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업 큰손 2인에게 들은 ‘사채시장 비밀노트’

너도나도 주포생활 “꽤나 짭짤합니다”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오면서 돈의 흐름을 좇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큰손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에 여념이 없다. 서민들도 조금이나마 자산을 늘리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 같은 추세에서 돈의 향방을 빠르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사채시장 큰손들의 움직임. 지하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그들의 투자방식은 돈 흐름의 본류를 좌지우지할 정도다. <일요시사>에서는 대한민국에서 돈 흐름이 가장 민감하다는 명동 사채시장에서 30년째 크게 돈을 운영하고 있는 이모(64)사장과 강남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통하는 조모(62)회장을 만나 그들만의 세계를 엿봤다.


바지사장 두고 영업하던 과거와 달리 직접 진두지휘
주식시장 떠나지만 유상증자 직접 참여로 재미 톡톡


“명동은 예전부터 화려함과 절박함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큰손들이 움직이는 지역인 반면 돈을 구하는 절박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찾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강남으로 둥지를 옮긴 큰손들도 많지만 아직도 이곳은 돈 흐름이 가장 민감한 곳으로 통한다.”

어음시장은 동맥경화
돌파구는 ‘전면 나서기’

지난 4월20일 오후 3시 사채시장의 메카로 꼽히는 서울 명동 유네스코 빌딩 앞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 사장은 요즘 사채시장은 새로운 트렌드가 형성되면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최근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어음시장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보면 된다”며 “별달리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기업들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음시장이 동맥경화에 걸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활발하게 움직여야 어음이 발행되고 어디서 받아오든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건설사 어음은 거의 취급하지 않는다고 한다. A급 어음이라고 해도 확인하고 다시 확인할 정도란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조 회장은 “현재 전주들은 확실하게 돈 될 것에만 투자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현금을 움켜쥔 업자들이 많다”며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사실 부동산시장은 정부정책과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부담이고 주식시장도 1700선을 넘어 꼭지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섣불리 손대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명동의 경우 소규모 자영업자들이나 직장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전주들이 많았는데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신청은 많아봐야 1000만원을 넘지 않는데 이마저도 연체가 되는 등 신용상태가 불량해 대출 성사되는 것이 거의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면 명동이나 강남을 주 무대로 활동하는 큰손들은 어느 곳에 투자를 하고 있을까.

이들에 따르면 요즈음 큰손들이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은 유상증자 참여다. 직접 작전을 짜고 증자에 참여한 뒤 개인투자자들에게 떠넘기고 나오면 자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명동과 강남 큰손들 사이에는 전환사채(CB)에 대한 인기도 높다고 한다. 이 사장은 “정해진 시간이 경과하면 채권을 발행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채권이 CB다.

CB는 채권 형태로 만기까지 그대로 보유할 수도 있고 주식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며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메리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사장에 따르면 전환가격이 낮고 전환비율이 높을수록 발행기업의 주가가 상승할 경우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선호하고 있다고. 만일 발행기업의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낮으면 주식으로 전환해도 손해가 되기 때문에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고 채권으로 보유하면 되므로 손해를 볼 것이 없다.

조 회장은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과거 소위 바지사장을 내세워 영업하던 것과는 달리 큰손들이 전면에 직접 나서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다”며 “증자 참여나 작전까지 손을 대고 있다. 이는 이전 주로 인수·합병(M&A)이나 증자 자금을 빌려주고 담보를 두둑하게 챙겨 손해 보지 않는 장사하던 것과는 달라진 양상”이라고 귀띔했다.

조 회장에 따르면 가장 많이 손을 대고 있는 방법은 돈을 떼일 위기에 처한 기업을 공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같은 기업에 추가로 증자해 주고 시세조종까지 진행하면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이것은 ‘꿩 먹고 알 먹는’ 장사인데 외형적으로 보이는 유동자금은 몇십억원에 불과하지만 실제는 100억원대를 웃돈다”면서 “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후 시세차익을 챙기는 방법으로 수익과 채권보전을 챙길 수 있어 큰손들이 선호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자금 빌려주고 두둑하게
담보 챙기는 방법 ‘싫어’

큰손들이 위험부담을 안으면서까지 전면에 나서 전방위로 활동하는 이유는 자본시장법 강화와 철저해진 외부감사에 상장폐지 기업수가 늘고 있다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조 회장은 “상장 폐지된 상장사들을 보면 사채시장에서 자금 조달해 연명하던 한계기업들이 대부분”이라면서 “이들에게 자금을 집행했던 큰손들이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큰 손해를 보자 직접 나서서 자금을 회수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큰손들이 자금을 굴리는 또 다른 곳은 코스닥 사채시장. 어음시장이 동맥경화에 걸리자 마땅히 돈을 굴릴 곳을 찾지 못한 일부 전주들이 코스닥 기업의 사채 인수에 나서 나름대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조 회장은 “강남 큰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코스닥 사채시장은 신용도가 낮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일부 큰손들은 IB팀까지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코스닥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발히 진행시키기 위해서 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식시장에도 ‘기웃’ 부동산시장에도 ‘기웃’
작전 짜고 전방위 활동… 수익 챙기기 확실


물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자칫 해당 코스닥 기업이 자금난에 있을 경우 낭패를 보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부실 코스닥 기업들의 경우 대주주를 통한 연대보증을 하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자금난에 봉착하면 최대주주 매물이 시장에 나오면서 주가 폭락이 이어지곤 한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한편 명동과 강남을 무대로 활동하던 큰손들 중에는 아예 사채시장을 떠나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돈 앞에 의리도 신뢰도 없는 사채시장의 생리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란다. 조 회장은 “동료들 중에도 있었던 일이지만 이 세계는 수십년을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었다고 하더라도 한 순간에 사기나 배반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큰손들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을 노리는 속성을 역이용해 한탕하려는 시장 내 배신자들이 들끓는 곳도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스닥 사채시장
“대체제로 좋아”

이 사장은 “A급 어음을 할인해도 사실 월 1%의 수익을 얻기도 힘들다. 많은 양의 어음을 할인해야 이익이 창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며 “이에 따라 큰손 중에는 A급보다는 위험성이 높은 C급이나 D급 어음에 욕심을 내는데 그러다보니 배반자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결국 명동이나 강남 사채시장에는 약육강식과 온갖 복마전이 난무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조 회장과 이 사장 모두 어음 발행회사에 대한 금리와 재무상태 등 정보를 정확히 파악했는데도 위변조어음의 매수, 발행 회사의 부도 등으로 인해 피해를 모두 홀연히 시장에서 사라진 동료들이 제법 된다고. 이 사장은 “얼마 전 2700억대 ‘3자 명의 CD’ 발행 브로커 일당이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도 알고 보면 우리 쪽(명동) 큰손의 작품이었다”면서 “자본금이 적어 시공능력이 낮은 것으로 평가받을까봐 걱정하고 있던 건설 시행사를 상대로 작전을 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으로 당시 제3자의 CD로 자금력이 뻥튀기 된 회사인 줄 모르고 투자에 나선 선의의 피해자가 많이 나타났다”며 “이를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사채시장에 몸을 담고 있지만 환멸을 느낄 때가 많다. 돈도 좋지만 정도는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동료나 선후배들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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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