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속터미널 지하상가 토사구팽 사연

140억 날릴 판…“매일 피눈물 흘린다”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1990년대 중반부터 서울고속터미널 경부선 지하상가에 인생을 받쳐온 한 여성이 있다. 흉물스럽던 지하상가에 80억원을 쏟아 부어 현대화시켰고 다시 60억원을 투자하며 지금까지 역사를 함께했다. 지하상가 어디에도 그녀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 이런 그녀가 빈털터리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해서다.

성정애 ㈜매스펄 대표가 고속터미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 3월 터미널 주변 광고 계약을 체결하면서다. 90년대 고속터미널 주변 옥외광고 및 내부 간판광고는 대부분 성 대표의 손을 거쳤다. 성 대표가 그간 모아놓은 자료 사진만 대형 파일케이스로 10여개에 이른다. 그의 자료만 봐도 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내 기업들의 변천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굴곡진 인생사
하루 아침에…

성 대표에게 고속버스터미널 측이 임대사업을 제안해 온 것은 98년 초다. 당시 고속버스터미널 지하 하차장은 화훼상가로 운영돼 오다가 95년 6월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안전불감증이 불거지자 서초구청이 상가 허가를 취소한 상태였다.

화재예방설비는 물론, 환기시설, 전기시설이 낙후돼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성 대표는 ㈜화룡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98년 8월 고속버스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뒤 하차장 상가 1000여평에 대한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돌입했다.

공사 규모는 컸다. 워낙 제반시설이 부족해 50억원 정도의 비용이 시설비로 지출됐다. 1년 뒤 하차장 상가는 전국 각지 특산물을 판매하는 팔도 특산품 상가로 문을 열었다. 팔도 특산품 상가는 고속터미널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주판매품인 전통가공식품협회 제품에서 중국산 소금과 염료 사용이 검출됐고, IMF까지 터지면서 오픈 1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했다.


성 대표는 30억원 이상의 시설을 보충해 '수입명품 및 귀금속 상가'로 전환, 오늘에 이르렀다.

성 대표의 ㈜매스펄과 고속터미널 사이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8일 최병용 이마트 비식품매입본부 생활가전담당이 대표이사 겸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부터다.

신세계그룹은 고속터미널 호남선과 경부선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신세계는 2012년 10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메리어트호텔, 호남선 터미널 등을 소유한 센트럴시티 지분(60.02%)를 사들였고 이듬해 센트럴시티는 고속터미널 지분 38.7%를 인수했다.

2012년 5월1일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과 점포 임대차 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조건을 ㈜매스펄이 승계하는 내용으로 임대보증금 10억원에 월 임대료 700만원, 계약기간은 5년이었다. 

제집처럼 가꿔온 사업장서 쫓겨날 위기
터미널 "임대료 체납해 봐줄 수 없다"

계약 후 성 대표는 2012년 8월부터 10월까지 15억원의 비용을 들여 매장을 소형점포 300개로 리모델링공사를 했고, 분양이 미진해 올해 3월부터 4월, 다시 20억원을 들여 소형점포를 합쳐 개방형점포로 하고 출입문을 6개로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를 반복하는 동안 임대료는커녕 관리비까지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지난 4월30일 최 대표 명의로 내용증명 한통이 날아들었다.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가 체납되는 등 계약조건을 준수하지 않아 당사(고속터미널)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재차 통보하고 5월20일까지 미수금 전액을 납부해 계약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와 함께 고속터미널은 건물 및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의 매체광고를 일체 금하고, 만일 지속할 경우 계약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매스펄이 진행하고 있는 분양광고가 제3자의 피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이를 양지하기 바라며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지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고문이 하차장 상가 출입문 6곳에 일제히 붙기 시작한 때는 내용증명 발송 불과 하루 뒤인 지난 5월1일이다.

고속터미널은 공고문을 통해 "당사 소유 하차장 지하 대형1호는 당사에서 ㈜매스펄에 '12년 5월1일부터 '17년 4월30일까지 임대한 임대점포로 소유권을 분양할 수 없는 점포"라며 "최근 ㈜매스펄이 일간지 등 매체를 통한 경영주 모집광고에 소유권 분양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바, 이에 제3자의 피해가 없도록 공고하오니 소유권 분양 형태의 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즉시 계약 해제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성 대표와 하차장에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던 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분양이 돼야 임대료가 발생하고 그 임대료를 고속터미널에 납입해야 계속 상가를 운영할 수 있던 터라 분양을 막는 공고문은 나가라는 말과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성 대표가 고속터미널로부터 하차장 상가를 임대하고 이를 상인들에게 재임대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이른바 '전대차 계약'이다. 하루 유동인구가 수백~수천만명을 넘는 강남, 잠실 등의 지하상가는 서울 대표적 노른자위 중 하나다. 한정된 점포라는 점을 악용해 가게 주인이 뒷돈을 챙겨 재임대를 해주는 전대차 계약이 기승을 부렸고, 피해를 입은 소·영세상인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발생한 적도 있다. 

전대차 명백한 불법
㈜매스펄은 '다르다'

㈜매스펄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98년 고속터미널과 임대차 계약을 맺고 운영을 시작하면서 ㈜매스펄은 '임대분양'이라는 사전에 없는 단어를 써왔다. 남대문·동대문 상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용어로서 시설비와 개발비를 낸 상인들을 등기분양자와 달리 임대분양자로 표현한다. 상인들은 임대분양자에게 전전대자로 임대분양자의 투자비를 이자 지급형식으로 월세로 전대하는 경우다. 이러한 방식으로 ㈜매스펄은 지난 18년 동안 아무런 문제없이 운영을 해왔지만 이제 와서 고속터미널이 문제를 삼고 있다는 게 성 대표의 주장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지 2주 만에 답변을 보내 분할 납부를 요청했다. 성 대표는 내용증명을 통해 "당사가 쓰고 있는 임대분양계약서는 귀사의 고문변호사의 조정을 받은 계약서이고 임대분양계약서로 인해 17년 동안 한 번도 귀사에 피해를 준적 이 없다"며 "공고문 부착 등은 당사의 영속성 문제 등 사업적으로 많은 장애가 되니 상의를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2014년 7∼8월을 목표로 상가를 오픈해 밀린 임대·관리비를 지불할 예정이었지만 세월호침몰사고로 경기 및 소액투자가 위축돼 개점지연 문제가 발생하면서 최악의 자금사정을 겪고 있다"며 "최선을 다해 밀린 임·관리비를 납부하려 하니 영세소상인과 소액투자자와 당사의 사정을 감안해 한 번 더 분할해 납부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를 비웃듯 고속터미널은 한 달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명도소송을 냈다. 내용증명을 보낸 지 정확히 44일만이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대기업에 힘을 빌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무작정 임차인을 내쫓으려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속터미널 측에 따르면 명도소송의 이유는 밀린 임대료와 관리비, 지연이자다. 고속터미널이 성 대표에게 보낸 내용증명에 따르면 ㈜매스펄이 올해 4월30일까지 밀린 임대료는 2억5900여만원(32개월치), 관리비 1억9500여만원(26개월치)에, 지연이자 2억1300여만원 등 총 6억6700여만원이다.

4월8일 신임 사장 취임
4월30일 내용증명 발송
5월1일 공고문 부착 시작
6월13일 명도소송 제기


㈜매스펄과 고속터미널간 점포 임대차 계약서 '임대차계약 특수조항' 제6조(임대료외의 제비용)를 보면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의 시설공사 및 임대분양기간 등 영업정상화 기간을 고려, 계약체결일로부터 5개월간 ㈜매스펄의 관리비 부과를 면제하고 6개월부터 12개월간은 전용면적 기준으로 부과하며 이후 정상부과하기로 했다.

제10조(임대료 및 제경비의 체납) 항목에는 '임대료, 제경비, 기타 금전채무를 체납한 경우 체납액의 10%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가산 납부하고 체납액 및 연체료를 납부하지 아니하고 해당월을 초과한 경우에는 매월 체납금액의 연 24%에 해당하는 연체료를 추가납부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또한 '임대료 및 제경비를 2개월 이상 체납한 경우 고속터미널은 동 금액을 보증금에서 공제 대체하고, ㈜매스펄이 15일 내에 현금으로 보증금을 충당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고속터미널은 언제든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내용증명과 계약서간 오류가 발생하는 부분이 바로 이 규정이다. ㈜매스펄과 고속터미널이 계약을 체결한 지점은 2012년 5월1일. 내용증명이 보내진 시점은 이로부터 정확히 2년(24개월) 뒤다. 이에 따르면 ㈜매스펄이 계약 체결 후 임대료를 밀렸다면 24개월 분만 책정되어야 하며, 관리비 면제 규정에 따라 관리비는 19개월분만 계산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내용증명 상 체납된 금액은 ㈜매스펄이 ㈜화룡엔터프라이즈의 계약 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면서 계약시점 이전 금액까지 합산된 금액"이라며 "명도소송 소장에는 계약기간 이후 체납금액만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성 대표는 "고속터미널이 상가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해 밀린 임대료를 내지 못하게 원천 차단했다"며 "직원을 동원해 출입문을 막고, 터미널 이용객들의 출입을 방해하는 등 영업방해를 일삼았다"고 전했다. 성 대표는 또 "고속터미널은 ㈜매스펄이 서면으로 공사요청을 하면 문서로 승인하지 않고 항상 구두로 승인했다"며 "이 점이 재판 내내 약점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고속터미널 관계자는 "(주)매스펄은 임대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증금도 입금이 안 돼 있는 상태"라며 "고속터미널 입장에서는 임대료를 계속해서 내지 않고 있는 임차인과 계약을 지속하는 게 부담으로 작용해 명도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결정적 증거자료
재판 영향 있을까?

이 관계자는 또 "영업방해와 관련한 부분은 ㈜매스펄에서 형사고소를 진행했지만 무혐의 결정이 난 상태이고 미승인 공사 진행과 관련해서는 재판에서 모두 해명을 한 상태"라며 "재판 결과를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선고를 약 20여일 앞둔 현재 성 대표는 반전을 노릴 수 있게 됐다. ㈜매스펄 직원과 고속터미널 직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찾아냈기 때문. 성 대표가 공개한 대화에는 ㈜매스펄 직원이 공사 진행상황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냈고, 고속터미널 직원은 '수고했다'고 답변하고 있다. 고속터미널이 ㈜매스펄이 진행한 하차장 상가 공사를 몰랐을 리가 없다는 얘기. 이 증거자료는 추후 재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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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