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동설한 현대판 고려장 보고서

부모봉양 옛말…연락 끊고 남남처럼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현대판 고려장’의 실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노부모를 챙기지 않는 사람들이 늘면서 적지 않은 노인들이 거리로 나앉고 있다. 이는 고령화와 경제·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제에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갖가지 사례를 통해 그 문제점과 대안을 짚어봤다.

 
한국사회는 저출산 인구고령화로 점차 늙은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문제는 노인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데 비해 정작 그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일자리는 고사하고 자식들에게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인 형국이다. 근래 노부모를 요양병원에 두고 찾지 않는 등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불릴만한 갖은 사연이 알려지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각박해졌다는 방증이다.

자식들에게
떠밀려 입원
 
지난달 5일 MBC <리얼스토리 눈>은 부모를 병원에 방치한 채 3년 간 나몰라라하는 불편한 세태를 다룬 바 있다. 당시 홍모(82) 할머니는 별다른 입원 사유 없이 3년 전부터 경기도의 한 병원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홍씨 앞으로 체납된 병원비와 간병비만 해도 1억원이 넘었다.
 
3년 전인 2012년, 홍씨는 혈당수치가 높아져 당뇨로 한 달여간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그러던 중 홍씨는 퇴원하는 날 우연찮게 넘어져 고관절 뼈가 부러졌다. 당시 홍씨의 자식들은 “환자가 병원에서 부상을 당했다면, 병원 측에서 보상해야하는 것 아니냐”며 병원 측에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병원 측은 적절한 보상을 취했고, 홍씨는 치료를 받고 정상적으로 퇴원했다. 하지만 홍씨는 퇴원한 지 불과 6시간 만에 복통을 호소하며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날, 보호자는 홍씨와 그의 짐만 두고 사라졌다. 결국 법적 분쟁까지 이어져 법원은 병원과실이 없다며 홍씨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자식들은 홍씨에게 병원 생활을 지속할 것을 종용했고, 홍씨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병원에 남았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홍씨가 이상행동을 보인 것이다. 나이를 기억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등 홍씨의 상태는 매우 불안해보였다.
 
알고 보니 홍씨는 중기 이상의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었고, 가족들은 치매 노인을 돌볼 것이 걱정돼 할머니를 병원에 남겨뒀던 것이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막내아들이 홍씨를 퇴원시켜 집으로 데려가면서 사건은 일단락 됐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비슷했다. 또 다른 병원에서는 찾는 이 없이 쓸쓸히 남겨진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간절하게 병원 밖으로 나가기를 희망했으나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늙고 병든 노인들 사실상 냉방에 방치
먹고살 만해도…비통한 사건들 잇달아
 
앞서 지난 7월에도 외아들의 외면 속에서 요양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한 할머니의 거취 문제를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집중 조명된 바 있다. 당시 김모(85) 할머니는 1년째 경기도의 한 요양병원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입원 중이었다. 무녀 독남 외아들은 통 소식이 없었다. 김씨의 외아들의 한 조카는 “현대판 고려장이다. 옛날 고려장이 차라리 낫다”며 울분을 토했다. 담당 의사는 김씨에 대해 “가족들이 자주 찾아오는 환자에 비해 상태가 안 좋다”고 말했다. 
 
김씨는 요양병원에 홀로 남겨진 채 외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아들이) 자주 오길 바라지만 일하는 데 내가 그러면 안 되죠. 오면 좋긴 좋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의 친척들은 김씨의 외아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며 경찰서를 다녀오기도 했다. 가족들의 주장에 따르면 김씨는 거동이 가능한 정도의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외아들이 어머니를 방치했다. 
 
 
반면 외아들과 그의 며느리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저 “알아서 하겠다”는 매몰찬 대답만 했던 것이다. 심지어 외아들은 “낫는 병이라면 모셨을 것”이라며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면 자신과 아내뿐 아니라 어머니가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은 매달 어머니 병원비로 버는 돈의 1/3 가량인 80여만원을 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살아 돌아와도
신병인수 거부
 
한 요양병원 관계자는 이 같은 세태에 대해 “처음에는 보호자가 모시고 오지만 그 이후에는 연락처나 거처가 바뀌어도 병원에 연락하지도 않는다”며 “(보호자가 병원에) 안 나타나고 병원비는 물론 안 낸다”고 말했다. 노인요양시설에서는 이미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풍경이라고 알려졌다.
 
참여연대가 내놓은 ‘노인요양병원 및 노인장기요양제도의 문제와 대안’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요양 입원자 중 절반가량인 47.2%는 치료가 아닌 요양목적으로 입원했다. 하지만 노인요양병원 시설 수준은 일상적인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 노인요양시설에 비해서도 더 열악한 곳이 많았다. 실제 노인요양시설은 촉탁의와 간호사 등 의료인력 외에 요양보호사가 입소가 2.5명당 1명꼴로 배치되지만 노인요양병원은 요양보호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된다.
 
민간 노인요양병원의 급증도 문제로 지적된다. 2008년 전국에 690개였던 노인요양병원은 2013년에는 1232개로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노인요양병원을 수익성 좋은 사업 아이템으로 생각하는 사업주가 늘어나면서 특별한 진료가 필요 없는 노인들도 마구 수용한 결과다. 전국에 많은 노인요양병원에 노인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입원해 있지만, 열악한 시설로 화재 사고 등도 끊이지 않아 안전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요양병원만의 문제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지난달 20일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사망판정을 받은 60대 남성이 영안실 냉동고에 들어가기 직전 되살아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바 있다. 앞서 60대 남성 A씨는 18일 부산 사하구 괴정동 자택 방 안에서 쓰러졌다. 이웃의 신고로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119구조대는 이송 과정에서 A씨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응급실에 도착한 A씨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고, 당직의사는 결국 사망판정을 내렸다.
 
출산율 저하 노인인구 급증 
국가적 난제…대책이 없다!
 
이후 검안의와 검사관 등이 A씨의 상태를 살펴보던 중 A씨의 목울대가 움직인 뒤 호흡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에 놀란 경찰은 즉각 응급실로 A씨를 급히 옮겨 재차 치료를 받아 기적적으로 맥박과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몸은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A씨의 가족들은 “부양의무가 없다”며 신병인수를 거부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 아버지의 신병인수를 자식들이 거부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려장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여론이 조성되기도 했지만, 일각에서는 “오죽하면 가족들이 그랬겠냐”며 각박한 현실을 개탄했다.
 
노인인구 증가로 인해 실버문화가 확산되면서 각종 실버산업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지만 진정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는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평범한 노인들에게 실버타운 입주는 ‘하늘의 별 따기’다. 서울의 한 실버타운에는 골프장, 노래방, 공연장 등 공동으로 이용하는 문화시설, 물리치료 등 의료를 위한 기본적인 시설을 완벽히 갖추고 있지만 9억여원에 달하는 보증금과 매달 수백만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입주가 가능한 높은 진입벽을 형성하고 있다. 사회적 고려장이라는 비판이 가능한 대목이다.

노인빈곤 증가

실버문화 양극화
 
지난 7일 한국경제연구원은 ‘특정 소득취약계층의 소득구조 실태와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서 “소득수준이 열악한 노인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 복지정책도 수혜대상의 특성에 맞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경연은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초생활보장수급 대상과 최저생계비 120% 미만의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소득취약 노인가구는 2006년 72만가구에서 2013년 148만가구로 늘었다고 분석했다. 7년 만에 빈곤 노인가구가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소득취약계층 내에서 노인가구가 차지하는 비율도 2006년 34%에서 2013년 56%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홀로 지내는 노인이 많은 1인 가구가 소득취약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6년 31.5%에서 2013년 42.8%로 증가했다. 반면 모자가구의 비중은 4.2%에서 2.4%로 작아졌다.
 
 
평균 가구원이 1.4명인 소득취약 노인가구의 소득은 7년새 36만8000원에서 64만9000원으로 76% 늘어났지만 1인 가구의 최저생계비(57만2000원)보다 약간 많은 수준에 불과했다. 이들 소득취약 노인가구는 정부나 비영리단체 지원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정부, 비영리단체, 다른 가구 등으로부터 이전되는 소득이 38만4000원으로 59%에 달한 반면 근로소득은 6만8000원, 사업소득 6만9000원, 재산소득 1만2000원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노인가구주의 연령이 평균 78.4세에 이르고 주요 소득원은 정부 지원인 점을 고려해 일자리 지원이나 서비스제공보다는 현물지원 중심으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금껏 고려장은 ‘부모를 버린 자녀’라는 표현으로 줄곧 등장해, 비정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됐다. 병들어 노동능력을 상실해 가계에 보탬에 되지 않는 늙은 노인을 보살피지 않고 산으로 데려가 굶어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관해서는 몇몇 설화들만 존재한다. ‘기로전설’이라고 불리는 설화는 70세가 된 늙은 아버지를 풍습대로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극정성으로 봉양했다. 이후 풍습이 없어졌다는 설화다. 이외에도 비슷한 설화가 지역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고려장이라는 말은 병든 노인을 보살피지 않은 사건에서 이따금씩 등장하곤 했다.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처음 등장한 건 일제강점기 전인 지난 1908년 11월 <대한매일신보>를 통해서였다. 이어 34년 6월 <조선중앙일보>는 ‘병든 장인을 고려장한 사위, 강경서 범인 엄중 탐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면서 씁쓸한 현실을 보고했다. 36년 <동아일보>는 ‘가난한 부인이 유아를 고려장시켰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고려장을 생매장에 비유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려장 유래
확인되지 않아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고려장은 종종 언급됐다. 62년 10월에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영화를 바탕으로 연극을 기획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었는데, 이 영화 속에는 고려장 풍습이 소개되어 있었다. 즉 고려장이라는 풍습은 일본에도 고대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고려장이라고 하면 삼국시대 ‘고려’를 떠올린다. 고려의 풍습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자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풍습과 관련된 설화는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나타난다.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문화로 고려장이라는 말을 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지만,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고려장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어서 일제의 잔재라는 해석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저 추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죽어서도 외로운 사람들
5시간마다 1명 ‘고독사’
 
KBS가 지난해부터 1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명백한 고독사는 1717건이었다. 고독사로 의심되는 것까지 모두 합하면 1만1002건에 달한다고 한다. 5시간마다 한 명씩 세상 누구도 모르게 죽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건 연령대다. 고독사라 하면 7, 80대 노인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사 결과는 보면 젊은층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독사 중 50대가 가장 많은 29%, 40대는 17%에 달했다. 30대 이하도 6.2%나 기록했다. 가장 많을 것 같은 70대는 9.1%, 60대는 17.7%를 차지했고 기타가 21%였다. 가장 많을 것 같은 70대는 9.1%, 60대는 17.7%를 차지했고 기타가 21%였다.
 
과거 고독사는 독거노인에게 집중됐지만 최근에는 저소득층이나 고소득층, 젊은층이나 노년층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가 주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1인 가구 추정치는 453만9000가구로 전체의 25.3%를 차지했다.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나홀로 가족인 셈이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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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