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지금 '오너 4세시대' 열전

창업주 증손자들 드디어 기지개 '쫘~악'

[일요시사 취재1팀] 이광호 기자 = 국내 기업들이 창립 60주년을 넘기면서 경영권 세대교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창업주의 2세와 3세에 이어 4세들에게도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본격적으로 경영 전면에 나설 채비를 갖춘 재벌가 증손자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재벌들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4세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들이 어느덧 실전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향후 한국경제의 전망을 쥔 이들의 넓어지는 보폭에 재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벌가 자녀들
세대교체 시동 
 
최근 범삼성가 4세 중 처음으로 사내이사가 탄생했다. 조연주 한솔케미칼 기획실장(부사장)이 한솔케미칼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재벌가 4세가 사내이사로서 경영 전면에 등장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 부사장은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인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장손녀다. 조동혁 한솔그룹  명예회장의 1남2녀(연주·희주·현준) 중 장녀이기도 하다. 조 부사장은 한솔그룹 내에서는 3세지만 범삼성가에서는 4세가 된다.
 
1979년생인 조 부사장은 미국 웰즐리대학교를 졸업해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컨설턴트, 글로벌 속옷브랜드인 빅토리아 시크릿의 애널리스트로 근무했다. 한솔케미칼에는 지난해 합류했다. 조 부사장은 지난달 18일 한솔케미칼 주식 60주를 장내 매수했다. 이로써 조 부사장의 보유 주식수는 기존 600주에서 660주로 지분율 0.01% 정도를 보유하게 됐다. 한솔그룹 오너 3세 가운데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오너는 조 부사장이 유일하다.
 

조 부사장은 경영권 승계를 대비하고 있다. 지난달 한솔케미칼은 그린포인트 글로벌 미텔슈탄트 펀드 등과 미국 벤처기업인 니트라이드솔루션에 300만달러 투자를 직접 지휘했다. 지난해에는 OCI의 자회사인 OCI-SNF 지분 50% 인수 작업에도 참여했다. 이번 사내이사 선임으로 인해 경영 보폭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재계에서는 조 부사장의 사내이사 선임으로 한솔그룹 내 계열 분리,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솔그룹은 1991년 고 이 회장의 장녀이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 이인희 고문이 삼성으로부터 분리, 독립해 한솔제지로 사명을 바꾸고 새로 출범했다. 한솔그룹은 조동혁 명예회장이 1대 주주(14.34%)인 한솔케미칼과 동생 조동길 회장이 실권을 쥐고 있는 한솔제지 계열로 나뉜다. 한솔케미칼은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에 편입돼 있지 않은 회사다.
 
유학 마친 4세들 속속 실전 경영수업
고속 승진…이미 전면 나선 황태자도  
 
한솔케미칼은 과산화수소, 라텍스, 제지용 케미칼, 고분자응집제, 차아황산소다, BPO에 이르는 정밀화학분야와 전자소재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솔케미칼의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은 2448억원이다. 이중 영업이익은 184억원이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외아들이자 범삼성가의 장손 이선호 CJ제일제당 사원도 CJ그룹 내 시스템 통합회사 지분을 아버지로부터 넘겨받아 주목을 끈 바 있다. 지난해 CJ그룹 계열 IT서비스 업체인 CJ시스템즈는 헬스, 뷰디스토어 CJ올리브영과 합병을 완료했다. 그러면서 간판도 CJ올리브네트웍스로 바꿨다. 이후 이선호씨는 이 회사의 지분 11.3%를 보유한 3대 주주로 등재됐다.
 
 
이 회장은 CJ시스템즈 2대주주로 31%가 넘는 지분을 보유했는데, 이중 절반인 15.9%를 합병 직전에 이선호씨에게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는 이선호씨의 CJ올리브네트웍스 3대 주주 등극이 승계작업의 일환이라고 보고 있다. CJ올리브네트웍스의 전신인 CJ시스템즈는 계열사 물량을 발판으로 거침없이 성장했다. 2013년 계열사 물량이 2770억원 매출 중 82%에 달했고, 영업이익도 254억원에 웃돌았다. 지주회사인 CJ와 합병을 해도 무방하다고 할 정도로 탄탄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이선호씨는 2013년 지주사인 CJ에 입사해 그룹 미래전략실을 경험하고 이후 CJ제일제당 영업지점과 바이오사업관리팀 등 계열사를 돌며 후계수업을 받는 중이다.

초고속 승진에
지분상속 척척
 
두산그룹도 4세 경영 체제에 돌입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안팎에서는 박용만 회장 3세 시대가 막을 내릴 것으로 보고 있다. 그룹 회장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외부행사에 치중하면서 경영에는 한 발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현재 두산그룹 후계구도상 창업 4세 중 선두에 위치한 인물은 박정원 두산 지주부문 회장 겸 두산건설 회장이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 회장은 그룹 4세 중 유일하게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두산의 지분율도 6.40%로 가장 높다. 그 다음으로 박용곤 회장의 차남인 박지원 두산중공업 부회장 겸 두산 최고운영책임자(COO) 박진원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박 부회장은 두산의 지분율을 4.27% 보유하고 있다. 그룹 총수인 박용만 회장의 지분 4.17%다. 지분으로 봤을 땐 4세 두 명이 더 앞서고 있다.
 
이어 박용성 회장의 장남인 박진원 두산 산업차량·모트롤 부문 사장이 두산 지분을 3.64% 보유하고 있다. 차남인 박석원 두산엔진 부사장은 2.98%을 보유하고 있다. 박용현 이사장의 장남인 박태원 두산건설 사장은 2.69%를 보유 중이다. 그리고 최근 박용만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씨가 광고 관련 개인사업을 접고 오리콤 부사장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경영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박 부사장의 지분율은 1.96%다.
 
독특한 행보로 존재감 부각
승계 대비하면서 보폭 확대
 
박 부사장은 낙과 등 상처가 나 상품가치가 떨어진 과일로 만든 잼인 ‘이런쨈병’을 직접 론칭했다. 오리콤에 따르면 박 부사장의 두 번째 아이템은 3년 전 구상됐다. 당시 박용만 회장은 태풍으로 인한 농가의 피해를 덜어주고자 낙과를 구입해 전 계열사 임직원의 집으로 선물했다. 박 부사장은 “조금 먼저 떨어지거나 나뭇가지에 살짝 스쳤다는 이유로 맛이나 영양 면에서 차이가 없음에도 거래가 되지 않는 유통구조와 편견을 이런쨈병 같은 브랜드를 통해 조금씩 바꾸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쨈병의 수익금 전액은 자연 재해 등으로 피해를 본 농가에 돌려준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미혼모를 방지할 목적으로 콘돔 브랜드 ‘바른생각’을 출시했다. 이 또한 수익금 전액이 사회공헌활동에 사용되고 있다. 그간 박 부사장은 독자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그룹 총수의 장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동생 박재원 두산 인프라코어 부장과 달리 박 부사장은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광고제작 전문업체 빅앤트를 설립했다.
 
이후 박 부사장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두산그룹의 기업 광고를 직접 제작하는 등 그룹 일을 나서서 돕기도 했다. 그러면서 업계에서는 박 부사장이 경영 일선에 뛰어들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박 부사장은 이를 부인해왔다. 하지만 박 부사장이 경영 후계 구도에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도 지금의 독특한 행보가 향후에는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으로 재계는 내다보고 있다. 

슬슬 나타나는

그들의 존재감
 
LG그룹 회장의 아들이자 창업주인 고 구인회 회장의 증손자 구광모 LG상무도 눈에 띈다. 구 상무는 부장 승진 2년 만에 올해 정기임원 인사에서 상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지금껏 LG가 후계구도를 보면 항상 장자들이 그룹을 경영해온 것을 미뤄볼 때 구 상무가 그룹을 이끌 가능성이 높다. 올해 임원 승진은 앞으로의 경영행보에 큰 힘을 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범LG가인 GS그룹에도 4세 행보가 부각되고 있다. GS가 4세들이 주식 담보대출로 자금을 마련해 GS 지주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면서 4세 승계작업에 불을 당겼다. 그 후보는 허준홍 GS칼텍스 상무, 허서홍 GS에너지 가스 프로젝트 추진 부문장, 허원홍 GS건설 상무, 허윤홍 GS건설 상무 등이다.
 
이중 허서홍 부문장은 GS 4세들 중 가장 많은 지분을 끌어올린 인물이다. 허 부문장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장남으로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 3일까지 20차례에 걸쳐 GS 주식 23만4000주를 매입했다. 허 부문장이 5개월여간 사들인 주식 규모는 102억원에 달한다.
 
코오롱그룹도 4세 경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규호 코오롱글로벌 부장도 현장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코오롱인더스트리 경영지원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원만 코오롱 창업주의 증손자인 이 부장은 미국 코넬대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후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차장으로 입사했다. 경북 구미공장과 인천 송도 소재의 코오롱글로벌을 거치고 지난해 4월 부장으로 승진했다. 재계 전문가들은 그룹사 4세들의 존재감이 앞으로 더욱 부각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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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