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순·김길태 입 열게 한 ‘프로파일러의 힘’

흉악범도 혀 내두르는 ‘프로파일러’의 세계

범죄심리, 행동분석 요원인 프로파일러가 주목받고 있다. 여중생 살해범 김길태의 검거부터 자백까지 프로파일러의 공이 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이들은 강력사건이 터질 때 마다 철저한 분석과 추리를 통해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정남규, 강호순, 조두순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흉악범들은 으레 프로파일러가 등장해야 자신들의 행각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지능화된 범죄로 증거조차 잡기 힘든 사건이 급증하면서 프로파일러의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여중생 납치살해범 김길태 자백에 프로파일러 공로 알려지면서 주목
범인의 과거 행적과 심리, 행동분석 등으로 범인검거와 자백 이끌어

여중생을 살해한 뒤 보름동안 두문불출했던 김길태. 재개발지역 빈집에 숨어 경찰과 시민을 따돌렸던 김길태 검거의 일등공신은 바로 프로파일러였다. 부산지방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들은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김길태로 밝혀진 순간부터 각종 분석에 들어갔다. 김길태의 범행 이력, 성격, 성향, 과거 행적을 통한 심리 분석이 그것이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김길태가 자신의 집이나 범행 현장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 숨어 지내고 있을 거란 예측을 내놨다. 범인이 11년 동안 교도소 수감 생활을 해 극단적인 심리적 불안감과 대인기피 등의 증세를 보인 점과 휴대전화나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운전면허가 없다는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해줬다.

검거에서 자백까지
심리분석 빛 발해

이에 따라 경찰은 범행 현장인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 재개발 지역을 정밀수색했다. 결국 김길태는 경찰의 수색망에 걸려들어 지난 10일 오후 2시45분 덜미를 잡혔다. 범행 현장에서 200~300m 정도 떨어진 부산시 사상구 삼락동의 한 빌라 앞에서 도주하다 경찰관에게 붙잡힌 것이다. 프로파일러가 지목한 장소에서였다.

하지만 수사의 난항은 검거부터 시작이었다. 김길태의 발을 묶을 수는 있었지만 입을 열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김길태는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라며 범행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성폭행혐의와는 달리 살인혐의에 대한 증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비협조적인 김길태의 태도는 자칫하면 수사를 장기화시킬 수 있었다.


이때 상황을 반전시킨 공로자 역시 프로파일러였다.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형사들이 김길태를 압박하는 동안 프로파일러들은 김길태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특히 심적 변화와 반응을 면밀히 기록하며 김길태의 마음이 열릴 기회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 14일 거짓말탐지기조사와 뇌파조사 후 김길태의 심리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심리적 방어벽이 무너져 내린 것.일러가 투입될 적절한 타이밍이 온 것이다. 이때부터 프로파일러의 면담이 시작됐다. 형사에게는 비협조적이었던 김길태는 프로파일러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특히 거짓말탐지기가 거짓말하는 순간을 잡아낸 장면을 본 뒤로 마음을 돌렸고 처음 수사를 했던 수사관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자백을 하기 위해서였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순간이 오면 범행을 자백할 것이란 프로파일러들의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이처럼 검거부터 자백까지 김길태의 마음 속을 정확히 꿰뚫은 프로파일러 중 한 사람은 권일용 과학수사센터 경위다.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강호순 등 강력범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것으로도 유명한 권 경위는 이번에도 정확한 분석으로 사건해결을 앞당겼다.

권 경위가 김길태 검거작전에 주력한 것은 과거행적과 성격 등의 분석이었다. 특히 사회화되는 과정이 짧아 사람들을 피하는 특성을 활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 경위는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김길태는 피해자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며 “미안한 마음이 들도록 유도한 것이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김길태가 혐의를 자백하는데 가장 중요한 도움을 준 거짓말탐지기에 대해서도 “거짓말탐지기를 언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신중하게 판단한다”며 “뇌파 그래프 등 눈에 보이는 증거가 본인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나눈 다음에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투입해 김길태의 방어벽을 무너뜨린 권 경위는 굵직굵직한 사건에는 언제나 투입돼 힘을 발휘했다. 미국 FBI에서 프로파일링 기법을 연수받고 국내 1호 프로파일러가 된 권 경위가 이름을 알린 것은 연쇄살인범 유영철 사건이 터진 뒤부터였다. 당시 권 경위는 굳게 입을 다문 유영철로부터 20여명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이끌어냈다.

2007년 안양초등학생 두 명을 살해한 정성현이 범행을 실토한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도 권 경위였다. 당시 정성현은 결정적인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행을 부인하거나 거짓진술을 하며 수사진을 괴롭혔다.


이에 권 경위는 범인의 행동을 분석한 뒤 직접 정씨를 만났다. 권 경위는 먼저 정씨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해 방어력을 무너뜨렸다. 그 후에는 증거를 보여주며 압박해갔고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자신의 범행에 일말의 죄책감조차 가지지 않았던 흉악범을 상대로 치밀한 심리전을 벌여 원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강력사건엔 언제나 등장
범인들 방어벽 무너뜨려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지난해 붙잡힌 강호순 역시 권 경위의 작전을 통해 범행을 털어놨다. 권 경위는 5시간에 걸쳐 강호순과 여자이야기나 운동, 드라마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가벼운 잡담형식의 대화로 강호순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권 경위는 끝내 강호순에게서도 범행을 자백받기에 이르렀다.

이밖에도 지난 2004년부터 2년여간 13명을 살해한 정남규와 2007년에는 제주에서 실종 40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양모양 사건 등에도 기여했다.

이처럼 프로파일러들은 치밀한 범행으로 증거 찾기가 어려운 사건에 투입돼 범인을 프로파일링하고 분석해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대부분의 강력사건에는 늘 프로파일러들이 수사팀과 호흡을 맞춰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프로파일러 역사는 비교적 짧다. 프로파일러를 활용한 수사기법은 미국에서 1972년 FBI에 행동과학부가 창설되면서 시작됐다. 프로파일러의 수도 적고 수사기법으로 완전히 정착되지도 못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에 와서야 비로소 프로파일러가 배치됐다. 이른바 ‘묻지마 살인’등 범행동기를 밝히기가 어려운 범죄나 성폭행 등의 강력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인들의 행동분석과 심리분석을 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연방수사국(FBI) 수사기법을 벤치마킹해 서울청에 프로파일러를 배치했다. 권 경위도 이때 프로파일러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내 프로파일러 환경은 열악한 편에 속한다.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수는 39명. 권 경위가 소속된 경찰청에서 2명, 서울지방경찰청에서 5명, 각 지방청에서 2명 안팎이 배치되어 있다. 인지도 역시 낮은 편이다. 최근 방영된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탤런트 김태희가 맡은 역할 정도라는 것이 프로파일러에 대한 인식이다.

그러나 이번 김길태 사건으로 프로파일러가 국민들에 확실히 각인되고 있다. 프로파일러란 직업에 궁금증을 가지거나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고도화된 수사기법을 사용할 강력범죄가 늘면서 프로파일러의 수요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에 대한 지식
인간에 대한 애정 필요

그러면 프로파일러가 되려면 어떤 요소가 필요할까. 먼저 범인들의 심리를 꿰뚫어야 하는 만큼 심리학을 전공하거나 관련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또 범죄분석이 주요 업무인 만큼 사회학에 대한 관심과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관련 자격증도 있다. 한국사회 및 성격심리학회에서 발급하는 ‘범죄심리전문가 및 범죄심리사 자격증’이다. 하지만 이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프로파일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특채로 선발된 프로파일러 중에는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전반에 대한 관심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다. 관계자는 “흉악범들의 마음을 돌려 범행을 해결하는 것이 프로파일러인 만큼 범인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가지고 접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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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내부 총질 ‘친명 전쟁’ 서막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당내 울려 퍼지던 비명(비 이재명)계 소리가 사라졌다. ‘내부 저격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똘똘 뭉쳐 국회를 꽉 잡을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한쪽에서는 우려의 뜻을 내비친다. ‘이재명 독주’ 체제로 완성된 민주당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22대 총선서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큰 폭으로 물갈이에 나섰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주요 자리에 친명(친 이재명)계 인사들을 대거 투입했다. 친명 위주의 인선을 단행해 원팀 민주당을 꾸리겠다는 셈이다. 공천 파동을 딛고 살아남은 친명 의원들이 일제히 한 보 전진했다. 피바람 잦아드니… 지난 21일 이 대표는 사무총장에 김윤덕 의원을 임명했다. 김 의원은 이번 총선서 전략공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낸 인물로 지난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재명 후보의 열린캠프서 활동한 바 있다. 조직사무부총장은 황명선 당선인,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전략기획위원장은 민형배 의원 등 친명계가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의 정책을 이끌 민주연구원장에는 이 대표의 ‘정책 멘토’로 알려진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선임됐다. 이 원장은 이 대표의 ‘기본소득’을 설계한 인물로 민주당이 제시한 ‘25만원 지원금’에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법률위원장에는 이 대표의 대장동 변호를 맡은 박균택 당선인이 낙점됐다. 이 밖에도 당 대표 비서실장에는 천준호 의원,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에는 김우영 당선인, 교육연수원장에는 김정호 의원, 수석대변인에는 박성준 의원, 대변인에는 한민수·황정아 당선인이 자리했다. 이날 한민수 대변인은 인사 소개를 마친 후 당직 개편에 대해 “4·10 총선의 민심을 반영한 개혁 과제 추진에 있어서 동력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신진 인사들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선은 이 대표가 국회에 입성한 후 진행된 두 번째 물갈이다. 2022년 8월 이 대표가 취임 직후 단행한 인선을 두고 ‘친명 일색’이라는 거친 비판이 터져 나왔다. 곧바로 한병도·권칠승·고민정 등 대표적인 친문(친 문재인)계 인사를 등용하면서 논란을 잠재웠지만 이번 총선서 친명이 주류를 이루면서 이들을 당에 대거 투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22대 국회 문턱을 넘은 친문 세력은 약 스무명 안팎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때 민주당 180석을 지탱하던 핵심축이었지만 총선을 거치면서 세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민주당 공천을 두고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말이 나오자 고민정 최고위원은 위원직을 사퇴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처럼 공천 피바람이 당내를 휩쓸었지만 총선 이후 이 대표를 비판하던 목소리가 단숨에 잦아들었다. 총선 결과 이후 이 대표 체제는 더욱 견고해졌다. 이 대표를 거칠게 비판하며 당을 떠나거나 새로운 둥지를 꾸린 이들이 줄줄이 낙선하면서다. ‘친명’ 타이틀 달고 꽃밭 안착 둥지 떠난 탈당파 줄줄이 낙선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는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뒤 탈당해 새로운 당을 꾸렸다. 이번 총선서 광주 광산을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민주당 민형배 당선인에게 62.25%p로 크게 밀려 패배했다. 이 공동대표가 야심 차게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지역구 한 석에 그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개혁신당과 손을 잡은 이원욱 공동선대위원장 역시 지역구서 낙선했다. 탈당 후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5선 중진’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국회 부의장)도 고배를 마셨다. 홍영표·설훈 등 다른 비명계 의원 역시 줄줄이 낙선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당을 떠나면 춥다는 걸 몸소 보여줬다”며 “소위 비명계로 분류됐던 이들이 모두 당을 떠났으니 당내 파열음이 나오지 않는 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대부분 여의도를 떠나게 됐으니 당분간 ‘내부 저격수’로 불리는 이들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친명 체제에 화룡점정을 찍을 원내대표 선출 결과에도 눈길이 쏠린다. 내달 3일, 선출을 앞둔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사실상 친명인 박찬대 의원의 독무대인 만큼 ‘친명일색 민주당’이 완성될 것이란 해석이 우세하다. 박 의원은 지난 21일, 일찌감치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대표와 강력한 투톱 체제로 개혁 국회, 민생 국회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한 박 의원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면서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의원들은 속속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위한 기자회견을 예고했지만 돌연 취소했다. 당 대표 ‘원픽’ 이와 관련해 서 최고위원은 “(박찬대 의원 포함)2명 다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면 제가 원내대표에 당선돼도 최고위원 두 자리가 비게 된다”며 “총선에 압도적으로 이긴 이 대표 체제에 문제가 된다는 게 처음부터 고민이었는데 사전에 조율하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4선 김민석 의원도 “당원 주권의 화두에 집중해 보려고 한다”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인재위원회 간사였던 3선 김성환 의원과 원내수석부대표인 박주민 의원 역시 불출마 입장을 표했다. 민형배·진성준 의원도 하마평에 올랐지만 각각 전략기획위원장, 정책위의장에 임명되면서 자연스레 출마가 불발됐다. 이로써 원내대표 출마 후보군은 박 의원 한 명으로 압축됐다. 친명계 핵심인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당초 10명 안팎의 후보군이 난립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물밑서 이 대표가 교통정리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당 대표의 노골적인 선거개입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당을 좌우하는 명심에 대항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친문 인사가 끼어들 틈도 없이 빠르게 상황이 흘러갔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민주당 원내대표 겸 의장단 선출 선거관리위원회 간사인 황희 의원은 지난 24일, 선거관리위원회 1차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당규상 민주당서 원내대표 선거는 결선투표가 원칙으로 기본적으로 과반 득표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후보자가 1인일 경우 찬반 투표를 하기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원내대표 다음으로 주목받는 자리는 바로 차기 국회의장이다. 당내 우직한 이력을 가진 후보들이 기싸움이 이어가면서 명심이 누군의 손을 들어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민주당에서는 6선에 성공한 조정식·추미애 당선인과 5선인 정성호·우원식 의원이 22대 전반기 국회의장 출마를 밝혔다. 이들은 일제히 “기계적 중립은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며 강경 성향 의원의 표심을 얻기 위한 선명성 경쟁에 나섰다. 완벽한 시나리오 먼저 정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기계적 중립만 지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민주당 출신으로서 다음 선거의 승리를 위해 보이지 않게(그 토대를) 깔아줘야 된다”고 말했다.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서 다수당의 주장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로 알려졌다. 40년 가까이 알고 지낸 만큼 ‘원조 친명’이자 ‘친명계 좌장’으로 통한다. 이 대표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7인회’ 핵심 멤버기도 하다. 친명 후발주자인 추 당선인도 국회의장 도전에 대해 “주저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도 물론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그렇다고 중립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유보된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해내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강성 지지자의 호응을 유도했다. 민주당 조 전 사무총장도 “여야 합의가 될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며 “국회의장이 되면 긴급 현안에 대해서는 의장 직권으로 본회의를 열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과반석을 차지한 만큼 당내 경쟁도 치열해진 양상을 띠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에 당원투표를 반영하자는 주장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 지지층의 힘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후보들은 당심을 겨냥하기 위해 명심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당의 주요 인사들이 ‘이재명과의 호흡’을 강조하고 나선 만큼 이 대표의 의중인 ‘명심’은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를 앞세운 메시지가 앞다퉈 나오면서 입법 독주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국민의힘은 “너도나도 ‘명심팔이’를 하며 이 대표에 대한 충성심 경쟁을 하니 국회의장은커녕,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협치라는 말을 머릿속에서 아예 지워버려야 한다는 망언을 빙자한 민주당의 속내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상임위를 독식하겠다는 위헌적 발상도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솔솔 올라오는 ‘대표 연임설’ 대세는 ‘명심’…친문계 주목 총선 승리 이후 일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 “협치는 없다”는 기류가 흐르자 이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당내 주요직이 속속들이 친명으로 배치되는 가운데 친문에게 더 이상 핵심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이 대표의 연임설까지 불거지면서 ‘이재명호’ 민주당은 한층 견고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 임기는 오는 8월28일까지다. 이제까지 민주당서 당 대표가 연임한 역사는 없지만 당헌·당규상 이를 금지한 조항도 없다. 이 대표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번이고 당 대표를 연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20대 대선 패배 직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에 연이어 출마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총선 승리 직후부터 친명 의원 중심으로 “민주당에 압승을 가져다준 이 대표가 한번 더 당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친·비명 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고 민주당이 윤석열정권의 무능과 폭주하는 이 상황을 막아야 된다는 측면서 당 대표가 강한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런 면에서 연임할 필요성도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총선이 끝나고 이 대표를 만나 “강한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도 덧붙였다. 해남·진도·완도에 승기를 꽂은 박지원 당선인 역시 “만약 이 대표가 계속 대표를 한다고 하면 당연히 해야 한다. 연임해야 맞다”며 “이번 총선을 통해 국민이 이 대표를 신임했다”고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줬다. 반면 친문계 핵심으로 꼽히는 윤건영 의원은 이 대표 연임에 대해 “전당대회가 넉 달이나 남은 상황서 민주당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이슈”라며 “지금은 총선서 나타난 민의를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당의 리더십에 관한 것은 시간을 두고 차분하게 풀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의도 정가에 밝은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친명 체제를 두고 외부서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정작 당내에서는 후폭풍이 불 수 없는 상황”이라며 “비명 의원끼리 바람을 일으키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폭풍 전야 잔잔한 미풍 일제히 이 대표의 의중만 바라보는 민주당은 친명과 찐명 그리고 ‘신명(새로운 친명)’만 존재하게 된다. 이런 상황서 “당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겠냐”는 비판이 물밑으로 조용히 들려온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애초에 이 대표의 목적은 자신만의 민주당을 만드는 거였고 이번 총선을 통해 결국 이뤄냈다”며 “친명 민주당이라는 날카로운 검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국 이 대표의 손에 달려 있다. 이 대표는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자신의 영향력 밑에 당을 두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속 타는 조국혁신당 교섭단체 구성에 난항을 겪는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앞서 조국당 조국 대표는 여러 차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범야권 연석회의’를 제안했지만 이 대표는 만찬 회동으로 갈무리하는 데 그쳤다. 민주당 내에서는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다”라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 대표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조 대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캐스팅보트 역할을 쥔 것 또한 조국당인 만큼 22대 국회 개원 이후 민주당과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