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등 돌리는 보수 ‘왜?’

박근혜 대통령 만든 노심 뿔났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보수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정부는 두 살이 되었다. 축하받아야 할 기념일이지만 여론의 반응은 심상치 않다. 지난 대선 때부터 꾸준히 지지를 보낸 50세 이상 보수층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기반이 흔들리니 청와대도 다급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쇠처럼 단단할 것만 같던 콘크리트 지지층에 왜 균열이 간 것일까. 노심(老心)이 뿔난 이유를 <일요시사>가 알아봤다.

지난 2년간 나타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마치 동해바다의 파도를 보는 것 같았다. 사건·사고가 있을 때마다 큰 폭으로 요동쳤다. 등락폭이 커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했다. 지지율 변화 그래프를 보면 3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 1년간은 순탄했다. 한국갤럽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 42%를 기록해 다소 낮은 감이 있었지만 꾸준히 상승해 2013년 9월에는 63%로 재임기간 내 최고점을 찍었다. 첫 번째 시기인 ‘상승기’였다.

균열난 지지층
떨어진 지지율

이후부터 2014년 4월까지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정체기를 맞이했다. 큰 상승은 없었지만 꾸준히 5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순항했다. 박근혜호가 순풍을 맞아 ‘안정기’를 보낸 것이다.

그러던 중 2014년 4월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잠기면서 박근혜호도 함께 가라앉기 시작했다. 4월부터 5월 사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내에 지지율이 무려 10%가 빠진 47%를 기록하게 됐다. 그리고 50% 미만으로 내려간 후 다신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하락기’에 접어든 것이다.

하락기 동안 박근혜정부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연말까지는 40%를 유지했지만 2015년에 들어서는 이마저도 지켜내지 못했다. 결국 2015년 1월에는 33%까지 추락했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한국갤럽이 제공하고 JTBC <뉴스룸>이 보도한 자료에 따르면 3년차 1분기 지지율에서 박 대통령은 32%를 기록, 5명의 대통령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내용을 보면 같은 기간 김대중 전 대통령이 49%로 가장 높게, 다음이 이명박 전 대통령으로 44%를, 그 다음이 김영삼 37%, 노무현 33% 순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동안 핵심 지지층으로 불린 50세 이상 노년층 지지자들의 이탈이다. 연령대별 지지율 변화를 보면 모두 2013년 9월 최고점을, 가장 최근인 2015년 1월이 최하점을 나타내고 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60대 이상은 최고가 85%로 막강한 지지율을 보였으나 이후 60%로 약 25%가 빠져나갔다. 50대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74%에서 41%로 33%가 하락했다. 그 외에도 40대는 61%에서 26%로 무려 35%의 지지층이 빠져나간 것으로 조사됐다. 박 대통령은 물론 20대 총선을 준비하는 친박계 입장에서도 간담이 서늘해질만한 조사내용이다.

주목할 만한 점은 하락기 내에서 나타나는 변화다. 세월호 사건으로 추락한 지지율이 조금씩 회복돼 갈 무렵 2014년 연말을 기점으로 다시 한 번 큰 폭으로 하락하게 되는데, 이때 위에서 말한 60·50·40대 지지율 하락이 나머지 30·20대의 지지율 하락폭보다 더욱 크게 나타난 것이다. 이 시점이 ‘연말정산 사태’와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 불거진 시점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무엇보다 국민들은 복지와 경제·세금 관련 공약이 허상에 불과했다는 점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정부에 대해 평가한 많은 전문가들은 노년층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든 결정적 요인으로 복지 논란을 꼽았다.

떨어지는 지지율, 역대 대통령 중 최하
계속되는 거짓말에 보수층도 등 돌려

박 대통령은 ‘노인복지 공약’을 내세워 당선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파격적인 복지 공약을 쏟아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기존 20만원 지급되던 노인 일자리 수당을 40만원으로 올려주겠다던 것이 실상은 2년째 동결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던 노인 빈곤층에게는 1, 2만원이 아쉬운 상황이라 박 대통령의 공약을 믿고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소연한다. 대구의 한 80세 노인은 “대통령의 말을 믿었다. 그런데 나아진 건 아무것도 없다”며 “방값 내고 나면 하루살기도 버겁다”고 삶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서울의 한 70대 노부부도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며 하소연했다.

허상뿐인
노인복지

‘기초연금’ 문제로 들어가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65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에게나 2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대선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이와 관련해 문재인 후보와 날선 공방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당선된 후에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원래 공약에서 소득 하위 70% 조항을 추가함은 물론이고 이마저도 등급을 나눠 10만~20만원 사이로 차등 지급하는 등 기존 방침을 뜯어 고쳤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국가예산 확보 문제로 그런 것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에게 의견을 들어보고 수정안을 제시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치아관련 병원비는 다른 병원비용보다 높게 책정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체감상으로 치아가 좋지 못한 노인들에게 더욱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 대통령은 65세 이상 노인들이라면 누구나 임플란트 비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노인 임플란트’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는 75세로 적용대상이 상향 조정됐다. 이 공약을 지지해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65세에서 75에 사이 노인들은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격이다.

‘증세 없는 복지’ 논란도 문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수많은 복지공약을 내놓으면서 증세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증세로 보이는 여러 정황들이 지난해 연말부터 터져 나오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조세전문가들은 현재의 상황을 두고 ‘공약한 복지정책은 많은데 세수를 확보하기 힘드니 편법으로 증세를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 중 가장 논란이 크게 되고 있는 것은 담뱃값 인상이다.

정부는 2015년 새해에 담뱃값을 2000원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세수확보를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으나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일축했다. 그러나 이후 제기되는 각종 정황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건강 목적보다 증세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서민층의 흡연율이 높아 담배 관련 세금이 올라가면 고소득층보다는 서민 부담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담배는 소득이 낮은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소득역진성’이 심한 품목임에도 불구하고 인상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서민 호주머니 털기’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만기친람
오불관언

그러던 중 발생한 ‘저가 담배’ 논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효과로 작용했다. 최초로 발언을 한 사람은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였다. 그는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참석해 ‘저가 담배’를 검토해 볼 것을 당 정책위에 지시했다. 이를 두고 유 원내대표는 담배가격 인상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가계 부담이 적지 않다는 여론 때문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그럴 것 같으면 왜 담배가격을 인상했냐’며 반발했다.

저가 담배 논란은 국민건강 문제로까지 번졌다. 담배의 가격을 낮추다보면 자연스레 질은 떨어질 것이고 그럼 피우는 국민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는 그동안 정부에서 내세웠던 국민 건강 목적과 완전 대치된다는 점에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국민들은 ‘가난뱅이는 싸구려 담배나 피우다 병들어 죽으라는 것이냐?’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끊임없이 구설수에 올랐다. ‘국정원 댓글 사건’부터 ‘정윤회 문건 파동’ ‘증세없는 복지 논란’ 그리고 ‘세월호 사건’까지. 많은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연일 들려오는 ‘강한’ 소식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 때쯤 피부로 와 닿는 증세와 복지 문제가 터지니 지금과 같이 어려운 상황에 몰리게 된 것이라 분석한다.

저가 담배, 불어터진 국수 등 논란 확산
집권 3년차 쇄신하는 모습 필요 지적


사태가 악화되니 그간 보여준 리더십도 도마 위에 올랐다. 종합해보면 박 대통령은 그간 인사에서는 만기친람(萬機親覽) 식으로, 사고 수습은 오불관언(吾不關焉) 식으로 했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볼 때 박 대통령은 사람을 쓸 때 믿고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써본 사람만 고집하면서 사고를 수습함에 있어서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는 말이다. 결국 국민들이 현 정권의 잦은 인사 실패와 세월호사태 때 보여준 모습들을 두고 사자성어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집권 3년차를 통해 큰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선 산적해 있는 경제 현안들을 풀어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고 잔뜩 힘주고 있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이 대정부 질문에서 한 발언만 봐도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우리 경제가 참 불쌍하다”며 “그런 불어터진 국수 먹고도 힘을 차리는구나. (중략) 경제활성화를 위한 법안들도 좀 통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에서 협조해 달라는 말이었다.

이러한 대통령의 발언에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좋지 못한 시선을 보낸다. 발언이 있은 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이해찬 의원은 “대통령께서 퉁퉁 불은 국수를 먹게 된 경제가 불쌍하다고 했는데 그건 국가원수의 언어가 아니다”며 쓴소리를 했다. 이어서 그는 “한 사람의 언어는 그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과 사고 능력을 보여주는데 대통령이 사돈 남 말하듯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말하면 안 된다”며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같은 당 소속인 박영선 의원도 “엉터리 같은 대통령 만나 고생하는 건 아닌지…. 우리 모두가 불쌍하다”고 말해 발언이 부적절했음을 지적했다.

앞으로 3년
새국면 필요

‘원박(원조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새누리당 이혜훈 전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의 발언보다 대통령이 가진 부동산3법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잘못된 것임을 지적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이 전 최고의원은 “박 대통령의 인식은 부동산3법이 경제를 살리는 묘약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그렇게 보기 어렵다”며 “건설경기가 전체를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고,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있는 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은 박근혜정부에게 소통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있다. 그들은 현재 정권이 경제활성화에 주력하고 있지만 당장 소통을 통한 범국민적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경제활성화 정책들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그 효과가 미미해 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계에는 ‘박’과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사용된다. ‘친박’부터 ‘멀박’ ‘탈박’ 등 이 용어들은 박 대통령과 얼마나 정치적 거리가 가까운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최근 언론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박의 추이를 알 수 있다. 갈수록 친박보단 멀박, 탈박 등 지척의 거리가 아닌 멀어졌다는 의미의 용어가 많이 사용된다. 이는 그만큼 박 대통령을 떠나간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조차 점점 멀박의 대열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대통령 입장에서 고민해 봐야 할 부분으로 보인다.

2012년 당시 박 후보자가 당선된 후 미국의 ABC뉴스는 승리 요인에 대해 ‘한국 경제성장 동력을 불러일으킨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외신의 눈에도 박 대통령은 그 당시 이뤄낸 눈부신 경제성장을 그리워하는 세대들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함께 경제성장을 일궈낸 현재 50·60대 지지층이 더 이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공약 사항을 이행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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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