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수사 후폭풍' 검찰이 놓친 네 가지

수사로 보여주고 기소로 말한다더니…"냄새 난다"

[일요시사 정치팀] 허주렬 기자 = 연말 정국을 뒤흔들었던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한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가 나왔다. 비선실세 의혹, 비선 간 권력암투는 사실무근이고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청와대 문건 유출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 한모·최모 경위 등 4인의 작품이라는 것이 검찰의 결론이다. 동문서답 수사에 이은 기울어진 기소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유상범 3차장 검사가 '청와대 문건 유출' 관련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비선실세 의혹을 불러온 '정윤회 문건(靑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측근 동향)'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지시로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풍문을 과장해 소설을 쓴 것이다. 문건 유출은 박 전 행정관(구속 기소)과 조 전 비서관·한모 경위(불구속 기소), 최모 경위(사망)의 작품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지난 5일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한 36일간의 수사 끝에 내놓은 중간 수사결과는 이렇게 요약된다. 그러나 검찰이 '가려운 곳은 긁지 못하고 엉뚱한 곳만 긁다 말았다'는 혹평이 많다. 수사부터 시작해 기소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은 탓이다.

#의문 ①범행동기 불분명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 범인들이 검찰이 '허위'로 판단한 문건을 작성한 이유와 해당 문건을 포함한 수십 건의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이 허위 문건을 작성한 이유를 박지만 EG회장을 이용해 정윤회씨와 문고리권력 3인방(청와대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 등을 견제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런데 검찰의 또 다른 수사결과에는 조 전 비서관이 정씨나 문고리권력 3인방을 견제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나 문고리권력 3인방, 박 회장은 국정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조 전 비서관이 이들을 견제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동문서답 수사에 이은 이중잣대 기소
범행동기부터 기소까지 의문점 수두룩

문건을 유출하게 된 동기도 설득력이 약하다. 검찰에 따르면 문건이 청와대 밖으로 나간 경로는 두 갈래다. 박 전 행정관이 상급자인 조 전 비서관의 지시를 받아 박 회장 측에 정윤회 문건을 포함한 17건의 문건을 건넸다는 것과 한·최 경위가 14건의 '유출 사고'를 일으켰다 것이다.

박 전 행정관이 지난해 2월 자신이 서울경찰청 정보분실장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정윤회 문건을 비롯해 자신이 작성했던 다량의 문건들을 개인 짐에 담아 정보분실 사무실에 둔 것을 정보분실 소속 한 경위가 당직을 서면서 문건들을 모두 복사해 기업체와 최 경위에게 건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특히 검찰은 정윤회 문건 파문의 계기가 된 언론의 보도에 대해 최 경위가 이 중 5건의 문건을 스마트폰 사진으로 찍은 뒤 카카오톡으로 '대서특필'을 부탁하며 <세계일보> 조모 기자에게 보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경위는 검찰 수사에서 정윤회 문건은 본 적이 없다는 진술을 한 바 있고, 최 경위는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

#의문 ②검찰 판단 근거 빈약


둘째, 문건이 허위라는 판단의 근거가 빈약하다.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것은 비선인사에 의한 국정농단과 비선 간 권력암투가 있었는지 여부다. 특히 정씨는 박 대통령 집권 이전부터 정치권에서 숨은 실세로 꾸준히 거론되며, 여당 내에서도 정씨의 영향력을 궁금해 했던터였다.

그런데 검찰은 <세계일보>를 통해 공개된 정윤회 문건에 적시된 모임 장소에서 정씨와 십상시의 회동이 없었고, 문건 작성자인 박 전 행정관이 정보원으로 지목한 박동열 전 대전지방국세청장과의 주장이 엇갈린다는 이유를 내세워 허위로 판단했다.

수사과정 자체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과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는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는 가운데 진위를 가리려는 노력이 미약했던 것이다. 모임에 참석했다고 기재된 인사들이 본인 명의·차명 휴대전화 등을 통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이를 확보하지 않은 채 스스로 제출한 휴대전화 통화내역만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마저도 검찰이 수사한 기간은 최근 1년에 그쳐 문건이 작성되기 전 기준으로 보면 2013년 12월 한 달치에 불과했다. 특히 정씨와 문고리권력 3인방이 '오래전에 절연했다'는 이들의 주장과 달리 통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검찰은 이 부분에 주목하지 않았다.
 

검찰이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홍경식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문건 작성과 유출에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해 한 차례 서면진술을 받고 말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의문 ③중요 정황 애써 무시?

셋째, 드러난 중요한 정황도 애써 무시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국·과장 인사 개입 의혹은 정씨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유력한 정황이다. 이와 관련, 유진룡 전 문체부장관이 언론을 통해 "박 대통령이 2013년 8월 수첩을 꺼내 국장과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뜻만 밝힌 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직접 조사해야 할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검찰이 제대로 된 수사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조 또는 무시…핵심쟁점 판단 근거 미약
'찌라시'라더니…허위공문서 혐의는 미적용

넷째, 검찰의 기소에 이중잣대가 적용됐다는 지적이다. 검찰 수사로 기소된 이는 총 3명뿐이다. 그나마 구속기소는 공무상 비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공용서류 은닉, 무고 등 4가지 혐의가 적용된 박 전 행정관 한 명뿐이다. 조 전 비서관(공무상 비밀누설,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한 경위(공무상 비밀누설)는 불구속 기소됐다.

나라 전체를 뒤흔든 사안에 대한 수사치고는 결과가 초라하다. 무엇보다 이들의 주요 혐의가 공무상 비밀누설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기록물을 받아 본 박 회장은 기소대상에서 제외되는 이중잣대가 적용됐다.
 

검찰은 17건의 대통령기록물이 박 전 행정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전달됐고, 이 가운데 10건은 공무상 비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특히 12건은 김 비서실장과 홍 전 수석의 사전 동의를 거쳐 전달됐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들은 기소는커녕 제대로 된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의문 ④박지만 면죄부 기울어진 잣대

또 한가지 예의주시할 대목은 검찰이 문건 내용을 '찌라시'라고 규정하면서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는 적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찌라시를 대통령기록물로 판단한 대목도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결과에서 허위문건이란 표현을 썼다"며 "그렇다면 조응천·박관천에게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적용하고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은 제외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수사로 보여주고 기소로 말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은 박 대통령이 수사 초기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문건 유출은 국기문란이고, 찌라시에 나온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발언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것이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따른 중간 수사결과라는 비판과 함께 특검, 국정조사 등 2차 수사 및 조사 요구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carpedie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근혜정부 위기탈출 '전가의 보도'
모든 국정 혼란은 '개인 일탈' 탓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파문'에 대한 입장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비비서관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로 인한 국정 혼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러한 인식구조는 낯설지 않다. 정권의 위기 때마다 '개인 일탈론'을 전가의 보도로 사용해왔기 때문이다.

박근혜정권는 지난 2년 정권이 위기에 직면할 때마다 어김없이 구원투수로 개인 일탈론을 꺼내들었다.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청와대 행정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관련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그랬다.

정권과 관련된 국기문란에 해당하는 범죄를 특정인 몇 명의 '일탈'로 몰아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일탈도 이정도로 되풀이된다면 이제는 조직 전체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이상 개인 일탈론이 정권의 위기 탈출구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여권 일각에서도 청와대의 안일한 인식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청와대 쇄신론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는 개인 일탈로 비선개입 의혹을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설사 검찰 수사결과를 받아들인다 해도 대통령의 친동생이 깊숙이 연루된 볼썽사나운 권력 암투가 벌어진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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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