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세금 안 내는 거물들 추적 (21)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돈 없다"면서 장로행세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정부는 항상 세수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돈이 없다"면서 만만한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기 일쑤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야 할 사람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고 있다.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까지 정부가 걷지 못한 세금은 40조원에 이른다. <일요시사>는 서울시가 공개한 고액체납자 명단을 토대로 체납액 5억원 이상의 체납자를 추적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21화는 1109억9300만원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다.

시계 애호가라면 한번쯤 들어봄직한 브랜드인 바쉐론 콘스탄틴. 풍문으로는 나폴레옹 1세가 아꼈던 시계로 전해진다. 바쉐론 콘스탄틴 투르비용 시계는 기본 시세가 1억원을 호가하는 명품이다. 서민은 평생 한 번 차보기도 힘든 시계가 지난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경매에 나왔다.

버젓이 명품 구매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이하 최순영)은 바쉐론 콘스탄틴 시계를 2013년까지 소장했다. "돈이 없다"면서 세금은 내지 않았지만 손목엔 다이아몬드가 박힌 시계가 번쩍였다. 그는 이 명품시계를 정부기관에 압류 당했다. 감정가는 1억1000여만원, 5번의 유찰 끝에 최순영의 시계는 5500만원에 낙찰됐다고 전해진다.

최순영은 1999년 10월부터 주민세 등 16건의 세금을 체납했다. 서울시가 징세할 체납액은 36억7700만원이다.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순영은 1996년부터 종합소득세 등 19건의 세금도 내지 않았다. 국세청이 거둘 체납액은 1073억1600만원이다.

최순영은 헌정사상 최초로 특검 수사를 받은 장본인이다. 그의 부인인 이형자씨는 지난 1999년 이른바 '옷로비' 의혹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김대중정부 2년 차에 터진 옷로비 스캔들은 두 차례 검찰 수사와 한 차례 특검, 국회 청문회까지 거쳤지만 그 실체가 규명되지 않았다.


옷로비 의혹의 당사자인 이씨는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 부인에게 고가의 코트를 선물했다. 앞서 남편 최순영은 2000억원대 외화 밀반출 및 횡령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김 장관 내외는 최순영 내외와 같은 교회를 다니는 교인이었다. 때문에 옷 선물이 구명을 위한 로비였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을 '이씨의 자작극'으로 매듭지었다.

최순영은 선친인 최성모 신동아그룹 창업주로부터 가업을 물려받은 재벌 2세다. 1963년 성균관대 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두 차례 회사를 차렸지만 번번이 경영에 실패했다. 하지만 최순영은 선친을 등에 업고 신동아그룹으로 돌아와 1976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전두환정부가 들어서자 최순영은 신군부와 결탁해 서울 한복판에 63빌딩을 세웠다. 대한축구협회장과 전주대학교 이사장, 코스타리카 명예대사, 기독교선교재단 이사장 등을 맡아 인맥을 관리했다. 노태우정부, 김영삼정부를 거치면서 최순영은 '성공한 기업가'로 포장됐다. 하지만 IMF 사태가 터진 1999년 초 위기가 찾아왔다.

최순영은 1996년 5월부터 1997년 6월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4개 은행으로부터 1억8500만달러를 대출받아 편취하고, 이 가운데 1억6500만달러를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로 1999년 2월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미화 밀반출 규모는 2억6000만달러로 늘었다.

서울 36억7700만원 국세청 1073억원
대한생명서 밀반출…해외 곳곳에 은닉

또 최순영은 계열사인 대한생명 회삿돈 1800억원을 1998년 4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불법으로 빼돌리는가 하면 사건 공범인 김모씨를 회유해 죄를 덮어씌우려고 증거 조작을 시도했다. 그룹을 동원한 불법 대출 규모는 1조2000억원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최순영은 용돈처럼 자신의 두 아들에게 월 500만원씩(상여금 연간 600% 별도) 급여를 지급했다. 검찰 수사를 앞두고는 대한생명 주식 50%를 해외 금융기관에 급매해 수사시기를 늦췄다. 외화를 유치하겠다는 명목이었는데 검찰은 봐줬다. 법무부도 마찬가지였다. 최순영은 구속 8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는 '저력'을 보였다.
 


옥중에서 이사회를 움직인 최순영은 대한생명의 주식을 확보하려 애썼다. 그가 해외로 도피시킨 재산은 차고 넘쳤다. 예금보험공사는 지난 2003년 최순영이 홍콩에 은닉한 비자금 30억원을 찾아냈다. 최순영의 은닉재산은 지금껏 정확한 규모가 파악되지 않았다.

최순영은 일찍부터 탈세의 수단으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했다. 1997년 영국령 케이만군도에 GMF란 펀드를 만들어 1억달러를 송금했다. 이 돈을 다시 4개 유령회사로 나눠 빼돌렸다. 최순영이 은닉한 수입에 대해 대한생명은 2001년 293억원의 세금을 사실상 대납했다.

대한생명이 입은 피해는 또 있다. 기독교 선교가 목적인 횃불재단에 이사회 승인 없이 213억9000만원을 무단 제공한 것이다. 기독교 신자인 최순영은 문제의 돈을 '십일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생명은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통해 이 돈을 다시 받아냈다.

현재 횃불재단 이사장은 아내 이씨다. 그의 교회 내 직함은 권사다. 횃불재단은 몇 년째 해외 선교를 목표로 대규모 행사를 기획하는 등 돈 쓰는 일에 열심이다. 최순영 역시 횃불재단이 조성한 돈으로 생계를 영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회 내 그의 직함은 장로다.

아울러 최순영은 학교법인을 통해 거액의 재산을 보전했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전주대학교를 소유한 신동아학원에 200억원 넘게 기부했다. 이사회의 승인은 없었으며, 신앙행위라는 것이 최순영의 주장이다. 최순영은 신동아학원 외에도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이라는 곳의 이사장을 겸임했다.

이처럼 최순영은 대한생명 공금, 외화 밀반출 혐의 등으로 2005년 1월 다시 구속됐다. 법원은 2006년 7월 최순영에게 징역 5년과 추징금 1574억원을 확정 판결했다. 그렇지만 최순영은 건강 악화를 핑계로 형 확정 두 달 만에 병원에 드러누웠다.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2008년 최순영은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다. 추징금 1574억원은 내지 않았다. 최순영은 2011년 참가한 간증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6년 (기도 끝에) 하나님이 나를 풀어주기로 약속했다. 알 수 없는 병이 생겼다. 일주일 이상 주치의와 구치소 의사가 싸웠다. 노무현정부가 끝났다. 이명박정부가 들어와서 날 특별사면 시켰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졌다."

최순영은 가석방 이후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인 한남동 유엔빌리지에 살았다. 사실상 아내 명의로 돼있던 게 세무당국에 적발됐다. 그래도 최순영의 호화 생활은 계속됐다. 양재동 소재 2층짜리 고급 빌라로 거주지를 옮긴 그는 여기저기 간증을 다니며 재기를 확신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

2010년에는 분명 "낼 돈이 없다"라고 했는데 2013년 서울시 38세금징수과가 자택을 수색하자 3000만원이 넘는 귀금속과 현금 다발이 쏟아졌다. 당시 이씨는 "하나님께 드릴 헌금 가져가면 (당신들) 벌 받는다"라고 우겼다. 이씨는 횃불재단에서 월 1500~1800만원의 보수를 지급받았다.

최순영은 얼마 전까지 횃불재단이 연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먹이며, 그가 믿는 '신'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저와 아내에게 김대중정부 때 빼앗긴 63빌딩과 모든 기업을 하나님께서 찾아 주실 것이라고 약속했다. 아내의 기도로 건축을 시작한 63빌딩을 죽기 전에 찾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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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