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현대사 산증인 최환 전 5·18 특별수사본부장

“적당 하면 편하지만 역사발전이 없죠”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이 지은 동명의 책 이름처럼 정의에 대해 수없이 질문을 던진 법조인이 있다. 최 환 전 5·18 특별수사본부장은 현직 검사로 있을 당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담당해 진실을 밝힌 대한민국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자행된 신군부의 학살은 다신 일어나선 안 되는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1980년 일어나 올해로 35년이 지난 지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와 뇌물죄 수사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그때 최 환 전 서울지검장은 5·18 특별수사본부장에 임명돼 수사를 총괄하면서 진실을 밝힌 주역이다. 결국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죄 및 뇌물죄가 확정돼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원이라는 헌정사상 유래 없는 판결이 나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다음은 <일요시사>와의 일문일답.

“계엄령부터 실수”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는 과정에 잡음이 많습니다.
▲ 평가가 여러 가지로 나뉩니다만 전 곡명을 ‘광주의 노래’로 바꿔 부른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노래가 분명 오해의 소지는 있습니다. 가사 중 ‘따르라’라고 하는 부분이 선동으로 해석될 수 있죠. 그러나 광주 쪽에서는 5·18 추모 행사 때 그 노래를 부르길 원합니다. 광주사람들이 욕심 부리는 게 아닙니다.

이 노래는 1981년에 한 남학생과 여학생을 위해 영혼결혼식을 시키는 과정에서 바친 헌가입니다. 그런데 가사를 보면 시위할 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으니까 운동권에서 사용을 한 것이죠. 그 노래를 부르며 시위하는 사람을 저도 처벌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 보안법이나 불법 폭력시위를 해서 잡아간 것이지 그 노래를 부른다고 처벌하진 않았습니다.

대법원 판례를 찾아봐도 노래가사나 곡명에 문제가 있다고 판결난 사례가 없습니다. 형사 처벌 받은 적도 없고요. 그러니 5·18 행사할 때 마지막 곡으로 부르면 되는 것이죠. 보훈처에서는 제창으로 하지 말고 합창단이 앞으로 나와 하면 안 되냐고 하는데 마찬가지 아닌가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신군부의 행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광주에 계엄령을 선포했죠. 그럼 광주에 있는 시민들이 광주 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국민을 안심시키고 생업에 만전을 기하고,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게 지도자의 길이고 통치자의 길입니다. 그런데 계엄령을 선포하니까 저항권을 발휘한 것입니다.

국민의 자연법적인 저항이 안 일어나도록 예방할 수 있어야 통치인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정치인도 똑같죠. 결론적으로 ‘정의’ ‘인권’ ‘진실발견’ 모두 정의가 관통하는 것인데 정의로운 방법으로 인권을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995년 서울지검장 재직 당시 특별수사본부장을 맡아 전두환 전 대통령을 구속기소 했습니다. 도중에 북한군 남파, 폭동 등이 억측이라는 것도 밝혀내셨고요.
▲희생자들의 오해가 없도록 수사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수사를 철저히 해야 이분들이 납득을 하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희생자를 살릴 순 없지만 우리가 진심으로 수사하니 유가족들도 납득을 하시더군요. 당시 북한에서 공작원을 남파했다는 억측이 있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확인하니 그런 건 없었습니다.

-전직 국가원수의 부정비리를 파헤치는 극적인 수사였습니다. 힘드시진 않으셨나요?
▲그 수사 이외에도 주위에서 ‘적당히 하면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5·18 수사도 그렇죠. 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직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군이 왜 가야됐으며 결국 수습이 안 되니 발포한 거 아니냐는 거죠. 그 분들은 아직도 절 싫어합니다. 적당히 수사할 수도 있는 문젠데 왜 그렇게까지 했냐고요.

-최근 미 법무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을 몰수해 한국정부에 반환했습니다. 당시에는 국외재산이 없었나요?
▲뇌물죄 수사를 진행할 때는 국외재산이 없었습니다. 뇌물로 받은 돈을 검찰에서 모두 파악하고 있었는데 국외로 빼돌린 돈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사면·복권이 돼서 교도소 밖으로 나가니까 ‘다시 돈을 낼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돈을 흩트린 것 같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굵직한 사건 맡아 
내란죄·뇌물죄 수사 지휘…진실 밝혀

-추징금 추가 환수를 위한 첫째 덕목은 집요함이라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추징금을 안 내기 위해 보통은 돈을 숨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집요하게 달라붙어 받아 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중에 있는 거 고분고분 내지 않는 것도 요인이죠.

-정가에서는 5·18 기념일마다 정치 이슈로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런 정치판에 대해 비리를 밝힌 검찰로서 해주실 말씀 있으신가요?
▲정치화시키는 행위를 하면 희생자들이 분노합니다. 희생자들 유족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는 경우는 없어요. 5·18 사건은 우리가 의혹 없이 수사를 했기 때문에 이슈로 사용하면 안 돼요. 수사 당시 시신을 못 찾았다는 유족들이 있었는데요. 당시 그 사람들과 직접 의심되는 현장으로 가 포크레인을 동원해 함께 시신을 찾았습니다. 검찰이 나서서 그렇게 하니 의혹이 사라졌죠. 유족과 똑같은 마음에서 수사를 한다는 것을 알아주신 겁니다.


-오로지 법조인으로서 살아오셨습니다. 참 법조인이란 평가가 많은데요. 그런 외부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융통성 없는 사람’이 나에 대한 평가입니다. 좋은 의미는 아니죠. 세상은 바뀌고 정치인·지도자도 바뀌고 그러니까요. 전 지금까지 살면서 세 가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 그만둔 지 16년째지만 전관예우를 안 받았고요. 로펌도 안 만들었습니다.
 

재벌들 기업에 장학생으로 들어가지 않았죠. 장학생이라고 하면 알겠죠? 현직에 있을 때 뒷바라지하고 은퇴하면 법률고문에 사외이사로 활동하는 것 말입니다. 그걸 하지 않았어요. 이 세 가지를 하면 내가 정의롭지 못하게 되잖아요. 뭐든 적당주의로 가면 편합니다.

하지만 시대상에 항상 그런 사람들만 있으면 역사발전이 없지 않을까요. 검사도 검사장을 하면 사회에 기여하는 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역사의 법정에 설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피고인 신분으로 섰을 때 내 삶과 생각을 피력해서 국민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국민 박수 받으면 성공”

-확고한 신념을 가진 계기가 있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 6·25가 났습니다. 그때 선친께서 구미역장을 하셨죠. 피난길에 올랐는데 역으로 마지막 열차가 들어왔어요. 그 열차는 역에 있는 사람을 다 태우고 가야됐어요. 그때 선친께서 우리 가족들, 피난민들, 역원들 다 태울 때까지 열차를 타지 않으셨습니다. 역에는 아버지만 계셨죠.

그러고 나서 열차가 출발할 때 마지막에 타시더라구요. 당시 주위에서 ‘역장님 대단히 수고하셨다. 총알에 희생당할 수 있었는데’라며 사람들이 고마워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역장으로서의 당연한 임무입니다’라고 대답하셨어요. 그 말 듣고 느낀게 많습니다. ‘남의 윗사람이 되려면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죠.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일요시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chm@ilyosisa.co.kr>


[최환 전 본부장은?]

▲충청북도 영동 출생
▲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대검찰청 공안부장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부산·대전고등검찰청 검사장
▲최환 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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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서 탈옥한 조직원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처음 만난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일 본지가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를 최초 보도한 이후, 외교부 측은 루카스 베르사민 필리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탈옥한 이들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공적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박씨에 대한 검거 작전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추적팀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 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새벽 탈출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약 2년 전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주 구치소로 이감됐다. 3명 모두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탈옥했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지난 2일, 인원 점검 때 박씨 일당이 탈옥한 것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마린스 수르 구치소에 대해 현지 제보자는 “담장이 낮고, 보초도 허술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에 탈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라며 “그들은 비쿠탄 교도소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들어 이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탈옥한 일당이 도피하는 동안에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1세대다. ‘김미영 팀장’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박씨가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금액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서 근무하다가 수뢰 혐의로 해임된 경찰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해 온 박씨는 2021년 10월6일 마닐라 인근서 붙잡혔다. 당시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이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붙잡힌 박씨는 “필리핀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국내 송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한 노림수였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박씨는)비쿠탄 내에서 식사를 판매하는 아저씨로 통했다”며 “박씨가 송씨, 신씨와 어울리면서부터 교도소 내에 마트를 인수해 장사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증언했다. 보이스피싱과 결합한 마약 유통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마약방 개설 비쿠탄 교도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죄수들이 직접 돈을 벌거나 영치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죄수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조직을 꾸려 보이스피싱, 대포폰, 마약 유통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신씨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동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와 신씨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도 쏟아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신씨는 타인 명의로 개통한 유심칩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씨는 불법 유심칩 1개당 한국 돈 약 25만원을 받고 팔았다. 신씨에게 산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철저히 숨길 수 있게 된 송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전달책을 모집하고 유통하는 이른바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신씨가 재테크 사기,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천명의 회원들은 송씨가 운영하는 마약방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송씨는 채팅방서 ‘두목’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또 박씨는 신씨의 도움을 받아 수억원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마약과 거리가 멀었던 박씨가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을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씨가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라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라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한국 싫어” 가짜 범죄 다수의 전달책이 송씨의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정황은 곳곳서 드러났다. 송씨가 고용한 운반책은 2022년 1월25일, 수원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힌 김모씨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7분께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했다. 앞서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모텔 안에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상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마약방 회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전했다. 송씨가 넘긴 마약을 유통하려고 한 사람은 또 있었다. 지난해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주천은 지난해 6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탈옥 후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주천은 도피 자금을 벌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밥 먹듯… 탈옥 시도 비쿠탄 관계자들은 이른바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큰돈을 벌자, 박씨와 송씨 일당도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순 박왕열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이젠 나보다 송씨가 마약왕에 가깝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양이 내가 보낸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앞서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 원대의 마약을 공급했다.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에게 팔렸다.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 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2022년 12월 NBP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 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그동안 경찰은 박씨 일당 등 한국인 범죄자의 강제송환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씨 일당은 필리핀서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인신매매는 허위로 만들어낸 범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 모텔서 잡힌 전달책 상선” 박왕열 “이젠 송씨가 마약왕” 박씨가 쓴 꼼수는 이미 필리핀 도피 사범들 사이에 만연하다. 현재 필리핀 도피 사범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필리핀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든다.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많게는 3000만원서 적게는 100만원 정도가 든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짜 케이스를 만드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강간, 사기, 폭행 정도의 가짜 범죄를 만들어 재판에 출석하면서 국내 송환을 계속 미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최소 징역 15년서 25년 이상 집행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판부는 2012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과 필리핀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435명에게 26억여원을 가로챈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경우,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 또는 그럴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것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해당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다. 필리핀 당국과 한국 정부도 탈옥범들을 추적 중인 가운데, 현지 법 적용을 고려하면 다시 붙잡히더라도 국내 송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서 저지른 다른 범죄의 조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6년이 걸린다. 특히, 탈옥 행위로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만큼 현지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크다.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의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국내 송환 이상화 주필리핀대사는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필리핀 외교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만나 박씨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씨 일당 외에 인질강도 혐의로 수배돼있던 한 남성도 최근 현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는 한국 국적의 수배범만 박씨 일당을 포함해 6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사기 혐의로 수배가 걸려 있었다. 이 중에는 10건 이상 수배가 걸린 수배범들도 있었다. 그만큼 교정시설 보안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