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계약서 ‘김석동 사인’ 수수께끼

두 장의 2·17 합의서…진본은?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외환은행이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은 지난 20012년 2월17일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그런데 당시 약속했던 ‘2·17 합의서’를 두고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조가 진실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같은 합의서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사인이 있는 문서와 없는 문서로 갈렸다. 각자 가지고 있는 문건 둘 중 하나는 가짜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가 조기통합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서명이 들어간 문건을 놓고 논란을 벌이고 있다.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

2·17 합의서는 지난 2012년 2월17일 하나금융이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사들이면서 맺어진 것이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 주체로 돼 있다. 합의서의 주요 골자는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5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인위적인 인원감축 금지, 생산성 향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이익배분제 도입 등의 세부적 내용도 담겨 있다.

합의 당사자는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정부 측 입회인 자격으로 합의서 조인식에 참석했다. 당시 노사 양측은 합의서에 각각 서명하고 문건을 나눠 보관했다.

그런데 최근 이 문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위원회도 서명을 했는지가 논란거리다. 함께 작성한 2·17 합의서는 김석동 위원장의 서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개로 나눠졌다. 애초에 두 가지 버전의 합의서가 만들어졌다느니, 원본에 없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나중에 들어갔다느니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노조 측이 갖고 있는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서명이 담겨 있다. 5년간 독립보장을 주장하는 외환은행 노조는 당시 김 위원장이 참석해 서명한 것을 근거로 2·17 합의 일종의 노사정 합의라고 의미를 부여해왔다. 하지만 사측이 보관중인 합의서에는 김 전 위원장의 이름과 서명이 없다. 이렇게 되면 하나는 진짜, 하나는 가짜가 된다.

파문이 확산되면서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하나·외환은행 조기통합 추진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감에서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17 합의서에 대해 정부차원의 보증을 한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 의원은 “합의서 마지막에 ‘노사정 합의서’라고 병기돼 있으면 노사정 합의라는 것”이라며 “입회인 자격으로 서명했지만 노사정 합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과거 합의 당시 김 전 위원장이 서명한 것에 대해서 별다른 의미가 없다”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라고 회피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단순 입회자로서 참여했다는 이야기다.

이어 그는 “고용노동부와 협의가 있는데 노사정 합의라기보다 노사합의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 전문 지식을 갖고 있는 부처의 의견”이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합의서에는 ‘입회인, 금융위원장 김석동’이라는 김 전 위원장의 사인이 있는데 사인이 없는 합의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정부 차원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중국에서 체류중이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도 국감장에 출석했다. 김 전 회장은 2·17 합의에 대해 노사 간 합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인데 김석동 전 위원장이 서명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합의서 원본에는 당시 김석동 전 위원장의 서명은 물론 이름 자체도 없다”고 답했다.

당사자인 김석동 전 위원장의 입장은 들을 수 없는 상태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지난 3월 시민단체로부터 론스타가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임에도 외환은행 인수 및 철수를 승인한 혐의로 고발당한 바 있다. 외환은행 인수 당시 금융당국 책임자로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산업자본임을 알고서도 이를 묵인한 혐의에서다.

하나-외환 노조 조기통합 앞두고 대립
론스타 매매 때 맺은 문건 놓고 공방


외환 노조는 합의서에 김석동 전 위원장의 직위와 이름이 들어갔고,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서명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당시 합의가 노사정 합의에 해당하며, 이 합의를 깨는 조기통합 관련 협상은 정부가 중재해야 응할 수 있다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아울러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전 위원장이 2·17 합의서에 서명하는 사진을 공개했다. 한 의원은 사진을 통해 김승유 전 회장이 위증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이 공개한 사진에는 김 전 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사이에 앉아 서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이밖에도 김승유 전 회장이 김기철 전 노조위원장이 서명하는 모습, 서명을 마치고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김승유 전 회장과 김기철 노조위원장의 손을 잡고 있는 사진도 공개됐다.

한 의원은 “금융위 국정감사에서 김 전 회장이 ‘노사정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금융위원장의 사인이 있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은 위증”이라며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승인권을 가지고 있는 금융위가 조기통합 문제에 뒷짐 지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애초 두개 버전?
나중에 서명했다?

그동안 2·17 합의서는 하나와 외환은행의 합병 기준으로 인식돼왔다. 하나금융지주는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3년 만에 깨졌다. 지난 7월 김정태 하나지주 회장은 조기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올해 안에 통합하겠다는 의중을 보였다. 이후 하나금융그룹은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보장한 2·17 합의를 깨고 3년 만에 조기통합을 추진한 명분은 경영 위기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한지 3년이 다 돼가지만 그룹 계열사 간 시너지는 전무하고, 외환은행의 기초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금융은 투 뱅크(two bank) 체제로는 조직의 장기적 생존기반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나·외환 은행은 통합 이사회를 개최하고 공식적인 통합절차에 착수했다. 29일 하나금융지주 자회사인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은 결국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하나·외환 은행은 이날 각각 이사회를 열어 조기 합병을 의결했다. 이어 하나금융지주 이사회를 거쳐 두 은행 간 합병 계약을 맺었다. 합병 비율은 하나은행 보통주 1주당 외환은행 보통주 2.97주다. 사실상 하나은행이 외환은행을 흡수 합병하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이달 초 금융 당국에 합병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승인에 최소 60일가량 걸릴 예정이다. 주주총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통합법인은 내년 2월쯤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도 통합법인 출범 일을 일단 내년 2월1일로 잡고 있다.

하나금융은 조기통합 시 연간 비용절감 2692억원에 수익증대 효과 429억원까지 더해 매년 3121억원에 이르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두 은행이 합병하게 되면 연내 총자산 334조원의 메가뱅크가 탄생하게 된다. KB국민은행(292조원), 우리은행(273조원), 신한은행(263조원)을 압도한다.

‘5년 독립보장’ 금융위원장 서명
외환 쪽 문건 ○…하나 쪽 문건 X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하나·외환은행 간의 통합을 명분으로 30일 사퇴의사를 표명했다. 내년 3월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은행장직을 내려놓은 것. 통합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는 입장이다. 외환은행 인수 이후 국내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투 뱅크 체제를 유지하는데 한계에 직면했다는 점도 조기 통합의 이유다.


합병에 따른 존속법인은 외환은행으로 남기기로 했다. 순익 규모가 더 적은 외환은행을 존속법인으로 해야 법인세를 더 적게 내는 등 세테크 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합병당하는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화를 달래보겠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하나금융의 존속법인 양보에는 은행의 명칭을 염두한 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병 은행 명칭은 통합추진위원회에서 추후 결정하기로 했지만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하나금융지주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아직 명칭에 대해 ‘하나’라고 결정된 바 없고, 통합추진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며 “저희로서는 저성장, 저마진에 직면한 상태인 만큼 빨리 합쳐서 다른 은행에 없는 장점으로 위기를 돌파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와의 대화에 대해 이 관계자는 “이사회가 끝났다고 대화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 대화를 할 것이고,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내부적인 합병 절차를 마무리 짓고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이미 공표한 대로 조만간 물러난다. 초대 합병은행장으로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달 초 김한조 외환은행장은 ‘소통’에서 돌연 ‘강경’으로 태도를 바꿔 직원들로부터 원성을 사기도 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인사위원회를 열어 대규모 직원 징계 조치에 들어갔다.

지난 3일 외환은행 노조가 개최하려던 임시조합원 총회에 참석했거나 참석하려던 직원 898명을 징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금융권 사상 단일사안으로는 최대 규모의 징계 조치였다. 내부에서는 통합은행장에 대한 야심이 외환은행 출신 ‘외환맨’인 김 행장의 태도를 바꾸게 만들었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김 행장은 외환은행 일부 직원들에게서 ‘선배가 배신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외환은행은 노동조합의 조합원 총회 참석과 관련해 사상 최대 규모로 추진하던 직원 징계를 풀어주기로 했다. 당초 900명이던 징계 대상을 38명으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 것. 애초 898명에 2명이 추가된 900명이 징계 대상으로 분류되다가 이 가운데 862명(95.8%)이 제외된 것이다. 외환은행에 따르면 징계 대상인 38명은 견책 이하 경징계 21명, 중징계 17명(정직 3명, 감봉 14명)이다. 중징계 대상은 애초 56명으로 분류됐으나, 이 역시 약 3분의 1로 줄었다.

이러한 사측의 결정에 외환노조도 태도를 바꿨다. 사측과의 대화를 거부했던 외환 노조도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나금융지주에 제의했다. 이로써 평행선을 달리던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조기통합 작업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어떤 합의서가
법적효력 있나

노조는 “조건 없이 사측과 대화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조기통합 반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이다.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입장은 변함이 없고 대화는 2·17 합의 기반으로 진행돼야 한다”면서도 “조직과 직원들, 금융산업의 발전 등을 위한 것이라면 2·17 합의를 뛰어넘는 조건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하나금융과 외환노조가 각각 가지고 있는 2·17 합의서의 위조 여부를 떠나 어떤 합의서에 법적효력이 있느냐가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으로 둘 중 하나의 법적효력이 있는 2·17 합의서가 하나-외환 통합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원히 묻히는 론스타 의혹들

외환은행은 한때 훌륭한 국산 금융브랜드로 꼽혔다. 능력있는 직원들이 모인 유망했던 은행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03년 론스타의 매각 후 외환은행은 이제 새 주인을 맞이한다. 하나금융지주 품에 안기면서 외환은행도 조만간 금융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은행 관계자들은 아직까지도 외환은행에 대해 이대로 사라지기엔 아까운 은행으로 평가하고 있다. 외환위기로 매각됐지만 그렇게 쉽게 사라질 은행이 아니었다는 부연이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던 과정은 아직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론스타 게이트의 ‘몸통’은 누구이며 무엇 때문인지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시계추를 돌려 2003년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이 사심이 끼어든 음모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관련자 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외환은행 직원이 돌연사로 죽었고, 금감원 직원은 과로사로 죽었다. 두 사람은 외환은행 매각의 심사 서류를 다룬 핵심 실무자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핵심 비밀을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다.

외환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을 6.1%대로 낮춰 잡은 의문의 팩스는 외환은행 직원의 컴퓨터에서 작성됐다. 금감원 직원은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51%에 달하는 외환은행 지분을 취득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현재 두 사람의 근거 자료는 모두 없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검찰 수사도 중단된 상태다. 이제 운명의 수레바퀴는 외환은행이 새 주인 하나금융지주를 만나는 지점까지 왔다. 론스타로부터 하나금융으로 다시 팔린 외환은행은 앞으로 간판마저 내려야 할 판이다. 기구한 운명 속에서 외환은행 직원들은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의 이면에는 구조조정 대상이 돼야 했던 직원들의 아픔과 희생이 서려있다. 은행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으로 들어가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론스타의 인수 과정 의혹도 이대로 묻혀질까 우려하고 있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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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