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판 국방백서로 본 남-북 전투력 '전격비교'

아무리 붙여봐도…핵 한방이면 끝!

[일요시사 경제2팀] 최현목 기자 = 2년을 주기로 발간되는 국방백서의 최신호가 지난 6일 국방부를 통해 공개됐다. 대한민국이 진행하는 국방정책에 대한 범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이 백서는 1967년 처음 발간된 이후 올해 21번째를 맞이했다. 특히 이번에 발간된 <2014 국방백서>는 현 정부 들어 최초로 공개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점점 거세지는 북한의 도발과 대북 전단 살포로 첨예해진 대립 관계 등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과연 어떻게 풀어냈을지 살펴보자.

<국방백서>의 주요 내용은 외부의 군사위협, 국방목표 및 국방정책의 기본 방향, 대비태세, 군사정책, 국방예산 및 국방투자사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7년 첫 출간된 이후 1968년 돌연 발행이 중단된 적 있지만 1988년 창군 40주년을 맞아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고 2000년을 기점으로 기존에 1년 주기로 발행되던 것이 이후 2년 주기로 변경되었다.

범국민적 공감대
올해로 21번째

군무회의에서 2년을 주기로 발간되기로 결정된 후 이듬해인 2002년에 북한을 가리켜 ‘주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특히 2005년에는 주적이란 단어를 삭제하는 대신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군사위협’이란 표현으로 대체키로 한 것을 두고 여야가 치열한 찬반 공방을 벌였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변화된 남북관계와 북한이 군사적 위협이면서 동시에 통일의 대상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주적 개념 삭제를 환영했으나 한나라당은 10년 전 북핵 위기 때 주적 개념이 포함된 이후 근본적인 안보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는 조치라고 비판했었다.

이번 <2014 국방백서>는 그동안 논란이 됐던 주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앞서 2010년에 발간된 백서와 같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 측은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온 한해를 동족대결과 북침전쟁도발에 미쳐 날뛴 남조선 괴뢰당국이 새해에도 반공화국적대의식을 고취하며 군사적 도발에 계속 광분할 자세”라며 “괴뢰국방부가 다음해 초에 발행하는 <2014 국방백서>에 ‘북의 정권과 군대는 우리의 주적’이란 표현을 또다시 쪼아 박으려 하고 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아울러 “민족의 단합과 자주통일에 대한 온 겨레의 열망에 또다시 찬물을 끼얹고 가뜩이나 첨예한 북남관계를 더욱 긴장시키는 고의적인 도발로서 우리 겨레는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즉 표면적으로 주적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본인들을 주적으로 인지하는 것에 대해 북한은 불쾌감을 드러낸 것이다.


남, 양보다 질…소수정예·엘리트화 지향
북, 노후 보완…재래식·비대칭 전력 강화

그렇다면 북한은 주적을 어디라 명시하고 있을까. 지난해 12월22일 북한의 <노동신문>은 한 논설을 통해 “미 제국주의자들이야말로 우리의 변하지 않는 주적 중의 주적이며 불구대천의 원수”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함께 군사합동훈련을 하는 대한민국이 그들이 말한 미 제국주의자들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현재 분단 상황에 있고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수 있는 휴전 상태라는 것에는 일체의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남북한 전력비교와 한반도를 위협하는 지상 최고의 무기인 ‘핵’에 대한 고찰은 필수 불가결한 사안일 것이다.

비대칭 전력
해킹 위협 대비

<2014 국방백서>를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 유지되어 오던 북한군 전력 경향의 변화가 눈에 띈다. 2000년 이후 대한민국은 양보단 질을 택해 소수정예·엘리트화를 지향했다면 북한은 노후된 장비를 보완하기 위해 재래식·비대칭 전력 강화 경향이 두드러졌었다. 그러나 이번 <2014 국방백서>에서 발표한 정보에 따르면 북한은 기존 재래식 전력 강화는 물론이고 기계화 부대 증편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핵무기 개발과 더불어 최근 가장 큰 위협으로 급부상한 사이버 테러, 즉 비대칭 전력 강화는 2015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이는 국방력에서 한·미 동맹을 넘어설 수 없음을 인지한 북한의 왜곡된 전력 강화 전략으로 풀이된다. <2014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현재 6000여명의 사이버전 인력을 운영하고 있으며 남한 내부의 심리·물리적 마비를 위해 군사작전 차질 유발, 주요 국가기반 체계 공격 등 사이버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재래식 무기의 성능도 지속적으로 개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남북한의 재래식 군대 전력을 분석해보면 북한의 육군은 102만여명으로 남한 육군 49만5000여명의 2배가 넘는다. 또한 공군 전력에서 북한은 12만여명으로 남한의 6만5000여명, 예비 병력에서 북한이 770만여명에 남한은 310만여명을 기록해 전체적으로 북한이 2배 이상의 재래식 군대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해군 전력에 있어서는 남한이 해병대 2만9000여명을 포함해 총 7만여명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어 북한의 6만여명을 오히려 능가하고 있다. 최근 북한이 신형 잠수함과 고속특수선박(VSV) 건조에 나서는 등 수중 공격능력 향상을 꾀하는 이유도 상대적으로 약한 해군 전력을 커버하기 위함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재래식 전력 이외에 전차, 장갑차 등 기갑장비는 수적인 부분에서 북한이 월등히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 육군 장비에 있어서 장갑차의 수는 남한이 총 2700여대를 보유해 북한의 2500여대보다 약 200여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고 공군이 보유한 감시통제기도 남한이 60여대를 보유하고 있어 북한의 30여대보다 두 배 더 많은 감시망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헬기를 690여대 보유해 북한이 보유한 300여대를 훌쩍 뛰어 넘었다.

한편 북한은 이러한 전력을 요소요소에 배치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상군 전력의 약 70%를 평양·원산선 이남 지역에 배치하여 상시 기습공격을 감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데 특히 전방 지역의 자주포와 방사포는 우리의 수도권 지역에 대해 기습적인 대량 집중사격이 가능하게 배치되어 있으며 최근 시험 개발 중인 300㎜ 방사포는 최대사거리 고려 시 중부권 지역까지 사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상군과 마찬가지로 해군 또한 전력의 약 60%가 평양·원산선 이남에 전진 배치되어 있어 상시 기습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과 달리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지 않아 융통성 있는 작전이 제한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북한 해군은 보유한 특수전 부대를 남해안 쪽 후방지역에 침투시켜 주요 군사·전략시설을 타격하고 상륙해안의 중요지역을 확보하는 형태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공군은 북한 전역을 4개 권역으로 나누어 전력을 배치하고 있다. 북한 공군기는 대부분 노후 기종이며 전투임무기 820여대 중 약 40%를 평양·원산선 이남 기지에 전진 배치해 놓고 있다.

<2014 국방백서>는 2년 전에 비해 북한의 핵·미사일 기술도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핵무기 소형화 능력은 상당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으로 파악되며 지속적인 탄도 미사일 실험으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거리가 늘어난 것으로 전망했다.

2년 전에 발간된 <201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이미 2006년 10월과 2009년 5월 두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한 바 있다. 현재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전한 핵위협
미국 본토까지

리처드 로즈가 지은 <원자 폭탄 만들기>는 1988년 ‘퓰리처상’을 수상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여기에는 우라늄이 역사에 등장하면서 일어난 원자폭탄 제조과정에 대해 나온다. 원래 자연 원소인 우라늄은 우리가 원자로 등에서 핵연료로 사용해왔다. 이때 우라늄은 핵융합을 일으킨 후 찌꺼기를 남기게 되는데 이것이 오늘날 원자폭탄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다. 북한은 1980년대에 영변 핵시설 원자로 가동 후 폐연료봉 재처리를 통해 핵 물질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현재 플루토늄을 40㎏가량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플루토늄은 일정한 무게와 질량으로 뭉쳐지면 자연스레 터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핵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미사일 탄두 안에 넣어둔 플루토늄이 완벽한 시간에 똘똘 뭉쳐야 한다. 이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있어서 핵심 기술력인데 북한은 이 플루토늄을 뭉쳐 폭발시키는 핵실험을 지금까지 세 차례나 진행한 것으로 분석된다.

1만km 탄도 미사일…미국 직격 가능
한국 미사일 사거리 북한 1/10 수준

아무리 플루토늄을 잘 뭉치도록 장치를 개발한다 해도 그것을 원하는 장소로 보내줄 미사일이 없다면 소용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구 소련의 스커드 미사일을 기본 설계로 하여 개발한 탄도 미사일 대포동 발사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사거리를 늘려왔다. <2012 국방백서>에 따르면 기존에 6700㎞이상으로 표기됐던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의 사거리가 이번 <국방백서>에서는 1만㎞로 변동되었다.

그렇다면 대포동 2호는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가 확보된 것이다. 이를 지도상에서 표시해보면 남미를 포함해 북미의 중부와 동부, 그리고 포르투갈과 스페인 등 서유럽 일부 지역과 아프리카 서부의 일부분을 제외한 세계의 전 대륙이 이 대포동 2호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 또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능력이 2012년 12월 발사한 ‘은하 3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서 더욱 위협적이 되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은 이러한 탄도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신형 잠수함 등 새로운 형태의 잠수함정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력의 발전 여하에 따라서 중국처럼 핵잠수함 개발까지 우려해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최근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에 위치한 잠수함 전용조선소에서 신형 잠수함(길이 약 67m, 폭 약 6.6m)이 발견됐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또한 그 인근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 기술 개발용으로 추정되는 12m 높이의 발사대 모양 구조물이 위성사진에 잡히기도 했다.

이에 반해 우리 군이 보유한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는 현무 3호가 가진 1500여km다. 이는 대포동 2호의 10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 외 해성 2호와 해성 3호의 사거리는 1000여km밖에 미치지 않는다. 이에 군은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에 따라 현재 사거리 800㎞, 탄두 중량 500㎏의 탄도미사일을 개발 중이다. 국방백서는 올해 개발이 완료되는 대로 시험 발사할 계획이라 전했다.

1980년대부터 북한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생화학무기 또한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현재 약 2500톤에서 5000톤의 화학무기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생화학 전력은 탄저균, 천연두, 페스트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무기를 자체적으로 배양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기계화 군단
첨단 잠수함까지

북한은 지속적인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전쟁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군수산업을 우선적으로 육성해 왔다. 북한은 현재 300여 개의 군수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시에는 민수공장이 단시간 내에 전시 동원체제로 전환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부분의 전쟁 물자는 지하에 갱도처럼 된 비축시설에 저장하고 있으며, 약 1∼3개월 분량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추가 구입과 외부로부터의 지원이 없으면 장기전 수행은 현실적으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소니픽쳐스와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해킹 사건을 통해 우린 국가를 뒤흔들만한 위협이 비단 전쟁만으로 표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특히 한수원 해킹의 경우 해킹에 사용된 악성코드가 원전 제어망까지 침투했다면 원전 가동이 중단되는 심각한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다각적인 안보 강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또한 러시아 경제의 붕괴 위기, 이슬람 과격 단체의 테러, 미국과 중국 간의 대립 등 국내외 정세가 불안한 상황 속에 놓여있어 안보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안보와 관련된 민감한 사안을 차분하고 치밀하게 해결함으로써 국가의 자주성을 제고하고 주변국과의 신뢰를 구축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고 <2014 국방백서>는 말하고 있다.

 

<chm@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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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