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가망신 남녀노소 ‘몸캠 피싱’ 주의보

“채팅하면서 막 벗지 마세요”

[일요시사 사회팀] 이광호 기자 = 최근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각종 사기행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몸캠 피싱’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어 논란이다. 후유증에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락으로 몰아가는 몸캠 피싱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지난달 4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고층빌딩에서 20대 남성이 투신해 숨졌다. 경찰 및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께 광화문 사거리 인근인 서울 종로구 신문로 1가 소재 24층 빌딩에서 대학생 임모(25)씨가 투신하는 모습을 빌딩 맞은 편 면세점에 있던 시민이 목격해 경찰에 신고했다.

순간 실수로
자살까지…
 
신고를 접수한 경찰 및 소방 구급대원이 현장에 출동했을 때 임씨는 건물 옆 반지하 계단에 떨어진 상태였으며 이미 숨진 뒤였다. 경찰은 건물 옥상에서 임씨의 가방 등 소지품이 발견돼 임씨가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했지만 유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경찰은 임씨가 평소 우울해 했다는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했다.
 
임씨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 아닌 ‘몸캠(서로의 몸을 보여주며 통화하는 속어)’ 때문이었다. ‘몸캠피싱’은 누군가 화상채팅으로 여자 행세를 하며 상대방에게 음란한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 뒤, 이 모습을 사진아니 동영상으로 녹화해 돈을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임씨는 “300만원을 주지 않으면 재학 중인 학교 게시판에 나체 사진을 뿌리겠다”는 협박에 시달리다 지난 9월 피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임씨가 숨지기 전 신고한 내용을 토대로 채팅 상대를 추적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앞서 지난 8월27일, 충북 제천에서 한 남성이 투신자살했다. 당시 충북 제천경찰서는 충북 제천시 수산면 옥순대교 아래에서 쓰러져 있는 김모(34·포항시 복구 장성동)씨를 발견했다. 김씨는 숨지기 10일 전인 13일 경찰에 “음란사진을 유포하겠다며 현금을 요구하는 사기단 협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신고했지만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경찰은 몸캠 피싱 조직 검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따르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몸캠 피싱의 위험성이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진 데 반해 피해자는 나날이 늘고 있다.
 
나체녀가 음란행위 유도…알고보니 녹화
자위하다 신상털려 “가족·친구에 유포” 
 
인천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 최모(27)씨는 퇴근 후 이따금씩 야동(야한 동영상)을 즐겨보곤 했다. 그런데 최씨는 색다른 자극을 원했다. 그러던 중 스마트폰 음란 화상채팅을 알게 됐고 채팅 앱을 통해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최씨는 채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짜릿한 순간이 왔다. 대화 도중 이 여성이 속옷을 벗은 채 유혹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최씨의 정신은 혼미해졌다.
 
그런데 이 여성은 “화면이 끊기고 소리가 잘 안 들린다”며 채팅을 종료하고 “고화질로 음란 영상통화를 하고 싶다”며 자신이 추천하는 ‘시크릿 톡’이라는 앱을 설치하도록 강요했다. 이성을 잃은 최씨는 이 여성이 보내주는 앱을 받아 설치했지만 화질이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어찌됐든 최씨는 속옷을 벗어 던진 채 자신의 성기를 붙잡고 여성과 음란행위를 이어갔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문제는 다음 날 벌어졌다. 최씨가 여성으로부터 추천받은 앱 시크릿 톡은 화질 개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메모리 해킹 앱이었던 것이다. 최씨의 전화번호는 물론 연락처 목록, 이메일 주소, 계정 등 개인정보가 상대방에게 넘어갔다. 더 충격적인 것은 화상채팅을 하자고 접근한 사람은 여자인 척 연기를 했던 남자라는 사실이다. 음란행위를 부추긴 여성은 인터넷에서 떠도는 영상물 속 인물이었다. 즉 실시간 화상채팅이 아닌, 녹화된 영상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던 것이었다. 최씨는 자괴감에 빠졌다.

알몸 유출
변태 낙인
 
이 남성은 최씨에게 나체 사진 및 동영상을 보냈다. 그리고 최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돈을 보내지 않으면 가족 및 지인들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다. 겁먹은 최씨는 남성이 요구하는 50만원을 송금했다.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문제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이 남성은 최씨에게 더 큰 금액을 요구하며 협박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총 2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런데도 협박은 계속됐다. 최씨는 전화기를 붙잡고 펑펑 울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다행히도 나체사진이 지인들에게 전송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씨는 몸캠 피싱으로 인해 1주일이 넘도록 식은땀을 흘려가며 몸살을 앓을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끝까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의 후기를 보고난 뒤 기대를 접었던 것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몸캠 피싱 피해자들의 글이 이따금씩 올라온다. 이들이 하는 말은 비슷하다. “걸리면 끝이다” “신고해봤자 못 잡는다” “가능하면 돈으로 해결해라” 등이다. 몸캠 피싱의 주체는 흔히 조선족으로 알려졌다. 최씨와 같은 사례는 각종 포털사이트에 ‘스카이프 협박’이라는 검색어를 치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많은 피해자가 대처 방법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이 같은 피해자가 증가하면서 몸캠 피싱과 함께 ‘몸또’라는 말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온 신조어로 ‘몸캠 피싱 로또’의 줄임말이며 몸캠 피싱을 당한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용어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몸또는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걸까. 
 
조선족에 걸리면 돈 요구
꽃뱀 물면 빼도 박도 못해
 
음란 화상채팅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은 피해자들 모두가 조선족의 요구에 응하는 건 아니다. 철저히 무시한 채 일상생활을 하는 강심장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무대응이 의외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아니다. 피싱 가해자들에게 송금을 하지 않은 경우 경고한 대로 지인들을 카카오톡 방에 초대한 뒤 피해자의 얼굴과 신체 중요부위가 노출된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한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몸캠 피해자들은 비슷한 레파토리의 핑계를 늘어놓는다.
 
“지금 제 번호로 이상한 사진과 동영상이 유포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며칠 전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어떤 사람이 가져가서 해킹한 뒤 제 가방에 넣은 것 같아요. 카톡이나 문자로 링크를 뿌려서 누르게 하고 지인들의 돈을 뽑아가는 수법입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링크 절대 클릭하지 마세요.” 피해자들은 카톡에 숫자가 줄어들수록 가슴을 조린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냉랭했다. “너도 몸캠 찍었냐?” “변태자식 연락하지 마라” “오빠사진 맞아요? 충격” “너도 걸렸냐. 답이 없네” 등이었다.
 

이때 피해자의 카톡방에 초대되는 지인 중 일부는 몸또를 맞았다며 주변 지인에게 사진과 동영상을 뿌리면서 피해자의 상황을 우스갯거리로 전락시킨다. 여의치 않을 경우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게시해 관심을 산다. 
 
최근 들어서는 여성 피해자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모르는 사람이랑 몸캠하다가…’라는 글이 게시돼 뜨거운 반응을 이끌었다. 이 글의 게시자는 다름 아닌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은 게시판을 통해 “앱에서 만난 상대와 영상통화를 했다. 가슴만 보여줬는데 자꾸만 거기도 보여 달라고 졸랐다. 끝까지 안 보여주다가 영상통화를 마쳤는데 갑자기 ‘녹화했다’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여기저기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아래를 안 보여줘서 그런 건지, 차라리 보여줄 걸 그랬다. 지금 너무 무서워서 눈물이 난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몸또’당첨?
2차 피해 우려
 
몸캠 피싱 피해 사례가 증가함에 따라 경찰도 몸캠 피싱 조직 검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8월 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알몸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 수백명의 남성에게 총 14억원 상당을 가로챈 피싱 일당 3명을 검거했다. 앞서 지난 4월과 7월에도 피싱 조직을 검거하는 등 경찰은 지속적으로 수사 성과를 올리고 있다.
 
그러나 경찰청 관계자는 피싱 조직을 검거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한다. 예방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피싱 조직이 대부분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데다 악성코드를 유포하는 서버도 중국 등 해외에 두고 있어 추적하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현재는 말단의 현금 인출책 등이 주로 검거되고 있고, 대부분 범죄조직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청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스마트폰의 ‘환경설정’ 메뉴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앱의 설치를 차단하는 기능을 사용해 보안설정을 강화해야한다고 말한다. 출처불명의 실행파일은 애초에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음란채팅’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를 당했을 경우 송금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해서는 안 된다”며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된다. 돈을 뜯어내다가 결국에는 사진을 퍼뜨린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따라서 협박문자나 전화를 받은 경우 즉시 채팅화면을 캡처하고 송금내역 등 증거자료를 준비해 가까운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또 신고 후에는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초기화시키거나 설치된 악성 프로그램을 삭제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에 연동돼 있던 각종 계정도 탈퇴한 후 새롭게 개설하고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변경해야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사회적 고립
회생 불가?
 
한 스마트폰 해킹 전문강사는 “협박범들은 일반 계좌가 아닌, 가짜 계좌를 알려준다”며 “계좌를 받은 즉시 인터넷 뱅킹에 조회해 가짜 계좌를 확인한 후 없는 계좌이니 다른 계좌를 알려달라고 해서 신고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50만원을 입금하면 그때부터가 지옥의 시작이다. 반응을 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협박만 하다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한 번이라도 입금을 한 사람에게는 집요하게 협박하고 영혼마저도 뜯어낸다”며 무대응이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자들은 이 같은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스미싱 원천 차단솔루션 등을 설치하고 안드로이드 기반의 허용되지 않은 악성앱이 설치됐을 경우 신속하게 삭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연말 스미싱 주의보 ‘모임공지’ 잘못 눌렀다간 낭패
 
연말연시를 틈타 금전을 가로채는 스미싱 문자가 폭증할 전망이다. 지난 2일 업계에 따르면 ‘택배도착 확인’ ‘송년 모임참석자 명단’ ‘모바일 연하장’ ‘연말정산 확인’ ‘새해인사’ 등 스미싱 사례가 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스미싱이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로 아리송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로 발송된다. 스미싱 안에는 URL주소가 포함돼 있어,  사용자가 URL을 클릭하게 되면 스마트폰에 저장된 금융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들이 유출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실에 따르면 금융권의 전자금융사기 피해액은 2011년 502억1000만원, 2012년 1153억8000만원, 지난해 1364억7000만원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스미싱 사기 피해액은 지난해 48억700만원에서 올해(6월 기준) 2억7600만원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연말연시 특성상 순간적으로 문자내용을 클릭할 수 있어 피해가 우려된다.
 
또한 가격할인 쿠폰이 도착했다는 스미싱 문자메시지나 어려운 이웃을 돕자는 전자메일, 문자메시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SNS 서비스도 진위 여부를 가려 사이버범죄자들의 농간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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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