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통죄 폐지' 별별 신풍속도 천태만상

강남 갔던 제비 동면하던 꽃뱀 "날뛴다"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지난 2월26일, 형법 제241조(간통)가 위헌의 결정에 의해 폐지됐다. 간통에 의한 처벌 조항이 삭제됨으로써 사실혼 관계의 유지 및 해제 방식이 새로운 국면을 맞을 전망이다. 가정 파탄의 주범인 간통과 피해를 입은 배우자간의 소리 없는 움직임을 조사해봤다.

1953년 대한민국 형법 제정과 함께 시행된 간통죄 처벌이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에 의해 폐지됐다. 위헌 심판 9명 중 7명이 간통죄 폐지에 찬성해 형법 241조 항목이 삭제된 것이다. 간통죄 처벌은 형법이 제정된 1953년부터 시행돼 왔지만 실제로 간통의 유래는 1905년 대한제국 법률 제3호 ‘정조법’ 시행으로 볼 수 있다.

헌재 위헌 결정
처벌 조항 삭제

당시 정조법은 유부녀와 상간자에 한해 6개월에서 2년 이하의 징역형이 처벌됐다. 이는 유부남과 상간자는 제외한 처벌로 여성의 성적 사실의무 위반만 불평등하게 적용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인 1953년 형법이 제정되면서 ‘정조법’ 대신 간통죄가 제정됐고 남녀 성차별 없이 간통한 자와 상간자 모두에게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 간통죄는 최대 2년 이하의 징역형의 처벌로 시행돼 왔으며 형법 제정 이래 53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됐다.

간통죄 폐지에 대해 지난 1990년, 1993년, 2001년, 2008년 등 네 차례에 걸쳐 헌법 소원이 제기됐으나 모두 합헌으로 결정났다. 1990년과 1993년에는 재판관 3명만이 위헌 의견을 냈으나 2008년에는 5:4로 간통죄가 존치됐다. 위헌결정을 위해서는 정족수인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다섯 번째 위헌 법률 심판에서는 정족수보다 한 명이 더 많은 7표의 찬성으로 간통죄가 폐지됐으며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것은 국민 기본권 침해’라는 이유를 밝혔다.

이 자리에서 재판관은 간통이 사생활 자유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보충 설명도 이어졌다. 위헌 결정에 따라 간통죄 고소는 즉시 효력을 상실했으며 마지막 합헌 결정 다음날인 2008년 10월31일 이후 간통죄 선고자 5000여명은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게 됐다. 간통한 자와 상간자에게 주어졌던 2년 이하의 징역형 처벌에 대한 형사 보상 청구도 가능하다.


세계적인 간통죄 폐지 추세를 살펴보면 덴마크는 1930년, 스웨덴은 1937년, 일본은 1947년, 노르웨이는 1972년, 프랑스는 1975년, 스위스는 1989년, 아르헨티나는 1995년, 오스트리아는 1996년에 폐지됐다. 미국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29개 주에서 간통죄가 폐지돼 사립탐정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메릴랜드주와 버지니아주를 포함한 21개 주에서 아직까지 간통을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메릴랜드주는 10달러 벌금형의 경범죄로 다루고 있으며 버지니아주는 최대 250달러 벌금형을 부과한다. 미시간주는 간통을 중범죄로 간주, 최대 무기징역 처벌도 가능하다.

간통의 충분한 입증 자료 제출을 위해 현장 출동이 잦았다는 노모(29·경기도 시흥시) 경찰은 “불륜이 행해지는 모텔, 호텔 등에 급습해 간통한 자와 상간자간의 성 관계 장면을 직접 카메라에 담아야만 했다”며 “충분한 입증 자료를 습득하는 일은 열에 한 번꼴이었고 대부분 관계 직전 혹은 직후라 자료 불충분에 의한 불합리한 이혼 사유가 높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연애 브로커 활개

덧붙여 “이제는 형법이 아닌 민법에 의해 간통 이혼이 가능해졌고 이로써 온갖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한 증거 확보로 사회적인 문제가 야기된다”며 “흥신소에 의뢰해 불륜 현장을 덮치는 불법 행위로 인해 역피해를 볼까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민법 제840조(재판상 이혼 원인) 1항을 살펴보면 ‘배우자에 부정한 행위가 있었을 때’로 명시돼 있으며 ‘부정한 행위’는 간통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민간조사업계인 흥신소의 불법 행위가 야기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법조계는 이혼소송에 있어 흥신소 의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직접적인 성교 행위가 아닌 상간자와의 통화 내역과 애정 표현이 담긴 문자메시지 자료만으로도 충분한 부정 행위로 인정한다는 설명이다.

피해 배우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정당한 재산 분할과 위자료 청구, 양육권 및 양육비 지급을 받기 위해서는 직접적인 성교 행위 현장 포착 사진을 근거 자료로 제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상간자를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도 이 근거 자료에 의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간통죄 폐지 이후 흥신소를 찾는 피해 배우자의 문의가 급증했다는 소식이다.


흥신소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간통 문의로 인해 거둬들이는 수입은 일주일 평균 250여만원으로 고액에 해당하지만 현행 위자료 수준인 2000만∼3000만원보다 높은 금액의 판결을 받고자 하는 피해 배우자의 문의가 끊이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물 만난 관련 업종들 분주
흥신소·모텔·란제리 호황
콘돔·피임 업계도 기대감↑

최아롱(33·주부)씨는 “간통죄는 불륜의 예방이 아닌 피해 배우자에게 있어 이혼 시 유리한 수단으로 작용해 왔다”며 “최대한의 위자료를 챙기고 간통죄라는 죄목을 족쇄 채움으로써 명예와 체면을 구기게 하는 복수의 효과로 작용해 온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상 간통죄 폐지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며 “민사로 넘어간 간통에 의한 이혼으로 피해 배우자가 정당한 이혼 보상을 받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헌법재판에서 간통죄 유지 입장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죄 폐지로 “성도덕의 한 축을 허물어 사회 전반에서 성도덕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간통죄가 폐지됨과 동시에 연애커뮤니티사이트 ‘라떼스토리’가 화제다.

이 사이트는 상대 이성의 연령, 신장, 지역, 만남 수위, 학력, 결혼여부 등의 상세 검색이 가능해 기혼자 간의 만남을 야기시킨다는 지적이다. 또한 전 세계 36개국 2500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기혼자소셜데이팅 사이트인 애슐리매디슨과 유사한 국내 사이트 ‘기혼자닷컴’이 오는 25일 오픈을 앞두고 있다.

‘기혼자도 때론 외롭다’는 문구를 내세운 이 사이트는 현재 회원신청 희망자의 이메일 접수를 받고 있으며 추후 홈페이지 오픈 시 회원가입자에게 5만원 상당의 크레딧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현재까지 2300여명이 이메일을 통해 회원 가입을 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기혼자 간의 만남을 주선하는 이 사이트는 프로필 작성 후 성향이 비슷한 파트너를 추천해주는 방식으로 유료 채팅 서비스를 제공한다.

단 여성 기혼자 회원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애슐리매디슨은 지난해 3월 국내에서 사이트를 오픈해 일주일 만에 7만여명의 회원을 모집했으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로 유해사이트로 간주돼 차단된 바 있다.


간통죄가 폐지된 후 흥신소 문의가 급증하고 기혼자만남주선사이트가 등장함과 더불어 콘돔·피임약, 모텔, 이혼전문변호사도 성업을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난 2월26일 오후 콘돔 생산업체인 유니더스와 사후피임약 노레보를 생산하는 현대약품의 주가가 급상승했다. 유니더스는 전 거래일보다 14.92% 오른 3120원, 현대약품은 전 거래일보다 9.74% 오른 2985원에 장을 마감했다. 특히 현대약품의 거래량은 하루 평균 10만여건에서 106만7000여건으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에 위치한 ㅊ모텔 신모 사장은 “불륜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모텔업계에서 대실료를 올리는 게 어떠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아직까지는 손님이 급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중년층들의 이용 빈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륜의 대명사로 불리는 등산의 이용객과 국내외 여행객의 숫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또한 란제리 업계가 호황을 이룬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으나 여성속옷 전문업체인 남영비비안에 문의해본 결과 매출은 큰 변동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0년에 한 매체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 3사의 방영 드라마 96개를 분석한 결과 56개 드라마가 불륜을 소재로 다뤄 전체 드라마 중 58.3%를 차지했다. 이번 위헌 결정에 따라 드라마에서 더 이상 불륜을 볼 수 없게 될 전망이다. 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최고의 화제를 낳았던 KBS 드라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시즌3는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젠 위자료 싸움
변호사 영업전 돌입

그동안 공무원과 공직자는 벌금형 이상의 선고를 받으면 면직돼 직장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간통죄가 폐지됨으로써 간통죄 선고자의 재심에 의한 무죄 선고를 받을 수 있게 된 공무원의 복직 여부가 화두로 떠올랐다. 2008년 10월31일 이후에 간통죄를 선고받은 공무원의 경우에는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확정 받은 후 인사혁신처에 재심을 신청해야 한다. 특히 품위 손상 등의 자체 규정으로 징계를 받은 경우에는 복직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vernur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예계 간통 역사

지난 2월26일, 위헌 결정에 의해 간통죄가 폐지되자 연예인들의 간통 혐의가 다시 물망 위에 떠올랐다. 간통죄가 시행된 이래 최고의 인기를 노렸던 김지미부터 옥소리까지 연예인의 간통에 대해 정리해봤다.

[최무룡-김지미]
1962년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던 영화배우 최무룡과 김지미가 간통죄로 고소당해 최초의 간통 혐의를 받은 연예인이 됐다. 최무룡의 부인 강효실 씨에 의해 간통 혐의로 고소된 두 사람은 일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져야 했다.

[태진아]
트로트가수 태진아가 모 건설회사 사장 부인 김모씨와 불륜을 저질러 간통죄로 구속됐다. 당시 태진아는 김모씨로부터 600만원을 받았다고 진술했고 김모씨는 남편과 이혼을 합의하면서 고소 취하했다. 태진아는 구속 10일만에 석방됐다.

[조규영-정윤희]
70년대 영화계를 이끈 여배우 정윤희가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과 불륜을 저질러 간통죄로 구속됐다. 두 사람은 조 회장이 전 부인에게 위자료 1억원을 건네는 조건으로 풀려났고 같은해 조회장은 정윤희와 재혼했다.


[황수정]
히로뽕 투여 혐의로 구속 기소된 탤런트 황수정이 간통 혐의로 추가 기소돼 마약복용자와 간통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황수정은 상대가 유부남임을 알고 있었으며 성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옥소리]
배우 박철의 부인이었던 옥소리가 팝페라 가수 정씨와 불륜을 저질러 간통 혐의로 고소됐다. 팝페라 가수 정씨는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옥소리는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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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