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잘못 만나 몰락한 호남 기업들 막전막후

김·노 때 ‘웃고’ 이·박 때 ‘울고’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호남 기업들을 휘감고 있는 공기가 심상치 않다. 그 어느 때보다도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다. 호남 기업들은 그간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들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제 아래 숨통이 좀 트일 때까지 어깨 한번 제대로 펴지 못했다. 호남 기업은 이처럼 어렵게 성장해 왔다. 그런데 최근 잘나가는 호남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호남 기업의 씨가 마르고 있다.

   
▲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 임병석 C&그룹 회장,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우리나라 10대 그룹 중 호남 기업은 없다. 호남의 대표 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이 17위에 랭크되어 있을 뿐이다. 50년대 1위 기업이던 삼양사는 30대 그룹으로 밀려난 지 오래고 60년∼90년대 사이 재계를 대표하던 기업인 율산그룹과 해태그룹, 나산그룹, 쌍방울그룹이 무너졌다.

고전하던 호남 기업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만나면서 어깨를 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C&그룹과 대주그룹이다.

C&그룹 자금난
대주 세무조사

임병석 C&그룹 회장의 고향은 전남 영광이다. C&그룹도 호남에 연고를 두고 성장해 왔다. 광주 석산고와 목포 해양대를 졸업한 임 회장은 항해사로 일하다가 30세 때인 1990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칠산해운을 설립했다.

사업 초기 임 회장은 선박과 화물 중개업으로 돈을 벌어 자기 배를 마련한 뒤 1995년 회사 이름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꾸고 해운업에 본격 진출했다. 2002년 법정관리 중이던 세양선박을 인수,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한리버랜드, KC라인,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사들이며 C&그룹을 매출 2조원짜리 중경그룹으로 성장시켰다. 한때 계열사가 40개가 넘기도 했다.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허재호 대주그룹 회장도 임 회장과 같은 호남 출신이다. 광주공고를 나와 1981년 광주·전남을 기반으로 한 대주건설을 설립한 뒤 2008년 말 기준 2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주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당시 연매출은 2조2000억원에 달했다.

허 회장은 두림제지, 대한화재, 대한조선, 광주일보, 동아상호저축은행 등을 잇달아 먹어치운 데 이어 뉴질랜드 대주하우징, 대주개발, 대한기초소재, 함평다이너스티, 광주방송 등을 설립했다.

2005년에는 대우건설 인수전에 뛰어들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인수전 참가만으로도 당시 대주그룹의 사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임 회장과 허 회장은 공교롭게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C&그룹은 2007년 무리한 인수합병(M&A) 후유증을 겪다가 이듬해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그룹 전체가 자금난에 빠졌다. 직원들의 월급까지 밀릴 정도로 사정은 나빠졌다.

버티다 못한 임 회장은 주요 계열사 매각에 나섰지만 인수자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급기야 임 회장이 불법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다 결국 사기 및 배임 등의 혐의로 2010년 10월 구속되면서 C&그룹은 워크아웃, 법정관리를 거쳐 사실상 파산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영남 기업들은 잘 나가는데…
정권 따라 달라진 엇갈린 운명

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10년, 2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가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고 이에 서울고법은 징역 5년에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이후 임 회장은 지난 2013년 6월 재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받았다.


허 회장 역시 2007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500억원대 탈세 사실이 드러나면서 먹구름이 드리웠다. 국세청은 허 회장을 탈세 지시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허 회장은 2005년부터 2년 동안 법인세 508억원을 포탈하도록 지시하고 회삿돈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2심에선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주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되는 등 사실상 그룹은 와해된 상태다.

임석 전 솔로몬금융그룹 회장도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급성장했다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면서 몰락했다. 전남 무안 출신의 임 전 회장은 이리공고를 졸업하고 1988년 허위학력 논란이 일었던 퍼시픽 웨스턴대학을 졸업했다. 그해 한맥기업이라는 광고대행사를 설립하고 100억원가량을 벌어들인 그는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1999년 솔로몬신용정보를 설립하고 2002년 사실상 폐업 상태였던 골드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금융업에 진출했다. 

부동산PF 대출 상품을 개발해 부동산 붐을 타고 큰 수익을 거둔 솔로몬금융그룹은 출범한지 불과 3년 만인 2005년 자산기준 저축은행업계 1위로 급부상했다. 이후 한마음, 나라, 한진 등 저축은행에 이어 2008년에는 KGI증권마저 인수하면서 종합금융그룹으로 탈바꿈했다.

임 전 회장은 '금융계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정재계 인사들과 두터운 인맥을 쌓았다. 이 때문에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사업이 크게 성장한 배경에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임 전 회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곽 조직으로 알려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에서 조직국장을 지냈다. 1997년 대선 때는 새정치국민회의 '비상경제대책위원회'에도 몸담았다. 김대중정부 시절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김영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2003년 2월부터 1년여 동안 솔로몬저축은행 총괄회장을 맡기도 했다.

임 전 회장은 이명박정부로 정권이 바뀐 뒤에도 살아남았다. 그 배경으로 정권 실세가 지목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의 이름이 주로 오르내렸다. 임 전 회장은 '소금회' 멤버로 활동했다. 소금회는 소망교회 금융인 선교회의 줄임말로 이 전 대통령이 2007년 말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까지 참여했던 모임이다. 이 전 의원도 소금회 멤버다.

순조롭게 질주하다
외풍 맞고 산산조각

2011년 2월 저축은행 사태가 터진 이후 2차 영업정지 대상을 발표할 때 "솔로몬저축은행이 다음 타깃일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문제없이 넘겼다.

솔로몬금융그룹이 쓰러진 것은 이명박정부 말기인 2012년이다. 솔로몬저축은행은 2012년 5월 영업이 정지됐고 이듬해 3월 파산신청을 내고 파산했다. 계열사 아이엠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메리츠종금증권에 인수됐고 경기솔로몬저축은행은 투자회사 애스크로 넘어가는 증 솔로몬금융그룹은 사실상 공중분해됐다.

임 전 회장은 솔로몬저축은행 본점 인테리어 공사비를 부풀려 비자금 121억원을 조성하고 대주주 대출을 금지한 상호저축은행법을 어기고 1120여억원의 부실 대출을 지시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저축은행 사태의 주범 부산저축은행도 '부산'이라는 사명과는 다르게 호남 기업으로 분류된다. 박연호 전 부산저축은행 회장과 김영 전 부산저축은행 부회장, 김민영 전 부산·부산2저축은행 대표, 오지열 전 중앙부산저축은행장 등 주요주주와 임원들이 광주일고 출신이다.

조금만 밉보여도
모가지 날아간다


2011년 당시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부산저축은행이 지난 1980년 이후 설립한 SPC(특수목적법인)는 모두 120개. 이 가운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인 1998년부터 2002년 사이 설립된 SPC는 85개(3조1861억원)에 달한다. 특히 85개 가운데 무려 68개(2조4731억원)가 부실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초 살던 집이 경매에 나오는 굴욕을 당한 바 있는 백종헌 회장의 프라임그룹은 법정관리 중이다. 백 회장은 광주 출신이다. 프라임그룹은 강변 테크노마트 개발 성공 이후 동아건설 등을 인수하며 외형을 키우다가 글로벌 금융위기와 건설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주력 계열사인 프라임개발과 삼안이 2011년 8월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백 회장이 동아건설 등 계열사와 보유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까지 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호남 기업들은 현 정부 들어 더욱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팬택도 호남 기업이다. 창업주 박병엽 전 부회장은 전북 정읍 출생으로 대표적 호남 기업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인 금호타이어의 사외이사를 맡은 적도 있다.

맥슨전자 영업사원 출신의 박 전 회장은 지난 1991년 직원 6명과 자본금 4000만원으로 팬택을 설립했다. 1997년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OEM 휴대전화 공급 계약을 체결해 휴대폰 사업에 발을 들였고, 1998년에는 모토로라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착실하게 성장하던 팬택이 질주하기 시작한 때는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이다. 2001년 현대전자 계열사 현대큐리텔을 인수한 데 이어 2005년에는 'SKY 시리즈'를 출시해온 SK텔레콤의 자회사 SK텔레텍을 집어 삼키는 등 '샐러리맨 신화'를 써왔다. 2006년 팬택의 매출은 3조원을 돌파했다.

C&·대주 이미 공중분해
로케트·팬택 존폐 기로

하지만 스마트폰 판매 부진에 따른 자금사정 악화 등으로 2006년 12월 1차 워크아웃에 돌입했다. 박 전 회장은 자신의 지분까지 내놓고 부채 보증을 서면서 재기를 노렸고 팬택은 4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지만 지난해 2월 2차 워크아웃에 들어간 데 이어 같은 해 8월 법정관리에 돌입, 현재 새 주인을 찾고 있다.


69년 역사를 자랑하는 광주지역 토종기업인 로케트전기는 존폐 기로에 서 있다. 1946년 설립된 로케트전기는 건전지 전문업체로 호남전기를 전신으로 한다. '로케트 배터리'로 알려진 세방전지와는 별개의 회사다. 뿌리는 같지만 1978년 호남전기그룹 몰락 당시 호남전기는 광주일보 산하 기업으로 넘어가 로케트전기로 개명했고 진해전지는 세방그룹으로 분리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로케트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무구조가 악화됐고 '에너자이저' '듀라셀' 등 외국브랜드에 밀리면서 설 자리를 잃어갔다. 1998년 37%에 이르던 국내 시장 점유율은 현재 10% 이하로 내려갔다.

로케트전기는 2013 사업연도 감사보고서상에서 상장폐지 사유인 '의견거절'을 받고 지난해 3월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고 같은 해 11월 무상감자, 출자전환에 의한 신주발생, 유상증자, 인수합병 추진계획 등이 포함된 최종 회생계획안을 냈으나 법원은 회생절차 폐지를 통보했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강동민 의원에 따르면 호남지역에 사업장을 둔 기업 10곳 가운데 4곳이 지난 2013년 한 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금도 못 내는
기업들 수두룩

강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법인세 납부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호남지역 기업 4만9182곳 가운데 41.4%인 2만383곳의 총부담세액은 '0원'으로 결손법인이었다. 2012년 1만8748곳 보다 8.7%(1635곳) 늘어난 수치다. 지역별 결손법인 비율은 전남이 41.5%, 광주가 40.9%, 전북이 42.9%였다. 반면 대구는 1만6918개 기업 중 39.4%(6659개)가 결손법인이었다.

강 의원은 "현 정부 들어 지역간 불균형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며 "호남 기업들은 수도권에 비해 소득이 현저히 적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또 "경영난에 세금조차 못 내는 기업들이 많다”며 “도산 위기에 몰린 호남 기업을 구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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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