어 놓고 내용물을 비공개로 균일가에 선보이는 형태로 판매된다. 어떤 제품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로또 심리’를 자극해 인기를 끌고 있다. 대박을 바라는 소비자들의 복불복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소비자들이 럭키박스를 찾는 이유는 본전 이상의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운이 좋은 경우 실제 구매 가격 이상의 제품들을 받아 볼 수도 있다. 
 
‘당했다’ 느낌
 
그러나 럭키박스의 행운이 모두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다. 행운을 쥐는 건 일부 소비자의 이야기다. 럭키박스, 럭키백으로 불리는 마케팅에 걸려드는 대다수는 소수를 위한 들러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패션브랜드 스베누는 ‘언빌리버블S 럭키박스’ 이벤트를 진행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스베누는 지난달 19일부터 고객 감사 이벤트의 일환으로 공식 온라인몰과 온라인 멀티샵 신발팜에서 럭키박스 이벤트를 진행했다. 스베누는 “소비자의 사랑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이번 이벤트를 구성했다”며 “다른 럭키박스는 자사 제품으로만 채우는 경우가 많지만, 스베누는 평소 갖고 싶어도 가격이 부담스러워 구매가 어려웠던 카메라, 아이패드와 같은 경품부터 더운 여름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실속 아이템까지 꽝이 없는 특급 이벤트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럭키박스는 라이카D-LUX(1명), 맥북에어 13인치(2명), 아이패드에어2(1명), 로봇청소기(3명), 스베누 운동화(5000명) 등 고가의 경품으로 구성돼 있다. 럭키박스에 당첨되지 않는 참가자들에게는 썸머박스가 제공된다. 썸머박스에는 3단 우산(1개), 텀블러(1개), 스마트폰 방수팩(1개), USB선풍기(1개), 바캉스세면파우치(7종), 모기퇴치팔찌(3개), 모기패치스티커(16매), 스베누·신발팜 5000원 적립금 총 8가지의 경품이 제공됐다. 럭키박스 가격은 2만원이었다. 이벤트 참여자는 추첨을 통해 럭키박스 또는 썸머박스를 받았다.
 

하지만 럭키박스를 받아 본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스베누가 제공하기로 한 텀블러 종류가 바뀌었고, 모기퇴치팔찌는 3개에서 1개로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벤트 사진과 실물이 다르다는 것이다. 스베누가 당초 홍보한 럭키박스의 제품 구성과 전혀 다르다는 부정적인 후기가 소비자들의 블로그 등에 올랐다. 스베누 게시판도 난리가 났다. “진짜 한 명도 당첨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두고 보자, 스베누” 등 악평이 이어졌다.
 
흥미·호기심 유발해 소비자 지갑 열어
기대품고 박스 열어보지만…대부분 실망
 
럭키박스 이벤트 사진과 다른 제품을 받은 일부 소비자들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제17조(청약철회 등) 3항을 들며 대응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소비자는 제1항 및 제2항에도 불구하고 재화 등의 내용이 표시·광고의 내용과 다르거나 계약내용과 다르게 이행된 경우에는 그 재화 등을 공급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 그 사실을 안 날 또는 알 수 있었던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약철회등을 할 수 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스베누는 이벤트를 조기 종료했다. 스베누는 공식 사과문을 통해 “미숙한 진행으로 불편을 드린 점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러한 마케팅의 시초는 ‘스타벅스 코리아’의 럭키백이다. 4만9000원 럭키백 안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각종 텀블러, 머그컵, 음료 무료쿠폰 등이 채워져 있다. 스타벅스 코리아는 2009년을 제외하고 2007년부터 매년 럭키백 이벤트를 진행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스타벅스 마니아들은 한정 수량 럭키백을 손에 쥐기 위해 매장의 오픈시간에 맞춰 긴 줄을 서기도 했다.
 
스타벅스 럭키백 성공담이 하나둘 전해지면서 럭키 마케팅이 유행처럼 번졌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이벤트가 등장했다. 올해 1월에는 패션브랜드 ‘루이까또즈’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했다. 14만원 럭키백에는 루이까또즈 지갑과 가방이 들어있었다. 2월에는 화장품회사 ‘헬로에브리바디’가 2만원 럭키백 이벤트를 실시했다. 3월에는 외국어 학원 ‘해커스’도 럭키백 마케팅에 동참했다.
 
해커스 럭키백 안에는 월 토익 무료 수상권, 2015 다이어리, CGV 영화 예매권, 토익 기출문제와 핵심 자료집 등이 들어 있었다. 여성 속옷 브랜드 ‘에블린’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매장 오픈 기념으로 매장 방문자 선착순 500명에게 무료로 럭키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파격 조건이었다. 럭키백 안에는 스타벅스 상품권, 외식 식사권, 목걸이 등 작게는 1만원에서 최대 20만원 상당의 제품들로 구성돼 있었다. 


별 거 없네∼
 
이후 럭키백, 럭키박스 마케팅은 유통업계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편의점 입구에서도 화려하게 포장된 럭키박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럭키박스로 대박은커녕 손해를 보는 소비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럭키 마케팅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철 지난 제품을 묶어 판다’는 소비자 불만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내수소비 침체로 유통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고객을 끌기 위해 럭키박스, 럭키백 같은 사행심에 기댄 매출 전략이 판치고 있다”며 “이 전략이 자칫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한정판 마케팅 '명암'
 
삼성전자가 마블과 협력해 출시한 갤럭시 S6 엣지 아이언맨 에디션이 당일 삼성전자 온라인스토어에서 매진됐지만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이언맨 에디션이 완판된 이후 여러 중고 사이트에 이 아이언맨 에디션이 속속 매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고거래 장터 ‘중고나라’ 카페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씩 갤럭시 S6 엣지 아이언맨 에디션의 판매글이 올라왔다. 보다 못한 중고나라 운영진은 공지 글을 통해 “중고나라 카페에 구매 및 판매 관련 게시글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으며, 대부분 실사용이 아닌 되파는 목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가격을 올려 판매하는 되팔이 목적과 또한 덩달아 해당 제품에 대한 사기글 역시 카페에 증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중고나라 등 중고장터에 올라오는 아이언맨 에디션의 가격은 보통 200만원부터 250만원 사이. 실제 구매가격보다 100만원 이상 비싼 가격에 올라오고 있다. 소장가치 높은 한정판 제품을 만들어 판매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마케팅 전략은 성공했지만 아쉽게도 구매자 상당수가 ‘장사꾼’이다. 이 같은 중고판매가 계속된다면 잘 만든 ‘프리미엄 제품’ 이미지가 손상될 수 있다. 이미 한정판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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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