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 톱스타들 한국행 기피하는 이유

한국만 왔다하면 ‘악~악~악!’

세계적인 골프 스타들의 ‘한국 피하기’가 이어지고 있다. 상금이 적어서? 선수에 대한 대우가 부족해서?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형 사건·사고와 북한과의 관계에서 오는 안전불감증이 가장 큰 이유다. 개중에는 한국 갤러리와의 불화로 발길을 끊은 것으로 보이는 선수들도 있다.

갤러리 문화와 국가 안전 이미지가 관건
‘전설’ 아놀드 파머가 겪은 ‘무주 악몽’

챔피언십 참가 취소, 북한 핵 때문에…
숙소 근처서 전차훈련, 발 묶인 선수들

날씨가 갑자기 나빠졌다. 아널드 파머는 파일럿에게 괜찮겠느냐고 물었는데 문제없다는 답을 들었다. 파머는 그래도 불안했다. 헬리콥터는 안개 속으로 비행을 시작했다.
파머는 비행전문가다. 비행기, 헬리콥터 조종면허가 있다. 그가 바짝 긴장해서 보니 헬기 전자장비 계기판 바늘이 난리였다. 조종사나 헬기 둘 중 하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얼마 후 헬기가 구름 밖으로 나왔을 때 엄청난 바위산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충돌까지 바로 몇 야드 차이에 불과했다. 헬기에 탄 사람들 모두 숨을 멈췄다. 파일럿이 기수를 돌려 겨우 충돌을 면할 수 있었다.

소음 스트레스 받고
스코어 카드‘깜빡’

아널드 파머가 자서전에 쓴 내용이다. 1989년 골프장 설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러 서울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산악지형의 골프장 부지에 다녀오던 길이었다고 한다. 아마 그가 설계한 무주골프장에서 생긴 일이었던 것 같다. 파머는 자신의 인생의 가장 위험한 순간 중 하나라고 썼다.
파머는 한해 전인 1988년에도 한국에 왔다. 소아마비 구제기금 명예회장의 자격으로 서울 패럴림픽을 지원하기 위해 뉴코리아골프장에서 조니 밀러, 레이먼드 플로이드, 헤일 어윈과 함께 스킨스게임도 벌였다. 그는 여행을 많이 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89년 헬기 사건 이후 한국에 왔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카리 웹도 한국에 잘 안 온다. 1996년 제일모직 로즈오픈 참석차 한국에 왔었다. 당시 웹은 22살에 LPGA 상금랭킹 1위인 젊고 매력적인 최고스타였다. 그를 가까이서 보려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갤러리 문화가 좋지 않았다.
갤러리 사진과 소음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그는 스코어카드에 사인을 하지 않아 실격됐다. 사인을 실수로 잊어버렸다고 하는데 일부러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선수들이 미디어에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는다.
웹은 한달 후 삼성월드챔피언십에 또 나왔다. 대회장은 경기도 포천의 일동레이크골프장이었다. 그 한달 동안 갤러리 문화는 좋아지지 않았다. 웹은 힘든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 다른 악몽이 있었다. 숙소가 골프장과 매우 먼 워커힐호텔이었는데 전차부대가 훈련을 하는 바람에 차가 묶였다. 전쟁이 나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고,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고 전해진다. 그 후 웹은 15년 동안 한국에 오지 않다가 2011년 하나외환챔피언십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그 당시 웹은 “일을 겪은 후 한동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대회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생각에 오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잊었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가 미국 메이저대회 일정과 비슷해 올 수 없었고, 하나외환챔피언십은 스폰서와 관련 있는 일본 대회 일정 때문에 출전할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는 일정이 2주가량 앞당겨져 오게 됐다”라고 답했다. 줄여서 얘기하면 ‘이젠 아무 감정이 없다’는 얘기다. 이 말대로라면 그 이후엔 한국 대회에 왔어야 한다. 그러나 오지 않았다. 아마도 앙금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웹이 한국에 온 2011년은 LPGA투어 대회가 확 줄어든 암흑기 같은 해였다. 좋아하는 대회 싫어하는 대회 골라 나올 형편이 아니었다. 사정이 나아지자 다시 ‘악몽의 한국’에 발길을 끊은 것으로 해석된다.
세계랭킹 1위 스테이시 루이스도 지난해 하나외환챔피언십에 불참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왔는데 이후 2년 연속 불참이다. 하나외환챔피언십은 LPGA 선수들이 나오고 싶어 하는 대회다. 한류 때문에 서양에도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졌고 다른 아시아 대회에 비해 잘 조직된 대회다.
선수에 대한 대우가 좋고 상금이 200만달러로 많은 편이며 인천공항 바로 옆인 스카이72골프장에서 열려 이동시간도 짧다. 그러나 루이스는 중국, 말레이시아 등의 대회에 참가하면서도 한국에는 안 온다.
두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루이스는 하나외환챔피언십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09년부터 차례로 37등, 12등, 50등, 33등을 했다. 69명이 나오던 대회이니 중하위권이었다. 성적이 계속 나빠 오지 않는다가 첫째다.
둘째는 갤러리 에티켓이다. 성질 있는 루이스가 한국 대회에서 갤러리와 갈등을 겪었을 수 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겪어 다시 나오지 않기로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번째가 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니면 두 가지 다이거나.


선수들 플레이 두고
실시간 내기하는 팬들

루이스는 화끈한 선수다. 코스가 어렵거나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피해 다니는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지난해 중국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지만 일부러 그 대회에 다시 나간 인파이팅이 있는 선수다.
한국을 외면하는 골프스타들이 더러 있다. 아널드 파머처럼 안전에 위협을 느낀 경우가 있다. 세월호 사고 등의 대형 사건에서 보듯 아직도 한국에서는 안전불감증이 남아 있는 듯하다. 골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안전을 위해서 바로 잡아야 한다.
북한 핵을 두려워하는 선수도 있다. 알바로 키로스 등이 북핵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발렌타인챔피언십 참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더 큰 이유는 갤러리 에티켓 문제다. 카리 웹 뿐 아니라 세르히오 가르시아, 리 웨스트우드, 안니카 소렌스탐, 어니 엘스 등 여러 선수가 한국 대회에 참가했다가 갤러리에 실망을 했다.
최나연은 “어떤 선수가 벙커에 빠졌는데 한국 팬들이 파세이브를 하느냐 못하느냐를 두고 내기를 하더라.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선수였지만 대충 분위기를 짐작하는 것 같더라. 아주 창피했다”고 말했다.
루이스는 세계랭킹 1위다. 현재 여성선수 중 최고로 잘 치는 선수다. 그냥 1등도 아니다. 척추에 철심을 박고 최고가 된 스포츠 선수는 루이스 말고는 없다. 가끔 성질을 내긴 하지만 허리 핸디캡을 이겨낸 그의 투철한 의지를 보는 것 같아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하나외환챔피언십에 세계랭킹 10위 중 빠진 선수는 루이스와 웹뿐이다. 이런 선수가 한국에 오지 않는 것은 한국 팬들의 손해다. 명연주자들 사이에서 어떤 나라의 관객의 에티켓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면 그 나라가 블랙리스트에 오른다고 한다. 뛰어난 아티스트가 한국을 외면하면 국내 음악팬의 손해이고 세계적 명화가 한국에 전시를 하지 않으면 미술 애호가의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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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