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IMF 폭탄 맞았던 기업 눈부신 ‘경영 회생기’

만신창이 부실기업 열성으로 화려하게 비상하다!


1996년 재계는 OECD 가입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며 자축했다. 하지만 불과 1년 뒤 IMF가 찾아왔고 한보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그동안 방만 운영을 해왔던 중대형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하지만 부실기업이라는 낙인 속에서도 기업 회생을 위해 뼈아픈 인내의 시간을 버텨 온 기업들이 있다.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사가 한 마음으로 노력해 온 이들 기업은 최근의 글로벌 위기 속에서도 탄탄한 성장을 자랑하며 재계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IMF 당시 어려움을 겪은 이후 재기에 성공, 화려한 부활을 알리고 있는 기업들의 ‘경영 회생기’를 살펴봤다.


화승그룹 계열사 8 → 22개 ‘르까프’ 넘어 종합기업 성장
대한생명 자산규모 7년 만에 29조 → 56조 2배 ‘껑충’


지난달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대한상공회의소가 주관한 ‘제37회 상공인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고영립 화승그룹 회장은 경영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인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외환위기 당시 부도났던 기업을 10년여 만에 연매출 3조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화승그룹…살벌한 구조조정
6년 만에 ‘매출 3조원’ 성장

고 회장은 기념식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눈앞이 캄캄했던 시절을 떠올리니 더 감격스럽다”며 수상소감을 밝혔다. 고 회장의 말처럼 화승그룹은 IMF 이후 한동안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1998년 그룹 계열사 가운데 화승과 화승상사가 부도가 난 것이다. 해외로의 무리한 사업 확장이 원인이었다. 국내 대표 신발 브랜드 ‘르까프’와 재계 22위에 랭크됐던 그룹의 명성은 바닥까지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계열사 화승T&C의 대표로 있던 고 회장이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의 부름을 받고 부도난 두 회사의 대표로 임명됐다. 기업 회생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후 화승그룹은 고 회장을 선두로 전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그룹은 14개 계열사 중 금융, 레저, 제지 등 비주류 업종을 정리, 8개 계열사로 줄였고 화승과 화승상사는 합병했다. 1200명이던 직원을 300명까지 줄이는 등 살벌한 정리해고도 단행했다.

그룹 재건에 대한 고 회장의 강력한 의지도 보태졌다. 고 회장은 대표로 임명된 뒤 전 재산을 담보로 9억3000만원 정도의 자금을 마련해 회사 자금에 보탰다. 2005년 피부암과 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도 직원들과 함께 오전 6시에 출근해 밤 12시가 넘어 퇴근하는 등 기업 회생 의지를 불태웠다.

노사가 함께한 이 같은 의지에 화승그룹은 부도 이후 불과 6년여 만에 기업정상화를 이뤘고 외환위기 직후 8400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약 2조7000억원으로 3배 넘게 늘었다. 현재 화승그룹은 신발뿐 아니라 자동차 부품과 정밀 화학제품, 스포츠 패션, 자원 무역을 아우르는 종합기업으로 성장, 국내외에 총 22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고 회장의 금탑산업훈장 수상으로 화승그룹이 박수로 축하하던 지난 17일, 대한생명에서도 감동의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대한생명은 이 날 생보업계로는 동양생명 이후로 두 번째, 대형생보사로는 처음으로 코스피 시장에 상장됐다. 대한생명은 상장 첫 날부터 폭발적인 거래량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 날 하루 거래량은 6534만2610주로 신규종목 상장 첫날 거래량으로는 최고 기록이다.

1946년 국내 토종 1호 생보사로 문을 연 대한생명은 출발 당시부터 업계를 선도하며 빠르게 사세를 확장해왔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출발했던 기업은 1979년 보유계약액 1조원을 달성했고, 1985년엔 여의도 63빌딩을 준공하기도 했다. 이후 대한생명은 1996년 총자산 10조원을 돌파하며 업계 2위 생보사로서 고속 성장했지만 IMF 당시 발목이 잡혔다.

외환위기로 보험해약 건수가 급격히 증가했고 대주주였던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자금횡령과 계열사에 대한 부실 대출 등이 회사를 위태롭게 했다. 결국 1999년 금감원 조사에서 자산 초과 부채 규모가 3조원에 달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됐다. 이후 대한생명에는 3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이 수혈됐고 3년 뒤 한화그룹에 매각됐다. 당시 대한생명 인수를 두고 업계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김승연 회장은 금융감독위원회에 직접 입찰제한서를 제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대한생명…한화그룹 매각 후
업계 2번째 코스닥 상장 ‘결실’

이후 대한생명 인수에 성공한 김 회장은 당시 맡고 있던 한화석유화학 등 타계열사 대표이사직 마저 그만두며 2년여 동안 직접 대한생명을 이끌었다. 그룹 차원의 이 같은 경영정상화 노력에 이후 대한생명은 빠르게 회복세를 보였다. 인수 다음해인 2003년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업계 3위로 밀렸던 시장점유율이 2위로 올라섰으며 2008년 4월엔 인수 당시 2조2906억원에 달했던 누적결손금 전액을 털어냈다.

2002년 29조원에 달했던 자산 규모도 지난해 56조원으로 두 배나 성장했으며 매출도 11조원에서 14조원으로 크게 향상했다. 대한생명은 이번 코스피 상장을 발판으로 앞으로 글로벌 생보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실제 대한생명은 이번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 중 4800억원은 영업조직 구축에, 3000억원은 해외시장 진출과 수익원 다각화에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진로…‘참이슬’ 신화의 성공
리바트…‘종업원 지주제’ 해법

올해 창립 86주년을 맞는 진로도 IMF의 높은 파고에 휩쓸렸다가 기사회생한 대표 기업이다. 1924년 ‘진천양조상회’라는 이름의 주류회사는 특유의 두꺼비 심볼을 선보이며 1970년대 국내 소주 업계 1위를 차지했다. 이후 진로는 유통, 제약, 건설 분야 등 다방면에 진출하며 덩치를 키웠고, 1997년에는 매출 3조5000억원을 기록하며 재계 20위권에 진입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부도로 이어졌고 진로는 2003년 1월 증권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진로의 명성을 한 순간 바닥으로 떨어뜨린 장진호 전 진로그룹 회장은 5000억원 규모의 분식 회계 혐의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수장을 잃은 채 2003년 5월 본격적인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로는 오로지 ‘땀’과 ‘몸’으로 기업 살리기에 안간힘을 썼다. 말단사원부터 임원까지 기업 회생을 위해 발로 뛰며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린 것.

당시 직원들이 몸으로 부딪히는 마케팅으로 판로를 개척한 제품이 바로 ‘참이슬’ 소주다. 직원들의 이 같은 노력이 힘입어 ‘참이슬’은 생산 기업이 법정관리 중임에도 불구하고 최고 55.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할 정도로 소주시장에 돌풍을 몰고 왔다. 이후 2005년 3월에는 하이트맥주컨소시엄이 롯데, 두산, CJ 등 막강한 대기업을 물리치고 인수전에서 성공을 거두며 진로는 ‘제 2의 성장기’를 맞았다.

진로는 그해 7월 하이트-진로그룹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알렸고, 2개월 뒤 법정관리를 종료했다. 2007년 4월부터는 경쟁사 오비맥주를 제치고 하이트 맥주를 업계 1위로 올려놓은 윤종웅 하이트맥주 사장이 진로의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옮겨오면서 또 한 번 힘을 실었다. 이후 진로J 등 신제품을 잇따라 출시한 진로는 꾸준히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며 소주 업계 1위를 지키고 있다.

진로는 지난해 10월에는 상장 폐지 6년여 만에 재상장에 성공해 안정적인 자금 확보의 통로를 마련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한때 만년 적자로 ‘퇴출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닌 리바트 역시 IMF를 성공적으로 딛고 일어선 기업이다. 33년 동안 가구 생산만을 전문으로 해 온 가구전문기업 리바트는 지난달 24일 공시를 통해 주식 1주당 250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리바트 만성적자 퇴출 10년 만에 역대 최고 매출 달성
진로 상장 폐지 6년 만에 재상장·소주시장 1위 ‘굳건’ 


지난해 영업실적에 따른 배분 조치로 리바트의 2009년 매출액은 3782억원을 기록했다. 리바트 탄생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다. 영업이익도 222억원으로 전년 대비 7.7% 늘었고 당기순이익은 201억원으로 전년에 비해 11.56%나 증가했다. 하지만 지금의 성공이 있기까지 리바트는 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1977년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종합목재산업으로 출발한 리바트는 1998년 그룹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룹이 구조조정을 위해 부실계열사인 리바트를 분리하기로 결정한 것. 당시 리바트는 매년 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해 누적적자만 1000억원을 넘어섰다. 자본금 470억원에 부채가 32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기업의 부실이 심했다. 1998년 그룹의 계열사 분리로 고려산업개발에 합병된 리바트는 임금 15% 삭감 정책과 동시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3000명이던 직원들은 자발적인 이탈로 1000여명이 남았고 이듬해 300여명으로 줄었다. 리바트는 남은 직원들의 퇴직금과 협력업체 및 대리점의 힘을 합쳐 1999년 자본금 50억원의 ‘종업원 지주회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영업이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다. 리바트는 협력업체에 생산라인을 맡겨 생산을 책임지는 동시에 제조원가를 절감하는 ‘소사장제’를 업계 최초로 도입했다. 물류배송회사와 협력해 가구를 전문적으로 배달하는 택배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같은 택배시스템은 리바트가 업계 최초로 시행한 것으로 소비자가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선정하면 회사가 공장에서 제품을 직배송하는 것이다. 리바트의 이 같은 방안들은 원가 인하로 인한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져 매출 증대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리바트는 ‘종업원 지주회사’로 옷을 갈아입은 지 만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한 뒤 꾸준히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해엔 세계 경제 위기 속에서도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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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