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X파일’ 공개 후폭풍

‘떡검’이어 ‘섹검’까지 “스폰서 검사의 끝은 어디…”


사상최대 ‘검사 스폰서 스캔들’이 터졌다. 경남지역에서 건설사업을 했던 정모(52)씨가 부산지방검찰청에 제출한 진정서가 도화선이 됐다. 진정서에는 정씨가 사업을 시작한 후 20년간 100여 명의 전·현직 검사들에게 촌지와 향응, 성접대를 제공했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 내용을 MBC ‘PD수첩’에서 보도하면서 파장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장 발에 불이 떨어진 검찰은 진상규명위를 꾸려 진위를 밝히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지켜보는 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비리가 밝혀지지 않고 과거처럼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자칭 ‘검사 스폰서’ 정씨, 접대 내용 적은 진정서 검찰에 제출
검사 100여명에 향응, 성접대, 촌지 등 7억여원 접대했다 주장


일명 ‘검사X파일’로 법조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것으로 소문으로만 떠돌던 ‘스폰서 검사’ 실태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각종 향응과 금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정씨를 통해서다. 정씨는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을 진정서에 담아 지난달 19일 부산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내용이 지난 20일 MBC PD수첩에서 ‘검사와 스폰서’란 제목으로 방송되면서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실명에서 업소이름까지
전·현직 검사 ‘부들부들’

그러면 ‘검사X파일’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일요시사>가 입수한 진정서에는 정씨가 접대한 검사들의 명단과 업소명, 일시, 접대비용 등이 빼곡히 적혀있다. 정씨는 진정서에서 “뇌물, 촌지, 향응, 성접대 등에 대하여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근래의 것은 형사적 책임, 시효가 지난 것은 도덕적 책임을 물어 엄격히 조사하여 처벌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써 자신이 관련 자료를 제출하는 이유를 밝혔다.

정씨는 전·현직 검사 57명의 이름과 직책, 휴대폰번호 등을 진정서에 기록했다. 모두 자신에게 각종 형태로 접대를 받았다는 검사들이었다. 이들 가운데는 전직 법무부 고위 간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 , 형사부장을 거친 검사장급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부산·경남 지역에 위치한 검찰청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구체적인 접대 내용도 기재돼 있다. 향응, 성접대 등이 주를 이뤘다. “2003년 7월4일 부장검사 전원(ㅎ부장 제외) 1차 ○○갈비 식사, 2차 △△룸살롱, 아가씨 팁 60만원(3차)” 등 비교적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촌지를 제공한 기록도 있다. 정씨의 주장에 따르면 매달 지청장들에게는 100만원, 평검사와 사무과장에게는 50만원을 줬다고 한다. 지청장에게 준 금액만 1억6200만원에 달했다.

이밖에도 검찰청 체육대회, 등산대회 등의 행사가 열릴 때는 100~200만원을 제공했고 매월 2회 이상 회식비 등을 줬다고 밝혔다. 이런 방식으로 정씨는 1984년 3월부터 1990년 12월까지 82개월 동안 검사들에게 접대를 해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계산된 금액만 7억원에 가깝다는 것이 정씨의 주장이다. 그러면 정씨가 수년에 걸쳐 검사들에게 각종 접대를 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리스트 오른 전·현직 검사 “접대 받은 사실 없다” 부인
검찰 측, 진상조사단 꾸려 진실규명…시민들 반응 냉담


진정서에 따르면 1984년 아버지로부터 사업체를 물려받으면서 사업을 시작한 정씨는 자연스럽게 검찰관계자들과 인맥을 쌓았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일종의 ‘보험’으로 검사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 또 정씨는 타의에 의해 접대를 하기도 했다는 점을 내세웠다. 진정서에서 정씨는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공권력이 무서워 향응접대 및 각종 뇌물을 제공했을지라도 대부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였다”고 밝혔다.

정씨가 왜 이제 와서 지난 일들을 공개하는가에 대한 이유도 기재되어 있다. 정씨는 진정서에서 “사람이 어려울 때도 있지 않습니까? 검사들의 처신과 행태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며 “조그마한 의리 하나 없었고 모두 자기들 체면이나 생각하고 승진에 누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추한 모습에 배신감과 정신적 충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정씨가 이 같은 내용을 기재한 배경에는 지난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사실이 자리한다. 당시 정씨는 이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총경 승진에 힘써주겠다며 경찰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이로 인해 정씨는 자신이 정성을 다해 챙겼던 검찰이 결정적인 순간 등을 돌렸다는 배신감에 휩싸였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검사들의 스폰서였다는 것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정서에 거론된 인물들은 접대를 받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PD수첩은 현직 검사장 A(52)씨와 B(47)씨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이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는데, 이들은 모두 정씨에 대해 ‘기억이 안난다’고 일관했다.

패닉상태 빠진 검찰
부랴부랴 진상조사

그러나 PD수첩 측은 A씨와 B씨가 정씨가 접대하는 술자리에 수차례 참석한 사실을 밝히고 보도했다. 특히 A검사장의 경우 정씨와 말을 놓을 만큼 막역한 사이라는 정황도 포착했다. 정씨 리스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전·현직 검사들도 정씨와의 관계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깊은 사이는 아니다” “모르는 사람이다” “만나긴 했지만 룸살롱을 갈 만한 관계는 아니다” 등 대부분 부인하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이 전파를 타고 검사X파일의 실체가 드러나자 검찰 조직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김준규 검찰청장은 “보도된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로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지난 21일 열린 긴급간부회의에서 “진상규명이 우선되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가 따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대검 조은석 대변인이 전했다. 또 김 총장은 “지난 과거의 잘못된 행적이었다면 제도와 문화로 깨끗하게 청산되어야 하고, 그 흔적이 현재에도 일부 남아있다면 단호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또 진상조사단을 꾸리고 진실규명에 나섰다. 진상조사단장에 임명된 채동욱 대전고검장은 지난달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인근 서울고검에 마련된 사무실로 이동해 공식업무를 시작했다. 민관 합동의 진상규명위원회 산하에 꾸려진 진상조사단은 검사와 수사관으로 구성된 실무 조직으로 정씨가 제기한 향응 및 성접대 의혹의 실체를 조사하게 된다.

이번엔 제대로 조사?
여기저기 의심의 눈초리

조사 활동은 정씨가 주로 활동한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이뤄질 전망이며 조사 과정에서 정씨와 검사들의 주장이 엇갈릴 경우 대질 신문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정씨가 공개한 문건에 등장하는 검사가 57명에 이르는 데다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검사도 있어 사실관계 확인 작업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위원장을 포함해 전체 인원의 3분의2 이상이 외부인사로 구성되는 진상규명위원회는 앞으로 조사단의 조사 내용을 토대로 후속 조치를 검찰총장에게 통보하고 법무부 장관에게 징계를 청구하게 된다. 조사 과정에서 검사가 부적절한 처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날 경우 파면, 해임, 정직, 감봉, 견책 등 징계를 받게 된다. 향응 제공에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뇌물 수수 혐의 등으로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

이처럼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진상규명을 할 것을 약속했지만 각계각층에서는 비난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등은 또 다시 터진 법조비리에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먼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검사X파일에 공개된 전ㆍ현직 검사들을 뇌물 수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고발장에서 “건설업체 대표가 작성한 문건에는 검사들이 오랜 기간 금품과 향응을 받아 온 사실이 들어있다. 그들이 받은 금품ㆍ향응의 총액을 산정한다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참여연대는 “문제의 검사들을 적당히 용서하고 사건을 흐지부지 서둘러 마무리한다면 검찰을 살리기는커녕 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논평을 통해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도 철저한 조사와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검찰의 의지 부족과 함께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제도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정치권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지난 22일 검사 향응 및 성접대 의혹 규명과 비리검사 처벌을 위한 특검 실시를 요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언론 관심에서 사라지고 여론이 떠나면 유야무야될 것”이라며 “특검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을 정식으로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 자체의 진상조사 노력과 관련, “민간이 참여한 진상위원회를 구성한다지만 과거 수많은 케이스를 봐도 이번에도 결국은 초기에 도마뱀 꼬리 자르듯이 적당히 눈 가리고 아웅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네티즌들도 대검찰청, 부산지검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수많은 네티즌들의 폭주로 일시적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대검찰청 홈페이지 주소가 ‘spo.go .kr’인데 ‘스폰서(sponsor)의 약자가 아니냐”며 검찰을 조롱했다. 또 다른 네티즌들은 “내가 낸 세금으로 비리 검사 월급 주기 싫다”, “낮에도 일하는데 밤에도 룸살롱 가서 일하느라 고생이 많다”, “이번에도 예전 사법비리 조사 때처럼 흐지부지하게 넘기지 말고 제대로 조사해 진실을 밝혀라”등의 의견을 쏟아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