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로 본 2014 국감 총정리

의미 없는 질문에 성의 없는 대답 '속빈 강정'

[일요시사 경제1팀] 한종해 기자 = 2014년 국감이 마무리됐다. 분리국감 등 우여곡절을 겪은 터라 여운이 깊게 남은 국감이었다. 피감기관은 672곳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지만 짧은 준비 기간 탓에 올해 역시 정책과 민생, 대안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요시사>가 '맥' 없이 끝난 국감을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이번 국감을 달군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카카오톡 검열이다. 여야 의원들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 수사기관이 개인의 사적인 대화 메시지를 엿보고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설전을 벌였다. 안전행정위원회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에서도 SNS 감시 문제가 화두가 됐다.

[카톡] 카톡 검열 논란은 지난 9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무회의 중 "대통령 모독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는 말이 단초가 됐다. 이에 검찰은 '사이버 유언비어 엄단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인터넷을 실시간 모니터링 해 허위사실 유포자를 상시 적발하겠다"며 사이버 명예훼손 전담수사팀을 발족했다.

혹시나 했는데
막말·딴짓 여전

국민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카카오톡마저 감시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퍼지면서 논란이 커졌다.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검찰의 감청영장 제시에 불응하겠다고 밝혔고,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협조는 당연하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이번 국감을 통해 얻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적어도 수사기관이 국민들의 대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황 장관은 "사적 공간을 수사기관이 살펴보는 일은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 대표도 "실시간 감청은 불가능 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시간 감청장비가 필요한 데 설비도 없을뿐더러 갖출 생각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국내 수사기관의 접근이 쉽지 않은 해외 메신저로의 사이버 망명은 줄을 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사이버 망명지'인 텔레그램 이용자 수는 사이버 검열 논란이 본격화하기 시작한 9월 셋째 주 42만명을 찍었다. 9월 둘째 주 이용자수는 4만명에 불과했다. 이후에도 텔레그램은 매주 40만명 이상의 이용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반면 카카오톡, 네이트온, 마이피플 등 등 국내 메신저의 사용자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안전불감증] 국가적인 이슈인 세월호 참사는 대부분의 상임위원회에서 다뤄졌다. 여야는 질타를 쏟아냈고 특히 사고 전 관리 부실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참사 이후 발생한 홍도 유람선 사고도 지적됐다. 이 과정에서 '해피아' 관행이 도마에 올랐다. 관심이 집중됐던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의 증인 출석은 이뤄지지 못했다. 대신 세월호 선원들과 해양경찰청 관계자 등이 증인으로 나왔고 미숙한 대응과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17일 판교테크노벨리 환풍구 추락사고가 발생하면서 '안전불감증'은 국감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안전행정위원회와 국토교통위원회를 중심으로 환풍구를 포함한 생활 주변 위험시설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긴급 진단을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실제로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서는 성과를 거뒀다.

여당은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인 이재명 성남시장에게, 야당은 새누리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지사에게 책임을 묻고 성남시와 이데일리,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은 행사 주최와 주관을 놓고 책임을 떠 넘기는 등 책임소재를 둘러싼 파행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연기 또 연기…시작부터 불안
우여곡절 끝에 맥없이 마무리

[○피아] 올해 국감에서는 해당 조직 이름과 마피아 단어를 조합한 각종 '피아'가 유독 많았다. 그나마 익숙한 모피아, 해피아 외에도 정피아(정치), 군피아(군대), 경피아(경찰), 전피아(전력), 농피아(농촌진흥청), 산피아(산업부), 문피아(문화부), 환피아(환경부), 오다피아(ODA), 법피아(법조계), 세피아(세무공무원), 소피아(소방관료), 핵피아(한국수력원자력) 등이다. 통피아(통신), 선피아(선거), 교피아(교수), 특피아(특허청), 도피아(도로공사) 등도 등장했다.

국감 첫날인 지난 7일 산업통상자원위원회 특허청 국감에서 특허청 퇴직 공무원이 산하기관 혹은 유관단체에 재취업한 것을 의미하는 특피아가 도마에 올랐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는 야당이 문화부가 추진하는 학교환경위생정화구역 내 호텔 설치 허용 정책 추진을 놓고 문피아라고 비판했다.


국감 둘째날인 8일에는 농촌진흥청 국정감사에서 해외농업기술센터 역대 소장 46명 중 16명이 농진청이나 지자체 고위공무원 출신 퇴직자라며 농피아라는 지적이 있었으며 도로공사 국정감사에서는 전국 335개 영업소 가운데 265개 영업소를 전직 도로공사 직원이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도피아가 논란이 됐다.

 

새정치민주연합 백재현 의원은 한전KPS의 최근 10년간 퇴직 임직원 재취업 현황을 분석해 39명의 한전KPS 임직원이 15개 협력업체에 재취업했다고 밝히면서 전피아 문제가 불거졌다.

국방위원회 국감에서는 군피아 납품비리가 부각됐다. 군은 시중 가격이 1만원 정도밖에 안 되는 4G USB 메모리를 95만원에 구입하고 시중에서 2억원에 구할 수 있는 통영함 음파탐지기를 41억원을 주고 샀다. K-9자주포의 부품 납품 과정에서도 공인시험성적서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총체적 부실이 발각됐다.

[혈세 낭비] 올해 국감은 시작 전부터 10억의 혈세를 날렸다. 감사 효율도 안 오를 뿐더러 내년도 예산 심의에 적잖은 지장을 초래한다는 기존 국감의 문제가 불거지자 당초 국회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분리국감을 시행하기로 했다. 1차 국감을 8월26일부터 9월4일까지 진행하고, 2차 국감을 10월1일부터 10월10일까지 하자는 내용이었다.

올해도 공기업
여야 집중 타깃

하지만 세월호 특별법 문제로 본회의가 무산되면서 분리국감은 시작도 하기 전 파행을 맞았고, 국감장 설치, 자료 준비 등 분리국감을 위해 들어간 약 10억원의 혈세가 공중분해됐다.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인한 혈세 낭비도 집중 포화를 맞았다. 한국석유공사는 캐나다 에너지업체 '하베스트'를 1조원에 사들였다가 900억원에 팔았다. 특히 하베스트 인수 당시 자문을 한 회사가 이명박 정부 핵심 실세의 아들이 근무하던 곳으로 드러나면서 권력형 게이트 의혹도 제기됐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이미 부도가 난 멕시코 볼레오 동광개발사업을 2조원에 인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글로벌 호구'로 등극했다. 이밖에도 농식품부는 유명 연예인 홍보대사 위촉에 최근 5년간 8억2100만원의 혈세를 낭비했고 경기도는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일산대교와 제3경인고속화도로의 통행량을 과다 예측하면서 수백억원의 혈세를 지원해 왔으며 질병관리본부는 결핵예방백신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 8년간 약 89억원을 투자했지만 현재까지 백신 생산을 위한 균주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막말] 막말은 국감하면 빠질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다.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국감장에서 윽박지르기나 막말, 저속어 사용 등은 여전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윤종승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게 "인간은 연세가 많으면 판단력이 떨어진다. 79세면 쉬어야 한다"고 말해 '노인 폄하' 논란을 불렀다.

새누리당 송영근, 정미경 의원은 동료 의원을 비하하는 쪽지를 주고 받다 발각됐다. 두 의원은 국방위원회 국감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진성준 의원을 겨냥해 "쟤는 뭐든지 삐딱! 이상하게 저기 애들은 다 그래요!"라는 쪽지를 주고 받았다. 이 일로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원내대표 취임 후 가진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와의 첫 회동에서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박원순 서울 시장의 부적절한 시립대 교수 채용, 구룡마을 사업 무산, 시민운동가 시절 협찬 내용 등을 거론하며 "박원순 시장을 무책임, 무결정, 무도덕, 무소신 등 '4무 시장'이라 부르고 싶다"는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


피감기관 672곳 '역대 최다'
올해도 역시 정책·민생 실종

새정치민주연합 은수미 의원은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에 대해 '노동환경에 문외한'이라고 공세를 폈다. 권 의원이 인격모독이라며 사과를 요구했지만 은 의원은 "그건 폄하가 아니다. 너무 솔직하게 말한 것은 사과한다"고 받아쳤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은 청와대 직원들을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지칭했으며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은 정해방 금융통화위원에게 "한글도 모르냐"는 발언을 날려 파문을 일으켰다. 새정치민주연합 강기정 의원은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던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에게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외교통상위원회 국감에 참여한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은 "주재관들이 인사를 안 한다"며 권위적인 태도를 보여 논란이 됐다.

[딴짓]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몇몇 국회의원들의 적절치 못한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은 8일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감 중 휴대전화로 비키니를 입은 여성사진을 보는 모습이 포착돼 된통 혼이 났다. 권 의원 측은 "휴대폰으로 환경노동위 관련 기사를 검색하다 잘못 눌러서 비키니 여성 사진이 뜬 것이다. 의도적인 게 아니다"고 해명했으나 주요 포털사이트와 SNS를 통해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면서 질타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여성위원회는 다음 날 보도자료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과 언론이 지켜보는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실추시키고 정치 불신을 야기한 권성동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은 13일 법제위 법무부 국감 도중 손톱을 손질하고 있는 모습이 <서울신문>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두 여인] 국감 마지막 날이던 지난 27일에는 '두 여인'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국감 뺑소니'로 질타를 받은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난방열사'로 불리는 배우 김부선씨였다. 두 사람의 명암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이날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장에 출석한 김 총재는 잔뜩 몸을 낮췄다. 김 총재는 지난 23일 예정됐던 국감을 앞두고 중국 출장을 떠나면서 국감에 불참해 '국감 뺑소니'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 총재는 이날 쏟아지는 의원들의 사과 요구에 "정중히 사과드린다. 양해해 주시면 일어나서 국민과 의원분들께 인사 드리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또 기관소개에 앞서서도 "4년 만에 열리는 아태 적십자사 총재회의에 참석하느라 그랬다"며 "제 불찰로 생긴 일에 대한 의원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반성하고 사과드린다"며 재차 사과했다. 특정국가 비하 발언과 위안부 할머니들의 시위에 대한 비하 발언에 대해서도 "어릴 때였고 기업인으로서 책임이 없었다. 오해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낙하산·보은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김 총재는 "밖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보은이었으면 절대로 받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은인사설을 부인했다. 자신은 국내외에서 NGO 활동을 하면서 봉사를 해 왔고 글로벌 기업을 경영하면서 효율성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십자사를 운영하는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김 총재의 설명이다.

"모른다"
"아니다"

반면 김부선씨는 당당했다. 김씨는 27일 국토교통위원회 국감에 참고인으로 출석, 아파트 관리비 실태를 폭로했다. 김씨는 "난방열사 말고 투사로 불러 달라. 40년 동안 묵은 문제인데 여야가 어디 있고, 사상과 이념이 어디 있느냐"며 "국회의원들에게도 그렇게 문제 제기를 했는데 손을 놓은 국회의원들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씨는 앞서 서울시 성동구 옥수동 모 아파트 난방 비리를 폭로하면서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과 몸싸움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자신의 SNS를 통해 실태를 고발, '난방열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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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다 된 밥’ 이재명 연임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합심해 이재명 대표의 연임설에 군불을 때고 있다. 이 대표는 긍정의 뜻을 밝히지 않았지만 구태여 거절하지도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고심을 거듭한 이 대표의 선택은 무엇일까? 2022년 3월부터 쉼 없이 달려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이야기다. 이 대표는 지난 20대 대선서 패배한 후 곧바로 인천 계양으로 향했다. 지역구에 깃발을 꽂자마자 그해 8월에는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직까지 싹 쓸었다. 지난해 9월, 윤석열정부에게 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사과 등을 요구하며 24일 동안 단식을 했고 올해 초에는 피습을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죽지 않고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 대표 임기를 3개월 앞둔 시점서 이번에는 연임설이 솔솔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을 묻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당 대표는 정말 3D(어렵고·더럽고·위험한 직을 일컫는 말) 중에서 3D다.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며 불출마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이 대표는 대선 패배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전당대회 출마 의사를 밝혔다. 대선서 패배한 뒤 6·1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해 약 한 달 반 만에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다. 당에서는 이 대표의 선택을 만류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서 전당대회에 출마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독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이 대표가 출마를 고심한다는 풍문이 여의도를 돌자 그의 측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생각해서라도 자제하셔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를 저격하고 나섰다. 당시 차기 당권주자였던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전과 4범의 이력으로 뻔뻔하게 대선에 나서고 연고도 없는 곳에 나가 ‘방탄용 출마’로 국민들 부끄럽게 하시더니 이젠 제헌절마저 부끄럽게 만드나”라며 이 대표를 직격했다. 이어 “‘개딸(개혁의 딸)’들 같은 광신도 그룹의 지지를 받아 ‘어대명(어차피 당 대표는 이재명)’이라고 하니 ‘방탄 대표’ 이 의원의 당선을 미리 축하는 드린다”며 비꼬기도 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했다. 경선을 약 한 달 앞둔 2022년 7월이었다. 그는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대선과 대선 결과에 연동된 지방선거 패배의 가장 큰 책임은 제게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책임은 문제회피가 아니라 문제해결이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선 끝에 이 대표는 77.77%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선서 패배한 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169석을 가진 거대 야당의 우두머리가 된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당대표로 우뚝 연임-지선 코스 밟고 대선까지 쭉 당 대표직을 따내는 데 성공했지만 이 대표의 정치 인생은 난항의 연속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 세력이 주류였던 만큼 하루가 멀다하고 친명(친 이재명)과 비명(비 이재명) 간의 갈등이 불거진 탓이다. ‘심리적 분당’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오갔고 비명계 의원들의 도미노 탈당이 이어졌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 과정서 또다시 계파 갈등이 불거졌다. 모든 과정서 비판과 화살의 끝은 이 대표를 향했다. 오는 8월을 마지막으로 이 대표가 자리서 물러설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총선이 끝나자 판세가 바뀌었다. 이번 선거를 승리로 이끈 이 대표가 한 번 더 당권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민주당이 이 대표의 연임을 원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제시된다. 첫 번째로는 정권교체다. 이번 총선서 압승을 거둔 이 대표의 능력이 입증됐으니 2027년 정권을 교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야 한다는 것이다. 범야권까지 탈탈 털어도 대권주자가 마땅치 않은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맞수는 이재명 뿐”이라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기도 하다. 두 번째는 인사의 부재다. 당장 전당대회가 4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당내 차기 당 대표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다. 총선 후 자칭타칭 차기 당 대표로 지목된 이들이 여의도 입소문에 오르내릴 법도 하지만 사소한 소문조차 떠돌지 않는다. 이 대표가 연임을 시작으로 지방선거를 거쳐 대권주자까지 이어지는 코스를 밟아도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이들이 없다. 이번 공천을 통해 다수의 비명계가 경선서 탈락하거나 탈당하는 등 대규모 물갈이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연임설에 최초로 불을 댕긴 건 5선을 달성한 박지원 당선인이다. 그는 지난달 15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번 총선을 통해서도 국민은 이 대표를 신임했다”며 “총선 때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대표 본인이 원한다면 당 대표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매끄러운 시나리오 최근에도 박 당선인은 “연임에 대해서 아무런 이의가 없고 현재 당내서도 당 대표에 대해서 도전자가 없다”며 연임 가능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전직 총리 등 중진들과 이야기해 보면 지금은 ‘이재명 타임’이라고 한다”며 “이 대표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당을 이끄는 것이 좋다고 전에 얘기한 것이 적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친명계 좌장으로 통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 대표의 연임은 당내 통합을 강화할 수 있고 국민이 원하는 대여 투쟁을 확실히 하는 의미서 나쁜 카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장경태 최고위원 역시 “국민의 바람대로 22대 개혁 국회를 만들기 위한 대표 연임은 필수 불가결”이라며 “부디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민주당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택, 최선의 결과인 당 대표 연임을 결단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정청래 최고위원은 대표 연임 추대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그는 “옆에서 가까이 지켜본 결과 (이 대표가)한 번 더 당 대표를 하면 갖고 있는 정치적 능력을 더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며 “당 대표 연임으로 윤석열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국민을 하나로 엮어내는 역할을 할 지도자는 이 대표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계열서 당 대표가 연임한 건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민주당 전신)의 총재직을 지낸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민주당 역사상 두 번째로 남게 된다. 핵심 친명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연임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사실상 추대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명분과 타이밍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만일 이 대표가 연임을 받아들인다면 그의 임기는 2026년 8월까지 연장된다. 하지만 민주당 당헌·당규상 대권후보가 되기 위해서는 대선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을 사퇴해야 하는 만큼 2026년 3월까지 당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2026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다. 3개월은 공천 작업 등 선거를 치르기 위한 기반을 충분히 다져놓을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게 민주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심? 당심? 엇갈린 선택 이번 총선에 이어 지방선거까지 이 대표 체제로 승리한다면 그는 더할 나위 없는 리더십을 얻는다. 2027년 치러질 대선에 출마할 명목도 다시 한번 다질 수 있게 된다. 이 대표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분위기지만 그만큼 날 선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는 모양새다. 이 대표의 연임이 ‘사법 리스크 방탄용’이란 지적이 제기되면서 또다시 발목 잡힐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연임이 대장동 개발 특혜를 비롯한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등을 방어하기 위한 ‘매력적인 카드’에 지나치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는 이 대표 개인뿐만이 아니라 민주당 전체가 ‘방탄 정당’이란 오명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에는 이 대표와 민주당이 함께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사법 리스크로 당내 신 비명 세력이 생기고 지방선거 결과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이 대표는 오히려 대권주자로서 큰 오점을 남기게 된다. 게다가 이번 총선처럼 지방선거서도 압승을 거둘 것이란 보장도 없다. 따라서 이 대표가 그동안 쌓아온 업적을 보존한 채 한발 뒤로 물러서 숨을 고르는 게 좋은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의도에서는 실보다 득이 더 크게 보이는 만큼 총선 승리라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박수칠 때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어차피 다음 당 대표도 대통령 후보도 이재명 당신이 될 테니 좀 쉬셔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총선서 좋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나. 또다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건 확률이 반반인 게임을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원대·의장 이어 ‘3톱’ 달성? 점점 멀어지는 포스트 우려도 이 대표가 연임한다면 2022년부터 2026년까지 내리 4년 동안 당권을 잡게 된다. 국민의 피로도가 누적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는 부분이다. 최근 당내 발생한 일렬의 사건에 모두 명심(이재명 대표의 의중)이 짙게 묻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이 대표에게도 정치적 휴식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앞서 지난 3일 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선거가 열렸는데 다른 후보가 없어 경선을 건너뛴 채 친명 박찬대 의원이 찬반 투표로 선출됐다.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거 후보군은 당초 4명이었지만 정성호·조정식 의원이 잇따라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교통정리가 이뤄졌다. 원내대표 선거와 국회의장 후보가 교통정리 되는 과정서 이 대표가 과도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포스트 이재명’에 대한 논의조차 시작되지 않은 상황서 당의 무게 중심이 지나치게 이 대표 쪽으로 쏠릴 경우 민심의 후폭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당대회까지 3개월가량 남은 만큼 민주당은 당의 흐름과 민심이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점도 의식해야 한다. <뉴시스>가 국민리서치그룹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9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이 대표의 연임에 관해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은 44%로 ‘반대한다’는 응답 45%보다 1%p 낮게 나타났다. ‘잘 모르겠다’는 11%였다. 오차범위로 인해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고 확실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과 민심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당 지지도별로 봤을 때는 더욱 확연한 차이가 드러난다.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찬성이 83%, 반대가 12%로 찬성 여론이 압도적인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반대가 76%로 찬성(15%)보다 61%p 높게 나타났다. 무당층에선 반대 응답이 47%, 찬성 응답은 25%로 집계됐다. 해당 조사는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5%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지금부터 이의 시간 이 대표는 떠오르는 자신의 연임설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도 “당 대표 연임설과 관련해 의견 교류는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대표는 최근 들어 당 의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며 의견을 묻고 다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서는 당의 수장이 아랫사람들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당원들의 의견을 묻는 것은 당연한 민주적 절차”라는 게 민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재 여의도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이 대표는 말 한마디만으로도 연임이 가능하다. 2027년 대선까지 앞으로 3년, 민주당의 운명은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견제구 던지는 국힘 총선 참패의 먹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국민의힘에 다시 한번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연임에 성공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날까지 윤-이 대결 구도로 정국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김민수 대변인은 지난 7일 논평을 통해 “이 대표의 민주당 사당화 전략은 반헌법적 행태”라며 일찌감치 견제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은 이 대표의 ‘점지’ 없이는 주요 보직에 자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처절한 마음으로 국민을 바라보며 이 대표의 독주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