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호위무사' 그들은 누구인가?

잘못된 애국이 낳은 ‘백색 테러’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지난 9일 서울고등법원 청사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출두했다. 불법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원 전 원장이 항소심 선거 공판에 출석하기 위함이었다. 많은 사진 기자들이 동행해 그의 모습을 찍었다. 공개된 사진에는 원 전 원장과 대여섯 명의 군복 입은 남성들이 함께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60∼70대로 보이는 이들은 보수단체인 ‘애국기동단’ 회원들이었다.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사뭇 긴장감마저 불러일으킨 그들의 모습은 마치 고대 호위무사를 연상시켰다. 그날 법정 앞에는 같은 복장을 한 20여명이 추가로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곤 법정 앞에서 서로 거수경례를 주고받더니 법정 안으로 들어가 재판을 지켜봤다.

아스팔트 보수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보수단체가 존재한다. 이들은 이번 원 전 원장의 사례처럼 보수정당의 주요 인사들을 호위하기도 하지만 폭력과 폭언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들은 호위무사이기 전에 행동대장이다.

2009년 6월16일 애국기동단 소속 해병대구국결사대와 NIC 회원 30여명은 변함없이 빨간 베레모를 쓰고 어깨에 가스총을 맨 채 덕수궁 분향소 앞을 막고 있던 경찰에게 달려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물론 분향소를 지키려는 시민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보수회원들 사이에 일대 몸싸움이 펼쳐졌다. 이 과정에서 애국기동단 회원 일부는 공중으로 가스총을 발포하는 과격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현장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은 “전직 대통령이 이북에 가서 돈을 퍼줬기 때문에 북한이 지금 핵을 쏘고 있다”며 “노무현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그를 왜 추모하는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노무현 알바들이다”라고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또한 결의문을 통해 “좌익 사냥을 하며 우리가 즐기고 있어야 할 이 때, 왜 우리가 이곳에 나와야 하는가”라며 “공권력을 앞장 세워 깽판 세력과 싸워야 할 우리가 이러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의문 낭독이 끝난 후 보수단체 회원 3명은 태극기 위에 혈서로 ‘척결 좌파 세력’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2011년 8월경 정동영 당시 민주당 의원은 광복절에 반값등록금 집회에 참여했다가 한 보수단체 소속 여성으로부터 욕설과 폭행을 당했다. 그때 현장의 모습이 녹화된 동영상이 세상에 공개됐는데, 동영상 속에는 한 50대 여성이 정 의원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며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을 뱉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건이 있은 후 문제의 여성이 소속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의 대표가 개인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머리채를 잡혀 봉변당한 사건을 놓고 백색테러 운운함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며 “얼굴에 상처라도 났는가? 머리가 깨졌는가? 서울 한복판을 폭력과 테러로 얼룩지게 한 장본인들은 바로 거리에 나와 정치선동을 일삼는 민주당과 민노당 국회의원들이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부상을 당한 쪽은 머리채를 잡은 여성이다. 현장에서 남성들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한 뒤 119구급차에 실려 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목격자의 말을 종합해보면 폭언을 한 여성은 갑자기 허리를 다쳤다며 119를 불러 사라졌을 뿐 폭행을 당한 사실은 일체 없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한 극우단체 회원은 4·19혁명 관련 단체 회원들의 천막 농성장에 난입해 커터칼로 현수막을 찢는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그는 “상식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논리와 행동을 소위 진보를 자처하는 좌파들이 하는데 이성적으로 대응해선 아무 것도 못한다”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2014년 9월28일에는 ‘서북청년단’(이하 서청)이란 이름의 극우세력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매단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고 시도하다 저지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 후 서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강력한 행동을 하는 우익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중략) 최근 계기는 세월호다. 유족들 뒤에는 특정 지역 단체와 종북 좌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폭언과 폭력…안되면 종북몰이까지
전방위 고소…여권과 커넥션 의혹도

2015년 2월2일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 당사 앞에는 주로 60∼70대로 보이는 노인 30여명이 모여 새정치연합 권은희 의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권은희를 즉각 처벌하라”며 “광주의 딸로 태어나 거짓 인생을 산 권은희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인생을 망친 원흉”이라고 주장했다. 연설을 맡은 사람은 이어서 새정치연합으로 화살을 돌려 “(새정치연합) 당내에는 종북세력이 있다”며 “만약 박근혜 대신 문재인이 대통령이 됐다면 이석기 같은 북한추종자들이 대법원장 자리에 앉았을 것이 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흔히 ‘아스팔트 보수’라 불린다. 거리 위에서 과격한 행위와 욕설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가는 이들의 행위를 두고 “공권력이 자신들을 비호한다는 판단 때문인지 공격적이고 포악하게 행동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들 조직의 공통점은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는 점이다. 과격보수단체의 고위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시국이 옛날 해방 공간과 비슷하다. 이걸 다잡기 위해선 좀 과격한 단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자신들을 독일의 극우단체인 ‘네오나치’에 비유해 꼭 필요한 존재들이라 역설했다. 그리고 자신들이 법이나 국가권력으로 안되는 일을 나라를 위해 해줄 수 있다며 그로 인해 국가가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념이 다르다고 상대방에게 폭력과 폭언을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일까. 그것도 근거 없는 종북몰이로 무고한 사람을 마녀사냥하는 것이라면. 정치계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이들 조직의 행위를 흔히 ‘백색테러’라 명명한다. 백색이라 해도 이들의 행위는 테러일 뿐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단체들과 당국 간의 커넥션 의혹을 제기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정윤회 조사 등 주요 사건이 있으면 보수단체 회원의 고소장이 남발되는 것은 물론 이렇게 접수된 고소장이 다른 것보다 빨리 배당된다는 점을 이유로 든다. 이에 대해 중앙지검 관계자는 한 언론을 통해 “대부분의 사건은 당일 배당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며 “밖에서는 의미를 부여할지 모르지만, 며칠이 걸리는지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축했다.


고소장 남발

전문가들은 백색테러가 만연하는 이 시점에 진정한 보수주의의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단국대학교의 한 교수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 “전통적 보수주의가 오히려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것에 기초한 겸허함·신중함”이라고 말한다.

즉 관용과 베풂 같은 인간적 덕목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 본래적 보수주의의 뜻이라는 것이다. 칼럼은 “현대 자본주의가 불러일으킨 물신주의, 이기주의 등에 대해 가장 강력한 비판을 가하는 집단 중 하나가 오히려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인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고 설명한다.
 

<chm@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