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유족이 밝힌 ‘당구왕’ 김경률 사망 수수께끼

“절대 자살할 사람 아니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쓰리쿠션 세계를 주름잡았던 당구왕 김경률. 그는 한때 세계랭킹 2위로 한국 당구를 국제무대로 끌어올렸다. 재미난 쇼맨십과 환한 미소로 팬들에게 ‘동네 형’ 같은 당구 선수. 그런 그가 생일을 앞둔 지난 2월22일 갑작스럽게 숨졌다. 그의 사망 소식에 자살, 실족사, 타살 등 의혹이 쏟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그의 빈소에 찾아가 유족과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2월23일 밤 11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고양시 화정동에 있는 명지병원. 늦은 시간이지만, 빈소는 앉을 곳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다. 화환은 너무 많아 놔둘 곳이 없어 리본만 떼어 벽에 걸려 있다. 빈소를 차린 지 하루도 되지 않았지만, 방문객은 벌써 347명. 조의금 상자는 다른 조문객들이 조의금을 집어넣기 힘들 만큼 꽉 차 있다. 고인의 세 살 난 딸은 뽀로로를 보며 아무것도 모른 채 물개박수를 치며 춤을 추고 있다.
 
수수께끼1
사건의 전말
 
고인은 지난 2월22일 오후 3시 자신의 어머니 집인 일산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0층이며 경찰은 그가 베란다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고 타살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고인이 숨질 당시 어머니, 누나와 함께 있었다. 
 
24일 어머니는 고인이 베란다를 청소하며, 고장 난 방충망을 고치다가 떨어진 것이라고 진술했다. 어머니는 이날 “추우니깐 고인에게 신발을 신고 청소를 하라고 말했지만, 양말을 신고 나갔다”며 “원래 집 방충망이 굉장히 틀어져있다. 사건 당시 딸(고인의 누나)과 잠을 잤다”고 진술했다.
 

고인은 베란다를 청소하며 어머니가 직접 고치기 힘든 틀어진 방충망을 고치기 위해 난간에 올라갔다. 당시 고인은 방충망을 고치려고 힘을 주었다가 미끄러져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머니가 사건이 일어난 뒤 3일 만에 진술한 이유에 대해 유족 측은 “22일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는 어머니한테 알리지 않았다. 고인의 누님은 ‘어머니가 심장이 좋지 않다. 이 사실을 아셨다간 큰일 나신다’고 말해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그래서 어머니가 고인이 숨졌다는 사실을 안 것은 24일이다. 이날 어머니는 오열하시며 진술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나마 그 다음날 안정을 되찾으시고 최종진술하셨다”고 말했다.
 
수수께끼2
자살 아닌 이유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경률이 어떻게 된 거예요?’ ‘정말 자살한 게 맞나요?’ ‘뉴스에서 자살이라고 하던데’ 등의 말을 주고받았다. 
 
경찰은 사건이 일어날 당시 자살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는 ‘김경률 자살’이라는 내용의 추측성 기사들이 쏟아졌다. 고인의 20년 친구 김씨는 “대부분 언론이 잘못 보도하고 있다”고 말하며, “특히 자살이라고 성급하게 몰고 간 기사 때문에 유가족과 고인을 사랑한 많은 분들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많은 기사에서 고인의 사망 장소를 자택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자택이 아니라 일산에 있는 어머니 집이며, 사고가 발생한 층은 11층이 아니라 20층이다. 사고 발생 장소도 선수의 방이 아니라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이다. 
 

베란다서 떨어진 사인 두고 의문 제기
경찰 자살에 무게…가족은 사고사 주장
 
경찰과 언론은 김씨가 자살했다고 추정하면서 이유로 경제적인 어려움과 성적 부진을 꼽았다. 하지만 유족들과 지인들은 이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씨가 자살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상주로 있는 작은아버지는 “23일이 경률이 생일이다. 22일 이날 모인 가족들이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를 5번이나 불렀다”며 “생때같은 세 살 난 자식을 두고 유서 한 장 안 남기고 자살한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경찰과 함께 경률이 시신을 확인했다. 시신이 하반신을 제외하고는 다 깨끗했다”고 말하며 “상식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이 방충망을 열고 뛰어내리지, 열지도 않고 방충망에 뛰어드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작은아버지는 경찰과 언론이 조사하고 의심한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적 문제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에 이르게 했다는 식으로 몰고 가는 것에 울분을 토했다. 
 
작은아버지는 “경률이에 대해 인터넷에는 자살 이야기밖에 없다”며 “나는 그놈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켜본 경률이는 그런 일로 인생 포기할 놈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수수께끼3
뇌 수술 후유증?
 
고인의 친구 김씨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 “경률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당구선수다. 돈도 잘 벌며, 어려운 놈 절대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오히려 경률이가 자신이 지금까지 투자한 당구장이나 사업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에 대해 누님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또한 고인은 지난 2월 9일 미국 당구 관련 업체인 이완 시모니스 후원계약을 체결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자살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지난 2013년 고인은 당구 경기에 방해됐던 눈 떨림 현상을 고치기 위해 뇌신경 수술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이로 인한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한 점을 비관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누구도 경률이의 성적에 신경 쓰지 않았다. 본인도 신경을 잘 안 썼다”며 “마음먹고 다시 당구를 치려는 생각에서 사업을 정리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께끼4

경제적인 문제?
 
밤 10시면 돌아가야 할 상조 도우미 아주머니들은 새벽 2시가 돼도 조문객 접대에 정신이 없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지금까지 상조 일 하면서 이렇게 늦게까지 조문객들이 찾아온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도우미 아주머니는 새벽 3시가 돼서야 돌아갔다. 
 
보통 장례는 3일 장이지만 고인의 장례는 5일 장으로 치러졌다. 유족들은 3일 장으로 하려고 했으나 당구연맹과 관계자들은 “5일 장을 해야 한다”며 나섰다고 한다. 고인은 지난 2월23일부터 26일까지 장례를 치렀다. 유족들은 장례기간 방명록에 이름을 작성한 조문객 수는 1200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여기저기서 그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함께 선수 생활한 관계자는 “향만 다섯 번째 피웠다”며 “나를 보고 처음으로 웃어준 친구였다. 비록 형이지만 이 친구 덕분에 사람들 사이에서 녹아드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생일 하루 전에…극단적인 선택?
“베란다 청소…방충망 고치다 추락”
 

조문객 중에는 혼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가는 사람도 꽤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고인의 팬이거나 함께 당구를 쳤던 아마추어급 당구선수들이다. 
 
김씨는 “고인은 당구에서 말하는 최고의 샷이었다”며 “그는 프로였지만 언제나 동네 형처럼 일반인이든 아마추어든 스스럼없이 함께했다”고 말했다. 언제나 우승비는 밥값으로 다 쓴다고도 했다.
 
당구인들 사이에서는 ‘당구는 싸가지가 없어야 잘 친다’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지인 대부분 그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되는 친구라고 치켜세웠다. 
 
그 일화로 현재 그가 쓰고 있는 당구 용품을 예로 들었다. 그는 국산 브랜드만 고집했다. 세계적인 당구 선수인 그는 이미 해외 여러 당구용품 회사에서 전속 계약 제의를 받았다. 이에 김씨는 “고인은 국산 브랜드에 애착이 있었다. 이런 제의가 들어오면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선수를 소개해줬다”고 밝혔다. 덧붙여 “돈 때문에 이상한 생각할 그런 친구가 아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했다. 
 
<min1330@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