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시, 교수촌 조성 특혜의혹 논란 집중추적

‘교수촌’ 누구를 위한 특화사업인가?



충남 아산시가 지역 특화사업으로 추진 중인 전원마을 조성사업이 특혜 의혹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일명 ‘교수촌’으로 불리는 전원마을 조성단지는 농림지역으로 관리지역세분화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008년 아산시 관리지역세분화 당시, 곳곳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유독 이 구역만은 전원마을 조성사업이라는 튼튼한 방어막으로 개발이 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 그런데 교수촌 일대 개발로 인해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개인 땅도 덩달아 춤을 추고 있다. 아산시의 야심작(?) 교수촌 조성사업은 과연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특혜 의혹에 대해 집중 취재했다.

세분화 구역 아님에도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
강희복 전 아산시장, 관내 대학교수 특혜 의혹
2006년 토지 매입가격 5만원→50만원 호가

아산시가 교수촌 조성사업을 추진 중인 구역은 송악면 동화리 산 78-18번지 일원으로 총 면적 8만9651㎡에 이른다.

2만7119평의 넓은 땅 위에 200억의 사업비를 들여 입주자 주도형 55가구 공사를 마무리하고 관내 대학 교수들을 유입, 특화지역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 아산시청 개발정책과는 이번 사업 목적에 대해 “교수들의 연구 및 창작활동을 돕고, 농촌지역에 쾌적하고 다양한 주거공간을 조성, 관내에 정착시킴으로써 도시민의 농촌 유입과 지역사회 발전의 참여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자체마다 있는 특화단지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는 주장이다.

송악면 동화리 78-18번지
세분화 구역→계획관리지역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반 주민들의 토지에 대한 세분화 과정과 교수촌 조성구역 세분화 과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애당초 교수촌 조성구역은 관리지역세분화 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익명의 제보자에 따르면 교수촌 조성구역인 78-18번지는 농림지역으로 분류되어 관리지역세분화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산시의 특혜로 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 됐고, 이로 인해 이 구역 토지를 매입, 교수촌 입주 예정 교수들에게 특혜를 줬다는 주장이다.

또 이 제보자는 취수장 1km 이내는 개발이 제한되는데 교수촌은 송악저수지와 불과 3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송악저수지는 취수장 상류에 위치해 저수지 오염이라는 또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아산시청 관계자는 “송악저수지는 상수도보호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송악저수지는 현재 농업용수로 사용되고 있고, 하수처리시설을 확실히 설치해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해명했다.

관리지역세분화와 관련, 취재기자는 지난 4월23일 아산시를 직접 찾아 시청 인근 부동산에서 토지대장을 살펴본 결과, 교수촌 조성구역은 농림지역에서 계획관리지역으로 용도지역이 변경되어 있었다. 농림지역은 관지역세분화 대상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농어촌정비법에 의거 용도지역을 변경한 것.

또 78-18번지를 제외한 인근 지역은 ‘보전관리지역’과 ‘생산관리지역’으로 세분화 되어 있어 한눈에 보기에도 홀로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 억지로 짜 맞추기를 한 모양새다.

아산시청 도시계획과는 이에 대해 “세분화 대상이 아니어도 보존산지를 해제하면 관리지역으로 바뀌기도 하고, 사업법 상 용도지역변경이 가능한 지역이 있다”면서 “교수촌 조성구역은 아산시가 진행하는 특화사업이기 때문에 농림지역이 계획관리지역으로 변경 가능했다”고 말했다. 관리지역세분화와 달리 특별법의 영향을 받았다고 이해하면 쉽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관리지역세분화가 이루어진 2008~2009년 당시 해당 지역 주민들은 누구라도 자신의 토지가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되기를 원했다.


보전 및 생산관리지역으로 분류될 경우 토지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반면, 계획관리지역으로 세분화 되면 건폐율과 용적률이 높아지는 등 토지의 활용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세분화과정에서 보전 및 생산관리지역으로 분류된 토지 주들은 아산시장실에 찾아와 시장면담을 요구하며 관리지역 변경을 요구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교수촌 조성구역의 용도지역변경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같은 구역 내 주민들은 관리지역세분화에 묶여 계획관리지역으로 분류되지 못한 반면, 교수촌 조성구역은 시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고 해서 용도변경이 가능한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런가 하면 익명의 제보자는 강희복 전 아산시장이 교수촌 조성을 공약으로 내놓았던 점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강희복 전 아산시장
관내 대학교수 특혜 의혹

관내 모 대학 겸임교수 출신인 강 전 시장이 평소 친분이 있었던 교수들에게 아산시 노른자위 땅을 싼 값에 매입하게 해줬다는 것.

지자체마다 특화사업을 진행 중이라고는 하지만 교수촌 조성구역은 아산시 내에서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고 송악저수지와 근접해 있어, 개발보다는 보전하는 쪽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아산시청 도시계획과는 교수촌 사업계획 아이디어를 내고, 관내 대학 교수들을 상대로 수요조사 과정을 거쳐 2005년 3월 교수촌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같은 해 7월부터는 사업관리책임자 및 용역사를 선정해 용역을 추진했고, 2006년 12월에는 토지매입을 완료했다.

당시 교수촌추진위원회는 2만7119평의 토지를 13억5595만원에 매입했다. 평당 5만원 정도의 가격이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재 교수촌 조성구역 토지 가격은 평당 25만원~50만원에 이른다. 물론 개발영향으로 평당 가격이 상승할 수도 있지만 아직 교수촌이 뼈대도 갖추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하면 완공 이후 토지가격이 몇 배나 상승할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교수들이 싼 가격에 토지를 매입하게 한 뒤 개발 이후 ‘껑충’ 뛴 땅 값을 착복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와 관련 아산시청 개발정책과 관계자는 “교수촌 조성사업 총 사업비 200억원 가운데 국비 지원은 20억에 불과하다”면서 “나머지 180억원은 교수촌추진위원회에서 부담하고 교수 전원이 입주를 약속했기 때문에 투기 목적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4월23일 취재기자가 교수촌 조성구역을 직접 찾았을 때 해당 구역은 이미 공사가 시작된 모양새였다. 곳곳의 나무가 베어져 있고, 흙더미가 파헤쳐진 곳도 여러 군데 목격됐다. 교수촌 조성사업 계획 상 5월에 시행계획 승인과 함께 착공이 이루어진다는 아산시청의 설명과는 정면 배치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아산시청 개발정책과 관계자는 “교수촌 조성 공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진입로 공사를 준비하는 중”이라면서 “빠르면 5월 늦으면 6월 공사가 본격 시작될 것”이라고 답했다.

땅이 파헤쳐 있는 것에 대해 거듭 질문하자, “교수촌 추진위원회에서 공주대학교 박물관과 함께 문화재 지표조사를 하는 중”이라고 답변했다.
교수촌 조성사업을 둘러싼 특혜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교수촌 입주 예정인 관내 대학 교수들의 입장을 들어봤다.
교수촌추진협의회 민병헌 위원장은 지난 4일 본지 기자와의 통화에서 “특혜의혹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관내에 대학은 많지만 지역에 거주하는 교수는 5명에 불과하고 아산시의 특화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교수촌이 완공되면 판매나 투기 목적이 아닌 실제 입주해 마을을 이룰 것이기 때문에 특혜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교수촌추진협의회,
“투기 목적 아니라니까”

또 “교수촌 조성사업은 아산시가 먼저 사업제안을 했기 때문에 교수들이 로비를 할 상황도 아니었고, 적법한 절차에 걸쳐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아산시의 ‘늑장 행정’과 ‘알아서 하라는 식의 사업 진행’에 힘이 든다”고 말했다. 2003년 시작된 사업이 여태 공사도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


이어 민 위원장은 “주민 분들도 굉장히 협조적이다. 부지 내에서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고, 자녀 교육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일각에서 들린다는 주민 불만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200억원의 총 사업비용 가운데 국비 지원 20억원을 제외한 180억원은 교수촌추진협의회의 부담에 대해 “총 사업비 200억원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말했다. 서류상 책정된 금액일 뿐, 현실성이 없다는 것.

의혹은 또 있다. 이 교수촌 개발의 핵심지역은 ‘송악면 동화리 78-18번지’이다. 그런데 이 지역 바로 옆에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별장이 자리잡고 있다. 아울러 이 교수촌 개발지역을 중심으로 김 회장의 야산과 임야가 펼쳐져 있고 현재 이 지역을 중심으로 골프장과 레저타운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있다는 제보가 들려왔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 챙기는 사람은 김찬경?

익명의 한 제보자는 “교수촌 일대의 땅 동화리 78-17번지 바로 옆에 김찬경씨의 별장과 소유 임야가 펼쳐져 있고, 바로 옆에 있는 산은 김우진씨의 명의로 돼 있다”면서 “김우진씨는 김 은행장의 아들로 알려져 있는데, 교수촌 개발로 김찬경씨는 앉아서 돈을 벌었다는 얘기가 이 지역에 파다하다”고 귀띔했다.

이에 본지가 확인한 결과 동화리 78-18번지와 바로 붙어 있는 동화리 78-17번지는 1983년생 김우진씨의 명의로 돼 있었다. 아울러 김 은행장의 별장은 78-17번지 산등성이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별장에는 김 회장의 부친이 살고 있는 것으로 이웃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 한 지역민은 “이곳 별장은 잘 관리가 돼 있고 한 10년쯤부터 살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희복 전 아산시장과도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지역에서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이는 논란이 있었던 교수촌 사업이 결국 김 행장이 추진하고 있는 골프장 사업과 레저타운 사업과도 연관성이 있다는 의혹을 던져주는 대목이다.

현재 강 전 시장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어 교수촌 개발사업과 김 회장 소유의 임야 및 골프 레저타운 개발사업이 계획대로 추진 될 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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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