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위장 계열사’ 실태

중소기업인 척…일감 가로채고 나몰라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위장계열사를 이용해 중소기업의 일감을 가로채오던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19개 기업이 설립해 우회 경영해 온 곳으로 드러난 중소기업은 26개에 이른다. 이들은 2년간 1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사업 물량을 따냈다.

중소기업청이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시장에 참여 중인 3만92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해 삼표, 유진기업, 케이씨씨홀딩스, 썅용양회공업 등 19개 기업이 설립한 26개 위장중소기업을 적발했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26개 '무늬만' 중소기업이 지난 2년간 공공입찰에서 따낸 금액만 1014억원(2013년 474억원, 2014년 540억원)에 이른다.

중기청장이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하면 정부 등 공공기관의 조달계약 입찰 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참여할 수 없다. 현재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으로 지정돼 있는 제품은 가방, 책상, 의자 등 207개 제품이다.

케이씨씨홀딩스
476억원 '꿀꺽'

업종별 위장 중소기업의 분포는 소프트웨어 개발 업종이 26개 중 9개(35%)로 가장 많았고, 레미콘(27%), 전기전자(15%), 아스콘(8%), 기계(8%) 등의 순이었다. 주요 위장 방식으로는 지분을 30% 이상 보유하면서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경우가 31%로 가장 많았으며, 중소기업의 납입자본금을 초과하는 금액을 지급보증하거나 모기업 주요 임원이 위장 중기의 대표나 임원을 겸임하는 사례도 많았다.

기업별로 보면 가장 많은 금액의 납품계약을 따낸 곳은 케이씨씨홀딩스다. 케이씨씨홀딩스는 IT전문기업 케이씨씨정보통신에서 인적분할된 지주회사로 중견기업이다. KCC그룹과는 별개 회사다. 케이씨씨정보통신은 매년 시스템통합사업과 하드웨어 납품 등을 통해 공공 조달시장에서 수백억원대 계약 실적을 올렸지만 2012년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으로 20억원 미만의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케이씨씨홀딩스는 시스원을 통해 475억5000만원의 납품계약을 따냈다. 시스원 지분 19.92%를 보유해최대주주에 올라 있는 이상훈 대표이사는 케이씨씨홀딩스의 지분 8.25%를 보유한 등기임원이기도 하다. 시스원 2대 주주(11.78%)인 이주용 전 케이씨씨정보통신 회장도 케이씨씨홀딩스의 지분 3.67%를 보유하고 있다. 이 대표이사는 이 전 회장의 아들이다.

시스원와 케이씨씨홀딩스와의 관계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서 더 자세하게 드러난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시스원은 케이씨씨정보통신을 포함해 관계사인 ㈜시스웨어, 케이씨씨시큐리티, 케이씨씨모터스, 시스원테크놀러지, 케이씨씨홀딩스 등을 통해 지난해 전체 매출액 603억원의 5.63%에 해당하는 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12년에는 전체 매출액 475억원 중 42억원(8.84%)이 관계사와의 거래를 통해 나왔다. 관계사들도 시스원을 통해 2012년과 2013년 각각 10억원, 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케이씨씨홀딩스에 이어 위장 납품 금액 규모 2위에 오른 삼표는 가장 많은 위장 중소기업이 적발됐다. 삼표는 지난 2013년에도 4개의 위장 중소기업이 적발되면서 논란이 됐지만 1년 사이 오히려 위장 중소기업 수를 늘렸다. 적발된 회사는 알엠씨, 유니콘(대전공장, 공주공장), 남동레미콘(광주공장, 연천공장) 등 5개사다. 이 회사들은 모두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 일가가 최대 출자자로 참여해 지배력을 갖고 있다.

먼저 골재, 레미콘 및 콘크리트제품의 제조와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는 알엠씨의 최대주주는 정 회장의 아들 정대현(70%) 삼표 전무다. 나머지 30%의 지분도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다. 유니콘도 정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으며 남동레미콘은 정 전무가 주식 전량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유니콘은 555억원의 금융권 차입금에 대해 삼표로부터 지급보증을 지원받고 있다. 또한 알엠씨는 삼표가 아니면 종속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다. 알엠씨는 2012년 매출의 48%가량을 삼표 계열사를 통해 올렸으며 2011년에는 50%가 넘는 매출이 삼표 계열사에서 나왔다.

삼표는 이들 중소기업을 통해 252억원어치의 레미콘 물량을 공공시장에서 따냈다. 삼표는 지난 2013년에도 알엠씨 청원공장, 건양레미콘, 보명레미콘, 세종레미콘 등 4개의 위장 중소기업이 중소기업청에 의해 적발된 바 있다.

19개 기업 26개 중기 운영하다 적발
2년 1000억대 부당이득…과태료 0원

2013년 삼표와 함께 위장 중소기업을 통해 공공조달시장 낙찰을 받았다가 적발된 전과가 있는 유진기업도 관계사인 남부산업의 화성공장과 아산공장 두 곳을 통해 88억원5000만원어치의 아스콘 일감을 수주했다.


남부산업의 지분 구조를 보면 유경선 유진그룹 회장이 60%를 보유해 최대주주 자리에 올라 있으며 유 회장의 셋째 동생인 유창수 유진그룹 부회장과 넷째 동생인 유순태 EM미디어 대표가 각각 2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유 회장 일가가 모든 지분을 갖고 있다.
 

이어 쌍용양회공업의 ㈜화창산업(59억9000만원), 고려노벨화약의 ㈜산양(49억6000만원) 등의 순으로 규모가 컸다.

쌍용양회공업은 지난 2013년 국회 산업통상자원 위원회 추미애 의원이 입수한 쌍용레미콘 평택공장의 임대차 계약서에 따르면 화창레미콘과 광양레미콘, 서군레미콘 등 6곳을 통해 공공 조달시장에 참여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한화그룹과 함께 국내 산업용 화약시장을 복점하고 있는 고려노벨화약은 산양의 지분 49%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51%의 지분은 최칠관 고려노벨화약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하고 있다. 최칠관 회장은 고려노벨화약 지분 3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대 주주(30%)는 최 회장의 아들 최경훈 사장. 그 뒤를 최 회장의 부인 차양자씨(20%), 동생 최팔관씨(15%)가 잇고 있다. 최씨는 산양의 대표이사다.

위장 중소기업 2곳이 적발된 팅크웨어와 다우데이타는 각각 3억6000만원, 55억7000만원의 입찰을 따냈다.

지분 갖거나
임원 하거나

팅크웨어는 비글과 파워보이스를 통해 공공 입찰시장에 참여했다. 팅크웨어는 비글의 지분 48.5%를, 파워보이스의 지분 12.5%를 보유하고 있다. 팅크웨어 등기임원인 강정규씨는 비글과 파워보이스 감사를 겸직하고 있으며 역시 등기임원인 김대현씨는 양사 사내이사에 올라 있다.

다우데이타는 미래테크놀로지와 다우인큐브가 위장 중소기업으로 조사됐다. 다우데이타는 미래테크놀로지 지분 48%와 다우인큐브 지분 49.32%를 보유 중이다.

나머지 12곳의 기업은 위장 중소기업 1곳을 통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8억9000만원까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입찰에 참여했다.

오텍의 오텍캐리어냉장유한회사(8억9000만원), 한글과컴퓨터의 MDS테크놀러지(7억4000만원), 멜파스의 엔엘티테크(4억2000만원), 건설화학공업의 강남아이텍(3억5000만원), 네패스의 네패스엘이디(3억1000만원), 서울가든의 ㈜비지에이치코리아(1억6000만원), 대동공업의 한국체인공업(6000만원), 이케이맨파워의 클루엠(1000만원) 등이다. 유텍솔루션의 인지모바일솔루션과 고아정공의 코아룩스, 대유에이텍의 대유네트웍스, 에넥스의 ㈜엔텍의 납품 규모는 1000만원 미만이다.

이들 회사는 등기임원이 위장 중소기업 임원을 겸하거나 모기업이 최대지분을 보유하는 등의 방법으로 위장 중소기업을 지배해 왔다.

일부 기업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특히 쌍용양회는 해명자료까지 발표하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쌍용양회는 중소기업청의 '쌍용양회가 위장 중소기업인 화창산업을 내세워 60억원에 이르는 정부 공공입찰 프로젝트를 가로챘다'는 주장에 대해 "화창산업은 중소기업청에서 언급한 여타 회사들과 달리 쌍용양회의 지분참여, 임원겸임 등이 전혀 없는 별개의 독립회사"라며 "쌍용양회는 단지 화창에 공장부지를 임대해 주었을 뿐이다"고 반박했다.


보도자료 발표
"억울하다" 해명

또한 "시멘트 제조회사인 쌍용양회는 레미콘 회사인 화창산업과 업종이 중복되지 않는 경우여서 화창은 공공조달 시장을 통해 적법하게 납품했다"며 "중소기업청에서 지적한 60억원을 모두 법 위반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실관계에 어긋나는 잘못된 보도자료 배포로 인해 회사 이미지 훼손과 신인도 하락 등 회복불능의 피해를 입었다"며 "이와 관련해 명예훼손 등에 따른 민사 및 행정소송 등 법적 구제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다른 기업과 달리 쌍용양회공업의 전자공시 보고서에서는 화창산업과의 연관 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계열회사 등의 현황' '주주에 관한 사항' '특수관계자와의 거래 내역' 등에서도 화창산업이라는 기업은 등장하지 않는다. 화창산업 또한 비상장회사이기 때문에 상세 내역을 확인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글과컴퓨터 측도 공식입장을 밝히고 해명에 나섰다. MDS테크놀로지를 통해 매출을 올려왔다는 의혹을 산 한글과컴퓨터는 "2012년 1월 중견기업이 된 이후 20억원 미만의 공공사업에는 전혀 참여하고 있지 않다"며 "중소기업으로 위장해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공공조달 입찰에 참여한 사실이 없다"고 전했다.

업체들 "법적대응" 강력 반발
솜방망이 처벌로 악순환 반복


또 "한컴이 지난해 5월23일 인수한 MDS테크놀로지가 기존에 진행해오던 공공조달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오던 과정에서 법률개정에 따른 중견기업인 한컴과의 관계로 인해 '중소기업자간 경쟁시장 공공입찰 제한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며 "MDS테크놀로지가 이를 2개월 가량 인지하지 못한 채 진행한 업무로 인해 생긴 오해"라고 해명했다.

팅크웨어 측도 "비글과 파워보이스의 연구개발 부문에 투자한 것이지 두 곳을 통해 공공입찰을 하려고 투자한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청은 위장 중소기업을 공공 조달시장에서 즉각 퇴출시키고, 중소기업 확인서를 허위 또는 거짓으로 발급받은 기업은 검찰에 고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효성은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중소기업청은 2013년에도 36개 위장 중소기업을 적발하는 등 2011년 중소기업기본법이 신설된 이후 위장 중소기업에 대한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항상 적발에 그칠 뿐 단 한 차례도 위장 중소기업에 대한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행정상 불이익을 주는 등의 실질적인 제재조치는 이뤄진 적이 없다.

추미애 의원이 지난 2013년 공공 조달시장에서 위장 중소기업으로 확인된 기업과 관련 있는 대기업도 공공시장의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대·중견기업까지 공공조달 시장 입찰 참여를 제한하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며 기획재정부가 반대하고 있어 이 법안은 1년이 넘도록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얼마를 챙기던
벌금 3000만원

업계 관계자는 "위장 중소기업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수위 높은 제재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에는 위장 중소기업 사례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 상 위장 중소기업을 설립해 공공조달 시장에 불법 참여한 혐의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475억5000만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케이씨씨홀딩스의 계열사 시스원이 검찰에 고발 조치 되어 벌금 최대액이 적용된다고 하더라도 이득액의 0.06%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han1028@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