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 ⑮목숨을 구걸한 A급 전범들

재판정 서서 마지막까지 변명과 핑계

올해는 광복 69주년이 되는 해다. 내년이면 벌써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지만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요원하기만 하다. 게다가 고노담화를 부정하고,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는 등 일본의 역사인식은 과거보다 오히려 퇴보하고 있어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일본의 자랑인 ‘사무라이 정신’의 실체를 낱낱이 밝혀내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 일요시사가 화제의 책 <사무라이 정신은 거짓이다>를 연재한다.

그는 자신이 독일, 이태리, 일본의 삼국동맹을 주도하고, 동남아시아 침략을 주도했으며, 진주만 습격을 명령한 전쟁 주범이면서도, 재판에서는 모든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는 당당한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을 변명하는 일로 일관했다.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일어난 전쟁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으로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자신은 집행한 것뿐이라며, 모든 죄를 전임자에게 돌리고 선처를 호소했다.

명백한 거짓말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자신은 집행만 했다는 진주만 공격도 사실은 그가 주도한 것이었다. 1937년의 루거우차오(노구교 : 盧溝橋)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중국 침략을 시작했다. 그러자 일본이 중국을 지배하는 것을 반대하던 미국과 영국은 일본에게 철수를 요구하면서 군수물자 통제에 들어갔다.

특히 당시 필리핀을 지배하고 있던 미국은 인도네시아와 중동으로부터 일본으로 가는 석유 수송을 필리핀 해협에서 차단하며 일본에 압박을 가했다. 군수물자 확보가 절실해진 일본은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 아래 동남아시아를 침략하는 한편 미국과 교섭을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전면 철수를 요구하는 미국의 주장과 그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일본의 입장으로 미·일 교섭이 지지부진하자, 일본은 드디어 1941년 9월6일 어전회의를 열어 10월 초까지 미·일 교섭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을 공격 한다고 결의한다. 이 어전회의에서 중국에서 철수하는 것은 굴복이라며, 차라리 미국과 전쟁을 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당시의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였다.

그는 미·일 교섭의 진전이 없음에도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가 10월 초가 되어도 전쟁을 선포하지 않자 그를 사퇴시킬 것을 왕에게 요구했다. 그리고 후임 총리로 부임한 ‘도조 히데키’는 첫 어전회의에서 진주만 공격을 재차 결의했다.

‘대미 교전’을 결정한 어전회의 당시 총리는 ‘고노에 후미마로’였다 해도 대미 공격을 주장한 사람은 바로 당시의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였고, 고노에 후미마로를 대미 공격을 하지 않는다고 총리직에서 쫓아낸 사람도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그리고 그 후임 총리가 되어 진주만 공격을 재차 의결한 사람도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명령 따랐을 뿐 살려달라" 눈물로 호소
모든 죄 전임자에 돌리고 국민 탓하기도


그럼에도 도조 히데키는 외국인들로 구성된 재판관들이 일본 정치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은 전임자가 결정한 사항을 실행했을 뿐”이라며 새빨간 거짓말을 하며 목숨을 구걸했다.

도조 히데키는 한술 더 떠 “전쟁의 진짜 원인은 서구의 동아시아에 대한 식민지 정책의 영향과 세계 적화를 꾀하는 공산당의 책동이었지, 결코 일본이 전쟁을 유발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더하여 “나의 정권 아래서 아시아 각국은 일본과 대등한 입장이었지, 결코 식민지거나 피 점령지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적반하장 격으로 원폭투하 등 승전국이 자행한 대량 학살에 대해 재판하지 않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하며, 그 죄도 추궁하자고 호소했다. 중국과 일본의 전면 전쟁 계기가 됐던 ‘루거우차오(노구교) 사건’과 ‘남경대학살(南京大虐殺) 사건’ 등 대중 정책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 정책은 바로 직전의 정권에서 세운 계획으로 자신은 집행만 한 것이지, 자신이 정책을 계획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자신에게 돌아올 패전의 책임을 일본 정부와 국민의 탓으로 전가한 사실도 밝혀졌다.

항복 직후 쓴 수기에 “적의 위협에 겁먹고 손을 들어버리는 내각 지도자와 국민의 나약한 정신을 믿고 전쟁에 나선 것에 대해 개전 당시 책임자로서 깊은 후회를 느낀다”고 말하고 “신 폭탄(원자폭탄)에 움츠러들고 소련의 참전에 움찔해 무조건 항복하면, 국민의 전투 의지는 급속히 사그라진다. 이런 사태는 군을 지휘 통수하는 데 지대한 혼란을 일으켜 전투력을 저하시킨다”며 내각 결정에 반발했다.

이를 두고 ‘도조 히데키’ 연구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패전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에게 돌아올 책임 추궁에 신경을 곤두세운 속마음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처형되기 전에 “욕망의 이승을 오늘 하직하고, 미타(彌咤)의 곁으로 가는 기쁨이여…….”라는 유언시를 남겼다.

이 또한 위선이 아닌가 한다. 처형되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제대로 자살도 못하고, 재판에서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삶을 구걸하던 그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에는 마치 의연히 죽는 듯이 유언시를 남기는 행동은 너무 위선이라고 생각된다. ‘도조 히데키’는 전형적인 소심한 인간이었다.

전세가 유리할 때는 무슨 배포가 대단한 사람인 양 확전에 확전을 주도해 동남아시아를 침략하고 하와이까지 공격을 강행하면서, 부하에게는 사무라이답게 죽으라며 ‘전진훈(前進訓)’과 ‘와전옥쇄(瓦全玉碎)’의 훈령을 내렸던 그가 관동군에 있으면서 침략한 중국 난징의 대학살에서 보듯이 점령지 민족들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포악했으나, 막상 패전하자 자신은 겁이 나서 죽지도 못하고, 재판에서는 살아보겠다고 선처를 호소하며 구차한 변명으로 일관하는 추태를 부렸던 것이다.

부끄러운 추태를 부린 것은 ‘도조 히데키’만이 아니다. 전쟁의 주범, 소위 말하는 A급 전범들은 재판받는 와중에서 서로를 탓하고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목숨을 구걸했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A급 전범 15명이 자신의 변호인 앞으로 제출한 자필진술서에 의하면 “이들 A급 전범들은 태평양전쟁은 스스로 지키려는 정당한 전쟁이었다고 주장하고, 자신은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정당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쟁으로 많은 희생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언급하는 진술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고 한다.

책임회피

앞에서 말한 동부 헌병대 사령관 ‘오타니 게이지로’와 필리핀 전선을 지휘하던 ‘무토 아키라’의 추태 외에도, 봉천 특무기관장을 지내면서 그 많은 만주 주민을 학살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도비하라 겐지(土肥原 賢二)’는 “전쟁이 부당하다며 작전을 거부하는 것은 분명히 반역자가 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하면서, 자신은 군인으로서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발뺌하며, 형벌을 낮추어 줄 것을 재판관 앞에서 실제로 눈물을 흘리면서 호소했다.

이같이 자국민들에게 사무라이 정신을 강요하며 전쟁에서 포로로 잡히는 치욕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라던 핵심 군국주의자들마저 자결하지 못하고 살아남아, 패전의 책임을 변명하고 전가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추태를 보인다면, 도대체 그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진정한 사무라이의 행동은 어떤 것이냐고 묻고 싶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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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