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뿐인' 4대악 척결 현주소

국민안전 우선?…흐지부지 대선공약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였던 2012년 TV토론에서 '4대악'을 언급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최우선 척결 대상으로 4대악을 꼽았다. 4대악은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을 일컬었다. 박근혜정부의 주요 공약인 '4대악 근절'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이었다. 정부 출범으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졌을까. 관련 통계들은 달라진 게 없음을 말하고 있다.

'4대악 근절' 또는 '4대악 척결'로 불리는 박근혜정부의 대표 브랜드가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정권 초기 전담팀을 구성해 의욕을 보이던 경찰은 자체 홍보에 더 열심이다. 애초부터 '진정성 없는 공약' '구색 맞추기식 공약'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진정성 없는
4대악 척결

박근혜정부는 2013년 정부조직 개편과정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라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당시 안전행정부 장관이었던 유정복 현 인천시장은 "이름을 바꾸는 데 1억원 내외가 든다"라고 말했다. 조직 이름을 바꾸면 사무실 명패와 직원 명함을 바꾸는 등의 일에 돈이 쓰인다. 유 장관은 '예산낭비'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 "대통령의 강한 정책의지를 담아 표현했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라고 답했다.

초기 안전행정부는 행정사무는 물론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통합·관리했다. 그런데 지난해 11월 뜻하지 않은 이유로 간판을 내렸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재난·안전 관련 업무를 떼어내면서 국민안전처와 분리했기 때문이다. 안전행정부는 다시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바꿨다. 2013년 사례를 참조하면 이 과정에 다시 1억여원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전행정부는 박근혜정부의 4대악 근절을 앞장서 추진하던 부처다. 2013년 6월에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4대악을 중점으로 한 21개 분야 안전관리 대책이 마련됐고, 이 가운데 4대악에 대해서는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정기적으로 조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안전행정부가 해체되면서 관련 조사는 국민안전처의 소관으로 바뀌었다. 4대악 근절을 일선에서 추진하고 있는 경찰이 행정자치부 소속임을 고려하면 지휘체계가 이원화돼 있는 셈이다. 더구나 안전행정부 시절 이뤄졌던 여론조사 결과와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큰 차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국민 10명 중
2명은 불안하다

안전행정부가 2013년 8월 전국 성인 및 중·고생 2100명을 대상으로 안전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사회 전반에 대해 안전하다고 답한 사람은 10명 중 2명에 불과했다. 당시 안전행정부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 학계·법조인 등 전문가 100명, 중·고생 1000명을 표본으로 뽑아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3.1%P)를 진행했다.

2014년 12월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동일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0명 가운데 2명만이 한국사회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국민안전처 역시 ㈜글로벌리서치에 조사(신뢰수준 95%, 표준오차 ±2.83%P)를 의뢰했으며, 표본 변화는 성인 남녀 수를 1200명으로 늘린 것밖에 없었다.

두 '국민안전 체감지수'를 세부적으로 살피면 2014년(하반기 기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21.0%였다. 2013년 같은 문항에서는 24.2%가 '안전하다'고 답했다.

반대로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4년(하반기) 기준 42.6%로 집계됐다. 2013년 조사에서는 30.4%만이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특히 '이번 정부가 추진한 4대악 근절 대책이 효과가 있다'는 응답은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분야에서 46.8~49.4%로 조사돼 절반 넘는 국민이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행안부→안행부→국민안전처 이름만 바꿔
'안전하지 않다' 응답 1년새 12.2%P 증가


2013년 조사에서 4대악 가운데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분야로 꼽힌 범죄는 성폭력이었다. 당시 성인 54.3%, 전문가 41%, 중·고생 52.7%가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다. 평균적으로 보면 49.3%가 '불안하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 성폭력에 대한 불안도는 43.6%로 낮아졌다.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정부의 노력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성폭력의 전체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 2만2933건을 기록했던 성범죄는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2만8786건으로 늘었다. 2014년에도 9월 기준 2만2211건을 기록해 3개월을 남긴 상황에서 2012년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인지수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2012년 3715건이었던 인지수사는 2013년 8118건으로 뛰었다. 또 다음해에도 9월 기준 3개월이 남은 시점에서 7419건의 인지수사를 벌여 전년대비 증가세를 보였다. 성범죄에 대한 경찰의 실적경쟁이 데이터로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허수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수도권에서 근무 중인 한 경찰 관계자는 "인지수사가 많다는 것은 결국 인터넷 음란물 수사나 성매매 업소 수사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성범죄'하면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찰이 통계로 뽑는 성범죄에는 간통과, 성매매(또는 알선·중개), 음란물 제조·유포, 통신매체 음란물 이용, 공연음란 등이 포함돼 있다.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국민이 체감하는 '안전'과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민안전 종합대책'에서 '국민안전'을 이루기 위한 두 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가해자를 검거하지 못한 비율을 뜻하는 미검률과 재범률을 각각 2017년까지 6.1%와 9.1%로 낮추겠다고 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관련 목표를 이미 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고민거리인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교육당국과 현장이 느끼는 인식의 차이가 컸다. 2013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65.1%(성인 68.6%, 전문가 70%, 중·고생 56.7%)는 '학교폭력에서 안전하지 않다'고 답했고, 2014년 조사에서는 54.4%가 같은 답변을 내놨다. 외견상으로는 성범죄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노력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해석됐다.

그런데 문제는 '폭력서클 집중 단속 및 선도 프로그램 운영'을 해법으로 내놓은 정부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교육부는 "학교폭력이 줄어들었다"라는 그릇된 실태조사 발표로 학부모들을 속였다.

안전과 무관한
무한 실적경쟁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학교폭력이 감소 추세"라고 주장했다. 실태조사는 온라인으로만 이뤄졌는데 2012년 8.5%와 비교해 2014년엔 1.4%(1차), 1.2%(2차)로 꾸준히 낮아졌다는 발표였다. '국민안전 종합대책'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한 학교폭력 근절 목표는 2017년까지 피해경험율을 5.7%로 낮추는 것이었다. 교육부 발표대로라면 학교는 이미 안전한 상태여야 했다.

그러나 지난 1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 상반기 전국 모든 학교(초·중·고 및 특수·각종 학교)의 폭력 심의건수는 1만662건으로 2013년 상반기에 비해 9.8%(9317건)가량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전체 학생수 차이를 반영한 1000명당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3년(상반기) 1.49건에서 2014년(상반기) 1.69건으로 13.2%가량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정 의원이 받은 자료는 각 학교에서 폭력사건이 발생하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회의를 열어 심의를 내린 건수를 종합한 공식통계다.


학교폭력은 늘었지만 검거된 소년범 건수는 2015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지난 2월 경찰청은 "지난해 학교폭력 가해자로 검거된 인원은 1만3268명으로 전년 대비 23.7%(4117명) 감소했다"라고 브리핑했다. 그러면서 "범정부 차원의 학교폭력근절 종합대책 이후 학교폭력이 감소했다"라고 자찬했다.

정부대책 효과 물음표 국민 50% 부정적
경찰청 홍보비 5억 신설…실효성 의문

흥미로운 점은 폭력과 금품갈취, 기타 강력범죄 등 거의 모든 범죄비율이 2013년과 비교해 18.8~32.9% 줄었지만 유독 성범죄만 전년 대비 21.4%(228명)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성범죄 실적을 올리려는 경찰과 학교폭력 건수를 줄이려는 교육부의 '담합'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발표로 의심됐다. 2013년 설문조사에서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에 대해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중·고생은 21%에 그쳤다. 같은 항목에 55%를 응답한 전문가와는 차이를 보였다.

4대악 가운데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폭력과 불량식품은 어떨까. 정부는 가정폭력을 근절하겠다며 '알콜·도박 등 4대 중독 특별 관리' '가정폭력 피해자 안전 확보'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또 2017년까지 재범률을 25.7%로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불량식품 사전예방 안전강화'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안전체감지수 목표를 2017년까지 90%로 높이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일요시사>는 2013년 7월29일자 인터넷판 기사인 '어이없는 불량식품 단속 백태'란 기사에서 경찰의 단속 움직임을 전한 바 있다. 기사에는 식약처가 할 일을 떠맡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가정폭력에 대해 '불안하다'고 밝힌 응답자는 16.2%로 나타났다. 불량식품의 경우는 26.2%가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성범죄와 학교폭력의 사례로 미뤄보면 자체 '목표 달성'을 홍보코자 가정폭력 재범률은 줄어들 것이고, 불량식품을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줄어든 결과로 발표될 것이다.

실제 경찰은 지난해 가정폭력 재범률이 10%대로 자체 목표치(11%)를 넘겼다고 주장했다. 그 부작용으로 신고건수에 비해 입건수가 줄거나 긴급 임시조치가 줄어드는 등의 조짐이 눈에 띈다.

지난해 10월 <국민일보>에 따르면 112로 접수되는 가정폭력 신고(서울경찰청 기준)는 하루 평균 80건이지만 가해자를 형사입건한 경우는 9.6건(12%)에 머물렀다.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으로 <국민일보>는 분석했다. 또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은 2013년과 2014년 각각 5179건, 5394건으로 소폭 오름세였지만 긴급 임시조치 건수는 268건에서 243건으로 줄었다.

관련 통계에는 암수가 있다. 지난 2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 경험자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1.3%에 그쳤다. 전체 응답에서 '부부간 폭력 유경험자'가 절반에 이른 것을 생각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따라서 경찰이 정부 목표를 달성하려면 거꾸로 폭력사범 검거를 줄여야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전국 경찰청
홍보예산 집행

불량식품 근절도 사정은 좋지 않다. 지난해 10월 새정치민주연합 박민수 의원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발행한 '2013 식품소비행태조사 통계보고서'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국민 10명 가운데 1명은 1년 내 식품과 관련한 피해를 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 식품에서도 5년 동안 벌레와 금속 등 이물질 250여건이 검출되면서 불량식품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더불어 불량식품업자는 가정폭력만큼이나 재범률이 높았음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정부다. 식품위생법 사범의 재범률은 1995년 25.3%였고, 2010년에도 24.2%로 큰 변동이 없었다.

4대악 가운데 불량식품 분야는 국민안전처가 아닌 식약처가 설문조사를 맡고 있다. 2014년 상반기 18.2%가 안전하다고 답했으나 하반기엔 25.2%가 같은 답을 했다. '안전하지 않다'는 응답도 2.4%P 낮아졌다. 통계상으로는 4대악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올리고 있는 셈이다.

<일요시사>는 최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경찰청이 집행한 '4대악 관련 홍보비 집행 내역'을 입수했다. 2013년에는 홍보비 편성이 없었지만 2014년 들어 4억9100만원이 신규 책정됐다. 경찰청은 관련 홍보비를 전액 집행했다.

17개 지방청에 차등 배정된 돈은 4억1800만원이었다. 경찰청이 직접 쓴 돈은 7300만원이었다. 홍보비는 리플릿·안내물·플랜카드 제작 및 배부 등에 사용됐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4대악'을 검색하면 수천 건의 기사가 쏟아진다. 각 경찰서는 4대악 간담회를 연 것을 경쟁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홍보비 집행 과정에서 언론에 직접 쓰인 돈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4대악 근절 홍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국민을 향한 것일까. 아니면 정부를 위한 것일까. 소문난 잔칫상에 먹을 것 없는 모습이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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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