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어깨 무거운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신임 원내대표

문재인과 궁합은…찰떡? 물과 기름?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원내대표로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 의원이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비주류·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4선 의원이다. 지난해 두 차례 원내대표 선거 탈락의 아픔을 딛고 삼수 끝에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1957년 5월22일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 원내대표는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다 안양으로 이사했다. 안양시 만안에 있는 만안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970년 이 원내대표는 만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민변 변호사 활동
99년 정치 입문
 
이 원내대표는 경기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서울의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 피아노과에 지원 입학시켰다. 중학생 시절 그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 정기권으로 통학했다.  
 
이 원내대표는 예원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예원학교 3학년 무렵부터 예술 전공이 자신의 가야 할 길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경기고등학교에 합격했다.
 

그의 핏속에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원내대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친구들과 ‘귀 있는 자 들어라’라는 유인물을 만들었다. 학교 교내 전관에 뿌리는 일에 가담했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알았던 주변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놀라워했다. 
한편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 원내대표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수학적 재능이 없음을 느끼고 문과로 전과한다. 1976년 2월 그는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다. 
 
1977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성균관대 진학 이후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종로 경찰서의 학생담당 정보과 형사의 주요 시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할아버지한테 독립운동 자금을 부치기 위해 마련한 하숙집에 할아버지의 동지가 찾아왔다가 가면 여지없이 종로경찰서 고등계형사가 와서 괴롭혔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라며 이 원내대표가 형사들의 감시를 받는 것에 대해 슬퍼했다. 그러면서 그의 아버지는 이 원내대표의 행동이 경솔하지 않도록 조심시키면서도 그의 학생운동에 대해 ‘그만두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이 원내대표는 대학교에 다니며 아카데미 운동을 했다. 서울 마포지역의 노동자 야학운동에 참여했다. 야학 은강학교에서 노동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학변자(운동학생들이 시위하다 잡히면 바로 군대로 끌려가는 것)로 군에 징집되어 입대했다. 
 
삼수 끝에 당선 1야당 사령탑 접수
당내 비주류·중도 성향…4선 의원
 
이 원내대표는 양평에서 3년 남짓 복무하고 육군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그는 복학 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중퇴했다. 이후 1983년 서울대학교 인문 2계열에 다시 입학했다. 1987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졸업 후 다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에 학사편입한다.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사범 시험을 2년간 준비한 끝에 1988년 제3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1989년 졸업 이후 사법연수원에 들어갔다.
 

이 원내대표는 사법연수원 2년 차 때부터 변호사 운동을 준비했다. 그 무렵 당시 시민운동가였던 박원순 변호사를 만난다. 그는 잠시 박 변호사와 함께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참여연대’ 설립 기초를 마련했다. 이 원내대표는 참여연대 기초 사항을 작성했다. 
 
1991년 그는 사법연수원을 마치자마자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에서 인권 변호사로서 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민변의 간사 변호사로 활동하며 전국연합 인권위원회 위원, 천주교 인권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인권 관련 사건과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김영삼 정부 당시 노동악법 및 개악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를 시도할 때 안양에서 서명운동을 주도했다. 이를 계기로 모인 시민운동가들로 창립된 안양의 대표적인 시민운동단체인 ‘안양지역시민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서울대 민족활동가 사건, 천주교 기독교 애청사건, 시노맹사건 등 많은 시국 사건을 도맡아 승소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위원으로서 동티모르 인권침해반대투쟁, 간첩조작사건의 재심사건, 양심수석방을 위한 위원회 활동 등 인권운동도 전개했다. 
 
무계파로 분류
투사 이미지도 
 
노동분야의 활동에서도 노동조합의 법률자문을 역임하며 사업자와 임금협상 등 단체교섭 시에 발생하는 노동법률문제를 자문했다. 수많은 해고 무효확인 소송, 임금 소송 등 노동관계 소송을 맡았다. 
 
이 원내대표는 한국 사회 여성의 권리 신장에 크게 이바지했다.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의 초안을 마련해 입법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서울대 우조교 성희롱사건을 담당하여 승소했다. 그 공로로 1998년 여성운동상을 받았다. 
 
그는 법제정 분야에서도 성폭력특별법 제정 및 가정폭력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에서 여성인권운동의 일환으로 초안도 작성했다. 이 때문에 1999년 <여성신문사>가 선정한 ‘여성인권에 가장 기여한 남성 10인’에 선정됐다. 
 
 
1999년 11월 새천년민주당은 이 원내대표를 변호사 20인 중 한 명으로 영입한다. 이듬해 국회의원 총선거에 입후보했다. 
 
2000년 4월 이 원내대표는 제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당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활동한다. 이때 그는 노무현 후보 비서실 차장이 됐다. 선거 직전인 12월에는 수행실장 역까지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2004년 4월 제17대 국회의원(열린우리당, 안양 만안구)에 출마해 재선의원이 됐다. 그는 이후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4선에 성공한다. 당선 후 열린우리당 원내 수석부대표로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한미 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늘렸다.
 

이 원내 대표는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에 재선되고 국회 문화체육관광통신위원회 위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을 맞으며 종횡무진 했다. 그해 12월 민주당 내 소장파 모임인 민주연대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9년 4월 이 원내대표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신문사 이름과 최고경영자 실명을 거론해 소송에 휩싸이기도 했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장자연 문건에 따르면 당시 XX일보 X사장을 모셨고, 그 후로 스포츠XX X 사장을 모셨다고 했다. 보고받았나”라고 질문했다. 이 때문에 해당 신문사는 이 원내대표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결국 철회하면서 사실상 이 원내대표의 승리로 끝났다. 
 
2010년 경기도지사에 예비후보로 입후보했으나 당내 여론에 따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양보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이해찬 대표 체제가 들어선 6.9전당대회에서 5등 최고위원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하지만 대선 한달 앞둔 그해 11월 대선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인적 쇄신 취지로 이해찬 대표 등과 함께 지도부에서 사퇴했다. 
 
이후 김한길 대표 체제에서는 당 정치혁신실행위원장을 맡아 국회의원 지위 남용 금지를 골자로 한 정치혁신의 로드맵을 그렸다. 최근에는 ‘클린 종걸’을 자처하며 야당 의원들에 대한 사정기관 수사의 대응책을 마련하는 야당탄압대책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5월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 올해 2월 박상옥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장을 잇따라 맡았다.
 
지난 7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 경선에서 이 원내대표가 당선됐다. 그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 경선에서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127표 가운데 66표를 얻었다. 61표를 얻은 최재성 의원을 8표 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앞서 1차 투표(128표 참석)에서 이 원내대표 28표, 최 의원은 33표를 각각 얻었다. 하지만 재적 과반(66명) 득표자가 없어 두 사람을 상대로 경선투표가 실시됐다. 역전은 없었다.
 
정치혁신 로드맵
‘클린종걸’ 자처
 
4·29 재보선에서의 참패와 그로 인한 계파 갈등의 위기를 극복하고 1년도 채 남지 않은 내년 총선에서의 승리를 가져올 적임자로 당심은 이 원내대표를 택한 것이다. 그는 당선 소감에서 “원내대표 3수 끝에 영광을 주셔서 그 힘으로 해나가겠다”며 “새정치민주연합의 어렵고 참담한 상황을 여유 있게 힘 있게 풀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에 패배하고 무시당하고 소수당의 참담한 심정을 더 신중하게 풀어나가겠다”며 “서로 나누고 소통해서 어려운 난국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원내대표 당선으로 대여 관계가 심각한 대척 구도로 기울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현안에 따라 강경 성향이 도드라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는 선수가 늘어가면서 의회주의자 면모 역시 강하게 드러내고 있어서다. 이날 당선 뒤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 원내대표는 "공적연금의 강화를 먼저 처리하겠다"면서도 "국민의 불편이 없도록 지난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했던 민생 입법들을 이달 중에 처리하도록 합의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이 원내대표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위원장을 맡았다. 당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개최를 이끌어냈다. 
 
독립운동 할아버지 영향
독재정권 학생운동 주도
 
이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초기에는 당시 다수파였던 DY(정동영)계로 분류됐다. 하지만 18대 국회 이후로는 사실상 계파가 없는 ‘중도파’로 분류된다. 그는 19대 국회에 들어서는 김한길계로 분류되고 있다. 중도 온건 성향 의원 모임은 ‘민주당의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에게는 투사의 이미지가 서려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적인 행보로 이 원내대표를 강경 이미지로 기억하는 여당 의원들이 적지 않다. 
 
실제 5명의 원내대표 후보 중에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가장 괴롭힌 의원 중 한사람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이 원내대표가 되레 까다로운 파트너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당내에서 이 원내대표가 ‘럭비공 리더십’ ‘비노 강경파’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제16대 총선 때 출마해 여의도에 입성한 이 원내대표는 당시 당내 ‘대여 공격수’로 이름을 올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08년 국정감사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 비판하던 과정 유인촌 문화부 장관 등을 ‘졸개’로 비하했다가 논란을 일으켰다. 또 2012년 때는 트위터에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그년’으로 표현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원내대표 경선 투표를 앞둔 정견발표에서 "투쟁과 화합만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면서 "대여 투쟁의 선봉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도 여야 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당선 뒤에도 향후 공무원연금개혁 법안 무산에 대해 여당에 책임을 물으며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폭거라 생각한다. 야당을 무시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민을 짓밟았다”고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이어 “새누리당이 스스로 파기한 약속 불이행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순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경고했다.
 
약자 위해 뛰었다
국민들 위해 뛴다
 
이번 대여 관계가 어떻게 형성될지는 공무원연금개혁의 향후 처리 과정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은 “당장 여야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겠지만 우윤근 원내대표 시절보다는 갈등과 대결 구도가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원내대표도 협상만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향후 여야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 이종걸은?
 
▲서울 종로(1957년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사법시험 30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기획간사 
▲노무현 대통령 후보 수행실장 
▲열린우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18대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 위원장 
▲경기 안양 만안구 4선 국회의원(16∼1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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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10번째 해외순방 부푼 보따리 풀어보니…

윤, 10번째 해외순방 부푼 보따리 풀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해외순방을 떠났다. 그에 맞는 성과를 낸다면 우주라도 갈 수 있다지만, 여태까지 성적표는 처참해,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가 기대했던 ‘1호 영업사원’의 의미가 대통령 부부와는 달랐던 걸까? 오히려 나갔다 하면 터지는 사고로 불안할 지경이다.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투르크메니스탄·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3개국 국빈 방문을 위해 출국했다. 윤 대통령과 배우자 김건희 여사는 이날 오전 성남 서울 공항서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 1호기를 타고 첫 순방지인 투르크메니스탄으로 향했다. 시작은 화려하게 서울 공항엔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홍철호 정무수석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국민의힘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 등이 나와 윤 대통령을 환송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짙은 남색 정장에 연한 회색 넥타이를 맸고, 김 여사는 밝은 베이지색 정장 차림에 에코백을 들었다. 윤 대통령 부부는 공군 1호기에 올라 각각 손 인사와 목례 인사를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첫 순방국인 투르크메니스탄서 세르다르 베르디무하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열고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했다. 윤 대통령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한반도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며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비핵·평화·번영의 한반도를 위한 담대한 구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에게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과 ‘한-중앙아시아 정상회의 개최 계획’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으며, 이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해주셨다”고 설명했다.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우리의 한-중앙아시아 K-실크로드 협력 구상의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대한민국 간 관계의 확대를 지지한다”면서 “우리는 본 구상을 구현하는 데 양국 정부 간 긴밀한 협력을 기대한다”고 화답했다. 이번 양국 간 공동성명에는 가스 및 화학, 조선, 섬유, 운송, 정보통신, 환경보호 등 분야서 협력 강화도 담겨있다. 해외순방이 잘 끝나면 좋지만, 이번 해외순방은 시기가 좋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여태까지의 실적보다는 리스크가 더 컸다는 말도 나오는 실정이다. 스스로를 ‘1호 영업사원’이라고 지칭한 윤 대통령의 위신은 무너진 지 오래다. 조국혁신당은 윤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길에 김 여사가 동행하는 데 대해 ‘검찰 수사 회피용 외유’라고 규정했다. 한 번 나갔다 하면 터지는 논란 총선 이후 숨었다가 해외서 등장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디올백 수수 영상이 공개된 뒤 4·10 총선 ‘도둑 투표’서 보듯이 국민과 언론의 눈을 피해 꼭꼭 숨어다니더니, 이제 대놓고 활보한다. 검찰을 향해 ‘어디서 감히? 소환할 테면 해보라’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검찰은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과 양주, 고급 화장품을 대가성 뇌물로 제공한 최재영 목사를 소환해 다수의 증거와 증언을 이미 확보했다. 따라서 김 여사는 대가성 뇌물을 받은 의혹이 있는 피의자다. 특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혐의 피의자이기도 하다”고 짚었다. 이어 “공범들은 이미 처벌받았다. 재판에 제출된 검찰 의견서에 김 여사와 모친 최은순씨의 수익이 23억원이라고 적혀 있다. 검찰은 언제까지 김 여사 소환조사를 미룰 건가? 청탁성 선물을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하는 억지 주장을 듣고만 있을 것이냐”고 성토했다. 김 대변인은 “대한민국 검찰은 압수수색도, 소환조사도 피해 가는 ‘특권계급’ 앞에서 무너지고 있다. 이원석 검찰총장이 언론에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해도 믿는 국민은 없다. 아무리 달달한 말을 해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직격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 부부가 무사히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길 기원한다. 귀국 즉시, 요새 국민의힘 의원들이 관심이 많은 기내 식비와 음료, 술값 내역을 꼭 공개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김 여사는 검찰이 귀국 뒤에도 소환하지 않거든 서울중앙지검에 제 발로 찾아가길 바란다. 그래야 검찰 소환을 피하려고 외유를 택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거 아니냐”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은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으로 시작됐지만, 무엇보다 큰 문제는 여태까지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서 사고가 끊임없이 터졌던 것에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논란은 독일·덴마크 해외순방이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2월18일 윤 대통령은 일주일 일정으로 독일과 덴마크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계획을 돌연 연기했다. 지난 2월14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올해 첫 해외순방 일정인 독일과 덴마크 방문 계획이 여러 요인을 검토한 끝에 연기됐다. 과거에도 순방이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있었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순방을 연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민간인은 왜 태워? 독일 주요 종합지와 방송사는 윤 대통령의 방문 연기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고, 일부 온라인 언론이 <로이터 통신>의 단신을 번역해 소개했다. 덴마크서 발행되는 주요 언론들도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독일 올라프 숄츠 총리실과 덴마크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실도 별다른 언급이나 공식적인 설명하지 않았다. 독일과 덴마크 국민은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할 예정이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로 무관심한 분위기였다. 외신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 순방 연기 소식을 전했던 <로이터 통신>은 “한국 대통령실은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다양한 문제 때문에 연기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결정은 4‧10 총선서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 내려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대통령 내외가 성과도 없이 너무 잦은 해외순방을 하고 있다고 야당이 비판하고 있고, 특히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수수하는 과정이 담긴 몰래카메라가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이 곤란을 겪고 있다”며 디올백 사건이 연기 결정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도 함께 전했다. 반면 현지 한인 교민과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전례가 없는 일에 황당해했다. 현지 한국 공관들은 해외순방이 있기 한 달 전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동포 행사 보조요원을 모집했고, 교민 간담회를 열 계획이라고 비공식 공지까지 한 상황이었다. 독일 일정의 경우 수도인 베를린에 있는 독일대사관이 아닌 독일 중북부에 있는 함부르크 총영사관이 행사 요원을 모집한 사실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곳에서 있을 만찬은 독일과 유럽의 귀빈들이 주로 참석하는 사교 파티 형식이어서 대통령 부부가 함께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모든 게 돌연 취소된 것이다. 외교가에선 이를 두고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는 반응이 불거졌다. 가장 격이 높은 국빈 방문을 불과 며칠 앞두고 취소한 건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외교적 결례 논란으로도 번질 수 있는 사안이었다. 지난해 12월에 있었던 윤 대통령의 네덜란드 방문도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12월1일 네덜란드 측이 한국의 과도한 경호 및 의전 요구에 우려를 표하기 위해 최형찬 주네덜란드 한국대사를 초치했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는 최 대사를 불러 국빈 방문 경호와 의전을 둘러싼 한국의 다양한 요구에 ‘우려와 당부사항’을 전달했다.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경호상의 필요를 이유로 방문지 엘리베이터 면적까지 요구한 것 등 구체적인 사례를 열거해 불만을 표했다. 특히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기밀 시설 ‘클린룸’ 방문 일정과 관련해 한국 측이 정해진 제한 인원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데 대한 우려도 컸다. 한 소식통은 “네덜란드가 상대국 정상의 방문을 앞두고 주재 대사를 불러 항의한 건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외교부는 “최 대사와 네덜란드 측 간 협의는 국빈 방문이 임박한 시점서 일정 및 의전 관련 세부적인 사항들을 신속하게 조율하기 위한 목적서 이뤄진 소통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국빈 방문이 ‘대통령의 외교’가 아닌 화려한 의전만 챙기는 ‘왕의 외교’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7월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대통령 부부가 리투아니아를 방문했는데, 김 여사가 경호원과 수행원 16명을 대동한 채 수도 빌뉴스의 명품 편집매장에 들린 것이 문제가 됐다. 리투아니아 매체 <15min>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김 여사)는 50세의 스타일 아이콘 : 빌뉴스(리투아니아의 수도)서 일정 중 유명한 상점에 방문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에는 김 여사가 대통령실 직원들과 함께 ‘두 브롤리아이(Du Broliai)’라는 매장(명품 브랜드 편집숍)에 방문한 사진이 담겼다. 이 기사에 따르면 김 여사는 총 16명을 대동한 채 매장에 왔고, 김 여사가 쇼핑하는 동안 6명의 경호원이 매장 앞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배치됐다는 내용이 담겼다. 두 브롤리아이 관계자는 김 여사 일행이 매장 방문 이후에도 이곳을 다시 찾아서 추가로 물건을 구입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김 여사가 무엇을 샀고 얼마어치를 샀는지는 기밀”이라고 말했다. 해당 일에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상점을 방문한 건 맞고 안내를 받았지만, 물건은 사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물 폭탄과 문자폭탄에 출근을 서두르고 있는 서민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기사”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여름 한반도 폭우 사태로 인해 국가적 재난 상황에 처했는데 국내 사정을 우선시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지난해 1월에 있었던 아랍에미리트 해외순방에선 윤 대통령의 말이 문제가 됐다. 윤 대통령이 해외순방 중 UAE 군사훈련 협력단(아크부대)을 방문해 “UAE의 적이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UAE는 우리의 형제 국가다. 형제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라고 말했다. 명품, 노룩 악수, 경례… “김 여사 귀국 후 검찰로?” 이란이 윤 대통령의 주장에 반발해 성명을 발표하면서 국제적인 논란이 됐다. 주한 이란이슬람공화국 대사관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란이슬람공화국은 대한민국 공식 채널 특히 외교부를 통해 이란이슬람공화국과 아랍에미리트 관계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발언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이 사안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달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은 “현지서 UAE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는 아크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차원서 하신 말씀이다. 따라서 한-이란 관계와 무관한 발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란 나자피 외무부 차관은 윤강형 주이란 한국대사를 외무부로 초치해 항의했다. 2022년 11월 순방에서는 ▲MBC 취재진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논란 ▲윤석열정부 정상회담 취재 제한 논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김 여사가 팔짱을 낀 사진 논란 ▲해외순방 중 윤 대통령이 전용기 안에서 채널A, CBS 기자 2명만 따로 부른 것 ▲김 여사가 정상 배우자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대신 비공개로 캄보디아 병원과 가정에 방문하면서 발생한 논란 등이 있었다. 2022년 9월에 있었던 영국-미국-캐나다 해외순방에서는 나라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부부는 당시 사망한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조문하러 영국으로 출국했지만, 조문에 참석하지 않았다. 교통 상황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미 교통 혼잡이 충분히 예상됐고, 영국 정부는 이미 방문하는 국가 원수들의 전용기 탑승 자제 및 의전차량 제공 불가를 7일 전에 알렸다. 미국에서는 ▲한일 약식회담 ▲48초 한미정상회담 ▲욕설 발언으로 논란이 됐고, 캐나다에서는 동포 간담회를 열었지만, 내용이 실속 없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 오타와 전쟁 기념비 앞 참배 과정서 캐나다 국가가 울려 퍼지는 와중에 캐나다 국기에 경례하는 의전 실수를 저질렀다. 마지막으로 윤 대통령의 첫 번째 해외순방이었던 나토 정상회의에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루멘 라데프 불가리아 대통령에게 인사하려던 도중 윤 대통령이 악수를 건네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그저 윤 대통령이 건넨 악수만 받은 채 루멘 라데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불가리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포착돼 ‘노룩 악수’ 논란이 일어났다. 국제적 망신도 이 밖에도 연출된 업무 사진, 대통령 부부의 해외순방에 대통령실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신씨가 동행한 것도 논란이 됐다. 지난해 3월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민감한 사안에 대한 한일 양국의 주장이 엇갈렸으며, 지난해 4월 한미정상회담에서는 출국 전 윤 대통령이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서 “100년 전 일로 일본이 무조건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발언해 논란을 키웠다. <alswn@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